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신경숙 申京淑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당선. 소설집 『강물이 될 때까지』 『풍금이 있던 자리』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장편소설 『외딴 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등이 있음.

 

 

 

부석사

국도에서

 

 

1

 

남자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가죽잠바 안에 회색 폴라티를 받쳐입고 잠바 바깥으로 폴라티와 같은 색상의 순모머플러를 둘렀다. 이발을 한 것일까. 머리가 유독 짧아 두 귀가 오롯이 눈에 띈다. 단정한 입매와 창백한 피부로 인해 남자는 언뜻 차가운 인상이다. 짙은 눈썹과 각이 없는 턱 탓인지도. 그녀는 남자의 쌍꺼풀 없이 가느스름한 오른쪽 눈밑에 깨알만하게 돋아 있는 점을 잠깐 주시했다. 눈물 떨어지는 자리에 가만히 돋아 있는 점 때문에 남자의 차가운 인상이 지워진다. 청바지 밑에 갈색 랜드로바끈. 청바지가 딸려 올라간 탓인지 양말을 신었는데도 바지 안에 입은 크림색 내의가 살짝 엿보인다. 그걸 보고 나서야 그녀는 약속장소에 늦게 도착한 긴장이 얼마간 누그러진다. 까페 바깥 찬바람 속에 서 있던 남자의 얼굴도 처음보다는 풀려 있다. 남자가 끼고 있던 장갑을 한짝 한짝 차례로 벗어 탁자 한쪽에 놓는다. 두툼한 검은 가죽장갑이다.

장갑이 없는 자신의 맨손바닥을 비비는 그녀의 뇌리에 P가 스쳐지나간다. 언제나 P에 대한 추억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지.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면 머플러와 새 장갑을 챙겨주곤 했던 P.

공중전화 부스나 찻집에 놓고 오면 다시 새걸로 마련해주곤 했던 P였다. 그녀와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약속시간 이십분을 못 넘기고 돌아가버렸을 때도 그녀는 P를 생각했다. P는 단 한번도 그러지 않았으므로. 신호등 앞에서 길을 건널 때면 P는 눈은 찻길 쪽을 보면서 한쪽 팔을 뻗어 도로를 가로막곤 했다. 그녀를 보호하려는 자연스런 자세였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땐 반찬이 담긴 그릇들을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고, 밤길이면 그녀 혼자 보내는 법 없이 집앞까지 바래다주었다. 그게 여의치 않을 땐 집에 무사히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그녀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그의 몸은 벌써 약국을 향해 돌아서 있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인받은 커플이었다. 어쩌다 모두들 함께 어울려 캠핑이라도 갈라치면 친구들은 P와 그녀를 한 텐트에 몰아넣지 못해 안달이었다. 어느날 그가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할 줄은 친구들은 물론이고 그녀로서도 생각지 못했다. 수영복을 사러 갈 때조차 동행하는 P였기에 그녀는 다가올 미래 어디에나 P가 동행할 줄 알았다.

