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1세기 한반도와 새로운 공동체

 

복합적 정치공동체와 변혁의 논리

동아시아적 맥락

 

 

박명규 朴明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1. 변화하는 현실과 국민국가

 

새 천년이라는 다분히 인위적인 시간구분을 이용해서라도 무언가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려는 노력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개인적인 다짐이야 해마다 하는 것이지만, 세계화·정보화로 인한 대변혁의 와중에서 조직이나 기업들의 각오는 예사롭지 않다. 개별국가들도 새로운 국가전략이나 장기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국가의 한계가 지적되고 이를 넘어서자는 논의가 국내외에서, 또 학계의 안팎에서 들려온다.1 여기에는 디지털혁명이나 세계화의 파급효과를 과장하기 위해 강조되는 수사의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사적 변화의 실상을 지적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국민국가의 형성이 근대사의 최대 과제였고 지금도 민족통일의 과제를 안고 있으며 오랫동안 국가주도의 발전전략을 추구해온 한국사회로서는 특히 이런 논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과연 국민국가를 넘어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제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견해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 글은 국민국가 위기론의 문제의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정치공동체의 미래 형태를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화가 야기하는 변화의 상황에 민감해야 함은 물론, 개별국가가 처한 역사적 조건을 동시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특히 압축적인 근대화로 인한 사회적 긴장이 심한데다 분단으로 인해 세계 어느 곳보다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한국사회로서는 더더욱 긴장과 균형이 요구된다.

 

 

2. 인식론적 범주로서의 국민국가와 복합적 시공간 의식

 

국민국가 위기론이 제기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역사적 현실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인식론적 틀에 대한 문제제기가 한 차원이라면, 시공간의 축약으로 표현되는 전지구화가 이전과는 매우 다른 인간의 결합양식을 초래한다는 문제의식이 다른 하나의 차원이다.

어떤 단위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어떤 현상을 주목할 것인지는 불가피하게 관찰자의 시공간 의식에 따라 달라진다. 시공간적 준거는 모든 역사해석에 필수적인 전제인데, 국민국가는 이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 강력한 준거가 된다. 이는 근대적 사회과학이 기본적으로 국민국가를 단위로 하는 사고체계를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공교육과 국가권력을 통해 이 관점이 가장 효율적으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국가는 정치적 범주이면서 동시에 현실에 대한 인식론적 범주의 성격도 지닌다.2 

실제로 우리는 눈앞에 벌어지는 많은 사건과 변화들을 국민국가라는 공간 속에서, 그리고 국가의 역사라는 시간성과 연관하여 이해한다. 빈곤이나 인권문제가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인류 보편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관심이나 실천은 국민국가라는 범위 안에 한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관심이 ‘한국의 위기’에 국한되고, 환경문제가 지구적 사안임을 알면서도 현실적인 실천은 ‘한국의 환경’에 맞추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연히 유사한 현상이라도 그것이 국민국가의 영역 바깥의 일일 경우 무관심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국민국가를 문제시하는 논의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하나는 인식의 기본 준거가 국민국가에 한정될 때는 변화하는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월러스틴은 단기적 사건과 중기적인 국면, 그리고 수세기에 걸친 장기지속의 시간들을 구별한 브로델의 논의에 기초하여 역사적 분석의 단위는 국민국가일 수 없으며 좀더 넓은 차원의 세계체제가 분석의 시야에 들어와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는 최근 세계체제론적 사고를 위해서는 근대 사회과학적 시공간 범주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3 

실제로 현실을 바라보는 시공간적 관점은 여러 차원의 시간성과 공간성의 조합으로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예컨대 브로델과 월러스틴이 각기 자본주의문명과 세계체제를 다룰 때 염두에 둔 것은 장기적인 시간성과 세계적 차원의 공간을 함께 사고하는 장기적-지구적 시공간 범주라 하겠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적어도 수세기 동안 전세계는 하나의 총체적 변동과정 속에 포섭되어 있던 셈이고, 따라서 개별국가나 사회를 독자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언어나 습속, 가치체계 등 오랜 생활의 공동성에서 유래하는 장기적이면서도 국지적인 요소들이 자본주의 시장논리 속에서 파괴되거나 변형되는 과정도 이런 포괄적 시공간 속에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특정 지역이나 집단을 중심으로 한 시공간 범주의 중요성도 새로이 부각된다. 개인들이 경험하는 현상학적 삶의 질서는 반드시 국민국가 중심의 역사해석과 같지 않아서, 잊혀졌거나 억압당하는 경험들도 존재하며 공식적 해석체계가 문화적 폭력의 형태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4이런 관점에 철저하게 되면, 역사해석에 누구도 절대적 우위를 점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 모든 집단이 각기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과 전망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역사적 시공간은 매우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며, 따라서 이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인식의 틀도 복합적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어떤 관점이든 하나의 범주만을 고집하면 복합적 현실을 조망하기 어려운데, 국민국가 중심의 시공간 의식은 근대적 질서의 특성을 드러내는 데는 유효하지만, 국민국가와 동일시될 수 없는 크고 작은 주체들의 경험을 소외시키는 한계가 있다. 장기적-지구적 시공간은 장구한 역사적 흐름의 방향을 깨우쳐주지만 삶의 일상적 영역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갖기는 어려우며, 다양한 주체들의 개별적 시공간을 강조하는 논의들은 개인의 삶과 의식에 작용하는 구조적이고 시대적인 제약에 대한 파악을 놓치기 쉽다.

