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화길 姜禾吉

1986년 전주 출생.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중편소설 『다정한 유전』, 장편소설 『다른 사람』 등이 있음.

nananawhy@naver.com

 

 

 

복도

 

 

아니, 곱씹을수록 기분이 나빠.

그날 밤 남편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건 아니다. 어떻게 그러겠는가. 그냥 남편은 그 말을 끝낸 뒤 더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고, 그래서 솔직히 괜찮아 보였다. 뭐랄까, 그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그저 황당한 일을 겪고 약간 짜증이 난 사람에 더 가까워 보였다. 남편 성격이 원래 그랬다. 자신을 압박하거나 성가시게 하는 일에 감정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물론, 네가 이런 것까지 다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가 불쾌감을 나름대로 열심히 참았다는 것이고, 덕분에 나 역시 그 상황을 그러려니 하며 대충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이전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분리수거장이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찜찜한 기분으로 주위를 슬쩍 돌아보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을지 걱정했고, 만일 나에게도 남편과 같은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어떻게 하면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즈음 나는 꼭 분리수거장에 대해서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모든 것에 신경을 썼다. 예민했다. 다만 그 공간이 유독, 내 마음을 증폭시켜줬을 뿐이다. 그래 증폭. 작년 겨울, 이 집에 이사 온 직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불길하게 흔들리던 마음. 금방이라도 터질 듯, 잔뜩 부풀어오른 나.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정말로 그랬다.

 

*

 

산자락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이제 막 재개발이 시작된 동네였다. 너도 잘 알겠지만, 아파트 두 단지 중 입주를 먼저 시작한 1단지에 우리 집이 있었다. 1단지와 2단지는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아이보리색 바탕에 기하학적인 보라색 로고가 선명한 이 건물들은 인왕산과 북한산 자락 중간 즈음 일렬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는데, 건물들 사이의 거리도 얼마 되지 않았고 단지들을 구분하는 표지판도 없었다. 그러니 어디가 1단지이고, 어디부터가 2단지인지 알기가 힘들었다. 집을 보러 왔던 첫날, 나는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은 이 풍경이 단박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 아파트라는 것이 좁은 땅에 건물을 높게 올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살도록 만든 거라지만,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너편에 있는 텅 빈 판자촌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한쪽은 빽빽이 들어찼는데, 다른 한쪽은 휑하니 비어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역세권도 아니었다. 이사를 할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 그날, 집을 보러 왔던 바로 그날 말이다.

 

겨울이었고, 밤에는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눈이 아니라 비라니 참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산자락이라 그랬던 걸까. 유독 추웠던 기억이 난다. 버스에서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었다. 나는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핸드폰의 지도앱을 뒤적거렸다.

초행길인데다 두 단지가 잘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도를 신경 써서 봐야 했다. 우리 집은 1단지 100동 101호였다. “그런데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지도를 살피며 볼멘소리를 내뱉던 나와 달리, 남편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소 수선스럽게 굴었다. 자기야, 저기 나무가 많다. 건물들이 확실히 다 높네. 저건 뭐지? 무슨 석상이 있어. 산동네라 그런지 저런 게 있네? 덕분에 공기는 맑은 것 같아. 아, 그러면 여름에 모기가 많으려나? 등산을 해도 좋을 것 같아. 자기야, 어떻게 생각해? 어, 저기 좀 볼래? 나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계속 지도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이 부근에 201동이 있으니까 지금 여기에서 100동이 보여야 맞을 것 같은데…… 나는 인상을 썼다. 그 순간, 남편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기 100동 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웃었다.