차 안에 있을 때보다 까페 안이 더 썰렁하다. 그녀는 까페 안을 둘러본다. 손님이라곤 그녀와 남자 둘뿐이다. 그녀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사람 만날 일이 있을 때면 곧잘 약속장소로 이용하는 까페다. 인사동 입구라서 찾기도 쉽고 혹시 상대방이 늦으면 진열되어 있는 녹찻잔이나 접시, 화병이나 머그잔 등을 살펴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을 때면 그녀는 상대방에게 말하곤 했다. 혹시 제가 늦으면요, 거기 진열된 그릇들 구경하고 계세요. 남자에게도 그 말을 했던 것 같다. 늦으면 진열장의 그릇들을 구경하라는 말까지 했으면서 일월 일일이라 까페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까페에 진열된 그릇들의 뒷면엔 그릇을 만든 사람의 싸인이 있다. 어느날부터인가 그녀는 자신이 같은 사람의 싸인이 되어 있는 그릇을 자신도 모르게 고르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연한 밤색 커피잔을 집어 뒤를 봤을 때, 가운데에 옅은 노랑 빗금이 그어져 있는 접시를 들어 뒤를 봤을 때, 꼭지에 은색 테가 둘러진 것말고는 장식이 일절 없는 물병을 들어 뒤를 봤을 때, 한결같이 날아갈 듯한 글씨로 ‘명’이라고 씌어 있었다. 혹시 이 진열장의 모든 그릇들이 다 ‘명’이라고 싸인되어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실제로 그런 의심이 들어 그녀는 아무거나 집어 뒷면을 살펴본 적도 있었다. 각기 다 다른 싸인이었다. 이 그릇이 괜찮다, 싶은 것을 골라 뒤를 보면 거기엔 어김없이 ‘명’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는 이 까페의 그릇들을 친구들 생일선물로 사가기도 하고, 깨지지 않게 포장을  해달라고 해서 집들이하는 집에도 들고 가곤 했다. ‘명’이라고 싸인된 아무 장식 없는 물병은 지금 그녀 방 탁자에 놓여 있다.

긴 머리의 종업원은 썰렁한 까페에 스팀을 넣느라, 구석에 세워진 난로에 불을 지피느라, 지난해의 마지막 밤이었던 어젯밤에 뒷정리를 다 못한 주방의 찻잔들을 씻느라 손길이 바쁘다. 감기가 들었는지 그릇을 닦다가 고무장갑 낀 손을 쳐들며 기침을 하기도 한다. 따뜻한 거라도 한잔 마셔볼까 하고 그녀가 종업원을 불렀으나, 종업원은 잠깐만요, 하고선 이번엔 탁자와 의자 사이를 비질하다가는 생각난 듯이 주방으로 들어가 앞치마를 꺼내 두르더니 다시 비질에 여념이 없다.

“너무 이른 시간인가봐요.”

남자는 대답 없이 그녀를 넘어다본다. 남자의 응시에 그녀는 갑자기 멋쩍어져 얼결에 앞에 놓인 남자의 장갑을 집어 만지작거리다 그것마저 어색해 다시 내려놓으며 썰렁하네요, 중얼거린다.

“차도 안 팔 모양인데 그냥 갈까요? 거기 꽤 멀걸요. 오늘 갔다오려면 빠듯할 텐데.”

그와 그녀가 그냥 일어서자 종업원이 붉어진 코를 감싸며 아휴, 미안해요, 새해 복……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다시 기침을 하느라 주저앉는다.

까페 바로 옆 크라운베이커리 맞은편에 주차해놓은 차의 운전석에 그녀가 먼저 올라탔다. 남자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려다가 뒷좌석의 개 기척에 놀라며 뒤를 돌아다본다. 그녀는 개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 속에서 개를 다 데려왔느냐는 책망을 느끼고는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안해도 될 말을 주워섬긴다.

