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성란 河成蘭

1967년 서울 출생.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옆집 여자』 『루빈의 술잔』 장편소설 『삿뽀로 여인숙』 『식사의 즐거움』 등이 있음. gaulhae@hitel.net

 

 

별 모양의 얼룩

 

 

육십명이 넘는 여섯살 반 아이들을 한장의 사진 안에 넣느라 사진을 찍은 사람은 애를 먹은 것 같았다. 아이들 머리 위로 명정전이라는 현판이 살짝 얹혀야 했으니 더더욱 고심을 했을 것이다. 원생 전원이 잘리지 않고 나온 덕분에 사진 속 아이들의 얼굴은 흐릿했다. 콩알만하게 나온 아이들의 얼굴 속에서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 모두 유치원 이름이 새겨진 노란 원복을 입고 있었다. 여자는 손톱 끝으로 얼굴들을 짚어가다가 맨 뒷줄 가장자리에 서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의 얼굴은 앞에 선 두 아이의 어깨에 가려 간신히 코 윗부분만 나와 있을 뿐이었다.

여자는 거실바닥 가득 아이의 사진을 늘어놓고 가장 선명하게 나온 아이의 사진을 고르는 중이었다. 사진은 유치원에서 찍어 장당 얼마씩을 받고 가정으로 보내준 것들이었다. 몇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니 나중에는 아이의 얼굴을 단박에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늘 맨 가장자리나 맨 뒷줄에서 얼굴이 반쯤 잘리거나 앞에 선 아이들의 어깨 사이로 떠오르는 해처럼 반쯤 얼굴을 내놓은 채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흩어진 아이들을 정렬시키다가 나중에야 외따로 떨어져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아무 자리에나 데려다 세운 듯했다.

벌써 몇번째 수십장이나 되는 사진들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단 한장의 사진도 자신의 아이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 없었다. 점심으로 싸준 김밥을 입에 물고 있거나 붉은 흙속에서 방금 캐낸 고구마나 무 따위를 전리품처럼 각자의 앞에 늘어놓은 사진 속에서도 아이는 가까스로 사진기를 향해 반쯤 얼굴을 돌리던 차였거나 아예 고개를 들지 않아 둥그런 이마와 가르마만 찍혀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 아이가 가져온 사진을 훑어보던 남편이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다. 유치원 담임을 한번 만나봐, 나 몰라라 맡겨만 놓지 말고. 여자는 남편의 말을 한번에 알아들었다. 이 이는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 요즘이 어떤 세상인지나 알고 그래요? 유치원에서는 사사로이 음료수 캔 한개도 받지 못하게 되어 있어. 남편이 던진 사진이 앉아 있던 여자의 발치께에서 흩어졌다. 세상물정 모르는 건 바로 당신이야, 당신. 그때 남편의 말을 귀담아듣고 유치원 담임을 따로 만나보았더라면 제대로 나온 아이의 사진 한장쯤은 얻을 수 있었을까.

여자의 아이는 너무도 평범한 아이였다. 얼굴 생김새는 물론이고 체형이나 성격, 식성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만약 그 아이가 여느 아이들처럼 초등학교에 입학해 무난히 학업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 평범함은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성이 강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이들이 수업시간마다 호명이 되어 곤욕을 치르는 일을 많이 보아왔다.

여자에게는 근 십년 동안 띄엄띄엄 만나오는 친구가 있었다. 이년에 한 번, 어떨 때는 일주일에 두 번도 만나 마주앉아 식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 웃어대다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얼굴을 떠올리려 하면 막상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친구였다. 여자의 아이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일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여자는 자신의 아이 얼굴조차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수많은 아이들이 찍힌 단체사진 속에서 아이의 얼굴을 금방 찾아낼 수는 있었지만 사진첩을 닫는 순간 아이의 얼굴은 둥그런 형체 속에 흐리멍덩하게 눈 코 입의 윤곽만 남는 것이었다.

오전 내내 아이의 사진을 보고 또 보았지만 아이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온 사진은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작년에 썼던 사진을 도로 찾아 꺼냈다.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하고 찍은 단체사진 속에서 옆얼굴만 나온 아이의 모습을 따로 확대한 사진이었다. 가뜩이나 흐릿하게 나온 아이의 얼굴은 십육절지 크기로 확대되면서 더욱 흐리터분해졌다.

 

대기장소인 덕수궁 앞 도로가에 관광버스 세 대가 일렬로 주차되어 있었다. 비좁은 보도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야유회에 가기 위해 집합한 사람들이 섞여 북적거렸다. 아이스박스와 술병이 빼곡히 꽂힌 플라스틱 술상자, 과일과 음료수병이 든 비닐봉투가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에 채었다.

샛별유치원이라는 종이를 차창에 붙여놓은 운전기사는 버스의 시동을 걸어놓은 채로 보도에 내려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가 올려다보는 맞은편 빌딩 꼭대기에는 전광판이 걸려 있었다. 조간에서 발췌한 굵직굵직한 기사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출발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려고 전화를 했던 훈이 엄마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자는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덕수궁 돌담에 기대섰다. 아이의 사진을 끼운 액자의 모서리가 전철 속에서 계속 여자의 허벅지를 찔러댔다.

