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도상 鄭道相

1960년 경남 함양 출생. 1987년 단편 「십오방 이야기」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친구는 멀리 갔어도』, 장편 『그대여 다시 만날 때까지』 등이 있음. sknk@lycos.co.kr

 

 

 

봄 실상사

 

 

천왕문에서 바라본 천왕봉은 여전히 눈에 덮여 있다.

약수암으로 올라갈까, 바로 앞의 논둑에서 산책을 할까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석장승 앞을 지나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실상사로 오고 있는 게 보인다. 햇살에 하얀 옷이 눈부시다. 바람에 살랑살랑 나부끼는 옷자락이며 어깨 부근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로 보아 여자가 분명하다. 나는 괜히 여자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천왕문 쪽으로 다시 들어간다.

바퀴가 돈다.

가운데가 텅 빈 동그라미 두 개가 길 위에서 천천히 굴러가고 있다. 동그라미의 텅 빈 중심에 감춰진 바퀴살에 봄 햇살이 잘게 부서진다. 여자는 천천히 바퀴를 굴리며 실상사를 향해 오고 있다. 여자가 경쾌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마다 검은 머리가 출렁거린다. 여자는 재활용쓰레기 수거장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실상사로 들어간다. 여자의 자태는 봄물이 오르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나긋나긋하다. 나는 여자의 자태에 넋을 빼앗긴다. 여자는 연못가의 산수유 아래를 걷다가 슬쩍 뒤를 돌아본다. 찰나, 내 가슴이 서늘해진다.

‘운서(雲西).’

오랫동안 가슴 깊은 곳에 은밀히 침잠해 있던 그 이름. 온전히 잊힌 줄 알았던 이름이 슬쩍 돌아본 여자의 얼굴에서 매화처럼 생생하다. 나는 여자를 향해 두어 걸음 다가간다. 그러다 이내 걸음을 멈춘다. 스님들과 나의 관계를 잘 아는 운서가 실상사에 올 리가 없다. 세상에 비슷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발길을 돌려 실상사 앞 들판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논둑에는 보라색 제비꽃, 달래, 냉이, 씀바귀며 여린 쑥이 한창이다. 논둑에 쪼그리고 앉아 쑥을 캐 입속에 넣는다.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쑥맛이 혀끝을 기분좋게 자극한다.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햇살은 따사로웠다. 나는 논둑에 가만히 드러눕는다. 하늘을 바라보며 온몸의 힘을 빼고, 아무 생각도 없이 편안하고 평화롭게 쉬고 싶었다.

그제 오후, 나는 자신의 무능력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평화통일운동협의회에서 사무처장 직책을 갖고 있던 나는, 교통비에 불과한 간사 세 명의 활동비를 더이상 지급할 능력이 없는 현실 앞에서 한없이 절망했다. 더구나 조직부장인 재덕이는 첫아기의 출산까지 앞두고 있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끝내 돈얘기는 꺼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아내한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나도 지쳤어. 집에서 쉬고 싶어. 애들 숙제도 봐주면서 보통의 주부처럼 살고 싶다고!”

수화기를 타고 흐르는 아내의 절규 앞에서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수화기만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길 뿐이었다. 아내는 학원에서 언어영역을 가르치고 있다. 결혼하자마자 시작한 학원강사 일을 지금까지 줄기차게 하고 있다. 통일운동을 한답시고 생활비를 거의 한푼도 내놓지 못하는 남편 만나 고생만 직사하게 하고 있는 아내한테 나는 또 손을 벌렸던 것이다.

재덕이는 외교학과 출신인데다 동시통역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대기업에 취직할 능력이 충분한데도 통일운동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있는 성실한 후배였다. 재덕의 아내도 통일운동을 하다가 결혼한 뒤에는 학습지 선생으로 생활을 꾸리고 있었다. 아내의 출산을 앞둔 재덕은 궁핍한 생활에 대해 내게 입도 벙긋하지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성실하게 운동을 하면 할수록 생활은 곤궁해지는 것을……

“그럼 어떡하냐? 병원 갈 돈도 없다는데.”

아내한테 애원했다. 내가 붙잡고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내밖에 없었다. 아내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재덕은 빈손으로 아기를 맞이할 터였다. 재덕이나 그의 아내나 둘 다 냉골방의 짚더미 위에서 아이를 낳을지언정 친정이나 본가에 손을 벌릴 위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을 견디게 하는 것은 자존심이었다.

“그럼 어떡해? 애는 낳아야지. 좀 봐주라 응?”

“아유, 못 살아. 불러!”