사람들은 그녀의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의 개라고도 할 수 없다. 그녀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맞은편은 북한산이다. 북한산은 여기저기에 계곡과 절을 숨기고 있다. 청록색 지붕의 양로원도. 그녀가 자주 올라가는 산길에 다다르려면 그 양로원을 지나야 했다. 양로원 옆길에 쌓여 있는 돌울타리는 누구라도 한번 넘어가보고 싶게 눈길을 끌었다. 그녀도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언젠가 한번은, 하면서 벼르고 있었다. 양로원의 정문은 따로 있어서 산길 쪽은 양로원의 옆구리인 셈이다. 말하자면 문을 달아놓은 게 아니라 잘사는 집 정원마냥 넓적한 돌들을 쌓아올려 울을 쳐놓은 것이다. 산길에서 보면 그 돌울타리만 건너가면 곧 등나무 밑에 다다를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진다. 울 너머 덩굴진 등나무 밑엔 언제나 한가롭게 나무의자가 놓여 있었다. 빈 의자를 보면 누구나 앉아보고 싶게 마련이다. 등나무에 등꽃이 피기 시작할 때부터 그녀는 등꽃이 지기 전에 한번은 그 돌울타리를 넘어가 등꽃 아래 빈 의자에 앉아보리라고 생각했다. 오월이었던가, 유월이었던가. 마음에 일렁이는 충동을 억누를 수 없던 쾌청한 아침에 그녀는 벼르던 대로 탁탁탁, 가볍게 돌울타리를 타고 넘어 건너편으로 가보았다. 산길 쪽에서 볼 때는 돌울타리에 올라서기만 하면 바로 등나무와 마주칠 것 같았는데 등나무 아래로 가려면 갑자기 낮아지는 평평한 길을 얼마간 걸어야 했다. 길은 평평했으나 바닥에 자갈이 깔려 있어 거길 통과하자니 발밑에서 자갈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새벽의 양로원은 고적했다. 자갈길을 통과해 도착한 등나무가 있는 곳은 지대가 높은 편이어서 그녀가 원했던 등꽃 밑 의자에 앉아 있어도 양로원의 청록색 지붕까지 다 내려다보였다. 지나치며 봤을 때보다 양로원은 넓었다. 칠십여평은 될 듯한 화단을 중앙으로 해서 양옆으로 이층짜리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다. 화단엔 온갖 기화요초들이 만발해 있었다. 양로원 안에 고여 있는 적막과 대치하듯 화려한 자태를 요요하게 드러내고 있는 자색 작약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갈을 밟을 적마다 누가 그 소리를 들을세라 조심했던 그녀는 등나무 밑에 앉아본 것으로 만족하질 못하고 사방을 살피며 양로원 가까이로 내려가보았다. 수돗가를 지나 빨랫줄 밑을 지나 그녀는 화단의 요요한 작약 앞에 서보았다. 낮은 키의 작약은 새벽빛 속에서 이슬을 머금고는 영원히 이울 날은 없다는 듯 한껏 생기로웠다. 얼마나 찬란한지 햇살도 없는데 눈이 시었다. 그 황홀한 자색 작약 밑에 개 한마리가 기진한 채 쓰러져 있었다. 그녀가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보자 개는 슬몃 눈을 떴다간 곧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그대로 뒀다간 작약 밑에서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런, 그녀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사람의 기척이 있으면 여기 개가 이러고 있다고 일러주려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양로원 안은 괴괴했다. 날아가는 새 한마리조차 없었다. 마냥 그러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쯧쯧,거리며 그녀는 다시 등나무 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넘어갈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자갈이 깔려 있는 길을 통과하여 돌울타리를 넘어왔다.

