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손홍규 孫洪奎
1975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사람의 신화』가 있음. munhac@empal.com
봉섭이 가라사대
우사가 무너지는 소리는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대낮이니 망정이지 한밤중이었다면 이 마을 노인네들은 전쟁이 터진 줄 알았을 거다. 점심 밥상머리에 앉아 있던 마을 사람들은 숟가락을 팽개치고 응삼이의 우사로 모여들었다. 눈은 어김없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다리를 다친 응삼이를 찾아냈으나 과연 자신들이 찾아낸 게 사람인지 혹은 사람을 닮은 소인지 잠시 헷갈려했다. 이게 시방 응삼이여, 응삼이가 키우던 소여? 종합병원으로 갈 건지 가축병원으로 갈 건지 언쟁을 벌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간당간당하더만 기어이 무너지고 말었네. 근디 응삼이는 뭐 헌다고 우사에 들어갔디야? 보상 노리고 그런 거 아녀? 설마 그러겄소? 두엄이나 내겄다고 들어갔겄지.
응삼이라는 사람이 있다.
‘전원일기’응삼이가 아니라 소싸움꾼 응삼이다. 응삼이는 본래 사람의 얼굴이었으나, 평생을 소와 더불어 살다보니 얼굴마저 소를 닮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응삼이와 더불어 사는 소들은 사람의 낯짝을 하고 있었다. 싸움소는 더욱 그러했다. 응삼이와 싸움소가 나란히 서 있노라면, 어느 게 사람이고 어느 게 소인지 아리송할 정도였다. 응삼이가 소싸움꾼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날린 적은 없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소싸움꾼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소싸움 축제가 연례행사로 자리잡자 심심풀이 삼아 출전해보고 싶어 자신들이 기르던 소를 끌고 온 거였다. 대개는 단번에 응삼이에게 퇴짜를 맞았다.
몇번이나 말해야 알겄넌가? 사람도 날 때부텀 씨름선수가 될 놈이 따로 있드끼 소들도 싸움소가 될 만헌 놈이 있고 아닌 놈이 있는 것이여. 일소, 고기소가 따로 있는디 싸움소라고 따로 없겄넌가? 정 대회에 나가고 잪으면 진주, 청도, 의령, 이런 소싸움대회 구경 가보소. 예선에서 떨어진 놈들을 더러 내놓는 임자들이 있은게 그런 놈을 구해가지고 오소. 글먼 그때는 내가 조련을 시켜드릴랑게.
이런 핀잔을 들은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 저녁 밥상머리에 앉아 낮에 들은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대체 자신에게 말한 게 응삼이였는지 혹은 그 옆에 있던 소였는지 헷갈려하게 마련이었다.
수십 평생 소잔등을 긁어준 응삼이의 손은 갈퀴나 다름없었고 손톱 하나가 오백원짜리 동전만했다. 두어 번 소발굽에 맞거나 쇠뿔에 받힌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자리가 양쪽 관자놀이 부근이었고, 그 자리에 두툼하게 죽은살이 오르고 물혹이 생겨 뿔이 돋은 것처럼 보였다. 머리칼마저 한차례 솎아낸 것마냥 건성드뭇하니 혹이 도드라져 보여 더욱 그러했다. 응삼이의 일과는 단조롭다. 싸움소들 산책이나 시키고 더러 녀석들끼리 싸움이나 붙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게 고작이었다. 아이엠에프 이후로는 소장수 노릇도 작파하였고 친분있는 이들의 거래에나 심심풀이 삼아 끼여드는 정도였다.
응삼이는 슬하에 일남이녀를 두었다. 첫째와 둘째도 사내였는데 병으로 잃고 셋째로 아들 하나를 건졌다. 그 아래 두 딸은 상고 졸업하고 전주와 광주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푿소마냥 비쩍 마른 사내를 각각 꿰차고 그곳에 눌러앉았으니 걱정될 게 없었으나, 하나 남은 아들 녀석이 말썽이었다.
내가 이름을 잘못 지어준 거여. 봉섭이라, 섭이야 섭섭이가 생각나서 거시기해두 돌림자라 어쩔 수 없지만, 봉자 들어가면 난중에 부모봉양은 잘허겄지 했넌디, 자식새끼헌테 뭘 바란 것부터가 죄받을 짓이었던개벼. 콧구멍에 해삼 달고 댕기던 시절에야 이리 될 줄 몰랐지만 생각헐수록 이름자부텀 잘못 지어준 게 아닌가 싶더랑게. 응삼이의 상투적인 하소연이었다.
