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평화체제와 평화운동(21세기의 한반도 구상 2)

 

변혁기의 반전평화운동

 

 

한기욱 韓基煜

문학평론가, 인제대 영문과 교수. 주요 평론으로 「지구화시대의 세계문학」 「우리 시대의 사랑·성·환경 이야기」 「미국 민주주의와 ‘제국’」 등이 있음. englhkwn@ijnc.inje.ac.kr

 

 

머리말

 

전쟁과 평화는 어떤 관계일까? 전쟁이 있는 한 평화는 불가능하지만 전쟁이 없다고 해서 곧 참다운 평화가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 없는 상태로서의 평화(이른바 ‘소극적’ 평화)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활기차고 복된 삶을 누리는 참다운 평화(‘적극적’ 평화)를 가능케 하는 필수조건이자 기본바탕일 뿐이다. 그러기에 평화 앞의 ‘반전’은 평화의 의미를 소극적 범위로 한정하는 뉘앙스를 주기 싶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평화 앞에 종종 ‘반전’을 붙이는 것은 평화의 의미를 제한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전쟁위협에 시달리는 세계와 한반도의 험악한 상황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이라크전 이후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전쟁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자주 꼽힌다. 미국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량살상무기의 확증 없이도 이라크를 침략한 터라 내놓고 핵무기 개발을 공언하는 북한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일본·중국을 잇따라 방문하여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했지만 신통한 성과를 거둔 것 같지는 않다. 다행히 노대통령의 방미 전에 중국의 중재로 뻬이징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미국·중국 3자회담이 열렸고 향후 6자회담의 형식을 띤 제2차 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북·미 두 나라가 일단 대화의 실마리는 찾았지만 북핵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점치기에는 아직 이르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진지하게 응할 뜻이 별로 없는 듯하고 북한 역시 미국의 ‘오만한’ 요구에 쉽사리 굴복할 것 같지 않다. 미국의 ‘예방’전쟁과 봉쇄 고사 전략에 북한은 ‘예방’적 핵억지력 보유로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이런 극단적 대치국면을 두고 미국의 전 국방장관 페리(William Perry)까지도 한반도의 전쟁발발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1 국내외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전쟁위기설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따로 검토할 문제지만, 한반도가 1994년의 핵위기를 방불케 하는 위태로운 국면으로 빠져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위기의 국면에서 정전 50돌을 맞아 시민·종교운동단체와 언론매체의 주도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다채로운 학술행사와 대중집회가 잇따라 열린 것은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7월 25일 문화일보와 학술단체협의회에서 공동주최한 정전 50주년 국제평화학술심포지엄의 제목 ‘정전체제를 넘어 평화체제로’에서 적절히 표현되었듯이 이번 평화행사들은 한반도의 근본적인 불안정구조를 좀더 안정적인 평화체제로 바꾸는 중요한 의제를 전면에 내걸었다. 정전기념일을 ‘평화의 날’로 개칭하고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제안이나 정전 50주년 평화대회조직위가 채택한 ‘한반도 평화선언’도 뜻깊다. 하지만 이번의 각종 평화포럼과 평화대회가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실다운 평화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난관을 돌파해야 할 것이다.

미국문학을 전공한 필자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슨 특별한 분석이나 주장을 내놓을 처지는 아니다. 다만 세상이 미국의 오만한 군사패권주의로 말미암아 한층 살벌해지면서 가뜩이나 불안정한 한반도가 그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놓여 있기에,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좀더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공동체를 이루는 우리의 역사적 과업에서 평화운동이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우선 이라크전을 계기로 드러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의 성격과 역량을 평가하고,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현싯점에서 세계평화운동과 반지구화운동의 가능성을 타진한 다음, 한반도 평화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나름으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이라크전쟁과 미국의 군사패권주의

 

미국은 9·11사태 이후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침공·점령함으로써 자신이 냉전 이후 유일 초강대국임을 입증했다. 이라크에서 우려할 만한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유엔무기사찰단의 증언도, 프랑스·러시아·중국을 포함한 유엔안보리의 분명한 반대도, 세계 전역 수백만 시민들의 맹렬한 반전평화 외침도 초강대국 미국의 전쟁의지를 꺾지 못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지구촌 주민들 대다수가 세계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존재는 이라크의 독재자 후쎄인보다 그를 제거하겠다는 명목으로 엄연한 주권국을 침공한 부시정권의 매파들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라크전쟁이 개전 40여일 만에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일단락되었을 때–지난 5월 1일 부시가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사실상의 종전선언을 했을 때–‘팍스아메리카나’라 불리는 미국의 세계적 패권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미국의 힘과 지위가 9·11 이전보다 더 강화된 것인지는 좀더 냉정하게 따져볼 문제이다. 9·11 이후 미국의 군사주의적 대외강경책을 주도한 (신보수주의자·기독교우파·군사주의자를 기반으로 하는)‘매파’ 세력은 이라크전의 승리로 한껏 고무되었지만, 9·11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손익계산서를 뽑아보면 그들이 우쭐거릴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매파들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무력으로는 최강자임을 보여준 것이 큰 소득이며–‘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 쩌뚱의 말을 신봉하는 자라면 이것이 결정적인 성과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탈레반정권이나 후쎄인정권 같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사후에나마 최소한의 명분을 얻고 9·11로 정신적 외상을 입은 미국인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할지 모른다. 하지만 잃은 것은 엄청나며 그 후유증은 예상하기조차 힘들다.