터벅터벅 다시 산길 쪽으로 길을 잡고 걷다가 뭔가 이상해서 뒤돌아보니 작약 밑에 기진해 있던 개가 절름거리며 그녀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귀를 아래로 축 내려뜨리고 눈물인지 진물인지를 흘리며 따라오는 개의 몰골은 처량했다. 돌아가! 돌아가! 해도 개는 졸졸 그녀를 따라왔다. 그녀는 산으로 오르던 길을 포기하고 방향을 틀어 산 아래로 내려왔다. 개도 그녀처럼 방향을 틀며 따라왔다. 그녀는 더이상 개에게 가라고 하지 않았다. 모른 척하며 앞서 걷다가 몇번 돌아봤을 뿐이다. 개는 그렇게 그녀 뒤를 따라 양로원을 빠져나왔다. 산길을 내려오고 그녀 뒤를 따라 신호등을 건너고 오피스텔의 엘리베이터를 타고선 그녀와 함께 6층에서 내렸다. 그녀는 그때서야 개를 들어올려 안았다. 절름거리며 걷는 꼴을 더이상 보느니 안는 게 마음이 편했다. 작약 밑에서 밤을 샜는지 개의 털은 온통 축축했다. 어떻게 될 테지, 생각하며 그녀는 개를 포옥 싸안았다. 더럽고 축축해도 체온은 따뜻했다. 개를 기르고 있는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하니 우선 목욕을 시키고 따뜻한 우유를 좀 먹여서 병원에 데리고 가보라고 했다. 개를 목욕시킬 때 사람이 쓰는 비누를 쓰면 안된다는 주의를 받았다. 개용품을 취급하는 곳에 가서 개가 쓰는 샴푸를 사다가 사용하지 않으면 피부염이 생긴다는. 그렇게 그녀의 개가 된 개는 다른 이들이 기르는 애완견들처럼 귀염성도 예쁜 데도 없었다. 눈물샘에 이상이 있어 언제나 눈가가 축축이 젖어 있는데다 경계심이 지독해 사람을 만나면 꼬리를 치는 게 아니라 일단은 카르릉거리고 보는 거였다. 게다가 다른 개를 만나면 바짝 겁을 집어먹곤 했다. 개이면서 도대체 다른 개들 곁엔 가려 들질 않았다. 동물병원의 의사는 아마도 다른 개에게 크게 물려본 경험이 있는 듯하다고 했다. 그때의 공포가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는 것 같다고.

“배낭 속에 얌전히 있을 거예요.”

남자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사과하듯이 말한다.

“요새 내가 바깥으로 돌았더니 개가 완전히 정서불안이에요. 잠을 안 자고 끙끙거려요. 혼자 나오는데 울고불고하는 통에…… 두고 나왔다간 아플 것 같아서요.”

그는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는다.

개는 배낭 속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배낭을 빠져나온 개는 의자 밑으로 내려와 두 개의 앞좌석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려고 한다. 남자가 개의 머리를 쓰다듬자, 개는 붉은 혀를 내밀어 남자의 손등을 핥는다.

“안돼. 들어가 있어. 어서!”

그녀가 호통을 치자 개는 다시 뒷자리로 돌아가 웅크리고 엎드린다.

“평소엔 안 그러는데 이상하네요. 미안해요.”

“이름은 지었어요?”

“이름 없어요.”

“그래도 불러야 될 때가 있을 텐데?”

“개야! 그러구 불러요.”

“개야!”

“네.”

남자가 웃는다.

바람이 많이 불어, 까페에서 차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라고 해봐야 빤한데도 옆자리에 앉은 남자에게서 찬바람 냄새가 끼쳐온다. 그녀는 시동을 걸고 룸미러를 맞추며 슬쩍 그를 훔쳐봤다. 스스럼없이 개를 만져줘서 그런지 남자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길쭉한 얼굴에 눈과 코가 알맞게 자리하고 있다. 그녀는 혼자 웃는다. 까페 안에서는 남자가 차가운 인상이더니 이젠 분명한 인중으로 인해 과묵해 보일 뿐이라고 생각되어서. 까페가 문을 열지 않아 이십분쯤 바깥에 서 있었다는 그의 귀는 아직도 빨갛게 상기되어 있다. 불현듯 손으로 감싸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 객쩍어진 그녀는 남자의 청바지에 시선을 준다. 바지끝이 닳은 오래된 청바지다. 가끔 저 바지를 입은 남자를 산길에서 마주치곤 했다.

“거기 가는 길은 알아요?”

“……몰라요. 처음 가는 거거든요.”

“나도 모르는데.”

“뒷자리에 지도 있어요. 지도 보고 찾아가죠.”

