논단

 

베일 속의 한일자유무역협정

한국의 산업, 노동, 그리고 ‘동아시아 비전’

 

 

송주명 宋柱明

한신대 일본지역학과 교수, 정치학. 공저로 『세계화와 일본의 구조전환』 『21세기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와 한반도』 등이 있음. jmsong@hs.ac.kr

 

 

1. FTA의 마법

 

세계적 무역자유화의 선도체인 WTO에서 자유화협상이 지지부진해진 것을 배경으로 전세계는 양국간 혹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의 마법에 빠지고 있다. 지역주의가 전세계적 자유화를 방해할 것이라는 전통적 논의는 거품처럼 사라지고, 지역주의야말로 세계적 자유화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주류가 되고 있다.1 이른바 ‘WTO 플러스’의 지역주의 인식이 그것이다. 지역적·양국적 무역협정에 둔감하던 한국과 일본마저도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이하 FTA)만이 살길임을 이제야 ‘터득’한 듯하다. 특히 양국의 외교 및 산업정책당국의 일부 부서들은 FTA의 ‘배제’ 위험성을 내걸면서 경쟁적으로 협정의 대상을 찾아나서고 있다. 양국은 남미 몇몇 국가, 그리고 본격적으로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FTA를 모색하고 있다.2 새로운 시장(emerging market)인 ‘동아시아’는 양국의 FTA 정책에서 가장 중심적인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들어 양국간 협상논의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지만, 한일간의 FTA는 이미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일 FTA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1998년 경제위기 직후에 주한 일본대사 오구라 카즈오(小倉和夫)가 전경련에서 이를 제안한 것이 최초의 논의였다.3 당시 일본으로서는 미국 및 WTO 중심의 대외경제정책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경제공동화와 더불어 진행된 지루한 경제침체에서 탈피하려는 중요한 전략으로 FTA 정책을 본격적으로 채택하기 시작했다.4 한편 이러한 논의과정에 공식성을 부여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김대중정권이었다. 당시 IMF 경제관리체제 하에서 경제정책의 기조를 신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전환한 김대중정권은 FTA 또한 경제 전반의 자유화를 촉진하는 유효한 정책수단이라고 판단했고, 일본은 획기적으로 일본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보이던 김대중정권 시기를 놓치지 않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둘렀던 것이다.5 이리하여 1998년부터 2000년에 걸쳐서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일본의 아시아경제연구소(JETRO IDE)를 통해 정부연구소간 공동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이어받아 2000년부터 2002년 사이에는 양국 재계간의 ‘한일 비즈니스 포럼’이 진행되었고, 정부관료를 포함한 초기협상으로서 2002년부터 2003년에 걸쳐 ‘한일 산관학(産官學) 공동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정권이 바뀐 2003년은 한일 FTA 논의가 정부간 실질협상을 기정사실로 남겨둔 상황이었다. 결국 2003년 12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정부간 본협상이 5차까지 진행되고, 양국이 작성한 가협정문과 관세양허안을 기준으로 절충과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일 FTA에 대한 공식적 협의과정은 명확한 국민적 합의와는 무관하게 외무 및 일부 산업관료, 재계상층부, 개방경제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마치 ‘꼬리말잇기’식의 정당화를 통해 현재의 본협상에 이르고 있다. 더구나 문제인 것은 협상의 대항목 외에 대다수 중요한 내용들이 철저히 베일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국 협상에서 쟁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FTA가 실현되었을 때 국민경제와 국민의 삶은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될지에 대해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다.6 밀실 속의 우리 관료가 철저한 민관협조의 기반 위에서 전략적으로 행동할 일본 관료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대단히 궁금한 일이다.

사실 한국으로서도 중장기적으로 동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발전전망을 만들고, 그 위에서 적극적으로 국가·국민의 미래를 개척해가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남북통일의 과제 및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할 때, 우리는 동아시아의 핵심적 행위자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든 불리한 것이든 지역 내부의 여러 정치적·경제적 상호작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 특히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지역적으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국제질서의 기층이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수동적으로 변화의 압력을 수용하는 자세를 넘어서, 동아시아의 공존과 발전,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도록 애쓰는 것은 우리의 책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도 한일 FTA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현재 협상이 철저히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는만큼,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친 양국간의 공동연구 자료를 중심으로 한일 FTA가 한국의 국민경제와 국민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분석하고, 이것이 바람직한 ‘동아시아 비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2. 공식 언사와 이해관계

