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미국이라는 우리의 난제

 

변화하는 한미관계와 노무현 독트린의 운명

 

 

강태호 姜泰浩

한겨레신문 기자, 통일팀장. 주요 논문으로 「파병, 북핵 그리고 한미동맹」 등이 있음. kankan1@hani.co.kr

 

 

1. 문제제기

 

코이즈미와 차베스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한미FTA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한 찬·반론자들의 요구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Hugo Chavez)가 될 것이냐, 일본의 코이즈미 쥰이찌로오(小泉純一郞)의 길을 따를 것이냐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노대통령이 코이즈미가 되길 거부한 것은 분명하다. 노대통령은 코이즈미처럼 한미동맹의 신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차베스의 길을 선택한 것도 아니다.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노무현이 차베스의 길을 따라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특히 일부 한미FTA비판론자들의 주장처럼 한미FTA가 아니라 한일FTA를 우선적으로 추진했어야 한다는 비판은 설득력이 없다. 2005년 3월부터 독도문제, 역사교과서 왜곡과 망언들, 코이즈미의 야스꾸니신사(靖國神社) 참배가 잇따르면서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2004년 12월 일본 이부스끼(指宿) 한일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2005년 높은 수준의 한일FTA체결을 목표로 한다는 데 합의했지만, 상황이 나쁘게 돌아간 것이다. 따라서 왜 노대통령이 한일FTA를 먼저 추진하지 않았는지 비난하는 것은 FTA만 보고 그것을 둘러싼 현실은 보지 않는 것이다.

 

한미관계의 현재와 미래

한미FTA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이고 때로는 혼란스런 찬반논쟁에서 잠시 벗어나 사태를 보고 싶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탈냉전의 변화하는 정세에서 우리는 지금 미국(정확히 말하면 제국을 꿈꾸며 일방주의 외교를 일삼는 부시행정부)과 어떤 수준에서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이다. 이런 인식 위에서 외교안보적 현안인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경제통상 문제인 한미FTA문제를 다룰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두 사안은 서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다. 특히 한미관계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미FTA추진을 중국에 대항하는 한미동맹의 강화로 보는 것은 독자적 영역의 논리와 배경이 존재하는 ‘경제의 문제’를 ‘동맹의 문제’로 환원시켜버릴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한미관계는 한미동맹보다 훨씬 포괄적인 상위 개념이다.

2006년 1월 개최된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의 ‘합의’와 2월 한미FTA협상개시를 둘러싼 평가는 결국 한미관계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문제다. 이 두 가지 사안은 한미관계를 좌우한다. 그러나 좀더 크게 보면 한미관계, 좀더 구체적으로 한미동맹관계는 동북아라는 공간과 탈냉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한미관계의 상호작용은 동북아라는 시간과 공간의 축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라는 공간에는 탈냉전, 경제적 상호의존성 심화, 문화적 동질감 확산이라는 큰 흐름이 존재한다. 지역협력·통합의 가능성이다. 이와 동시에 노무현정부의 지난 3년여 기간만 보더라도 갈등과 긴장국면이 연속되거나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북핵문제와 거듭되는 북미의 대립, 중국의 부상과 미중의 갈등과 협력, 일본의 보수우경화와 ‘보통국가’론, 역내 국가들간 영토 및 역사 분쟁 등 한일, 중일 관계 악화와 민족주의 충돌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한미관계로 범위를 좁혀도 남북관계의 변화라는 한반도의 현실, 동맹에 대한 양쪽 내부의 인식 변화에 따른 새로운 요구들이 분출하고 충돌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옛 냉전질서의 붕괴를 상징하지만 새로운 질서의 수립은 지체되고 있다. 그 사이엔 갈등과 불안이 존재한다. 특히 2001년 부시행정부, 2003년 노무현정부 들어서 탈냉전과 새로운 위협에 대응한 동맹의 강화라는 모순된 두 흐름이 그 폭과 속도를 더해가며 충돌했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한미FTA공식협상은 그 한가운데 있다.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나 동북아 질서의 재편과 한미관계의 변화 속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한미FTA를 바라봐야지 그 역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미관계의 핵심축이라고 할 한미동맹의 재편·조정에는 미국의 필요와 한국의 요구가 같이 존재하고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다. 또 동맹의 갈등과 동요를 초래한 배경에는 범세계적 탈냉전과 한반도 냉전 간의 괴리라는 객관적 상황이 존재한다. 예컨대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미국의 외교를 보는 두 나라 국민의 인식엔 커다란 불일치가 있다. 현실은 복잡하다. 전환기적 국면의 동북아 공간에서 어떤 정책적 선택들이 가능했는가라는 현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실제적인 흐름에 근거한 내재적 접근과 비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동북아 공간에서 한미관계를 볼 때 간과하기 쉬운 것이 있다. 미국을 역외국가로만 볼 것인가라는 문제다. 이는 현실의 역관계에서 미국을 배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북아 안에 미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동북아나 한반도의 문제가 미국을 배제한 채 해결될 수 있다거나, 미국을 배제하면 동북아 지역협력이 이루어진다는 인식은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이다.