 

아파트 1단지 바깥, 길가 바로 앞에 상자를 쌓아둔 것 같은 모양새의 작은 건물 세채가 있었는데, 그 첫번째 건물이 100동이었다. 말 그대로 길에 무슨 보따리를 내놓은 모양새였다. 심지어 우리 집은 1층이어서, 베란다에서 길가까지 몇 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판자촌과 우리 집 사이의 길도 너무 좁았다. 차와 사람이 오가는 도로라기보다는 그냥 어떤 건물의 길고 좁은…… 그래, 복도 같았다. 복도. 물론 집 앞에 화단을 만들고 낮은 담벼락을 둘러 세워 구분 지어놓기는 했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누군가 작정하고 안을 들여다보기로 한다면 집안 거실까지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이건 추측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날, 바깥에서 안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사람들이 바로 나와 남편이었으니까.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설마, 임대주택이라 그런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지만, 분명 틀림없이 그런 것 같았지만, 정확하지 않았으니까. 임대주택이 왜. 무슨 문제가 있어서? 굳이 이렇게 지어놔야 하는 이유가 있나? 법에 그런 게 있나? 아니면 건설업자들 사이에 암묵적인 뭐 그런 원칙이 있나?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잖아도 차가운 뒷덜미가 더 서늘해질 뿐이었다. 나는 뭘 몰라도 너무 몰랐다. 어른이 되면 뭐든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내 문제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어른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문제였는지, 그것조차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갭 투자는 뭐고, 비과세는 뭐고, 청약은 뭔데? 이 모든 게 다 뭐지? 그래도 확실히 알고 있는 단 하나가 있었다. 이 집, 파빌아파트 1단지 100동 101호는 우리가 신청한 뒤 네번 만에 당첨된 신혼부부 임대주택이라는 것. 그것도 후보로 한참 기다리다가 겨우 들어오게 된 집이라는 것이었다. 결혼 3개월째, 우리는 남편이 살던 9평짜리 원룸에서 지내고 있었다.

옆에서 남편이 말했다.

“나는 괜찮아.”

“응?”

“나는 이 집 괜찮은 것 같다구.”

그러더니 덧붙였다.

“베란다 블라인드를 좀 두꺼운 걸로 설치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러면 여기서 하나도 안 보일걸? 그래도 불안하면 안쪽 문에 커튼을 하나 더 달자.”

나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 다시 웃었다. 그래. 남편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의 이런 점이 싫지 않았고. 덕분에 초조하던 마음이 가라앉긴 했다. 집의 좋은 점들도 눈에 들어왔다. 조용하고 한적하고…… 겨울이었는데도 화단의 꽃나무들이 꽤 풍성하게 가꾸어져 있었다. 봄여름에는 아마 더욱 무성해질 것이다. 나는 집 안에서 바깥을 보는 상상을 했다. 주말 아침마다 푸른 잎과 색색의 꽃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것. 창밖을 보며 남편과 함께 나란히 누워 있는 것. 나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두꺼운 블라인드를 설치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면 바깥의 누구도 우리를 절대 들여다볼 수 없을 것이고, 안쪽의 우리 역시 안전할 것이다. 사실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때 나는 그랬다. 집이니까. 함께 살 집이니까. 정말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밤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사하는 날에 비가 왔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였다. 한시간쯤 내렸나. 마음먹고 산 스탠드 갓이 조금 젖었다. 습기 때문에 바닥 걸레질을 여러번 해야 했다. 하지만 가장 속을 썩였던 건 블라인드였다. 이 집에 가장 먼저 들여야 하는 건 소파나 텔레비전이 아니라 블라인드였기에, 우리는 날짜에 맞춰 배송을 받았고 짐을 풀자마자 바로 설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과 나 모두 뭔가를 조립하고 설치하는 일에 서툴렀다. 우리는 인터넷의 설치 동영상을 몇번이나 되돌려보고, 수시로 길이와 거리를 재가며 블라인드의 수평을 맞췄다. 그렇게 끙끙대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집 안 청소를 마저 끝마쳤을 때는 저녁 여덟시가 넘어 있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블라인드는 완성해서 걸었고, 집 안은 아직 어수선했지만 오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늑해졌다. 다만 배가 고플 뿐이었다. 남편은 이미 지쳐 바닥에 쓰러지듯 누워 있었다. 그는 뭐든 좋으니 빨리 먹기만 하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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