지도를 보지 않고도 어디든 찾아다녔다. 길을 잘못 들거나 한번에 찾질 못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생겨 시간이 걸리긴 해도 아예 찾지 못한 적은 없었다. 불면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끌고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과속을 하고 싶으면 고속도로로 나갔고, 천천히 달리고 싶으면 파주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면 그녀는 차 안에서 실컷 소리를 질렀다. P를 향해서인지 세상을 향해서인지 그녀 자신도 정확히 모른 채. 어느날은 욕을 퍼붓는 날도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육두문자가 그렇게 많다는 게 그녀 자신도 놀랄 지경이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퍼부으며 평택쯤 다다르면 그만 허탈해졌다. 뭔가에 격렬하게 치받쳐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껍데기만 남은 느낌으로 밤의 휴게소에 정차해 있으면 입은 바짝바짝 타는데 메말랐던 눈가는 이내 축축해지곤 했다.

그녀는 인사동을 거쳐 종로3가 쪽으로 길을 잡아 중앙극장을 지나 남산1호터널을 빠져나왔다. 뒷자리에서 지도를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던 남자는 일단은 고속도로를 타 원주 쪽으로 가다가 충주로 빠져나가야 될 것 같다고 일러준다. 아닌가, 제천 쪽으로 가야 하나, 하다가는 그는 차창 바깥을 내다보며 눈이나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린다. 일기예보로는 저녁 무렵에 전국적으로 큰 눈이 내린다고 했다고.

서울을 떠날 사람들은 어제 다 떠난 모양이다. 자동차가 한남대교에 이를 때까지 거리는 막힘없이 뚫려 있다.

“어젯밤에 잠이 안 와서 집에 있는 자료 중에 이것저것 찾아보긴 했는데…… 내가 찾은 자료라는 게 말이죠.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에 있다. 소수서원 앞에 오른쪽 부석사로 난 931번 지방도로를 따라 10.4킬로미터 가면 부석면 소재지인 소천리 사거리가 나온다. 소천리 사거리에서 앞으로 계속 난 935번 지방도로로 3.2킬로미터 가면 부석사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부석사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이런 식이라서. 도움이 안되죠?”

책을 읽듯이 또박또박 말하는 남자를 그녀는 잠깐 쳐다본다. 931번 지방도로, 10.4킬로키터, 935번 지방도로, 3.2킬로미터…… 어떻게 숫자들을 저렇게 외우고 있는지.

“부석은 무량수전 뒤에 있다는군요. 정말로 돌이 떠 있는지…… 실과 바늘이 드나들 만큼 두 개의 부석 사이가 떠 있다는데.”

“가서 확인해보죠.”

“실하고 바늘 가져왔어요?”

말해놓고 남자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사과꽃이 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데…… 중얼거리면서.

부석사에 가는 길도 모르면서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던 건 나흘 전이다.

한달에 한 꼭지쯤 일거리가 있는 잡지사의 편집장이 바뀌어 인사도 할 겸 완성된 번역원고를 갖다주고 돌아오는 그녀를 오피스텔 관리인이 불러세웠다. 그녀는 관리실 한켠에 놓인 장미와 안개꽃이 섞여 있는 꽃바구니를 바라봤다. 뜻밖에 관리인은 그 꽃바구니를 집어 그녀에게 주었다. 이게 뭐냐고 묻자, 관리인은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그녀가 오면 전해주라고 했다고 했다. 어떤 사람요? 그녀가 묻자 점잖아 보이는 분…… 설명을 하려다가 꽃바구니를 가리키며 거기 카드가 있으니 누군지 써놨겠죠, 그랬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을 누른 다음 물끄러미 꽃바구니 속에 꽂혀 있는 흰색 카드봉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동차에 부착된 시계를 본다. 정오가 지나 있다.  

“어디쯤에서 점심을 먹어야 할 텐데요.”

“일단 서울을 빠져나간 뒤에.”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뒤론 차량이 조금씩 늘기 시작한다.

부석사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인지.

설마 했는데 꽃바구니와 생일카드를 보낸 사람은 P였다.