우선 유엔 및 서구 동맹국들과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미국의 적잖은 외교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매파들은 미국이 유엔의 반대를 묵살하고 전쟁의지를 관철시켰다는 사실에 흡족해할지 모르나 사실은 서구 동맹국들과 제3세계 국가들의 반발로 유엔에서 이라크전쟁의 정당성(legitimacy)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좀더 냉정한 판단일 것이다. 예전에는 미국의 뜻을 알아서 받들던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의 온갖 회유와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았을뿐더러 안보리 비상임이사국들까지 미국의 강압적 요구에 반기를 들지 않았던가. 결국 미국은 이라크 공격을 정당화할 제2의 유엔결의안을 철회하고 부시의 ‘푸들’이라 조롱받는 블레어의 영국군과 함께 이라크를 침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지구촌의 분쟁 때마다 미국의 뜻을 대변하면서 강대국들의 입장을 조율·중재해온 최고의 국제기구 유엔이 사실상 결딴나고, 미국과 서유럽의 군사적·정치적 동맹의 토대이던 나토가 두 동강 났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특히 미국의 유엔에 대한 사실상의 보이콧은 탄도미사일방어(ABM)조약의 일방적 파기, 쿄오또오의정서 수용 거부, 국제형사재판소(ICC) 참여 거부 등 부시 집권 이후 국제법과 국제조약에 대한 일련의 거부와 맥을 같이한다. 이런 거부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사항들에서 미국만은 구속받지 않겠다는 특권적 의지의 천명으로서 최강자의 위력을 과시한 것으로 비칠 수 있으나,자신이 구축한 세계질서 속에서 스스로 배척당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요컨대 부시정권은 2차대전 이후 자국의 주도하에 건설된 전후 세계질서의 ‘공치’(公治, governance) 구조를 자기 손으로 파괴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장차 미국의 힘을 강화할지 약화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 매파의 이런 일방주의적·예외주의적 강경노선이 미국의 힘의 증대가 아니라 약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짚을 필요가 있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30년 가량 소련과의 적대적 공존 및 서유럽과 일본의 추종 덕택에 ‘자유세계’에서 명실상부한 패권을 누렸지만, 1960년대 후반을 통과하면서 세계경제가 하강기에 접어들고 부쩍 성장한 서유럽·일본의 도전에 직면하자 양자를 세계경영의 파트너로 삼는 다자간 협력틀을 구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클린턴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이런 다자주의를 대외정책의 기본으로 삼고 자국 주도로 구축된 유엔, 나토, IMF, 세계은행, G7, OECD, WTO 등의 국제기구 및 각종 국제협약을 지지하며 국익을 최대한으로 수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다자간 협력틀 속에서 미국의 패권이 야금야금 잠식당하는 꼴을 못마땅하게 여긴 매파들은 일찍부터 미국의 우월한 군사력에 기반한 세계통치를 꿈꾸어오다가 부시의 집권과 9·11이라는 호기를 맞아 군사패권주의적인 강경책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런 강경책이 주효하여 매파들의 입지가 강화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2 과연 그들의 뜻처럼 나약해진 미 제국의 힘이 회복된 것인지는 의문이다. 두 차례의 전쟁 승리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당성과 지도력은 크게 훼손되어 미국의 뜻에 따르지 않는 나라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의 요청에도 영미와 더불어 이라크 평화유지 및 복구활동에 참여한 나라들은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몇몇 나라에 불과한 것이다.

매파의 군사주의적 강경책으로 말미암아 미국 거주민은 물론 시민의 권리마저 크게 잠식당하면서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우리 편이 아니면 우리의 적”이라는 부시의 협박은 외국의 수상쩍은 집단과 국가뿐만이 아니라 다인종·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주민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권리장전’의 10개항 중 최소한 6개항을 위반했다는 ‘애국자법’에 따르면, 미국 거주민·시민 모두는 테러리스트로 의심받을 경우 뚜렷한 증거 없이 수사당국에 연행되어 장기간 심문당할 수 있고, 심지어 수사관이 요구하면 동료의 신상정보를 알려주고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 법의 일차적인 피해자는 아랍계 출신과 이슬람교도이니, 수천명이 구금되고 그중 수백명이 본국으로 추방되는 사태가 발생했다.3 민주주의가 훼손될 때면 인종차별주의가 히드라처럼 고개를 쳐드는 미국사의 낯익은 풍경이 재연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악법이 미국 의회에서 별다른 토의 없이 압도적인 다수결로 통과되었다는 사실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매파만이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데 나선 것은 아니며, 온건파와 야당인 민주당 역시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하고는 이 악법에 소리높여 동조한 것이다. 정치권뿐 아니라 미국의 거대한 주류언론도 한몫 단단히 했는데, 특히 폭스뉴스(Fox News), MSNBC, CNN 같은 TV방송국의 활약은 대단했다. 이라크전에서 기자들이 군대에 ‘배속되어’(embedded) 미 군부의 관점을 효과적으로 선전해준 덕택으로 미국정부는 미디어법을 고쳐서까지 이들의 독점적인 지배를 더욱 강화시켜주려고 했다. 요컨대 부시정부의 국내외 패권주의는 매파의 독자적인 힘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며, 미국의 정치권·군부·언론계가 공조하여 민주주의 권리를 제약하는 한편 주민을 테러와의 전쟁의 지원부대로 동원하는 일에 나섬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사실 9·11이후의 이런 공조체계에 의해 미국정부는 국내외적으로 파시스트적인 발상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이 유엔헌장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고 애국자법의 제정이 미국헌법의 수정조항을 여러 겹으로 어긴 것이지만, 이보다 더한 파시스트적인 조치는 포로로 붙잡은 탈레반 병사나 테러 연루자를 ‘적 전투원’(enemy combatant)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미국이 아직도 보유하고 있는 꾸바 관따나모(Guantanamo)기지의 수용소에 가두고 일체의 기본권을 박탈한 짓이다. 미국사의 고비마다 멀쩡한 사람들을 때려잡는 마녀사냥의 광풍이 있었고 그때마다 민주주의는 위협받았지만, 이런 열풍이 지금처럼 미국사회 전반을 휩쓴 적은 없었다. 미국이 ‘제국주의’ ‘파시즘’ 혹은 ‘전지구적 파시즘’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4

정치권·군부·언론계의 공조체계로 빚어진 미국의 파시즘적인 열풍 속에서 근대적 가치를 담보하는 핵심용어들, 가령 ‘자유’와 ‘민주주의’의 개념이 전도되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부시정권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미국식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복음처럼 전파하여 중동지역에 평화를 이룩하겠다고 할 때, 이런 용어들에 두 겹의 아이러니가 깃들게 된다. 하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국내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탄압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 용어들이 식민주의적 침략과 점령의 구실로 동원된다는 것이다. 서구열강의 직접적인 식민통치가 끝난 마당에 그것도 민주주의의 모범국가인 미국한테서 이런 뻔한 거짓말을 듣는다는 것이 놀랍다면 놀랍다. 정말 놀라운 것은 지구상의 대다수 주민들이 이것이 뻔한 거짓말임을 단박에 알아차리는데, 가장 선진적인 문명국임을 자처하는 미국의 시민들 다수는 이런 거짓말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에, 이라크전에 참전한 제3사단의 본토기지가 있는 죠지아주의 하인즈빌을 방문취재한 한 기자에 따르면, 하인즈빌 시민들은 바그다드 함락 후에 곧 돌아오겠다던 남편이나 아들이 종전선언 2개월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처음에는 정부와 군당국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자 3사단 사단장이 전선에서 이메일로 군인가족에게 후쎄인 잔당들의 게릴라전 때문에 병사들을 당장 귀환시킬 수 없는 사정을 해명하고 미국을 위하여 좀더 참아달라고 호소함으로써 부녀자들의 항의를 진정시켰다는 것이다. 묘한 것은 지금 하인즈빌 시민들의 불만 표적은 장군들이나 미국정부보다는 이라크인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기자가 취재한 몇몇 대목을 소개하면 이렇다.