역사적 시공간의 복합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는 국면적-지역적이라 할 수 있는 시공간 의식이 매우 유용한 범주가 될 것이다.5 이것은 국민국가를 넘어선 지역질서의 공간과 수십년의 중기적 시간대가 만나는 범주로서, 복수의 국민국가들이 독자적인 지정학적·문명론적 조건을 공유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존속해온 시공간을 의미한다. 이 시공간 범주는 국민국가중심적 사고로부터 일정한 전환을 가능케 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추상적인 세계사·장기사의 흐름으로 환원되지 않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역사적 현실을 지나치게 개별화함으로써 그 구조적 측면을 무시하는 오류도 피할 수 있으리라 본다. 발칸반도·서유럽·중동 등 우리에게 낯익은 지역적 범주가 이런 시공간적 틀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의 경우도 같은 범주 속에서 포착될 수 있을 것이다. 백영서(白永瑞)는 ‘지적 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라는 새로운 발상을 강조한 바 있는데, 그러한 시각 자체도 국면적-지역적 시공간 범주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6

물론 이런 시각도 기계적인 방식으로 이해되고 적용될 경우, 현실의 복합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전히 국민국가중심적 시공간이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으며, 또한 장기적-지구적 범주에 의해서만 설명가능한 문명론적 상황이 중심을 이룬다. 다만 사물과 역사를 바라보는 기존의 인식구조를 다양화하고 시공간적 엇물림의 복합적 측면에 좀더 민감해지지 않으면 현실의 전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국면적-지역적 시공간관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고하는 고정된 틀을 다양화하고 복합적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며, 또한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실천의 공간과 전략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3. 동아시아 국민국가의 안과 밖 

 

국민국가 위기론이 제기하는 또하나의 문제는 인간의 공동체적 결합방식이 현저하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더이상 국민국가라는 정치공동체에 배타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영역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거나 또는 특수한 범주를 중심으로 심화됨을 의미하며, 국민국가라는 정치공동체 형식에 대한 구성원들의 기대가 그만큼 축소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국가는 역사상 구성원들을 가장 강력하게 통제해온 체제라 할 수 있다. 국민국가는 대내적인 절대권력과 대외적인 독립권을 지닌 정치공동체로서, 인간집단을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구획하고 전자에 대해서만 배타적인 보호를 보장하였다. 모든 사람은 명확한 영토적 경계 위에 존재하는 하나의 정치공동체에 귀속되어야 했고, 그런 귀속자격을 갖지 못한 개인은 정치적 보호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7 보호의 방식은 근대화된 행정기구와 독점적 군사력, 그리고 법적 강제력에 기초한 것으로, 이질적이거나 공동체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은 국가권력에 의해 배제되거나 감금되었다. 국경은 상이한 문화를 재생산하는 문화적 경계로서 구성원들의 자연스럽고도 특수한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틀이었다. 모든 사회적 활동과 연대는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시민들의 국가의식과 애국심은 일종의 시민종교가 되었다. 경계의 엄밀함, 권한의 집중성 그리고 민족주의적 사회통합은 정치공동체로서 국민국가가 지닌 주요한 특징들이었다.8

국민국가가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은 단일하지 않았다. 시민혁명을 거쳐 국민국가를 형성한 프랑스의 사례와 위로부터의 혁명으로 국민국가를 이룬 일본, 탈식민지화 과정에서 독립한 인도네시아의 사례가 각기 다르다. 여기에는 개별공동체 내부의 조건 차이 못지않게 주변의 정치공동체와의 상호 관계방식이 미친 영향도 매우 크다. 국민국가는 그 안과 밖을 동시적으로 파악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국민국가의 형성은 한 세기 이상 지속된 역사적 과정의 결과다. 내부적으로는 근대적 국민정체성이 성장한 결과인데, 전통적인 신민의식·신분의식이 극복되고 새로운 국가의식과 그 구성요소로서의 국민정체성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이었다. 이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역사·문화·언어·인종 등 에스니(ethnie)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9

