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종

김종은 金鍾銀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서울특별시』, 소설집 『신선한 생선 사나이』 『첫사랑』 등이 있음. youturn1@hanmail.net

 

 

부디 성공합시다

 

 

열여섯명이 모였다.

종이컵에 건네받은 커피는 지나치게 달았다. 고맙습니다, 하고 덥석 받은 것이었는데 한모금 만에 생각이 바뀌었다. 애초에 심정은 이랬다. 향이 좋은 커피를 한모금 들이켜면 지독한 냄새가 조금이나마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어디서 똥물이라도 퍼나르고 있는 것인지 정문에 도착했을 때부터 코를 찔렀던 악취가 자리를 옮겼음에도 여전한 까닭에서였다. 대체 이 형언하기 어려운 냄새의 정체는 뭘까. 실은 문제의 악취에 반응하는 사람이 나뿐인 것 같은 기묘한 외로움이 무엇보다 고역이었다. 다들 태연한데 혼자 코를 틀어막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커피나 한잔 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만 간절했던 참이었다. 그렇게 반가운 마음으로 들이켠 커피였건만 대뜸 머리부터 띵하니 고마울 이유가 없었다. 앞니에 설탕가루가 엉기는 느낌이어서 절로 인상이 써질 뿐이었다.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커피를 대접받아보면 단박에 알 수 있기 마련이다. 어떤 잔을 사용하는지 향은 어떤지 또 온도는 어떤지 무엇보다 원두와 시럽과 크림의 조화는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한데 이 커피는…… 종이컵에, 지독한 악취에, 미지근한 온도에, 원두의 품질은 고사하고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설탕가루뿐이다. 이건 뭐 안 봐도 비디오다. 어떤 곳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조화라는 것을 도무지 찾을 수 없을 곳임이 빤했다. 조화란 이를테면 룰인데. 어찌됐든 그것은 최악이라 여기기에 충분한 맛이었다. 문제의 조화롭지 않은 커피는 양도 많아 손가락만 살짝 움직여도 흘러넘쳤다. 홀짝이기조차 어려운 커피를 핥다 조심스럽게 건넨 물음에 돌아온 대답 역시 커피의 맛과 다르지 않았다.

“전부입니까?”

“전부입니다.”

“………”

“어떻게, 그렇게 됐네.”

말했지만 앞니에 엉긴 설탕덩어리 탓에 머리가 띵한 참이었다. 잔뜩 인상을 쓴 채로 애써 혓바닥을 굴려대고 있노라니 정말이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입은 달았고 마음은 썼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반갑게 덥석 받아놓은 터라 버릴 수도 없어 난감한 판인데 열여섯이 전부라니 기가 막히지 않겠나. 마음 같아서는 확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한약을 들이켜는 기분으로 단숨에 삼키기로 하고는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삶이란 게 본디 고통을 감수하는 시간의 연속인 법이래도 이런 것까지 삼켜야 하나 싶었다. 성공은 인내의 다른 말일 것이라 여기면서 이 사회가 연단에 선 자에게 원하는 도덕이란 이론과 실천의 균형일 것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물 한모금 없이 돌멩이를 넘기면 딱 이러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야, 커피 좋아하시나 봐.”

비죽비죽 튀어나온 턱수염을 소리나게 문지르면서 그는 그렇게 대꾸했다. 우리 김대리가 달달하게 잘 탄단다. 띵한 머리로 화사한 웃음을 머금은 수염난 사내의 눈과 마주한다는 것은 더없이 답답한 일이었다. 도무지 룰을 모르는 사람과는 실로 오랜만의 조우였다. 때때로 어떤 일들은 예상과 다르게 벌어진다지만 성공에는‘카오스’랄지‘버터플라이 이펙트 이론’을 적용할 수 없어야 옳았다. 한데 이건 어떻게. 시작부터 일이 꼬이면 마무리도 어설프게 되곤 했던 기억 때문에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초장부터 일은 그렇게 꼬이고 있었다.

그래, 진심으로 실망했다. 하지만 그는 어쩐지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다. 솔직히 죄송합니다만 정도는 붙여줄 줄 알았다. 한데 죄송합니다만 그렇게 됐어요,가 아니라 당당하게 그렇게 됐단다. 흔치 않은 경우였다. 소도시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하나같이 뻔뻔한 구석들이 있다. 물론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축구도 할 수 있고 야구도 할 수 있는 숫자였다. 신세기를 이끌어낸 지저스와 제자들, 까짓 마리아까지 합쳐줘도 열넷이다. 그렇게 진심으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숫자라고,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재차 둘러봐도 200명 정원 강당 안에 줄조차 맞추지 않은 채 띄엄띄엄 자리잡은 열여섯은 지나치게 초라할 뿐이었다. 누군가 먹다 버린 삶은 옥수숫대에 가까스로 매달린 옥수수 알갱이를 본 기분이랄까. 흙마저 군데군데 붙어버린 느낌이어서 그야말로 처참할 따름이었다. 한데 저걸 다 삼켜야 한단 말이다. 연단에 선 자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청중을 삼킬 필요가 있었다.