 

이중의 위협

노무현정부 출범 전부터 노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을 입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서동만(徐東晩)은 정부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면서 북핵문제에 ‘올인’하다가 거꾸로 한미관계에 대해 종합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노무현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한미관계가 북핵문제에 덜미를 잡혔다”고 표현한 그는 노무현정부가“(전략적 유연성과 한미FTA등) 한미관계에서 양보한 댓가로 북핵문제에서 어떤 양보를 얻어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1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에서 보면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평가일 수 있다. 북핵문제에 ‘올인’한 것을 잘못이라고 보는 듯한데, 한반도의 현실에서 그것이 ‘올인’하거나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의 문제인가?

노무현정부는 처음부터 두개의 칼날 사이에 있었다. 동맹을 무시하는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와 북한의 핵개발 사이에 있었으니, 동맹으로부터의 위협과 동맹에 대한 위협이라는 안과 밖으로부터의 ‘이중의 위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노무현정부 출범 전부터 주한미군 감축의사를 비쳤다. 일방적 동맹관계 재편과 주한미군 감축, 그리고 인권문제를 포함한 대북정책 비판 등은 동맹으로부터의 위협이라 할 만했다. 노대통령 취임 초에 나온 이라크 파병 요구와 북폭론이 그 대표적인 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기 하루 전이었다. 2005년 2월 10일 북한 외무성 성명의 핵보유 발언과 2006년 7월 5일 미사일 동시다발 발사를 비롯해 플루토늄 추출로 드러난 핵무장력 강화와 핵실험설, 간간이 지속된 미사일 발사실험 등 핵과 미사일은 북한이 한묶음으로 내세운 카드였고, 노무현정부에는 계속되는 위협이었다. 핵과 인권문제 등은 북한과 미국에는 서로 협상용 카드가 될지 몰라도, 노무현정부에는 딜레마였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할 수도 없고, 정권붕괴를 포함한 미국의 군사력 사용 또한 거부해야 했기 때문이다.2 서동만은 노무현정부가 북핵에 ‘올인’했다고 하지만, 북핵이 노무현정부의 대외정책을 ‘올아웃’시켰다고 봐야 한다.

백낙청(白樂晴)이 지적한 것처럼“지식인의 담론은 정권이 책임질 대목과 누가 해도 힘든

  1.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대토론회 중 서동만의 발언, 『한겨레』 2006년 3월 28일.
  2. 물론 대화국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 들어 북핵대화의 시작이며 중국이 당사국이자 중재자로서 나선 2003년 4월 23일의 뻬이징 3자회담은 핵문제를 둘러싼 군사적 대립과 미사일 발사 위기라는 숨가쁜 상황 속에서 이뤄진 타협의 결과였다. 6자회담의 협상국면도 북미간의 근본적 불신으로 긴박해진 대치국면에서의 숨고르기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