그러나 정치공동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끼친 영향은 이보다 훨씬 더 컸다. 특히 20세기 전반기 일제의 강압적 제국주의 질서가 남긴 후유증과 후반기의 냉전적 상황이 끼친 영향은 결정적이라 할 만하다. 식민지질서는 일본의 팽창적 국가주의의 소산으로서 한국과 중국의 저항적 민족주의를 심화시킨 계기였다. 아시아주의를 표방한 식민지질서가 민족간 차별과 인간성 말살이라는 파시즘체제로 귀결되었던 까닭에, 식민지 기간에는 물론이고 일제 패망 이후에도 절대적 민족주권론이 강렬한 반일정서와 함께 존속하였다. 뒤이은 냉전적 상황은 민족적 대립구도에 이데올로기적인 차원을 접목시켰는데, 한반도가 체제경쟁의 전장이 되고 일본이 이른바 ‘역전된 코스’를 통해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의 동반자적 지위로 탈바꿈한 것은 그런 결과였다.10 그리하여 동아시아는 남북한 대치를 최전선으로 하여 남한-일본-미국의 한 축과 북한-중국-소련의 또다른 축이 대립하는 독특한 질서를 경험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동아시아의 국민국가는 안으로는 에스니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고, 밖으로는 냉전적 규정을 받는 탈식민지 지역질서를 환경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라 하겠다. 민족을 기본단위로 하는 사람의 구별, 국제질서에 의해 규정된 영토적 구분, 여기에 체제간 대립의 핵심인 이데올로기적 대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지역내 경계를 구성해온 것이다. 탈냉전과 더불어 이데올로기적 구분선은 점차 약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경계들은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이 경계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개별 국가들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시도되었다. 남북한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질적인 존재를 철저하게 타자화하고 부정함으로써 국민적 정체성을 강화하려 했고,11 일본은 재일조선인을 헌법의 보호로부터 배제함으로써 ‘일본 국민’을 재구성하였다.12 중국 역시 이데올로기적 동질성을 강압적으로 추구하였고, 소수민족 보호정책도 그 동질성하에서만 인정되는 것이었다. 안팎으로 경계는 고정되었고, 구획된 공간은 마치 불변의 것인 양 간주되었다.

탈냉전과 세계화가 동아시아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바로 이러한 경계의 고정성에 대한 새로운 변화로, 이 변화는 안팎으로 오고 있다. 한국이 러시아나 중국 등과 외교관계를 맺고 사회경제적 교류를 강화하고 북한이 미국이나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 바깥의 변화라면, 이념적 차별을 이유로 하는 국가적 폭력이 약화되고 다양한 사상과 운동이 허용되는 사회민주화의 진전이 안의 변화라 하겠다. 이 변화 속에서 4·3의 묻혀진 기억들이 다시 부각되고 노근리의 참상이 조명될 뿐 아니라 분열되었던 재외동포들이 화합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선 개인들의 기본적인 안전보장으로부터 사회적 권리의 실현에 이르기까지 국가에 기대됐던 기능이 점점 더 수행되기 어려워지며, 따라서 국가의 정당성은 점점 더 약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민주화의 진전이나 복지국가의 모순과 같은 내부적 요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본과 시장의 급속한 세계화가 끼친 영향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또한 환경·범죄·인구이동 등 전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문제들에 적응하기 위한 비정치적·초국가적 주체들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된다.13 장기적-지구적 차원에서 본다면 국민국가의 위기는 근대성을 담보하던 세계체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며, 국면적-지역적으로만 보더라도 반세기에 걸쳐 형성된 동아시아 지역질서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편되는 현상의 한 모습이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 국민국가의 옹호냐, 부정이냐라는 양자택일적 논리는 그것 자체가 과거의 사고에 얽매인 결과이며 역사적 전환의 복합적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고이다. 결국 우리에게 낯익은 위계적 사고, 다시 말해 개인-사회-국가-지역-세계라는 공간적 확대를 순차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사고는 점점 더 곤란해질 것인바, 국민국가 위기론은 이런 복합적인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대응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4. 복합적 정치공동체와 지역질서

 

국민국가적 결합형식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치공동체인 한 일정한 구성원과 공간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지니며 세대를 이어 공동체적 결속을 유지할 수 있는 성원의 자격은 합리적인 토론이나 정치적 선택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인 생활경험과 상호작용의 바탕 위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또한 공간의 한계가 극복되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집합적 생활과 지리적 공간의 연계성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어서 머피의 말대로 “영토는 정체성 형성에 매우 강력한 구성요소로 남아 있을 것”이다.14 결국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형태도 현재의 국민국가 및 그 주변국가의 구성원과 공간을 떠나서 구상되거나 실현될 수는 없는 일이다. 새로운 정치적 결합방식은 국민국가가 전혀 다른 정치공동체로 대치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기존 국민국가들의 내부와 주변에서 새로운 상호작용과 결속의 틀이 나타남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15