누군가 에취, 하고 재채기를 했을 때 에취…… 에취…… 에취…… 에취…… 하고 메아리가 퍼져나갔다. 메아리라니. 절망의 끝에 서게 되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소리가 처연하게 가슴을 파고들고 있었다.

“어떻게, 더 드려?”

“됐습니다. 닥터가 카페인하고 상극이랍니다.”

“누가?”

“의사가요. 그런데…… 좀 기다려볼까요?”

“전부라니까.”

다시금 전부라니까…… 전부라니까…… 전부라니까…… 전부라니까…… 하고 메아리가 울렸다. 고교시절의 동시개봉관이 떠오르기에 충분한 고전적 에코였다. 영화가 시작되려는 찰나면 어김없이 스크린에 등장했던 괴이한 뿔테안경의 여자를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마주 앉은 사람 온몸의 힘을 쪽 빼버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사거리 ○○안경원…… 안경원…… 안경원…… 안경원…… 전반적으로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교장은 조회시간에 짝다리를 짚는 녀석까지 골라내 머리를 박게 했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너무한다 싶어 그를 악의 화신쯤으로 여겼다. 강당 교장 사진의 눈을 파버린 것이 나였다.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때는 연단 위의 시선이라는 것을, 그 고독함을 알지 못한 나이였다. 얼씨구. 뒤에서 두번째가 벌써부터 졸고 있다는 뜻이다. 돌려놓은 의자에 다리까지 올려놓은 채였다. 벗어놓은 신발에서 고린내가 풍기는 듯해 역시나 절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혹시 지독한 냄새의 근원이 저곳이진 않을까. 거기 아저씨, 이리 나와서 머리 박으세요, 하고 싶을 만큼. 순간 눌러두었던 짜증이 벌컥 났다. 하지만 다시금 참기로 했다. 아무래도 인내는 쎅스와 닮아 있는 것 같다.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면 쉽다. 것뿐인가, 자꾸 참다 보면 무덤덤해지기까지 한다. 강조하지만 연단에 선 자라면 누구나 삼켜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참았다.

“의외로 다들 성공에 관심이 없나 봅니다.”

불평처럼 내뱉은 혼잣말이었는데 귀는 또 밝은지 사회를 맡기로 했다는 그가 눈을 크게 치켜뜬 채로 우악스럽게 되물었다. 이제 보니 그의 수염에는 괜히 주눅이 들 만큼 제법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뭐요?”

“이게…… 강당이 굉장히 큽니다.”

“가끔 족구를 하니까.”

“족구가…… 좋죠.”

“어떻게, 선생님도 뽈 좀 차시나?”

“구기종목에 약한 편입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를 따라가고 있노라면 대화는 그렇듯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묘한 방향으로만 흘렀다. 아, 이 대답은 아닌데 싶었으나 이미 때가 늦은 것이었다. 끝을 조금 힘주어 말했더니 약한 편입니다…… 약한 편입니다…… 약한 편입니다…… 약한 편입니다…… 하고 예의 메아리가 돌아왔을 뿐이었다. 온몸에 힘이 쪽 빠져버리더니 그에 맞춰 조금씩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한 것이 전부였다. 뭐랄까 닿을 수 없이 까마득한 봉우리를 산소통 없이 등반하는 기분이었다. 별안간 눈이 부시고 호흡이 가빠졌으며 알 수 없는 메아리가 귓가를 맴도는.

그랬다. 정상에 오르는 길이란 누가 뭐래도 고난의 길임이 분명했다.

성공하는 사람의 화법이라는 것이 있다.‘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 이론’8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기도 한데 포인트는 상대방의 말에 적절히 화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그것을‘대화의 하모니’라 했는데 타인과 대화할 때 지나치게 자신의 목표만 내세우다 보면 대부분 화자의 말투가 공격적이 된다는 것으로, 따라서 적절히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가령 누군가 저는 홍합을 먹으면 이상하게 정수리가 가려워요,라고 대화를 시작했다면 일반상식 따위 생각하지 말고 그를 기묘한 눈초리로 바라보지도 말고 똥 씹은 표정도 물론 짓지 말고, 설사 아닐지라도 한때 저도 그런 적이 있었죠,라고 되받아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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