한 여인이 “나는 이라크 사람들에게 상당한 분노를 느껴요. 우리는 그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뿐이잖아요. 하지만 이젠 내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길 원해요”라고 하자 다른 한 여인이 동감을 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들이 좀더 열의를 보이리라 생각했어요. 미국인들처럼 민주주의 속에 살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는 이라크인들이 이토록 순진하다는 것이 놀라워요. 자유를 원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요? 나로서는 그들이 그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힘들어요.”5

이들이 이라크파병 미군의 아내들인 만큼 애국심이 강하리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의 주류세력이 지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이토록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앞세운 바로 그 미군의 포격으로 이라크인들이 자식과 재산을 잃고 후쎄인보다 미군을 더 증오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하니 말이다. 이들을 이처럼 눈뜬 봉사로 만든 요인은 이라크인의 실제 사정을 무시하고 미국인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미국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니, 여기서 ‘자유’와 ‘민주주의’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타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둔갑한다. 이들 군인가족뿐 아니라 미국인 상당수가 이런 미국중심주의에 푹 빠져 있어 그 증상을 자각하지도 못하는 상태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떠한 관념도 경험적 실제와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파탄나게 마련이다. 이라크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죽어서 돌아오는 숫자가 늘수록 하인즈빌의 주민들은 주류 세력의 이야기에 의혹을 가지고 미국의 이라크 선제공격의 정당성을 따져보고, 나아가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겨볼 것이다. 사실, 이라크전 참전군인 가족들이 일단 미국중심주의의 ‘마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누구보다 반전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공산이 크다.6 대량살상무기의 증거가 바그다드 점령 4개월 후에도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부시가 올해 연두교서에서 거론한 이라크 핵개발 의혹이 조작된 것이라는 증거가 밝혀지면서 적잖은 미국 시민들이 주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반발할 기미를 보인다. 매파에게 더 걱정스러운 것은 정치계의 최근 동향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나 미국중심의 세계질서 건설엔 반대하지 않지만 부시의 군사패권주의적 일방주의가 ‘너무 나가버려’(overreached) 역풍을 부른다고 생각하는 정치가·언론인이 늘면서 국내외의 파시즘적 강경책을 떠받치는 공조체계가 무너질 조짐마저 보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애국자법에다 스파이조항을 삭제하는 수정조항을 달았고,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제출한 미디어 소유규제 완화법안을 거부했으며, ‘소형핵무기’(mini-nuke)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따지고 보면 미국정부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뻬이징회담에 응한 것은 이런 기류변화에 기인한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 이라크전의 향방이 미국 정치계의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게릴라전이 계속되면서 이 전쟁이 제2의 베트남전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두 전쟁 사이의 유사성이 차츰 두드러지는 것이다.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면서 시작된 베트남전처럼 이라크전도 대량살상무기의 증거조작에서 시작되었고, 미국이 엄청난 포탄을 쏟아부어 초반에 승기를 잡았으나 저항세력의 끈질긴 게릴라전으로 갈수록 전세는 불리해지고 국내여론이 악화되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하지만 두 전쟁의 차이점도 짚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베트남전은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힘이 아직 막강할 때 일어났고, 서구의 어느 나라도 반대하지 않았으며–프랑스가 철수하면서 자기들이 빠진 수렁에 미국이 제발로 기어들어온다는 조롱을 했지만–반전시위도 개전 몇년 후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대두된다. 반면 이라크전은 미국의 힘이 내리막길을 걸을 때 일어났고 프랑스·독일·러시아·중국 등의 강대국을 위시하여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들이 반대했으며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전세계 1500만 가량의 사람들이 반전시위에 참가했다.

두 전쟁이 미친 영향도 비교할 만한데, 베트남전의 패배로 미국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만 전후복구에 신경쓰지 않고 그냥 철수하고 중국과 화해함으로써 그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반면, 이번 전쟁은 계속 주둔하든 철수하든 미국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다. 짐작컨대 이라크는 체첸과 같은 테러의 구렁텅이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종족분쟁의 도가니가 아니면 이란 같은 반미 이슬람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바라는 친미정부가 들어설 여지는 거의 없으며, 미국에 대한 이슬람권의 테러위협은 오히려 증가하는 반면 아랍권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이스라엘은 수세에 몰릴 공산이 크다. 이라크전은 미국한테 베트남전보다 더한 악몽이 될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만약 매파가 미국 대기업들의 지지를 계속 받는다면 이 모든 불리한 여건마저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라크전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는 석유자본과 군수업체를 제하면 금융자본을 위시한 미국의 거대 기업집단들이 매파의 강경책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다. 대체로 그들은 가뜩이나 힘든 미국경제를 부시가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쪽이다. 두 차례의 전쟁을 (영국을 제외하면) 거의 홀로 추진하면서 군비를 대거 확장한 것이 1990년대 거품경제 이후 디플레이션의 압력에 허덕이던 미국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준 것은 물론이다.7 1991년 1차 걸프전 때만 해도 서구 동맹국들이 폭넓게 참전했을 뿐 아니라 일본과 서독을 필두로 거액의 지원금을 내어놓아 ‘자유세계’의 용병격인 미군의 군비를 넉넉히 충당했던 사정과는 판이하게, 이번 이라크전의 비용은 미국이 거의 전적으로 부담해야 할 형편이다. 종전선언 이후에도 계속되는 게릴라전으로 말미암아 이라크 유전에 대한 이권을 미국이 독식한다 해도 군비는 차치하고 막대한 전후복구 비용만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시는 기업집단과 상위소득자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각종 감세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미국의 경기를 되살려놓기에는 역부족이며 빈부간의 격차를 더 넓히면서 재정적자만 늘려놓았을 뿐이다.8 요컨대 미국 매파들의 역량을 우습게 보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이겠지만, 그들의 힘을 과대평가하여 세상이 미국 매파들의 뜻대로 될 것으로 보는 것은 좀더 나은 세계에의 열망을 스스로 폐기하는 또하나의 중대한 오류가 아닐까 싶다.

