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변혁적 중도주의와 자유주의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 『연대와 열광』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분단체제와 87년체제』, 편서 『87년체제론』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80년대』 등이 있음. jykim@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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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사유를 구조적으로 규명한다는 것은 비유컨대 사유의 변형생성문법 같은 것을 밝혀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내 보기에 백낙청 사유의 변형생성문법의 한 특징은 두 개념을 마주 세움으로써 둘 사이에 하나의 장(場)을 생성하는 것이다. 팽팽한 긴장으로 휘어진 이 공간으로부터 담론이 풀려나온다. 창작과 비평,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세계체제와 분단체제, 근대적응과 근대극복 같은 켤레에서 보듯이, 그의 사유의 근본 개념들은 홀로 서 있지 않다. 짝을 이룬 개념들 사이의 대립과 긴장 속에서 리얼리즘론, 민족문학론, 세계문학론, 분단체제론, 이중과제론 등이 펼쳐지는 것이다. 변혁적 중도주의도 이런 일련의 담론 가운데 하나이며, 여기에서도 ‘변혁’과 ‘중도’라는 두 개념이 짝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개념적 켤레 속에 내장된 긴장 사이에 비트겐슈타인적 의미에서 ‘가족 유사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차(種差)는 물론이고 긴장의 강도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어떤 켤레는 개념들의 관계 설정이 비교적 쉽지만, 역설로 보일 정도로 까다로운 것도 있다. 아마도 그런 긴장이 가장 강렬한 경우는 근대 적응과 극복의 관계이겠지만, 변혁적 중도주의 또한 그 못지않게 높은 수준의 긴장을 품고 있다. 왜 ‘변혁’이라는 정치적·경제적 급진성은 ‘중도주의’라는 온건한 또는 온건해 보이는 노선으로 귀결되는가? 왜 중도적인 것이 변혁적이며, 변혁적이고자 한다면 중도적이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중도주의가 급진적 동기로 충전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급진적이고 변혁적이라는 논거를 제시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

백낙청은 변혁적 중도주의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지금까지 대체로 두가지 작업을 진행해왔다. 하나는 우리 사회 변화의 방향을 지휘하고자 했던 노선들의 결함을 비판하면서 변혁적 중도주의가 가진 합리성과 가치를 부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변혁과 중도의 의미를 ‘오래된 미래’를 거쳐 심화하는 것이다. 관련해서 그는 불교적인 중도의 의미나 개벽을 추구한 한국 근대 종교사상의 의의를 탐색해왔다.1 이런 시도들은 진지한 토의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중요한 이론적·실천적 통찰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글은 같은 의도를 다른 경로로 탐색해보고자 하는데, 그것은 월러스틴(I. Wallerstein)의 세계체제론과 분단체제론을 논쟁적으로 대면시키는 것이다. 월러스틴과 백낙청 사이의 지적 협력관계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이런저런 이견과 논쟁점이 제기되어왔다는 점에서 이런 작업이 지금까지의 논의와 연속선상에 있으며, 이 글은 단지 그것을 좀더 명시적으로 다루어 변혁적 중도주의의 역설적 측면을 해소하고, 세계체제와 지구문화(geoculture)2의 지평에서 그것이 어떤 위상을 갖는지 가늠해보고자 한다.

 

 

2

 

세계체제론과 분단체제론이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에 대해 서로 다른 두가지 표상이 가능하다. 하나는 양자 사이에 지적 분업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분단체제론은 시공간적으로 더 제한된 영역을 다루는 이론으로 설정하고 더 포괄적인 이론의 역할을 세계체제론에 이양하는 것이다. 그 경우 둘의 관계는 부분과 전체 또는 보편과 특수 같은 이분법에 의해 서술될 수 있다. 이런 관계 설정이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기존의 사회과학적 상식이 한반도 상황 설명에 가하는 제약을 탈피하는(unthinking) 작업이 필요했던 분단체제론이 그 문제와 관련해 선행 이론인 세계체제론으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3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단체제론이 분단체제의 작동을 해명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세계체제 수준의 설명을 세계체제론에 위임함으로써 이론적 부담을 상당 정도 덜어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의 관계를 이렇게 표상하는 것이 두 이론의 발전에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실제로 두 이론이 맺어온 논쟁적인 상호작용과도 잘 부합하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 두 이론의 실제 관계는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와 일정한 유사성이 있다. 백낙청은 괴테-맑스적 세계문학과 관련해서 이렇게 말한다.

 

괴테가 ‘세계문학’이란 용어로 뜻한 바가 세계의 위대한 문학고전들을 한데 모아놓는 것이 아니고, 여러 나라(당시로서는 당연히 주로 유럽에 국한되었지만)의 지성인들이 개인적인 접촉뿐 아니라 서로의 작품을 읽고 중요한 정기간행물들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는 가운데 유대의 그물망을 만드는 일이었다는 점이다. 즉 이 용어는 우리 시대의 어법으로는 차라리 세계문학을 위한 초국적인 운동이라고 부름직한 것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4

 

같은 선상에서 세계체제론을 국지적으로 제기되고 발전된 이론들의 유대 속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세계체제론은 분단체제론이 제기되고 발전되는 만큼 신빙성과 설명력을 높여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교정하는 열린 기획이 된다. 다시 말해 두 이론은 전체와 부분의 관계나 장기와 중단기의 관계 또는 상위수준과 하위수준의 위계적 관계를 맺고 있다기보다 논쟁을 경유한 이론적 협업과 상호구성적인 연계 속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두 이론 사이의 더 높은 수준의 협업을 견인할 만한 논쟁점들은 이미 다수 제기되었다.5 그 가운데 변혁적 중도주의와 관련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쟁점은 냉전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 문제와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반체제운동의 전략적 원칙 문제이다. 전자가 분단체제의 작동이 세계체제의 운행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런 중에 한반도가 가진 위상과 의의를 판단하는 문제라면, 후자는 그런 조건 아래서 적합성 높은 실천전략과 그것을 뒷받침할 인지적 토대가 무엇인지 살피는 문제이다.