P는 그녀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썼다. 대학교수답게 P는 굵직한 만년필 글씨로 그녀가 만든 책은 늘 잘 보고 있다고도 써놓았다. 보고 싶다고도. 내가 만든 책?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가 고정적으로 기고하는 잡지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백육십 페이지짜리 종교잡지의 겨우 두 페이지를 차지하는 기고 글을 두고 내가 만든 책이라니. 그녀는 아직도 예전과 다름없는 P의 글씨체를 바라보았다. 꽃바구니에 꽂힌 생일카드를 보기 전까지 그녀는 오늘이 생일이라는 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으므로 아직까지 P가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데 어느 순간 코가 맹해지려고도 했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한가지 결정을 내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인 그녀에 비해 P는 판단이 서면 곧 실천에 옮기는 성향이었다. 두 사람이 무엇을 계획할 때마다 이 다른 성향이 늘 걸리적거리곤 했다. P와 알고 지내는 동안 그녀가 P와 헤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여러 번이었는데 그때마다 그녀의 이 성격이 걸림돌이었다. 그녀가 좀 싸늘해지기라도 할 양이면 P는 그녀를 찾아왔고, 집앞까지 찾아온 P를 보면 곧 마음이 수그러들곤 했다. P가 집앞으로 찾아오면 그전까지 그녀를 짓누르던 문제들이 아무 일도 아니었던 듯 사소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 시작하곤 했다.

생일카드 말미에 P는 일월 일일 오후 세시에 그녀의 오피스텔을 방문하겠다고 써놓았다. 그때 만나자고.

그녀는 P에게서 받은 생일카드를 삼십분쯤 들여다본 후에 감정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녀는 경비실을 통해 남자에게 인터폰을 넣었다. 일월 일일에 저랑 부석사에 가시겠어요? 통화가 되면 남자에게 할 말을 메모지에 적어놓고 두어 번 연습까지 한 후였다. 왜 그때 부석사가 떠올랐는지. 부석사의 당간지주 앞에서 무량수전까지 걸어보라고 했던 사람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절집이 대개 산속에 있기 마련인데 부석사는 산등성이에 있다고 했다. 개울을 건너 일주문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사과나무들이 펼쳐져 있다고. 문득 뒤돌아보면 능선 뒤의 능선 또 능선 뒤의 능선이 펼쳐져 그 의젓한 아름다움을 보고 오면 한 계절은 사람들 속에서 시달릴 힘이 생긴다고 했다. 남자와 통화가 되었을 때 그녀는 침착하게 메모지에 자신이 쓴 문구를 읽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남자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얼마 후에 남자는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니까 그렇게 하지요, 하면서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라고 덧붙였다. 남자와는 같은 오피스텔에 살고 있으므로 그녀는 남자와 주차장에서 만나 떠날 요량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오피스텔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오피스텔에서 좀 떨어진 곳이면 좋겠다고. 인사동에 있는 까페로 약속을 정하고 인터폰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못 긴장이 되었던 모양이다. 불을 켜고 세면장에 들어가 한동안 거울에 얼굴을 비춰봤다. 윤기 없는 얼굴, 메마른 머리카락, 벌써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는 목. 그녀는 찬물을 받아 시간을 들여 손을 씻었다.

세면장에서 나온 그녀는 꽃바구니 속에 꽂혀 있던 카드를 개수대 앞으로 가지고 갔다. 전기레인지를 가동해 붉어질 정도로 달군 다음에 생일카드를 갖다댔다. 카드에 곧 불이 붙었다. P가 쓴 글씨들이 검은 재로 변해 개수대에 툭툭 떨어졌다. 물을 틀어 개수대에 흩어진 검은 재를 하수구로 흘려보낸 뒤 꽃바구니를 들고 나가 복도 끝집 현관 앞에 내려놓고 왔다. 그때까지 그녀는 맨발인 채였다. 자정이 지나 현관문을 열고 슬몃 내다보니 누가 가져갖는지 덩그라니 놓여 있던 꽃바구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운전은 잘해요?”

“안전벨트를 해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