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새롭고 좋은 아이디어

 

 

존 란체스터 John Lanchester

소설가, 『런던 리뷰 오브 북스』(London Review of Books) 객원편집자. 소설 『아주 특별한 요리 이야기』(The Debt to Pleasure), 『캐피탈』(Capital) 등이 있음.

 

 

* 이 글은 London Review of Books, Vol.41 No.14 (2019.7.18)에 수록된 “Good New Idea: John Lanchester makes the case for Universal Basic Income”을 번역한 것으로, 원문은 www.lrb.co.uk에서 볼 수 있다. ⓒ John Lanchester 2019. Reprinted with permission from John Lanchester/한국어판 ⓒ (주)창비 2019

 

 

 

21세기 역사, 적어도 첫 20년의 전체 윤곽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신용에 기반한 팽창과 고삐 풀린 금융화의 시기가 갑작스러운 붕괴, 그리고 사상 초유의 은행 긴급구제로 막을 내렸다. 일반 사람들이 은행가들의 손해를 떠맡았지만 그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진 것은 긴축정책이었고, 이 정책은 경기회복을 심각하게 저해해 끝없는 대침체(Great Recession)가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자동화와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인터넷이 부상하면서 제1세계의 임금이 정체되고 보통 사람들은 더욱더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되었다. 엘리트층은 괜찮았고, 개도국, 특히 아시아에서는 경제성장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전세계의 중산층, 그중에서도 선진국의 중산층은 점점 더 불안을 느끼고, 자신이 무시당한다 싶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지난 몇십년간 노조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영국에서 평화시에 이만큼 지속적으로 소득이 줄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1 이런 상황에 대해 우파 정치세력은 역사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민자들을 탓하는 전술—로 대응했고, 그 전술은 브렉시트부터 트럼프, 오르반(Orbán, 헝가리 총리), 보우소나루(Bolsonaro, 브라질 대통령), 살비니(Salvini, 이딸리아 부총리), 독일대안당(AfD)에 이르기까지 속속 성공을 거두고 있다. 우파 정치세력의 부상이 얼마나 일상적이 되었는가는 ‘중도파’의 성공으로 일컬어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준(準)파시즘 정당이 34%를 득표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좌파는 21세기 들어 꽤 심각한 실패를 맛보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점은 부분적으로 미국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 이딸리아, 브라질 등에 이르기까지 선거 패배의 문제이지만, 무엇보다도 좌파가 새로운 지형에 알맞은 새로운 이념틀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 겪고 있는 많은 문제는 이대로 가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1980년에는 미국 전체 인구 중 하위 50%가 총수입의 20%를 가져갔다. 2014년이 되면 그 비율은 12%로 줄어든다. 한편 상위 1%의 수입은 총수입의 12%에서 20%로 늘어났다.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과거의 중도좌파는 이러한 경제권력 배분에 책임이 있고, 따라서 좀더 배려심 있고 좀더 점잖은 자유시장 자본주의라는 중도좌파의 이전 모델은 낡고 부족하게 느껴진다. 지금 직면한 소득정체와 불평등 문제가 현재 진행 중인 자동화와 세계화의 흐름 때문에 더욱 악화되리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인공지능 때문에 곧 일자리 대재앙이 닥치리라 믿지는 않더라도, 기계가 더 많은 일을 하고, 인간의 일은 줄어들며, 인간이 하는 일의 성격이 점점 흥미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흐름들은 서로 겹치고 합쳐지면서 증폭되는 중이다. 필리프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와 야니크 판데르보흐트(Yannick Vanderborght)는 『기본소득: 자유로운 사회와 건전한 경제를 위한 근본적인 제안』(Basic Income: A Radical Proposal for a Free Society and a Sane Economy)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으며, 세계를 이렇게 다시 만들어낸 세력은 여럿이다. 즉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초래된 파괴적인 기술혁명; 무역, 이주, 커뮤니케이션의 전지구화; 세계적으로 급격히 늘어난 수요가 천연자원의 축소와 대기오염의 포화로 한계에 봉착한 상황; 가정부터 노동조합, 국가독점체와 복지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통적인 보호제도에 일어난 혼란; 그리고 이런 다양한 흐름의 폭발적인 상호작용.