먼저 냉전의 성격 규정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 문제부터 살펴보자. 이 문제에 대해 분단체제론의 관점에서 명료한 주장을 펼친 이는 유재건이다.6 그의 논의는 세단계를 걸쳐 확장되는 모습을 보이는데,7 첫 단계는 월러스틴의 냉전 인식의 수용이다. 그는 월러스틴의 해석 노선을 따라서 냉전을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미소 간의 암묵적 묵계와 봉쇄가 하나가 된 체제”였으며, 미국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다중적 효과를 가진 전략적 장치로 파악한다. 우선 냉전은 공산권 봉쇄를 통해서 미국의 부담을 줄이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팽창을 주도하고, 다음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서 양진영 내부를 통제함으로써 기존 세계질서에 대한 근본적 도전을 억압하고 세계 전역에 안보국가체제를 형성하며, 또한 세계체제에 대한 제3세계의 저항과 도전을 봉쇄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끝으로 미국 국내의 자본/노동의 투쟁이나 인종갈등을 통제함으로써 자본축적을 순조롭게 하는 장치였다. 이런 판단의 선상에서 월러스틴은 1989년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을 미국의 최종적 승리를 표시하는 것으로 보는 일반적 인식에 맞서서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패배했다. 왜냐하면 냉전은 승리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춤추어야 할 미뉴에트였기 때문이다”8라고 주장했다.

유재건은 이런 월러스틴의 논의를 디딤돌로 다음 단계의 논의를 전개한다. 그에 의하면 한국전쟁은 앞서 언급한 냉전의 네가지 효과를 대폭 강화하여 미국 헤게모니하의 세계체제 안정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으며, 커밍스(B. Cumings)가 주장했듯이 “한국전쟁이 세계사적으로 베트남전쟁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자 미국사의 한 분수령이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냉전의 본질이 미국 패권하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공고화에 있다면, 한반도 분단체제는 냉전의 낡은 유물이 아니라 그 본질적 면모를 현재적으로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 분단체제는 이제 후진성의 징표가 아니라 오히려 유럽 냉전의 해체로 그 존재이유가 더 뚜렷해진 것일 수도 있다”(강조는 인용자)고 주장한다.[9. 이런 주장은 베트남전쟁 평가를 둘러싸고 분단체제론과 세계체제론 사이에 존재하는 논쟁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월러스틴은 1968년 혁명을 중시하기 때문에 그것의 중요한 원인이기도 했던 베트남전쟁 또한 주요하게 생각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베트남전쟁은 한국전쟁과는 꽤 다른 유형이었다. 그것은 비유럽세계를 통틀어 민족해방투쟁의 상징적인(그러나 결코 유일한 것은 아닌) 지역이었다. 한국전쟁과 베를린 봉쇄가 냉전 세계체제의 일부이자 한 덩어리였다면, (알제리와 다른 많은 사례와 같이) 베트남전쟁은 이 냉전 세계체제의 제약과 구조에 대항한 투쟁이었다”(같은 책 362면). 이에 비해 백낙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전쟁이 어떤 의미에서는 베트남전쟁보다도 더 미국에 중요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분단만은 미국이 끝까지 지켜왔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사실 베트남전쟁은 미국으로서 뼈아픈 패배였지만 양보할 수 있는 전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미국 패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 아니고 원래가 반식민지 전쟁이었잖아요. 프랑스에 대한 베트남 민중의 민족해방전쟁이었는데, 프랑스를 거의 다 꺾어놓으니까 미국이 들어와서 대신 그 자리에 있다가 미국도 쫓겨났지만 그것은 냉전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1. 변혁적 중도주의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백낙청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창비 2009; 정현곤 엮음 『변혁적 중도론』, 창비 2016; 백낙청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 박윤철 엮음, 모시는사람들 2016; 백낙청 외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 창비 2018 참조.
  2. 월러스틴의 조어인 geoculture는 지구문화, 지문화, 지리문화 등으로 번역된다. 여기서는 지구문화를 택했고, 따라서 번역서를 인용할 때도 지문화나 지리문화는 지구문화로 바꾸었다.
  3. 이매뉴얼 월러스틴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성백용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4 참조.
  4. 백낙청 「지구화시대의 민족과 문학」, 김영희·유희석 엮음 『세계문학론』, 창비 2010, 37면. 강조는 원문 그대로.
  5. 이와 관련해서 중요한 텍스트로 백낙청·월러스틴 「21세기의 시련과 역사적 선택」(『백낙청회화록』 4, 창비 2007, 115~60면)과 백낙청·월러스틴·이수훈·김성민 「급변하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통일」(『백낙청회화록』 6, 창비 2010, 355~91면) 참조.
  6. 유재건 「역사적 실험으로서의 6·15시대」, 『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 제2절 참조. 이하 유재건의 인용은 이 절의 여러곳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유재건의 입장에 대한 백낙청의 공감 표명은 백낙청 외, 앞의 책 140~41면 참조.
  7. 세번째 단계는 유재건 자신이 개진했다기보다 그의 논의로부터 필자가 읽어낸 측면이 강하지만, 필자는 그것이 그의 논의 안에 잠복해 있었다고 본다.
  8. 이매뉴얼 월러스틴 『자유주의 이후』, 강문구 옮김, 당대 1996, 266면. 번역은 필자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