내부적으로 볼 때, 복합적 정치공동체는 국민국가의 결속원리와는 다른, 대안적 원리들에 의해 결합될 것으로 보인다.16 다시 말하면 경계의 고정성보다는 유연성이, 권력의 집중성보다는 분산성이, 그리고 국민적 통합보다는 연대의 다층성이 더욱 강조될 것이다. 경계의 유연화란 경계간의 불일치와 중첩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지리적인 경계이지만 인종적 경계는 아닐 수 있으며 정치적 경계이지만 종교적 경계는 아닐 수 있는 경계의 다차원적 복합성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시장의 논리가 작동하는 공간과 문화적 정체성이 통용되는 공간을 부질없이 일치시키려 하지 않고 각자의 영역을 인정할 수 있는 다원주의가 바로 이 경계의 유연성을 보장하는 논리인 셈이다.17 권력의 분산성이란, 정부의 권력이 일방적·획일적인 힘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세력들에게 권한이 이양되고 또 공유됨을 뜻한다. 이것은 국민국가 내부의 지방자치를 의미하는 수준을 넘어서, 비국가적 영역의 자율성과 권리가 좀더 적극적으로 보장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연대의 다층성은 집합적 정체성과 결합의 대상이 국민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범주들에 속하면서 국제적 연결이 가능해지는 상황을 말한다. 이미 정체성의 정치를 부르짖는 다양한 범주들, 예컨대 여성 노동 종교 인권운동은 국가의 통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며 연대의 대상이 세계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NGO(비정부기구)가 다른 어떤 조직체들보다도 국제연대에 활발하며 국제적인 관심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내부적 변혁은 일차적으로 기존의 국민국가가 민주적이고 관용적인 공동체로 변화하는 데서 시작된다. 정치적 민주화투쟁이나 시민세력의 활성화가 그 구체적인 동력이 될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투쟁이나 일본의 시민사회운동, 중국의 인권운동 등이 모두 국민국가적 틀 내에서 일어나는 변화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한계를 뛰어넘을 힘이 된다. 이 과정에서 운동의 이념이 국민국가적 경계 안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주의적이고 상호연관적인 지향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럴 경우 절대적인 국가주권론과 내정불간섭론을 넘어설 수 있는, 국적과 성, 인종과 연령을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원리에 기초한 운동의 연대가 발달할 수 있게 된다. 뒤르켐(E. Durkheim)은 사회주의적인 유대론이 엄밀한 의미에서 연대를 창출하는 데 실패한 이유를 인간주의에 대한 철저한 도덕적·윤리적 태도의 부재에서 찾았다.18 민족주의가 비난받는 이유도 동포애의 숭고한 정신이 자기집단에만 적용되는 논리로 전락함으로써 보편적 휴머니즘과 멀어진 까닭일 것이다. 결국 다양한 경계를 넘어 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과 연대하고 그에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동체적 연대의식이 발달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국민국가 밖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국민국가 단위로서는 해결되기 어려운 공동체들간의 질서를 확보할 가능성과 방안에 연관된 것이다. 정치공동체는 무엇보다도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침략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민국가는 대내적 평화는 확보할 수 있었지만 공동체들간의 질서를 발전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주변의 정치공동체들 사이에 전쟁과 침략, 억압과 저항의 역사가 뿌리깊은 곳일수록 그 불안정성이 높았고, 그것은 다시 정치·군사적 대립과 상호불신을 확대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국가 밖의 조건은 때때로 안의 조건에 선행하면서, 안의 변화를 가능케 하거나 제약하는 독립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에서는 국가들간의 합의보다는 불확정적인 주변상황에 대한 개별국가적 대응이 중시되고 있다. 냉전적 상황에서 발달한 국가간 동맹관계도 개별국가들간의 쌍무적 협정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 지역내 안전을 함께 보장하는 방식은 아니다. 더구나 쌍무적 군사협정 자체가 지역내의 긴장과 대립을 전제하고 이를 부추기는 측면조차 있는 실정이어서 지역내 평화의 보장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국력강화의 수단으로 생각되는 발전국가론적 사고가 개별국가적 대응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이지만 시장창출적이고 유능한 발전국가의 존재야말로 일본을 위시하여 한국과 대만, 그리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중국의 성공을 모두 설명해주는 비결로 간주되는 사고19에서는 주변국가들과 함께 발전을 도모한다는 공존의식을 발전시키기 어렵다. 이런 논리는 특히 위기상황에 부딪혔을 때 자민족중심적인 태도를 강화시킬 소지도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19세기말 동아시아에 수용된 다윈주의적 논리, 특히 국가간 약육강식의 경쟁논리를 극복할 만한 국가간 공존의 논리를 이 지역에서는 아직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불안정한 상황을 근거로 일본의 군비확충론이 주장되고 중국에서는 국가주의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안보중시론이나 북한의 강성대국론도 이런 조건 아래서 더욱 힘을 얻을 것이며, 한반도의 위기상황은 다시 지역 내의 긴장을 강화시킬 수 있다. 국가주의적인 근대화가 ‘해방’의 기능과 함께 무시 못할 ‘억압’의 역사를 초래했으며, 또 실제 한 나라의 부국강병론이 주변국가들에게 위협과 고통을 가져온 경우가 많았음을 고려하면 개별국가 단위의 대응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할 수 없다. 더구나 오늘의 발전전략이 지구상의 모든 장소, 모든 가치를 상품화하고 환경과 자원의 낭비를 심화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조절되지 않는 국가주의의 미래가 이 지역에 심각한 대립과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은 적지 않다.