 

 

반지구화운동과 반전평화운동

 

부시 집권 이후의 경기침체가 오로지 몇몇 경제정책의 실패라든지 혹은 통상적인 경기순환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면 그렇게 심각하달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불경기의 근본 원인이 신자유주의적인 지구화의 한계 혹은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여기서 지구화 기획에 관해 길게 이야기할 계제는 아니어서,9 이 글의 논지와 관련하여 간략한 소개와 더불어 몇가지만 짚기로 한다. 우선 상품·자본·노동을 국가나 지역 단위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유통시키려는 지구화가 근대 세계체제 중심부의 자본축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일련의 기획들 가운데 완결판으로 제시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 지구화론자의 모토가 지구화 외에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TINA)이며, 지구화의 결실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할 때 경기변동에서 벗어난 ‘신경제’(New Economy)가 도래했느니 어쩌느니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지구화 기획의 전망을 밝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WTO 속에서 부자 지역인 ‘북’의 세 세력 미국·유럽(EU)·일본의 각축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데, 특히 미국과 EU의 갈등–가령 농업보조금을 둘러싼 갈등–은 WTO 자체의 기능을 종종 마비시킬 정도로 심각하다. 또 지구화 자체의 주된 타깃이 주변부의 노동과 자연자원을 착취하여 중심부의 자본축적을 꾀하는 것인 만큼 잘사는 지역인 ‘북’에 대한 못사는 지역인 ‘남’의 반발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구화의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이 기업의 이윤을 무엇보다 우선시함으로써 지구의 생태환경을 고갈시키고 교육·보건을 비롯한 사회복지 비용을 최대한으로 삭감하기 때문에 주변부는 물론 중심부의 하위 계층들한테서도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1999년 WTO의 씨애틀 회의가 노조와 무정부주의자, 환경·여성·소수민족 운동가 등의 다양한 세력들이 함께 참가한 격렬한 반지구화 시위로 좌초된 것은 이런 갈등들이 결합되어 일시에 표출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반지구화 세력은 씨애틀 시위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1년 1월에 ‘또다른 세계가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는 슬로건을 내걸고 브라질의 뽀르뚜 알레그레에서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을 창립하여 해마다 포럼을 열었는데, 이것이 이제는 세계 곳곳의 각종 시민단체와 NGO 및 개인들까지 참여하는 세계 반지구화운동의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기획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각종 반지구화 운동세력들을 지구적으로 결집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WTO 내의 미국·EU 간 갈등의 주된 원인이 WTO 취지에 어긋난 주장을 하는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적 태도 때문이라는 점이다. 부시는 자본주의 엘리뜨 계층들에게 공동으로 이익이 되는 지구화조차 미국의 이익을 기준으로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니 “미국에는 보호주의, 나머지 우리한테는 자유무역”(월든 벨로)을 주장하는 격이다. 앞서 이라크전에서 보여준 일방주의적 군사패권주의와 마찬가지로 지구화 기획에서도 미국은 ‘예외’를 고집함으로써 가뜩이나 불안정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근간을 위협하곤 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위기국면으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대다수 자본가집단들은 각자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함으로써 체제 자체가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쪽이라면, 부시정부는 지금의 WTO 체제가 무너지든 말든 자국 자본과 자국인의 이익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려는 쪽이다.

WTO 체제에 반대하면서 향후 좀더 나은 체제가 들어서기를 열망하는 세계 민중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성향이 다른 두 종류의 자본가세력들을 상대해야 하는 형국이다. 물론 이 양자의 차이가 본질적인 것이 아닌만큼 결국에는 힘을 합칠 가능성도 있지만 망하는 집안에서 형제끼리 서로 싸움질하듯 심각한 갈등을 표출할 여지도 많다. 그런만큼 세계는 지역적 분쟁을 피하기 어려운데 이런 변혁기의 험난한 상황에서 민중이 양자를 상대로 입지를 확보하고 좀더 나은 체제건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자간의 일정한 균열과 대립을 활용할 필요가 있고, 그러자면 반지구화운동과 반전평화운동을 유연하게 결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두 운동은 독자성을 유지하고 활동하되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군사패권주의가 가공할 폭력을 휘두르려 할 때는 함께 반전평화운동 전선으로 나서고(이 경우 제3세계는 물론 유럽과 동북아[한·중·일]의 자본 및 국가도 반전평화운동 쪽으로 견인할 필요가 있다), 민중에게 더 열악한 새 체제를 만들려고 기도할 때에는 두 세력이 합세하여 반지구화운동의 전선으로 결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결합은 두 운동을 꾸리는 사람들–두 운동은 수뇌부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기획·조정위원회 비슷한 것이 있을 뿐이다–이 서로간의 어떤 연대를 구상하기도 전에 이미 성취된 것이기도 하다. 이라크에서의 전쟁가능성이 차츰 현실로 다가오던 올 2월 15일 세계 곳곳에서 거리에 나와 ‘전쟁반대’를 외친 800만 민중 속에는 반전운동 쪽만이 아니라 반지구화 지향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양자간의 씨너지 효과가 작용하면서 지구촌 전체가 지금보다 나은 체제–전쟁과 폭력과 강압이 없는 세상, 계급·인종·성의 차별이 없는 세상, 좀더 민주적이고 생태친화적인 세상–를 염원하는 열기로 가득 차, 이런 열기에 공감하는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을 끌어낸 것이다. 이 역사적 시위를 두고 『뉴욕 타임즈』가 초강대국 미국을 견제할 또하나의 ‘슈퍼파워’라고 명명할 때 염두에 둔 것은 반전평화운동이었겠지만, 이 시위 속에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반발이 깊이 스며 있었다.

또 2월 15일 시위의 성공요인 가운데 하나는 양대 운동의 비폭력 원칙과 자발성에 기초한 느슨한 상향식 조직화가 다양한 갈래의 운동세력들을 폭넓게 수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시위를 기획하는 쪽에서 빡빡하고 과격한 프로그램을 미리 짜놓고 시민들을 거기에 맞추는 ‘낡은’ 방식을 구사했다면 그만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요컨대 시위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실로 다양한 갈래의 운동세력과 그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심리적 부담 없이 참가한 것이다. 전쟁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제국의 역습 앞에서는 반전평화운동도 부질없다는 식으로 이 시위의 의의를 얕잡아보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10 그것이 보여준 가능성은 의미심장하거니와 실제적인 영향력도 만만찮았다. 이 시위는 여러 나라들이 미국의 이라크전 파병 및 전후복구 협조 요구를 뿌리치는 데 상당히 기여했음이 분명하고 실제로 이라크에서 개전 초기에 미군의 전술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대대적인 반전평화의 외침 속에서도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는 전쟁을 감행했고 잔인한 학살과 만행을 저질렀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요동치는 체제변혁기에서 세계 민중을 한편으로 하고 군사패권주의·신자유주의적 지구화세력을 다른 편으로 하는 중차대한 대결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쪽이 승리할지 장담할 수 없는 이 싸움을 통해 장차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월러스틴은 이런 불확실한 체제변혁기에서 집단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는 기존의 세계체제에서 다른 세계체제로 가는 무정부적인 이행기에 들어섰다. 이런 시기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어느 누구도 상황에 대한 유의미한 통제를 하지 못하며, 미국처럼 기울어가는 패권주의 국가는 가장 그렇다. 미 제국의 옹호자들은 자기들이 순풍을 안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사방에서 강한 돌풍이 불어오고 있고 우리 모두의 배들에 진짜 문제는 전복당하는 것을 피하는 일이 될 것이다. 궁극적인 결과가 현 질서보다 덜 평등하고 덜 민주적인 질서가 될지 더 평등하고 더 민주적인 질서가 될지 매우 불확실하다. 하지만 새로 등장하는 세계는 앞으로 수십년간 우리가 어떻게 집단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11