비대한 몸집의 여자가 상체를 출렁거리면서 뛰어와 버스에 붙은 종이를 확인하고는 땀을 닦았다. 훈이 엄마였다. 만나지 못한 2개월 사이 체중이 부쩍 는 듯했다. 오른쪽 뺨에 모래알 같은 기미가 앉아 있었다. 여자를 알아본 훈이 엄마가 덥석 여자의 손을 잡았다. 어깨에 멘 커다란 비닐가방에서 조미료 냄새가 새어나왔다. 훈이 엄마가 두꺼운 눈꺼풀을 끔벅거리면서 웃었다.

“아침 일찍부터 닭을 튀기는 데가 있어야 말이지. 열 군데는 더 뒤졌어. 마침 살림집에 붙은 곳이 있길래 사정사정했지. 애가 제일 좋아한 거였으니 준비를 안할 수도 없고 말야……”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책위원회 때문에 지난 일년간 수없이 만난 사람들이었다.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거나 남자들은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운전기사가 버스 짐칸을 열었지만 잠시 후 다시 닫았다. 짐이라고는 단출하게 어깨에 메거나 손에 든 가방뿐이었다.

관광버스 안에는 휘발유 냄새가 잔뜩 배어 있었다. 여자는 코를 틀어막았다. 의자에 씌운 파란 비닐커버도 눈을 어지럽게 했다. 물청소를 한 후 곧바로 왔는지 통로에 물걸레 자국이 남아 있었다. 여자의 무릎께에서 달랑거리는 망으로 된 보관백에는 채 치우지 못한 빈 드링크병이 꽂혀 있었다. 대책위원장을 맡았고 관광버스 대절부터 사소한 일까지 책임을 도맡았던 미선 아빠가 버스 뒤에서부터 머릿수를 헤아리며 운전석 옆으로 왔다.

전철역 출입구 위로 남편의 모습이 나타났다. 버스를 발견한 남편의 보폭이 커졌다. 양복 저고리를 들지 않은 손에 소담스럽게 핀 흰 국화 한다발이 들려 있었다. 행여 지나치는 행인에 쓸려 꽃잎이 떨어질까 국화 다발을 든 손을 허공에 반쯤 치켜든 채여서 생각처럼 빨리 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언젠가 아이와 함께 화원 앞을 지날 때였다. 화원 주인이 가게 밖에 나와 조화로 쓸 흰 국화를 손질하고 있었다. 보도 중앙까지 흰 꽃잎과 이파리들이 쓸려와 있었다. 푸른 이파리와 줄기는 다 잘라내고 흰 꽃송이만 둥글게 만든 스티로폼 위에 꽂고 있었는데 아이가 손가락으로 그 꽃들을 가리켰다. 엄마, 꼭 찐빵 같아. 그 말을 했던 아이의 목소리는 생생한데 아이의 얼굴은 봄소풍 때 명정전 앞에 서서 찍은 사진 속에서처럼 희미할 뿐이었다.

남편은 앞좌석에 앉은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건네며 여자의 곁으로 와 앉았다. 여자의 몸이 기우뚱 남편 쪽으로 기울었다. 시간에 맞춰오느라 몹시 서둔 탓인지 남편은 의자에 앉은 후에도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구김이 간 와이셔츠의 목 부분에 검게 때가 타 있었다. 국화 다발에서 지린내가 났다. 국화 다발을 사느라고 늦은 모양이었다.

신갈 인터체인지를 벗어난 후부터 버스는 전용차선을 타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휴가를 떠나는 차들이 몰려들어 옆차선에는 차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버스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울컥 신물이 올라왔다. 뒷좌석 어딘가에 앉았을 훈이 엄마의 비닐가방에서 풍겨오는 양념통닭 냄새도 한몫을 했다. 냉방장치 때문에 팔뚝에는 소름이 돋았지만 밀폐된 버스 안에 고인 냄새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운전석 옆에는 노래방 기계와 마이크가 장착되어 있었다. 관광객을 태울 거라 짐작하고 있었던 운전기사는 행선지를 알려주는 미선 아빠의 이야기를 통해 뒤늦게 상황을 안 모양이었다. 라디오를 끈 후부터 운전기사는 줄곧 껌을 씹어대고 있었다. 가끔 옆차선으로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지나쳤다. 비좁은 통로로 나와 선 사람들이 상반신만 움직여대며 우스꽝스런 춤을 추고 있었다.

소읍으로 들어선 버스는 느닷없이 뛰어드는 오토바이와 경운기 때문에 속도를 줄여야 했다. 정미소와 우체국, 양품점과 소방서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늑목과 정글짐, 시소와 그네가 박힌 텅 빈 초등학교 운동장을 지나고 나면 또 밭과 논이 이어졌다. 밭과 논 너머에 개량주택 몇채가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비슷비슷한 소읍을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