따라서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평화적 질서를 구축하는 일은 복합적 정치공동체 형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는 탈냉전이 배타적인 국가주의로 진행됨으로써 지역내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비국가적 영역에서의 평화와 연대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필요하고 동시에 국민국가들의 자각과 실천이 절실하다. 정치적·군사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지역내 논의구조는 물론이고, 자본과 노동의 이동, 환경오염, 여성문제, 인권문제 등에 대한 개별국가적 차원의 실천과 함께 다자간 협의의 제도화도 모색되어야 한다. 문화적으로는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공유했던 경험이나 문명적 자산들에 대한 재확인과 재생의 작업이 긴요한데, 전통시대의 문물교류와 선린우호의 관계를 확인하는 일은 물론이고 근대로의 전환과정에서 안중근(安重根) 등 여러 지식인들이 구상했던 동양평화론적 사고에 대하여도 다시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식민지 질서의 억압 속에서도 평화와 공존을 위해 국경을 넘어 연대했던 여러 경험들, 망명자들의 국제적 활동과 결속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일제가 내세웠던 아시아주의의 허구성을 드러냄은 물론이고 민족해방운동이 지역내 평화운동과 결합했던 역사적 자산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제국주의 침략과 냉전적 대립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공통의 추모와 기념이 가능해지고, 냉전체제하의 국민국가적 시각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많은 숨겨진 역사들, 억압된 진실들이 밝혀짐으로써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연대의 장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국민국가가 안팎으로의 변화를 통해 경계의 유연성, 권한의 분산성, 그리고 연대의 다층성을 이루게 될 때 새로운 정치공동체가 출발할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의 변화는 국면적-지역적 시공간 범주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화·정보화로 인해 불가피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정치공동체와 지역질서 역시 그 특수한 조건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에 대응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구축될 것이다.

 

 

5. 국면적-지역적 시공간에서의 한반도 문제와 한민족정체성

 

결국 실천이 문제인데 그 첫걸음은 각자의 생활공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의 국가와 사회가 실천의 장이자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한반도의 문제를 주목하되 국면적-지역적 시공간 속에서, 다시 말해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그 위상과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안과 밖을 함께 사고하는 것, 그리고 민족적인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인 쟁점들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적 모색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두 가지 점에 유념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하나는 분단극복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민주화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민족사적 비극인 동시에 동아시아적 사건이고 세계사적 현상이어서, 안에서 볼 때는 민족분열이지만 바깥에서 볼 때는 두 개의 정치공동체간의 총체적 대립과 갈등이다. 한반도 분단상황에는 일제식민지 역사의 후유증이 농축되어 있으며, 냉전대립이 남긴 상처와 증오가 뿌리깊게 살아 있다. 한반도는 20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매우 전형적이고도 집약적인 형태로 보여주며 그 모순이 현재화되어 있는 곳이다.