 

이런 체제변혁기에 전쟁반대나 지구화반대와 같은 ‘반대’운동만 벌일 게 아니라 좀더 적극적으로 세계를 변혁하는 대안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집단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그 가운데 가장 경청할 만한 것은 영국의 환경운동가인 몬비오(George Monbiot)의 세계민주주의혁명론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과제는 지구화를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화를 사로잡아 그것을 인류 최초의 지구적 민주주의혁명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민주주의혁명을 실현할 방안 네 가지를 제시하면서, 다만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는 반란자들 조직망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된다”고 역설한다.12

몬비오의 세계민주주의혁명론은 현 세계체제를 대체할 하나의 대안 프로그램 혹은 새 세계질서의 ‘공치’모델로서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그러나 세계 민중이 혁명의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나 가진 자들의 연합체와 맞닥뜨릴 때 자칫 지구촌 전체가 공멸의 길로 치달을 가능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듯하다. 월러스틴의 지적처럼 세상이 무정부주의 상태로 접어들면서 세계적 차원의 계급투쟁이 본격화될 때, “우리 모두의 배들에 진짜 문제는 전복당하는 것을 피하는 일”임을 인식하는 것도 혁명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요컨대 몬비오의 혁명론이 실현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공멸의 위험을 줄이려면 전세계 반전평화운동과의 굳건한 결합이 필요한 것이다.

 

 

분단체제와 한반도 평화운동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한계에 봉착하면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현 세계체제의 불안한 정세가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곳은 한반도이다. 이라크전 이후 매파들의 차기 공격목표로 떠오르는 북한이 핵카드를 들고 벼랑끝 전술을 구사함으로써 한반도는 1994년에 이어 다시 한번 (핵)전쟁의 위기로 내몰린 것이다. 이런 위기가 도래하기까지의 양측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이미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의 상세한 분석이 나와 있으므로13 필자는 조금 다른 방식의 접근법을 취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핵문제를 북미 양쪽의 강경대치적인 맥락 속에서 세밀하게 분석하기보다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사건들과의 연관 속에서 선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살펴볼 시간대는 편의상 대략 두 단위로–첫번째는 북핵사태가 불거진 2002년 10월에서 1차 뻬이징회담을 치르고 2차회담을 기다리는 현재까지의 약 10개월간, 그리고 두번째는 IMF사태가 터진 1997년 후반에서 2002년 10월의 북핵사태까지의 약 5년간으로–한정하되 문맥에 따라 자유롭게 언급하고자 한다.

첫번째 시간대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한반도의 핵위기와 미국 주도의 이라크전쟁이라는 살벌한 흐름이다. 그러나 이런 절박한 국면에서 남한 민중과 시민은 대통령 선거 및 촛불시위와 이라크 파병반대시위에 참여하면서, 북핵사태로 우려는 할지언정 겁을 집어먹은 기색(가령 사재기나 주식시장의 폭락 같은 전쟁공포의 징후 등)은 전혀 없었고, 핵무기 개발에 나선 북한보다 강경한 군사패권주의로 일관하는 미국 쪽에 훨씬 더 비판적이었다. 미국이 중유공급 중단, 공해상에서의 북한 선박 나포 등 ‘맞춤형 봉쇄’(tailored containment)로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북한은 북한대로 동결중인 플루토늄 핵시설의 재가동,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추방 등으로 맞대응하는 위기상승 국면에서도 남쪽 주민들 대다수는 비교적 차분했고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했다.한국 시민들의 이런 모습은 미국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14

시민들의 이런 ‘느긋한’ 태도는 사태의 심각성에 비춰보면 너무 안이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국내외의 진보적인 언론이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사실 이런 위기상황에 무관심·무감각한 시민들도 적지 않고 심지어 ‘통일이 되면 북한 핵무기는 우리 것’이라는 핵(核)민족주의 발상을 지닌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북핵문제를 한반도의 역사적인 문맥에서 보면, 시민들 대다수의 침착한 태도가 그런 잘못된 편향에서가 아니라 나름의 타당한 근거에서 비롯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을 서울에 대한 수공(水攻)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평화의 댐’이라는 대응댐을 만들어야 한다고 온나라가 야단법석을 떨었던 시절을 생각해보라. 국가안보를 내세워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한 오랜 독재시절을 겪으면서 남한사람들은 전쟁 자체뿐 아니라 전쟁의 위협 역시 인간다운 삶을 짓밟는 큰 요인임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전쟁이 없을 뿐 아니라 삶다운 삶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평화라면, 전쟁의 위협에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야말로 평화의 관건인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분단체제의 근본적인 불안정성으로 말미암아 어떤 돌발사태에 임해서 실제의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하게 판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남한주민들은 실제보다 위험을 과대평가하여 ‘북풍’에 휘말리기도 했고, 반대로 1994년 북핵위기의 아찔한 순간을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전쟁의 위협에 적절히 대처함으로써 평화를 지키는 데는 무엇보다 지혜로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년 12월 촛불시위의 의미는 각별하다. 남한의 시민과 민중이 10월부터 시작되어 위기로 치닫던 북핵사태에 대한 지혜롭고 창의적인 대처방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런 ‘지혜롭고 창의적인’ 방식은 남한 민중·시민이 기나긴 민주화의 투쟁에서 쌓아온 저력과 무관하지 않거니와 그해 6월의 월드컵경기에서 보여준 대중적 활력과 민족적이되 결코 꽉 막혀 있지만은 않은 ‘열린’ 광장의 정신과도 상통한다. 작년 12월의 광화문 네거리는 밤이면 촛불의 행렬로 붉게 수놓아졌고 마치 6월의 붉은악마들이 되돌아와 ‘필승 코리아’의 외침 속에 묻혀버린 여중생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미국의 폭력적·일방적 태도에 항의하는 듯했다. 한반도 평화운동의 싹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15