응삼이는 마누라를 먼저 보낸 뒤 사나흘 문고리 걸고 두문불출한 적이 있다. 그때 응삼이의 귀에는‘내가 평생을 사람허고 살았소, 소허고 살았소?’라는 죽은 마누라의 마지막 말이 매달린 채 떨어지질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응삼이는 소를 닮은 눈으로 눈물을 찔끔 흘렸는데, 마누라는 알쏭달쏭한 웃음을 띤 채 북망산으로 떠나버렸다. 마누라의 그 마지막 표정이 잊혀지질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무치던 응삼이는 비로소 삶이 무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마누라는 참 허망하게 떠나갔다. 채 십년 안쪽의 일이다. 아이엠에픈지 뭔지로 날벼락 맞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비닐하우스 농사를 하던 이들은 껑충 뛰어오른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기껏 키운 채소를 얼려 죽이거나, 하우스 안에 불을 피웠다가 통째로 홀랑 태워버리고 빚더미 위에 올라앉기도 했다. 우시장에선 반이 뚝 부러진 시세 탓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주인의 손에 이끌려 헛되이 말뚝에 묶였다가 되돌아가는 소가 많아졌다. 소를 팔아달라며 응삼이를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으나 응삼이 역시 그 많은 소를 맡을 형편이 아니었다.
개장수들마저 동네에 들르지 않았다. 집집마다 개 서너 마리씩은 길렀는데, 사료값이 두배 가까이 오르자 그것마저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굶겨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사료를 대고 먹이긴 했다. 그러나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사람들은 에라 이놈의 똥개들, 사료값도 안 나오는 웬수들, 내가 먹고 말지! 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개를 잡았다. 마을에서는 개 패는 소리와 개 터럭 사르는 냄새가 그치지 않았다. 평생 먹고 남을 개고기를 그 한철에 다 먹어버렸다. 그래도 차마 제집 개를 먹을 순 없어, 처음에는 체면상이라도 다른 집과 개를 맞바꾸어 잡아먹기도 했다. 개 뒷다리 하나 양푼에 담아 마실을 나가는 건 흔한 일이었고 나중에는 누가 양푼만 들고 찾아와도 손사래를 쳤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뉘집 개냐를 따지기는커녕 차라리 저 잡놈의 개가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기를, 누군가 몰래 잡아다가 소리없이 해치워버리기를 바라게 되었다.
응삼이는 식성도 소를 닮아 원체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많은 개장국을 처치하는 건 마누라의 몫이었다. 좋은 약도 지나치면 해로운 법인데, 제아무리 칠십 노인마저 벌떡 일으켜세울 개고기라 해도 허구한 날 먹어대니 좋을 게 없는 모양이었다. 어느날 새벽 댓바람에 우시장에 나갔다 돌아온 응삼이는 얼굴이 노랗게 질린 채 부엌 바닥에 쓰러져 있는 마누라를 보았다. 급체려니 했는데, 한 이틀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마지막으로 정신을 차려, 서른다섯 해를 함께 살아왔으나 여전히 소와 살았는지 사람과 살았는지를 헷갈리게 하는 제 남편을 향해 당신이 정말 사람인지 소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을 하곤 끝이었다.
봉섭이 돌아왔다. 이 난데없는 귀향이 처음은 아니다. 열일곱에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상경하여 나이트, 카바레 등등에서 웨이터를 전전하다가 스물하나에 돌아왔다. 봉섭의 첫번째 귀향이었다. 방위병으로 예비군 통지서 돌리던 시절에는 좀 철이 드는가 싶더니 소집해제가 되자마자 외양간에 있던 소 아홉 마리를 아비 몰래 우시장에 끌고 가 팔아넘기고 서울로 도망가버렸다. 그때 나이가 스물셋이었다. 봉섭은 아비인 응삼이와는 딴판이었다. 응삼이가 해가 갈수록 소를 닮아 속눈썹이 길어지고 우멍한 눈이 더욱 동글동글해진 반면, 봉섭은 눈초리가 점점 가늘어지며 위로 뻗쳐올라가고 원래 있던 쌍꺼풀마저 풀려 외꺼풀 눈이 되었다. 누군가 위아래로 쭉 잡아당겨 늘린 것마냥 응삼이의 얼굴은 길어지면서 갸름해졌는데 봉섭이의 얼굴은 턱관절만 기형적으로 자란 듯이 각이 지고 넓어져 전체적으로 너부데데해졌다.