 

2003년10월에 공표된 산관학 공동연구회 보고서에 따르자면,한일 FTA의 기본원칙은 포괄성, 유의미하고 실질적인 자유화, 상호이익의 확대,WTO 규칙과의 정합성, 지역통합의 모델로 요약된다.7이는 한일 FTA가 범위와 속도 면에서 포괄성과 비장기적 이행의 특징을 갖는‘선진국형 FTA’ 즉 WTO를 앞서 나가는 ‘WTO 플러스’로서의 특징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 전체회의와 총 일곱 개의 협상반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본협상의 범위(scope)는 ‘자유화 및 원활화’에 해당되는 14개 항목(관세, 비관세조치, 원산지규칙, 세관절차, 전자상거래, 무역구제조치, 무역의 기술적 장벽, 위생식물검역, 써비스무역, 투자, 인적이동,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경쟁정책)과 ‘협력’에 해당되는 10개 항목(정보통신기술, 중소기업, 무역투자촉진, 과학기술, 운수, 방송, 관광, 환경, 금융, 인재육성)등 지극히 포괄적이다.8 그만큼 한일 FTA는 협의의 FTA와는 달리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래 써비스무역과 투자자유화, 나아가 원활화와 경제협력 요소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유형의 포괄적 FTA이다.9 그렇다고 해서 한일 FTA가 FTA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며, 도리어 ‘WTO 플러스’라는 표현에서도 분명해지듯이 더욱 강화된 요소를 갖고 있다. 그런만큼 한일 FTA에서 여전히 중요한 문제는 ‘무역’, 특히 ‘상품무역’이며, 그중에서도 ‘관세철폐’의 문제이다. 따라서 관세철폐에 따르는 손익이 양국간·산업간에 어떻게 발생할 것이며, 관세철폐의 손익을 다른 항목들(가령 비관세장

  1. 이 두 입장의 초기 논쟁에 대한 소개는 Jagdish Bhagwati, “Regionalism vs. Multilateralism,” World Economy, 15(5), 1992; Robert A. Pastor, Integration with Mexico: Options for U.S. Policy, The 20th Century Fund Press 1993 참조.
  2. 물론 일본은 2001년 말에 일본·싱가포르 경제제휴협정, 한국은 2003년 말에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등 실험적 의미를 갖는 협정을 이미 체결한 바 있다.
  3. 『外交フォ―ラム』 1998년 6월호.
  4. 與謝野馨 「21世紀に向けた日本の挑戰」, 『通産ジャ―ナル』 1999년 2월호,13~14면.
  5. 이러한 경과에 대해서는 磠山襄 「自由貿易協定と日本」, 『貿易と關稅』 1999년 8월호 참조.
  6. 현재까지 한일 FTA 본협상의 개요에 대해서는 한국 외교통상부와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소략하게만 소개되어 있다.
  7. 산관학 공동연구회 「日韓自由貿易協定共同硏究會報告書」, 日本外務省 2003, 18~20면. 한편 한일 FTA가 지역통합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한국측에서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보이는데, 가령 한일 FTA를 한중일 FTA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 FTA로 확대해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원칙이 본협상의 원칙에서는 배제되고 있으며, 나중에 구체적으로 논의하겠지만 이것은 한일 FTA의 발전방향에 대해 양국간의 인식 차이가 큼을 시사해준다.
  8. 산관학 공동연구회에서 제시한 한일 FTA의 범위와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산관학 공동연구회,앞의 글 21~49면 참조. 본협상에서 일곱 개의 협상반은 ① 총칙, 분쟁해결, 최종규정 ② 상품무역(관세, 무역구제조치 등) ③ 비관세조치(NTMs), 위생식물검역(SPS), 무역의 기술장벽(TBT) ④ 써비스무역과 투자(금융·전기통신 등 써비스무역, 인적이동, 투자) ⑤ 기타 무역관련사항(정부조달, 지적 소유권, 경쟁정책) ⑥ 협력(무역투자촉진, 중소기업 등) ⑦ 상호승인협정(MRA) 등이다.
  9. 이러한 포괄적 FTA를 일본에서는 전통적 무역정책으로서의 FTA와 구별해 경제제휴협정(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EPA)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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