시위는 평화적이었고 미국에 대한 한국의 종속적 지위라든지 주둔군 지위에 관한 협정(SOFA)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었으나 대체로 80년대 방식의 과격 반미투쟁으로 흐르지 않았다. 촛불이 지닌 ‘평화’ 이미지가 크게 작용한 듯했다. 시위가 시작된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11월말 여중생 사망사건의 무죄평결에 항의하는 뜻으로 촛불을 들고 모이자는 한 네티즌(앙마)의 제안이 반향을 얻은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촛불시위에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양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합류하면서 한동안 꺼질 줄 모르듯 번져갔다. 하지만 이 시위가 연말을 기점으로 ‘앙마’ 쪽과 ‘범대위’ 쪽으로 이분되면서 한계를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 한쪽을 순수한 ‘반전평화’로, 다른 쪽을 정치적인 ‘반미’로 선명하게 갈라서 보는 것은 편협한 논리일 것이다. 하지만 반전평화운동이 민중의 자발성에 기초한 좀더 넉넉한 공간을 열기 위해서는 범대위 쪽의 미리 프로그램화된 조직화 방식은 개선되어야 하고, ‘반전평화’의 폭넓은 대의 이외의 특정한 정치적 사안은 주된 이슈가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 가운데 하나로 물러서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16

이런 한계는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올 2월 15일의 전세계 반전평화시위에 남한 민중이 폭넓게 참여하지 못한 데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3월로 접어들면서 곳곳에서 일어난 이라크 파병반대시위와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활약은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반대하면서 촛불시위에서도 남아 있던 종래의 단순한 민족주의 지향을 돌파한 이정표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 두달 동안 지속된 이라크전 파병반대시위는 노무현정부의 파병방침을 막지는 못했지만 국회 안팎에서 강력한 호응을 받음으로써 남한 민중이 세계시민으로서 책임과 연대의식을 보여준 뜻깊은 사건이었던 것이다. 촛불시위와 이라크전 파병반대시위는 한반도 위기가 돌출할 때마다 미국의 힘에 의지해야 한다는 ‘낡은’ 고정관념을 가진 보수세력 및 언론들(특히 조선·동아)을 제어하면서 북핵위기에 적절하게 대처함으로써 한반도를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공간으로 지켜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런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반전평화운동으로 세계체제 변혁기의 무정부상태를 감당하고 한반도 분단체제를 안정적으로 해체·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신일 것이다.

이 점은 두번째의 좀더 긴 시간대를 살펴보면 드러난다. IMF위기에서 제2의 북핵사태까지의 5년 동안의 사건들을 일별하면 한반도 분단체제의 불안정성이 금방 눈에 띄는 것이다. IMF위기는 현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의 경제파탄이 전쟁 못지않게 무섭다는 것을 각인시키면서 한국경제를 세계 투기자본의 흐름에 좀더 저항력을 갖는 쪽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겨주었다. 김대중정부는 IMF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요구를 받아들여 일단 위기를 극복했으나 그 여파로 빈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밑바닥 민중들은 더욱 곤궁한 처지로 내몰렸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부의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뜯어고칠 필요가 있었으나 그것은 미봉된 채 넘어갔다.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의 의의는 되풀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로써 불과 2년 만에 IMF의 심각한 위기에서 벗어나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을 성취하고 장기적이지만 평화적인 통일로 나아갈 전망이 비현실적이지 않음이 확인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여파로 그해 연말에는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하고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답방하여 북미수교가 시간문제인 듯 여겨진 때도 있었다. 또한 이런 성과는 남북장관급회담을 비롯한 남북당국자간의 회담, 남북경협의 본격화와 남북 민간단체의 각종 교류로 이어지면서, 2002년 6월의 월드컵경기를 대한민국만의 축제가 아닌 ‘코리아’의 쾌거로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불과 4개월 후에 북핵문제가 불거져 오늘의 위기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메카톤급 위기와 메가톤급 성공이 교차하는 패턴(IMF위기-남북정상회담-월드컵경기의 성공-북핵위기)은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장기간의 안정은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간대를 늘려서 1987년 6월항쟁에서 1997년 IMF위기에 이르는 10년을 살펴보아도 이런 패턴은 눈에 띄는데, 다만 최근으로 올수록 변화의 주기가 짧아지는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 동서냉전이 끝나고 국내의 민주화가 성취된 이후 분단체제가 갈수록 심하게 흔들리면서 한반도의 위기와 성공이 자주 교차하는 것이다. 이는 냉전 이후 세계체제의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이런 위기에 좌초하지 않고 번번이 메가톤급 성공을 일궈내는 한국 민중의 저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하겠다. 다른 한편 위기-성공의 패턴이 점점 짧아진다는 것은 우리의 반전평화운동이 좀더 대중적이고 좀더 튼튼하게 자리잡아야 함을 일러준다. 국내에서의 대중화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세계 반전평화운동과의 국제적 연대도 중요하다.