이런 점에서 남북한의 통일과정 자체는 장차 동아시아 지역에서 어떤 형태의 정치공동체가 발전할지를 보여주는 일차적 실험장이 될 것이다. 한반도 통일이 현재의 국민국가체제가 영토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개별국가주의가 강화될 수도 있고, 현존하는 권력단위 안팎의 변혁을 통해 새로운 관계와 연대가 확산되면서 새로운 형식의 정치공동체가 등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한반도 통일을 계기로 주변국가들의 긴장과 국가주의적 대응이 강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지역적 연대와 평화체제로의 이행이 강화될 수도 있다. 분단이 그랬듯이 통일도 동아시아지역 전체의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은 후자의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후자의 방향이 아니라면 평화로운 통일 자체가 가능할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획일적 국민국가론에 입각한 통일국가가 이루어진다면 반세기 동안 이질화된 남북한의 수많은 차이들에 대한 억압과 무시가 강요될 것임은 어느정도 짐작 가능한데, 이는 점점 다원화하고 복합화하는 현실과의 사이에 심각한 갈등과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 틀림없다. 밖으로도 한반도의 통일이 강력한 국가주의로 귀결되는 것이 환영받을 리 없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새로운 긴장과 대립의 소인이 될 수도 있다.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할 수 있고, 다양한 연대가 가능하며, 보편적 인간성에 근거한 자연스런 정체성과 결속이 허용되는, 유연한 경계와 분산된 권력구조, 그리고 다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결합의 망을 통해서야 비로소 통일은 평화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이런 구조는 단순히 남북한 지역정부를 유지하면서 상위의 단일국가를 이루자는 1국가 2체제론 내지 연방제안과는 다르다. 남북한의 복합적 통일의 실현은 한반도 내부에서는 물론이고 동아시아지역 내에서 복합적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한편 한국사회의 민주화 역시 일차적으로는 내부적 과제이자 결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지역 내의 변화를 가능케 하는 주요한 실천이기도 하다. 여기서 민주화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에 국한되지 않고 성원들의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고 자율적 토론과 참여가 실현되는 과정을 의미하는바, 그 공간은 점점 더 한반도의 남쪽을 넘어설 것이다. 자본과 시장에 대한 국가의 규제력이 점점 약화되듯, 기본적인 인권이나 다양한 활동영역들을 국가 단위로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점점 축소된다. 민주화의 진전은 점차 그린피스나 엠네스티의 논의를 수용하거나 함께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거대한 중국과 경제대국 일본 사이의 점증하는 긴장 속에서 상호신뢰와 유대를 증진시킬 민주적·보편적 이념과 운동을 이루어냄으로써 한국은 지역평화를 가능케 하는 균형자·중간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국가권력 견제라는 정치적 차원을 넘어 사회구성원의 삶에서 다양성과 민주적 원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과제를 생각하면서 특별히 한국인의 민족정체성이 갖는 함의에 주목하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민족정체성은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자부심의 원천이고 통일의 강력한 자원이자 사회통합의 원리이다. 또한 그것은 민주주의의 실현에도 적지 않은 힘으로 작용하였고 유달리 평등주의적 태도를 강화하는 문화적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강력한 민족정체성은 언제나 타민족과의 구별의식을 강화시키며 종종 보편주의적 연대를 가로막는 역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주체들의 정체성을 억압하는 역기능이 지적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는 배타적이라거나 자민족중심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경우조차 있는 형편이다.20

과연 세계화의 상황에서 미래의 정치공동체를 향해 실천해나가는 데 민족정체성은 어떤 함의를 지닐까. 오랜 역사적 소산으로서의 민족정체성은 손쉽게 없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오히려 강화될 수도 있는 것이어서, 일부 논자들이 주장하듯 가볍게 취급할 대상이 아니다. 한국의 민족정체성은 혈통을 중심으로 언어·문화·역사 등을 중시하는 에스니적인 것으로서, 정치적 의미가 강했던 프랑스적 나씨옹(nation)과는 다르다.21 이 점이 종종 한국의 민족정체성을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되지만,  역으로 이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오히려 분단된 정치공동체의 영향하에 있는 국민적 정체성과 구별되는 민족정체성의 성격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한국인은 이미 다국적 공동체라 할 만큼 다양한 범주들을 포함하고 있는 이질적인 총체이다. 중국의 조선족, 일본의 조선족, 러시아의 고려인, 미국의 한인들, 그리고 남북한 주민들을 한데 묶어 사고할 때의 ‘한민족’정체성은 그 자체가 에스니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매우 탈국가주의적이고 분권적이며 세계적이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을 수용하는 범주이며 이질적임에도 불구하고 동포로서 사고하는 결합의 논리이다.

북한주민의 어려움에 대한 동포의식의 발로가 우리 내부의 타자들에 대한 윤리적 책임의식을 강화시키며, 재일조선인의 민족차별에 분노함으로써 국내의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성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 북한 어린이의 고통에 대한 민족적 공감이 아프리카 어린이의 빈곤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할 수는 없는가. 내부비판이 존재하지 않는 북한정권에 우호적 비판자로서의 재일조총련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한반도 전체와 해외거주 한인공동체 사이에 전지구적 복합성을 감당할 새로운 의사소통의 구조가 발달할 수 없을까. 이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동시에 이것이 자연스럽게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22 한국인의 민족정체성 자체가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지구 전역에 흩어진(diaspora) 한인의 존재양식을 고려할 때 비역사적인 일반화일 수 있다. 문제는 민족정체성을 이 열린 가능성으로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실천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탈북자 및 재외동포에 대한 최근 우리 사회의 혼선에서 깨닫는 바가 적지 않다. 탈북자의 경우 그들의 정치적 지위는 대한민국 헌법상 국민이지만 국제법상 외국인에 준하는 존재이고 국가보안법상 자유로이 접촉할 수 없는 지역의 주민이기도 하다.23 북한주민의 법적 지위가 애매함은 실제 한국민족이 처해 있는 특수하고도 다중적인 실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또 1998년 말 의결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은 한해 전 제정된 ‘재외동포재단법’의 규정과 달리 중국·일본·러시아 거주 한인들을 지원대상에서 제외했고 이로 인해 민족차별법이라는 강력한 항의를 초래했다. 실제로 그런 비난을 받을 측면이 없지 않지만, 동시에 혈통주의적으로 정의된 민족범주를 국내법적인 적용대상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는 정부당국의 입장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일련의 혼선은 한국의 민족구성원이 이제 단일한 정치경제적 범주로 묶일 수 없는 매우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나아가 이 문제는 정치공동체에의 귀속과 문화적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소수집단에 대하여 어떤 사회적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에 관한 복합적이고 국제적인 대응을 필요로 하는 과제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가의 소수인종정책과 맞물려 있으며, 점차 늘어나는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책임성과도 연결된다. 이 점에서도 남북한 주민을 포함한 전세계적 한인들의 공동체적 사고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인권의 실현을 향한 공동의 연대를 요청하는 것으로서, 복합적 정치공동체 형식으로 한반도의 통일과 지역내 평화질서를 열어가는 주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6. 결론을 대신하여

