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河成蘭)의 소설은 덧없이 흘러가는 일상의 한 장면을 일순, 특권화된 순간으로 만든다. 무심한 듯하나 집요한 시선으로 사물화된 세계를 응시하고 재현하는 밀도 높은 문장은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불편하고 난해하다. 하성란 소설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롱테이크 기법의 영화를 보듯, 시간을 견뎌야 한다. 아니, 견딜 뿐 아니라 시간을 타고 함께 흘러야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익숙한 장면들도 낯설고 새삼스러워지는 새로운 소설적 차원이 열리고, 불현듯 작가는 그 틈새에서 생의 비의(秘意)를 꺼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