나아가 반전평화운동은 우리 사회의 제반 민주통일운동 및 노동·환경·여성 운동과 긴밀히 결합될 필요가 있다. 전자가 소극적 의미의 평화운동이라면 후자는 적극적 의미의 평화운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후자의 목표가 남북한 사회성원 모두가 좀더 민주적이고 좀더 평등하면서 좀더 생태친화적인 삶을 활기차게 사는 데 있다면, 점점 더 흔들리는 한반도 분단체제 속에서는 양자가 결합하는 것만이 전쟁과 폭력을 동반하지 않고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길이 아닐까.17 양자가 결합될 필요성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반전평화운동과 지구화운동이 결합될 필요성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또한 이 두 운동이 이미 우리의 삶속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도 마찬가지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 분단체제가 갖는 복잡성으로 말미암아 손쉬운 해법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가령 북핵위기와 동일한 시간대에 진행되는 위도의 핵폐기장 건설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핵무기든 핵발전소든 핵이 무서운 생태재앙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반전반핵’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은 원칙적으로 옳을지 모르나 후쎄인정부가 대량살상무기의 해체요구에 응하다가 되레 침략을 받은 상황에서 섣불리 북핵반대를 외치는 것은 미국 패권주의에 동조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문제 역시 그렇다. 남북한이 외국인노동자를 포함하여 주민 모두의 인권을 좀더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대북공격의 한 명분으로 삼는 마당에서 북한인권의 열악함을 부각하는 것이 누구의 이익이 될 것인지는 뻔하다. 그렇다고 평화운동이 핵무기와 인권유린에 눈감는다면 그 보편적 대의가 약화될 것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론화를 통해 중지를 모을 필요가 있고, 이런 공론의 장으로서 ‘한반도 평화포럼’ 같은 것을 민간 주도의 상설기구로 꾸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한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지난 대통령선거 때의 ‘희망돼지저금통’ 분양운동과 비슷한 방식으로 범국민적인 평화기금 모금운동을 전개하는 방안을 고려해봄직하다. 평화기금 모금운동을 시민들의 평화교육의 일환으로 꾸리면서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대중적인 평화포럼의 재정확보를 꾀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평화포럼이라면 대중적인 평화운동과 전문가집단을 연결하는 가교역할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끝으로 첫번째 시간대와 두번째 시간대의 연결지점의 의미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하면 북핵사태가 왜 일어났느냐의 문제이다. 현재의 북핵사태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10월 4일 방북특사 켈리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강석주로부터 북한의 농축우라늄 핵개발 사실을 시인받았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부터인데, 켈리가 왜 그때 방북을 했고 북한의 강석주는 왜 불쑥 농축우라늄 개발계획을 시인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자면 그 바로 전 9월에 일어난, 한반도 장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두 가지 사건의 의미를 짚어야 한다. 하나는 미국정부가 9·11사태 1주년에 즈음하여 발표한 ‘부시 독트린’(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인데, 그 골자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테러조직과 테러지원국가에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이라크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꼽은 이란과 북한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부시의 군사패권주의적 일방주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발상으로서 북한에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어느정도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나머지 한 사건은 코이즈미(小泉) 일본수상이 전격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진 일이다. 이 사건이 심각한 것은 일본이 오랫동안 북일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도 미국에 전혀 내색을 하지 않다가 불과 며칠 전에 알렸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국의 동북아전략의 초석인 미일동맹의 정신을 배신한 격이어서 미국측의 분노는 대단했다고 전해진다.18 코이즈미로서는 북일수교를 통해 미일동맹의 강고한 속박에서 벗어나 동북아를 향해 나아가고 싶은 일본의 ‘당연한’ 욕구를 과감하게 실천한 것이지만, 김정일의 일본인 납북 시인과 그에 따른 일본 내의 여론 악화로 무산되고 만다. 이런 맥락에서 켈리가 클린턴정부로부터 인수받은 북한의 농축우라늄 개발계획에 관한 정보로 북측을 다그친 것은 북측의 시인을 받아내자는 것이 아니라 북측의 부인을 예상하되 그것이 거짓임(즉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중임)을 대대적으로 선전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남한과 특히 일본의 화해 움직임에 강력한 제동을 걸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의 일본에 대한 제동은 결과적으로 예상보다 대성공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역시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난 듯하다. 이라크와의 전쟁을 준비중인 미국으로서는 당장 북한과의 정면대결을 바란 것은 아닌데, 북한측에서 돌연 농축우라늄 개발계획을 시인함으로써 북핵위기가 표면화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1994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핵카드를 활용하는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말려든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겠다.19 미국측은 이라크전선에 집중할 필요 때문에 회담의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한동안 미적거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여간 북핵사태가 불거진 데에 이처럼 일본에 대한 미국의 견제도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북핵사태에 동북아의 복잡한 역학관계도 얽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위기의 발단도 그렇거니와 해결의 전망도 동북아의 협조 없이는 힘들다는 것이 이 점을 웅변한다. 협상의 여지없이 북미가 한동안 계속 팽팽하게 대치하다가 결국은 중국이 중재에 나서서 북미 양자로부터 한발씩 양보를 이끌어내어 뻬이징회담에서 해결을 모색키로 한 경로뿐 아니라 뻬이징회담의 구성을 봐도 그렇다. 1차회담에서는 북·중·미 3자회담 속의 북미대화, 2차회담에서는 북·중·미에 더해 한국과 일본, 러시아까지 참여하는 6자회담 속의 북미대화의 형식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구도에서 보면 미국과 중·러의 대립, 그리고 동북아의 판세에서는 한·미·일 삼자연대와 북·중·러의 삼자연대가 대치하는 구도인데, 현재로선 전자가 후자보다 결속력이 훨씬 강하다. 하지만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는 한·미·일 삼각동맹체제의 족쇄를 풀고 한반도·일본·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연한 관계로의 발전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여기서 관건은 한반도의 남북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느냐, 그리고 일본이 미국의 동북아 ‘푸들’과 같은 신세에서 벗어나 남북한 및 중국과 함께 동북아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인 듯하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한국에서 뭔가 바람이 일어나 동북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일본이 얼마나 탈미(脫美)할 수 있는가도 결정적인 변수라고 생각되며 그런만큼 미국과 독립적으로 북일교섭을 꾀한 코이즈미의 시도는 어떤 의도에서 나온 것이든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한반도 분단체제의 향방이 동북아지역 변화의 핵심역할을 할 공산이 크며, 나아가 미국의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 변화에도 관건이 될 듯하다. 한국 민중의 평화운동이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몫을 맡고 있음은 앞서 살펴보았다. 하지만 노무현정부의 좀더 유연하되 믿음직스러운 대외정책과 좀더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내정이 뒷받침해주어야 이 역사적인 과업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놓고 따져보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별로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후보자 시절 미국의 군사패권주의 움직임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단호하게 대응하더니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수용적인 자세로 돌아선 것도 우려스럽다. 