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민우 崔旻宇

1975년 제주 출생. 2012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머리검은토끼와 그 밖의 이야기들』이 있음. daftsounds@gmail.com

 

 

보호색

 

 

<안필성 스튜디오>의 주인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진관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한사코 인정하지 않았다.

“인터뷰도 좋고 다 좋은데요.”

주인이 팔짱을 끼었다.

“확실히 할 건 해야죠. 아버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하나도. 조금도.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압니다. 아는데요.”

나는 막막한 기분으로 말했다.

“말씀드렸지만 저희 잡지 이번호 기획이 ‘가업을 잇는 사람들’이거든요. 섭외전화를 드렸을 때……”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요.”

“못 들으셨다고요.”

“인터뷰라고만 했지. 통화할 때 얘기했잖아요.”

“실은 전화를 다른 분이 하셔서요. 제가 아니라.”

“그래요?”

주인이 투명한 낚싯바늘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오른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럼 그쪽은 누구시죠?”

“네?”

“제 앞에 계신 분은 누구시냐고요.”

땜빵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이 상황에서 슬기로운 대처일 성싶지는 않았다. 나는 가능한 가장 무난하면서도 권위 있어 보일 법한 단어를 골라 대답했다.

“자유기고가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내 뒤에 서 있던 사진 담당 연하씨가 헛기침을 하며 천장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벽에 걸린 거울에 비쳐 보였다. 사진관 통유리로 들어오는 초여름 오전의 햇살과 열기가 목 뒤를 건드렸다.

들은 게 다르기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는 말은 이미 다 됐으니 주인과 편안히 얘기 좀 하고 사진 몇장만 찍어오면 된다고 했다. 독특한 빈티지 인테리어, 편안하면서도 예술적인 느낌을 풍기며 걸려 있는 흑백사진과 포토샵으로 예쁘게 다듬은 가족사진, 풍성하고 푸근한 턱수염을 기른 덩치 큰 주인, 가업을 잇는다는 것의 보람과 기쁨 등.

“아무튼 어렵겠습니다.”

주인이 결론을 냈다.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오지 말라고 했지. 먼 길 오시느라 수고는 하셨는데, 미안하지만 못해요.”

“저기요.”

사태를 관망하던 연하씨가 끼어들었다. 주인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제가 방금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다들 여기가 대를 이어 하는 스튜디오라던데요. 이 자리가 아버님께서 하시던 사진관 바로 길 건너편이라고 하고요.”

“그건 맞아요. 월세가 되는 데가 여기뿐이었거든.”

주인이 인정했다.

“그런데 읽을 거면 잘 보셔야지. 내 입으로 대를 잇느니 그런 말 한 적은 없을걸.”

“왜 사람들이 오해하게 놔두세요?”

“영업에는 도움이 되니까.”

“이건 훨씬 더 도움이 될 텐데요. 말씀드렸지만 저희 기내 잡지예요. 메이저 항공사는 아니지만 국내선 여객기에 배치된다고요. 영어로 번역도 되고. 그럼 외국인도 볼 거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럴 수도 있겠죠,가 아니라 바로 그렇죠.”

주인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젖은 스펀지를 슬쩍 누른 것처럼 등에서 식은땀이 올라왔다.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는 한 층 아래 지하에 있었고, 5평 남짓한 사무실은 빈티지 오디오와 스피커, 필름카메라 등으로 가득했다. 제일 눈에 띄었던 건 카세트테이프를 한번에 여섯개씩 복사할 수 있는 기계로, 1990년대 중반 길거리에서 리어카에 불법 복제테이프를 쌓아놓고 팔던 시절 사용하던 물건인 듯했다.

“무슨 말인지는 압니다.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마침내 주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거짓말은 못해요. 여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일궜거든. 아버지한테 렌즈 하나 물려받은 게 없어. 뭐, 굳이 받은 게 있다면 망신이나 면박이나 저주?”

그가 반지를 낀 손으로 머리를 쓸었다.

“사람들이 떠드는 건 됐어요. 영업에만 지장이 없으면. 하지만 내 입으로 아버지의 대를 잇는다느니, 존경한다느니, 그런 말은 못해요. 그건 제 본질이 아니니까. 본질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모르겠는데요.”

연하씨가 말했다.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그럼 어쩔 수 없고요.”

주인이 다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사진관은 기본적으로 동네 장사예요. 사람들이 여권사진 한장 찍겠다고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과연 올까?”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보다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본질은 못 바꾸는 겁니다. 살면서 하나쯤은 지키는 게 있어야 해요.”

 

급하게 들어온 일이었다. 한밤중에 벨이 울려서 전화를 받자마자 선배가 말했다.

“오랜만이야. 요즘 논다며?”

같이 일하던 기자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잠적했다. 영어번역까지 맡아 하던 재원이었고, 두명이 꾸리던 작은 외주 잡지사에 사장 겸 수석 에디터만 황망한 표정으로 남겨졌다. 업무에 숭숭 구멍이 뚫렸다. 쳇바퀴에 뛰어든 햄스터처럼 정신없이 전화를 빙글빙글 돌린 끝에 다른 일은 어찌어찌 막았고 기획기사 인터뷰 하나가 남았다. 전화 걸 사람도 너밖에 안 남았다. 대략 그런 사정이었다.

“정말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안 해.”

이번 경우는 평소가 아니었다. 잡지사의 생명줄을 쥔 고객인 항공사 대표가 경영권 승계 3주년을 맞아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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