 

디지털혁명과 세계화의 진전은 국민국가 형태와는 다른 복합적 정치공동체의 필요성을 증대시킬 것이 분명하지만, 국민국가는 당분간 강하게 존속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동아시아의 경우, 가까운 미래에 국민국가와 근본적으로 상이한 새로운 공동체적 결합형태가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아마도 로즈노가 말한 바대로 두 개의 상이한 층위, 즉 외교나 국방과 같은 국가중심적(state-centric) 세계와 시민층의 자발적이고도 다양한 네트워크로 구성되는 다중심적(multi-centric) 세계가 상당기간 공존할 것으로 생각된다.24 다만 후자의 영역이 점점 더 강해질 것은 분명하다. 이런 변화를 국가주의적 대응만으로 감당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탈국가주의적 시민운동이 전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양자를 함께 아우르면서, 자발적이고도 다양한 국가적 연대가 발달하는 가운데, 그와 더불어 작동하는 시민적 연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이야말로 앞으로의 실천과제이다.

우리로서는 특히 남북한 문제의 해결을 통해 이 과제에 다가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실천의 궁극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재인식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국가권력에 기대는 의존적 사고나 공동체를 의식하지 않는 개인주의적 사고 모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근현대사의 질곡을 넘어오는 동안 우리 사회의 성원들에게는 국가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이기적 무책임성이 공존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국민국가를 절대시하지 않으면서, 그 권력을 민주화하고 인간화하는 가운데 시민적 책임의식과 자발적 실천영역을 확장시켜나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민족정체성이 국가중심적 사고로서가 아니라 복합적인 현실 인식과 대응을 가능케 하는 소중한 공동의 자산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도 절실하다. 이런 복합적 대응을 모색하는 작업은 국가주의의 영향 아래 성장한 기성세대와 새로운 다양성을 자양분으로 자라난 신진세대 간의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고, 사회과학적 사고와 인문학적 사고, 현실주의적 판단과 역사를 읽는 지혜 간의 새로운 종합을 모색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과 다문화적 정체성 간에 다양한 대화와 연대의 방식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과제들을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 주변을 보면 답답함이 커지지만, 오히려 이 답답함을 풀어나가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음에 감사하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키워야 할 것이다.

 

 