방미 때 ‘추가조치’에 합의했지만 ‘전쟁공조’는 없다는 노대통령의 공언이 미덥지 못한 것은 실속보다 제스처가 앞서는 그의 ‘스타일의 정치’가 참신하기보다 위태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동북아 허브 건설이니 평화번영정책이니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니 하는 국가적 비전 제시도 분단체제 극복의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허망하거니와 그 속에 깃든 성장주의적 발상도 문제다. 새만금 문제나 위도 핵폐기장 건설 문제에 임하는 자세도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어긋난 것이다. 그러나 미온적이긴 하지만 남북교류를 계속 유지하고 군사주의적·권위주의적인 관행을 줄이는 데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대북사업을 주도한 경제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어떤 면에서 이 사건은 분단체제 극복의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이라 하겠는데, 그 책임은 남북한 정부나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있지 않을까. 이를 계기로 노무현정부가 남북경협에 좀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함은 물론이며, 이참에 대북사업을 좀더 적극적이되 투명한 방식으로 추진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가령 정부는 공정한 법적·제도적 지원책을 제공하고 대북사업 자체는 민간의 여러 주체들–기업뿐만 아니라 공공단체와 개인까지–이 폭넓게 참여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남북경협에의 참여가 평화운동의 현장교육일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정부가 미국에 대한 좀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계승·발전시켜 남북관계 개선과 민주개혁에 힘쓰고, 그런 노력이 시민들의 두 차원의 평화운동과 만난다면 세계체제 변혁기에도 한반도는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면서 새 세계체제 건설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반도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지만 우리가 그 위험에 지혜롭고 창의적으로 대처한다면 평화로운 삶터가 될 수 있다. 평화가 전쟁을 막고 안전을 꾀하는 소극적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참하는 삶다운 삶, 신명나는 삶을 누리는 것까지 내포한다면 이 ‘역동적인 한반도’(Dynamic Korea)야말로 진정 평화로운 삶터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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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lliam J. Perry, “It’s Either Nukes or Negotiation,” The Washington Post 2003년 7월 23일 A.23면. 클린턴정부 대북정책의 주역이었던 페리의 이번 경고는 민주당의 ‘공화당 때리기’의 일환인 면이 있지만, 매파들의 의례적인 대북 선제공격 주장보다 더 심각한 여운을 준다.
  2. 가령 신보수주의 매파의 성격과 전략을 상세히 서술한 한 연구보고서는 “일방주의적, 제국주의적 신보수세력이 9·11에 이어 이번 전쟁을 통해 입지를 결정적으로 강화시킨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이는 미국 매파의 역량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해영 「‘신보수주의’와 한반도 평화: 미국의 대북정책, 그 3가지 코스」, 『정전체제를 넘어 평화체제로』(정전 50년 국제평화학술심포지엄 자료집, 2003년 7월 25일) 참조.
  3. 애국자법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Jim Cornehls, “The USA Patriot Act: the assault on civil liberties”(Z Magazine 2003년 7-8월호) 및 Richard Falk, “American Civil Liberties & Human Rights Under Siege”(http://www.wagingpeace.org/pdfs/siege_lecture2003.pdf) 참조.
  4. 현재의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묘사하는 데는 매파도 반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제국주의’ 미국의 책무를 강조하는 쪽이다. ‘파시즘’은 부시정권의 비판자들에게는 흔한 용어인데, 이를 확대하여 ‘전지구적 파시즘’(global fascism)으로 규정하는 논의가 주목할 만하다. 베트남전 비판으로 유명한 리처드 포크는 9·11 이후 한동안 ‘전지구적 테러리즘’에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를 인정하여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으로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시의 ‘악의 축’ 발언 이후 미국이 ‘전지구적 테러리즘’에 ‘전지구적 파시즘’으로 맞서려 한다고 비판한다. 이런 입장 선회는 상당수 미국 진보세력들에게서도 발견된다. Richard Falk, “Will the Empire be Fascist?”(http://www.transnational.org/forum/meet/2003/Falk_FascistEmpire.html) 참조.
  5. Julian Borge, “Wives clamour for US troops return,” (http://www.guardian.co.uk/international/ story/0,3604,991970,00.html).
  6. 가령, 이라크 게릴라들에 대한 부시의 ‘덤벼보라지’(Bring ’em on)라는 무책임한 발언에 열받아 열혈 반전평화운동가로 변신한 스탠 고프(Stan Goff)의 경우가 그렇다. 그가 내건 슬로건 ‘그들〔파병군인들〕을 당장 귀국시켜라’(Bring them home now)는 미국 반전평화운동의 당면목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http://www.wanderbody.com/bringthemhomenow 참조.
  7. 한 웹싸이트가 미 국방부와 의회예산국 자료를 근거로 추산한 바로는 미국정부가 빚으로 충당하는 15만의 이라크 주둔 미군의 한달 경비는 이자까지 치면 54억6천만 달러에 이르며, 8월 8일 현재까지 이라크전의 총경비는 675억 달러가 넘는다. http://www.costofwar.com 참조.
  8. 클린턴이 착실히 채워놓은 연방재정이 어느새 바닥나서, 2003회계연도에는 상반기 재정적자만 2526억 달러를 기록했다. 씨티그룹은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가 백악관에서 밝힌 것보다 훨씬 많은 5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씨티그룹, 美 재정적자 5천억달러 전망」, 연합뉴스 7월 30일자 참조.
  9. 이에 관해서는 특집에 함께 실린 월든 벨로(Walden Bello)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10. 페리 앤더슨은 냉철한 정세분석을 통해 사람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저지할 방도가 없음을 조목조목 짚어내고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는데, 이런 태도는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를 용납하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Perry Anderson, “Force and Consent,” New Left Review 2002년 9-10월호.
  11. Immanuel Wallerstein, “Entering Global Anarchy,” New Left Review 2003년 7-8월호 35면.
  12. G. Monbiot, The Age of Consent: A Manifesto for a New World Order (Flamingo 2003) 23면과 10면. 이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네 가지 방안은 1)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1인 1표를 행사하는 ‘세계의회’ 창설, 2) 안전보장이사회 중심의 현재 유엔을 총회 중심으로 전환하고 이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방안, 3) IMF와 세계은행을 개조하여 무역적자를 자동적으로 해소하고 부채 축적을 방지하는 ‘국제청산연맹’ 설립, 4) WTO 체제를 혁신하여 부자들을 규제하고 가난한 자들을 해방하는 ‘공정무역기구’로 전환하는 방안 등이다. 이 방안들 가운데 일부는 그의 홈페이지(http://www.monbiot.com)에도 소개되어 있다.
  13. Bruce Cumings, “The Peace Regime in Tatters: Fifty Years of Failure in American Diplomacy toward Korea,” 『정전체제를 넘어 평화체제로』(정전 50년 국제평화학술심포지엄 자료집, 2003년 7월 25일); Selig Harrison이 의장으로 있는 ‘Task Force on U.S. Korea Policy’의 보고서 “Turning Point in Korea: New Dangers and New Opportunities for the United States”(2003년 2월); 정욱식 『2003년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부시의 예방전쟁과 노무현의 예방외교』(이후 2003) 참조.
  14. Barbara Demick, “S. Koreans Shrug Off Nuclear Threat,” The Los Angeles Times 2002년 12월 26일 A. 1면 참조. 이 기사는 남한사람들이 북핵위기의 원인 제공자를 부시로 생각하는 경향을 지적하면서 북한 공산정권이 핵위협을 가하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오히려 남한의 ‘혈맹’인 미국을 더 큰 위협으로 믿는 ‘기이한’ 현상이 남한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한다.
  15. 커밍스(B. Cumings)는 「한국 ‘반미주의’의 구조적 기반」(『역사비평』 2003년 봄호)에서 촛불시위가 자신이 목격한 어떤 시위보다 인상적이었다고 하면서 그것이 미국 자체를 무조건 거부하는 ‘반미’가 아니라 자신도 반대하는 부시의 패권주의 정책에 대한 정당하고 품위있는 항의시위였다고 주장한다.
  16. 이건 「기쁜 약속이 되는 촛불시위를 위하여」, 『창작과비평』 119호(2003 봄) 참조.
  17. 이런 발상은 “원래부터 전쟁방지·평화통일의 대의와 당면한 사회개혁의 과제들을 결합해”왔다고 주장하는 백낙청의 ‘분단체제극복운동’과도 통한다. 백낙청 「한반도의 2002년」, 『창작과비평』 115호(2002 봄) 25면 참조.
  18. B. 커밍스, “The Peace Regime in Tatters” 참조.
  19. 같은 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