봉섭은 소 판 돈으로 부천 소사역 부근에 통닭집을 차렸다. 소사역이 개통되기만을 기다려 삼년 남짓 버텼는데 역 개통을 코앞에 두고 더는 견디지 못해 두 손 탈탈 털어버리고 고향에 내려왔다. 봉섭의 두번째 귀향이었다. 그즈음 응삼이는 집 앞 텃밭을 다져 콘크리트를 타설한 뒤 철골을 세우고 슬레이트 지붕을 이은 우사를 만들어 소를 먹이고 있었다. 한쪽 벽만 블록으로 쌓고 뒤쪽과 나머지 측면은 새마을천으로 둘러놓은 것이지만 이전의 외양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제법 규모가 있는 우사였다. 봉섭은 이 우사에서 소 일곱 마리를 훔쳐 우시장에 팔아넘겼고, 이번에는 고향을 떠나지 않고 시내에 삐삐다방을 차려 일년 남짓 사장 노릇을 했다. 그러다 아이엠에프로 세 내는 것마저 힘들어지자 보도방을 차려놓고 배달아가씨들을 그대로 불러와 매춘영업을 했는데 단속에 걸려 또다시 어디론가 도망갔다. 이러구러 봉섭의 사고 뒷수습을 하느라 응삼이는 있는 사람들에겐 호시절이었던 아이엠에프 때도 한몫 잡기는커녕 오히려 마누라만 잃고 만 거였다.
그즈음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 탓에 봉섭은 불심검문에 걸렸고 기소중지자임이 밝혀져 덜컥 잡혔는데 경제사범에 관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덕을 보아 벌금형으로 풀려났다. 그 뒤로도 한 오륙년 타지를 떠돌던 봉섭이 느닷없이 다시 폼 잡고 고향에 내려왔다. 그러니 이게 세번째 귀향인 셈이다. 사실 봉섭은 열흘 전에 이미 시내 모텔에 둥지를 틀고 궁리하다가 결국 제 신세 바꾸는 밑천은 아비의 소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고 고향 마을을 찾은 거였다.
고향집에 들어서던 봉섭은 흠칫 놀라 가슴이 오그라들 뻔했다. 마루 끝에 황소 한 마리가 걸터앉은 채 자신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고개를 흔들고 다시 보니 그건 황소가 아니라 응삼이였다. 봉섭은 제 딴에는 기특한 인사를 했다.
아들 왔어라. 죽지 않고 살아 기신 걸 본게 그놈의 명줄 참말로 질기요. 오래오래 사시겄소. 제에길, 이게 사람인지 손지.
이런 자식을 기특하달 아비는 없었다. 응삼이는 소발굽 같은 주먹으로 봉섭의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봉섭은 분을 이기지 못해, 아니 원래 계획한 대로 다음날 새벽 우사에서 소 다섯 마리를 끌고 나와 우시장에 갔지만, 사정을 아는 중개인들이 거래를 트지 않아 날이 밝도록 소 한 마리 팔지 못했다. 두 손을 비벼가며 새벽 내도록 발만 동동 구르던 봉섭은 소머리국밥집에서 얼큰하게 취해서는 제가 가져온 소들의 고삐를 다 풀어줬고, 거래를 마치고 돌아가는 트럭들 사이로 마음껏 뛰어다니게 한 뒤 손뼉을 치며 껄껄껄 웃어댔다. 다섯 마리 소가 박신거리는 소떼와 트럭 사이를 비집고 다니니 우시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가운데 한 마리가 싸움소와 맞닥뜨렸다.
단 한번 뿔과 뿔이 부딪쳤을 뿐인데 뒤로 주르륵 밀려난 봉섭의 소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도망갔다. 싸움소가 뒤쫓아가자 당황한 녀석은 방향을 바꾸려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