 

위험은 분명히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자칫 “첨예한 갈등에 불을 붙이고,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를 낳을 수 있다”고.

문제는 그런 현상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좌파는 우파가 내세우는 낡고 나쁜 아이디어들—민족주의 강화, 국경 단속, 이민자 탓하기, 문화전쟁, 무역전쟁, 그리고 진짜 전쟁까지—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롭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 보편적 기본소득의 역할이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제는 경제와 정치 문제 전반의 사고틀을 바꾸는 획기적 해결책이 될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기본 아이디어는 간단하며, 애니 로우리(Annie Lowrey)가 쓴 탁월한 개론서 『사람들에게 돈을 줘라』(Give People Money)의 제목에 잘 요약되어 있다. 즉 모든 시민에게 조건 없이, 평생 규칙적인 현금 지급을 보장하는 것이다. 액수는 심리적·실제적 안정을 제공하고 궁핍을 방지하기엔 충분하지만, 아예 일을 안 하고 싶어질 정도로 많지는 않아야 한다. 그 돈에만 의지해 산다면 안전하긴 해도 편안하지는 않을 정도의 액수인 것이다. (이것은 내 방식의 표현이며, 이제 살펴보겠지만, 정확한 액수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로우리는 벨기에의 정치사상가 판 파레이스를 “현대 기본소득 운동의 대부”라고 부른다. 판 파레이스와 벨기에의 정치학자 판데르보흐트는 기본소득의 핵심은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걱정으로부터의 자유, 현재의 복지국가에서 자산조사 결과에 따라 복지수당을 지급하기 때문에 지원자들이 종종 겪어야 하는 굴욕적이고 혼란스러운 과정으로부터의 자유, 모욕적이거나 지나치게 힘들거나 극도로 불안정한 일을 해야 할 필요성으로부터의 자유 말이다. 이것은 최근에 다양한 사상가들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견해다. 그 사상가들에는 『미래의 발명』(Inventing the Future)의 공저자 닉 스르니첵(Nick Srnicek)과 알렉스 윌리엄즈(Alex Williams), 『말도 안 되는 직업들』(Bullshit Jobs)의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 『포스트자본주의의 새로운 시작』(PostCapitalism, 한국어판 더퀘스트 2017)의 저자 폴 메이슨(Paul Mason), 『현실주의자를 위한 유토피아』(Utopia for Realists)의 저자 루트거 브레만(Rutger Breman), 그리고 『우리의 당연한 권리, 시민배당』(With Liberty and Dividends for All, 한국어판 갈마바람 2016)의 저자 피터 반스(Peter Barnes) 등이 포함된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뜨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1986년 루뱅에서 창립된 이래 꾸준히 보편적 기본소득을 연구하고 주창해온 주요 단체 비엔(BIEN), 즉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오랜 멤버이다. 스탠딩의 『기본소득: 일과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Basic Income: And How We Can Make It Happen, 한국어판 창비 2018)은 기본소득의 개념을 이론적·실천적 관점에서 철저하고 차분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그의 논의는 세금, 즉 부유한 사람은 빈곤한 사람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자산조사 결과에 따라 수당을 지급하는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는 복지수당을 받다가 임금 일자리로 옮겨가려는 사람들에게 잔인하고 자기파괴적이라 할 정도로 높은 세율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영국과 독일에서 실업에서 벗어나 임금노동자가 됨으로써 복지수당을 잃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한계세율—특정한 소득대에 징수하는 세금—은 최대 80%에 이른다. 그것은 소득세에 적용되는 최고세율보다도 훨씬 더 높다. 사회가 가장 일을 시키고 싶은 집단에게 가장 일을 기피할 동기를 부여한다면 이는 부조리하다. 현재대로라면 노동의 댓가 1파운드당 겨우 20페니만을 자기 몫으로 가질 수 있다. 영국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이라면, 한시간 노동으로 1.64파운드(약 2,460원)를 버는 셈이다. (25살 미만의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