나는 통장의 계좌번호를 더듬더듬 불렀다. 아내는 카드 세 개의 현금써비스를 모두 받아 내게 송금했다. 은행의 현금입출금기에서 그 돈을 찾는데 머리 꼭대기에서 열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돈을 찾아 재덕의 활동비라며 사무차장한테 넘겨주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어디로 갈까? 아내의 부탁대로라면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의 숙제를 봐줘야 했지만, 화가 나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플립을 열고 전화를 받으니, 연체대금을 갚으라는 카드사의 독촉이었다. 작년 추석에 간사들의 떡값을 마련하느라 현금써비스를 받고 그것도 모자라 카드깡까지 했는데 그 대금을 못 갚고 있었다. 국회의원인 이사장은 당시 돌김 한 세트를 선물이랍시고 보내왔다. 김을 받은 간사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데 또 울렸다. 받지 않고 그냥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은 마냥 울렸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그치는가 싶더니 또 울렸다. 그러기를 다섯 번이나 반복했다. 잠시 후에는 ‘딩동’ 하며 메씨지가 도착했다는 신호가 신경을 긁었다. 신경이 바짝바짝 곤두섰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꾸고 주머니에 넣었다. 넣자마자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참을 수가 없어진 나는 핸드폰을 아스팔트 위에다 내팽개쳐버렸다. 핸드폰은 박살이 났고 나는 미련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실상사로 내려왔다.

“이랴, 이랴! 워〜, 워〜! 어허, 어디로 가?!”

호된 고함소리에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려보니 산기슭에서 좀 떨어진 논에서 쟁기질을 하고 있는 농부가 보인다. 나는 천천히 걸어 그쪽으로 간다. 참새 한마리가 포르르 날아간다. 논둑에 쪼그리고 앉아 농부와 소를 구경한다. 그런데 소가 말을 듣지 않고 옆으로 새려고만 든다. 화가 난 농부가 회초리로 등짝을 후려친다. 그래도 소는 쟁기질할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자꾸 엉뚱한 곳으로만 내뺀다. 소의 생김을 보니 아직 황소가 아니었다. 엉덩이에 ‘초보운전’이라는 명패를 붙여야 어울릴 것 같다. 농부는 고삐를 놓고 담배를 꺼내 문다. 그 틈에 소는 논둑으로 달려가 쑥을 뜯는다. 농부는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그저 허허 웃고 만다.

“너도 참 징허다. 으찌 그리 뺑돌뺑돌 말을 안 들어? 지발 부탁잉게 요참엔 끝을 보자잉. 요거 한배미 가는 것이 고로콤 싫으냐?”

얼굴 전체에 구릿빛 대지(大地)의 그늘이 촘촘하게 새겨진 농부가 소를 향해 조곤조곤 타이른다. 소는 농부의 말이 듣기 싫은지 다른 논둑으로 가버린다. 농부의 너털웃음이 담배연기에 실려 허공으로 사라진다.

“일허기가 징글징글헌갑시. 나도 그타 이놈아〜 사는 게…… 사는 거시제.”

농부의 푸념이 가시가 되어 내 가슴을 찌른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나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다. 어디로 가나? 실상사로 돌아가 보광전에 앉아 있을까 하다가 논둑 옆의 도랑을 건너 산으로 올라간다. 산에는 소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 나도밤나무가 서로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낮은 곳에 있는 진달래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산에는 빈 벌통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다. 몇걸음 더 나아가니 칡넝쿨이 나도밤나무를 친친 감고 있다. 칡넝쿨에 온몸을 감긴 나도밤나무는 바삭하게 메말라 있다. 칡넝쿨을 잘라줄까 하다가 그만 돌아선다. 나도밤나무를 살리기 위해 칡넝쿨을 자를 자격이 내겐 없다. 칡넝쿨은 칡넝쿨의 본성대로 살았을 뿐이다. 그런데 몇걸음 옮기지 않아 고개 돌려 칡넝쿨에 휘감긴 나도밤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시 가슴이 서늘해진다. ‘사는 게…… 사는 거시제’라는 농부의 말이 ‘사[生]는 것은 사[死]는 것이다’로 바뀌어 명치끝을 아프게 찌른다.

나도밤나무의 메마른 가지를 바람이 살짝 건드리고 지나간다. ‘나도밤나무라, 나도밤나무……라’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산에서 도랑으로 내려온다. 가재라도 있을까 싶어 유심히 물속을 들여다보다가 화들짝 놀란다. 도랑의 물 표면에는 칡넝쿨에 친친 감긴 나도밤나무가 또렷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그때 산기슭에서 참개구리 한마리가 도랑 속으로 뛰어든다. 물결이 일고, 나도밤나무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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