  1. 경제적 세계화를 강조하면서 국민국가적 한계를 지적하는 미래학적 논의들이 주를 이루지만, 이들 이외에 인문학 분야에서도 점차 국민국가의 한계를 지적하는 글들이 나오고 있다. 정진영, 「세계화와 국민국가의 장래」, 『경제와사회』 1994년 가을호; 백영서, 「20세기형 동아시아 문명과 국민국가를 넘어서」, 『창작과비평』 1999년 겨울호; 코모리 요우이찌·타까하시 테쯔야 엮음, 이규수 옮김, 『국가주의를 넘어서』, 삼인 1999 등 참조.
  2. 싸이드는 “문화는 언제나 적극적으로 국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하면서 “우리는 아직도 개인이 국가에 의해 정의되는, 그래서 단절되지 않은 전통에 의해 권위를 부여받는, 그러한 관념을 물려받은 후손들이다”라고 말한다. E. 싸이드, 김성곤·장정호 옮김, 『문화와 제국주의』, 창 1995, 40면.
  3. 예컨대 I. 월러스틴 외, 이수훈 옮김, 『사회과학의 개방』, 당대 1996; I. Wallerstein,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 Social Science for the Twenty-First Century,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9.
  4. 최근에 드러나는 제주도 4·3사건의 실상은 그동안의 공식적 해석과 주민의 경험 간에 상당한 간격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탈식민론자들이 주장하는 피지배층(sub-altern)의 역사도 바로 이런 차이에 주목하는 것이다. 서중석, 『조봉암과 1950년대(하): 피해대중과 학살의 정치학』, 역사비평사 1999; 예컨대 G.C. Bond & A. Gilliam, ed., Social Construction of the Past: Representation As Power, Routledge 1994, 1〜22면 참조.
  5. 여기서 국면(conjuncture)이란 말은 브로델의 개념을 원용한 것이다. 국면적 시간성이 반드시 지역적 공간성과 결합할 필연성은 없지만, 중간적 수준의 시공간적 범주의 구성을 통해 복합적 현실의 양면을 고찰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브로델, 「역사와 사회과학: 장기지속」, 신용하 편, 『사회사와 사회학』, 창작과비평사 1982 참조.
  6. 백영서는 ‘문명으로서의 아시아’ 및 ‘지역연대로서의 아시아’와 구별되는 발상으로 이를 제시했는데, 그 구별성 못지않게 ‘지적 실험’ 가운데 문명적인 것과 지역연대적인 것이 어떻게 위치지어져야 할지에 대해서도 좀더 논의될 필요가 있다. 백영서, 「중국에 ‘아시아’가 있는가?: 한국인의 시각」, 서남재단 심포지움 ‘두 세기의 갈림길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는다’, 1999.
  7. 이런 점에서 정치공동체는 영토적 공동체이기 이전에 특정한 성원들의 공동체이다. R. Brubaker, Citizenship and Nationhood in France and Germany, Harvard Univ. Press 1992, 21〜23면.
  8.  A. Giddens, The Nation-State and Violence,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7, 88〜103면.
  9. 에스니란 민족을 구성하는 중요한 역사적 선행형태를 가리키는 스미스(Anthony Smith)의 개념으로, 그는 집합적 이름, 공통의 신화, 공유된 역사, 독자적 문화, 영토와의 결합, 그리고 연대의식 등 6가지 특성을 들고 있다.  A. Smith, The Ethnic Origins of Nations, Basil Blackwell 1986, 2장 참조.
  10. 李鍾元, 「戰後米國の極東政策と韓國の脫植民地化」, 『近代日本と植民地』 8, 岩波書店 1993.
  11. 김동춘, 「20세기 한국에서의 ‘국민’」, 『창작과비평』 1999년 겨울호.
  12. 윤건차, 『일본: 그 국가, 민족, 국민』, 일월서각 1997, 144〜79면.
  13. J. Shinn, ed., Fires Across the Water, A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Book 1998은 매우 미국중심적인 시각이긴 하지만 동아시아지역 내의 환경·범죄·인권·노동 등의 현상들이 더이상 개별국가적 차원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14. A.B. Murphy, “The Sovereign State as Political-territorial Ideal,” T.J. Biersteker & C. Weber, ed., State Sovereignty as Social Contrac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109면.
  15.  유럽공동체가 개별국가들의 내부 변혁과 함께 유럽이라는 지리적 공간단위의 변화를 추진하는 것도 이 점을 잘 보여준다. J. Klausen & L.A. Tilly, ed., European Integration in a Social and Historical Perspective, L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1997, 3〜21면.
  16. 일부 논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복합국가’ 개념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살펴볼 수도 있을 텐데, 이를 위해서는 복합국가의 성격을 다양한 정치공동체의 틀 속에서 좀더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백영서, 앞의 글;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비평사 1998, 172〜208면.
  17. 최근 일본은 ‘일본의 프론티어는 일본 안에 있다’는 제목이 붙은 ‘21세기 일본의 구상’을 발표했으며, 중국 역시 전세계 화교권을 한데 묶는 ‘대중화권’을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과정에서 안팎을 구분하는 고정된 경계개념이 바뀌고 있는 모습의 일부라 하겠다.
  18. 김종엽, 『연대와 열광』, 창작과비평사 1998, 187〜96면.
  19. C. Johnson, “The Developmental State: Odyssey of a Concept,” M. Woo-Cumings, ed., The Developmental State, Cornell University Press 1999.
  20. 임지현, 「한국역사학계의 민족이해에 관한 비판적 검토」, 『역사비평』 1994년 가을호.
  21. 졸고 「근대한국의 타자인식과 민족정체성」, 박영은 외, 『한국사회사의 이론과 실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22. 실제 독일통일 과정에서 민족정체성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와 관련하여 코카(J. Kocka)는 “공동의 역사—실패와 재앙까지 포함하여—에 대한 진실된 관계와 민족적 자기의식은 상호의존적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위르겐 코카, 김학이 옮김, 『독일의 통일과 위기』, 아르케 1999, 26면.
  23. 제성호, 『남북한 특수관계의 법적 성격과 운영방안』, 민족통일연구원 1994.
  24. 로즈노는 후자의 세계가 초국적 차원의 ‘조직, 문제, 사건, 공동체, 그리고 지식’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J. Rosenau, Turbulence in World Politic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0; 김호기,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 나남 1999, 105〜106면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