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해진 趙海珍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가 있음. glala95@hanmail.net
북쪽 도시에 갔었어
1
늘 죽음을 생각하는 부류가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은 연속된 시간을 산다기보다는 분절된 현재만을 향유한다. 그들에게 과거는 추억이 되지 못한 채 덤덤하게 시선의 바깥을 스쳐가고 미래란 흑백의 필터로 찍은 현재의 모사본에 지나지 않는다. 너에겐, 너의 연인이었던 칼 박이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칼을 만나던 당시의 네가 감당해야 했던 초조와 불안은 시한폭탄의 재깍거리는 소음을 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소지품처럼 셔츠 안에 들어 있던 그 초조와 불안을 너는 자주 너 자신의 심장박동과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한밤중, 잠결에 칼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면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던 너의 어린 연인이 있었다. 희미한 조명을 내뿜는 냉장고 안을 마치 우주 저편처럼, 혹은 생의 뒤편처럼 건너다보던 연인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그날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올지도 모르겠다고 너는 생각하기도 했다. 재깍재깍, 의지와 상관없이 부지런히 박동소리를 내던 자신의 불수의근을 혐오하면서. 가끔은, 너에게도 위로받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토론토의 겨울은 일찍 왔다.‘칼 박’으로 불렸지만‘영훈’이란 또다른 이름을 오른쪽 어깨 뒤편에 문신으로 새기고 다녔던 너의 연인은, 겨울이 시작되는 10월부터 겨울이 끝나는 이듬해 4월까지 도저히 숙면을 취할 수 없게 하는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매번 자신의 죽음으로 끝나던 악몽을 꾼 날이면 그는 뜨겁게 젖은 얼굴로 너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겨우 일곱살이었는데, 한번도 영어를 배운 적이 없는데, 다들 영어도 못하는 칭크(chink)1는 꺼지라고 했어. 피가 막 났어, 너무 많이 났어. 칼 박 혹은 박영훈이 온몸을 떨며 잠결에 속삭이던 그런 말들은 그를 향한 너의 맹목적인 연민이 변하지 않도록 이끄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그때의 너에게도 쎅스가 너의 모든 것을 위로해주던 유일한 달콤함이었느냐고, 그러나 나는 단 한번도 묻지는 못했다.
서울의 겨울은 토론토보다 한달 늦게 오고 두달 일찍 끝난다. 그해 가장 심한 황사가 불던 3월 중순의 이른 아침, 겨울은 그저 불어오는 바람 끝에만 간신히 얹혀 있던 그 완연한 봄날, 막 셔터를 올린 내 쌘드위치 가게에 들어서던 너를 본 순간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때때로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관계에 대해서, 아니 그런 관계를 아주 긴 시간 동안 되새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형벌 같은 날들에 대해서 생각했을까. 아니다. 그런 것들을 미리 알고 계산하여 피해가는 요령까지 터득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때 네 앞에서 쌘드위치를 만들어 파는 사람의 역할만을 하고 있어야 했다. 한줌의 웃음도, 단 하나의 단어도, 그리고 서로를 거의 완벽하게 끌어당겼던 시선의 마주침조차 허락하지 말았어야 했다.
당신도 미스터 파아크인가요? 너의 부탁대로 베이컨 쌘드위치와 드립커피 한잔을 포장하여 건네자 너는 자못 진지한 얼굴로 내 가게의 상표를 가리키며 떠듬거리는 한국어로 물었다.‘파아크’라는 낯선 발음 때문에 조금 웃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럴걸요. <PARK’s Sandwiches & Coffee>의 직원은 저뿐이니까요. 내가 어눌한 영어로 그렇게 대답했을 때, 우리는 이미 시간이 정지된 세계 속으로 걸어들어가 서로를 고요히 응시하고 있었다. 다시 오지 않을 한순간. 누구 하나 입술로 말하진 않았으나 그때 우린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잠시 후 주머니에서 온갖 지폐와 동전을 꺼내 골똘하게 셈을 하는 너를 보며 나는 또 한번 웃었다. 누군가를 만나 그토록 짧은 시간 동안 두번이나 스스로를 무장해제하며 소리내어 웃어본 것이 나에겐 아주 오랜만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그날 이후, 네가 내 가게의 단골손님이 된 데에는‘박’이라는 내 성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는 것 역시 나는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된다. 너를 처음 본 순간 내가 품었던 그 많은 상념들을, 그러나 너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미스터 파아크, 네가 그렇게 나를 부를 때 네 가슴속에서 재깍재깍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초조와 불안을 내가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때때로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관계와 그런 관계를 되새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날들에 대해서 우리는 무지하게도, 혹은 어리석게도 아무런 짐작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2
우리는 곧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깊이 빠져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 연인들이었고 실제로 그리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상대방에게 너무 가까워지지 않도록 암묵적인 요구를 했고 그 암묵적인 요구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조금은 이상한 연인들이었다. 우리에겐 여전히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지나간 연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심장에, 머릿속과 손끝에 남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갈수록 우리의 심장이 아프게 조이고 머릿속이 순간순간 깜깜해지는 것을, 그리고 손끝에 새겨진 그들의 체온이 날아가는 것을 고통스럽게 감지해야 했다. 우리는, 그들과 헤어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느날 갑자기, 작별인사도 없이, 그림자조차 거두어간 연인을 두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떠난 연인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은 사뭇 달랐다. 내가 자포자기한 상태로 K를 향한 원망과 그리움을 반반씩 섞은 알 수 없는 감정 속에서 스스로를 마모시키고 있었을 때, 너는 몇개의 단서들을 품에 안고는 지리 시간에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한국이라는 나라를 찾아왔다. 사실 나는 네가 왜 그토록 칼을 찾고 싶어하는지보다 멀리서도 너의 열정을 조종할 수 있었던, 토론토에 남겨져 있을 너와 칼의 추억이 더 궁금했다.
당시 너는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주일에 세번씩 서울 시내의 영어학원에서 임시 강사로 강의를 하기도 했고, 강의가 없는 날엔 한국에 와 있을지도 모를 칼의 행방을 찾으러 다녔다. 너는 칼 박의 한국 이름이 박영훈이라는 것과 그가 가족과 캐나다로 이민을 오기 전 살았던 곳이 서울의 영등포구 문래동이라는 사실을 마치 모험가의 은밀한 열쇠처럼 품속에서 하나씩 꺼내어 그를 찾는 데 차례차례 이용하였다. 결과적으로, 네가 갖고 있던 그 열쇠들은 칼 박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그 어떤 문도 열어주지 못했다. 이제는 아파트촌으로 변해버린, 무허가 판잣집이 즐비했다던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칼이 살던 집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고 그의 이름이나 가족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불가능했다. 한국의 여러 공공기관을 드나들기도 했지만 이방인의 얼굴로, 이방의 언어를 사용하는 너에겐 모든 정보가 너무 무겁거나 너무 허술했다. 어쩌면 다시는 칼을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날, 너는 이태원의 지하 바에서 밤늦도록 혼자 브랜디를 마셨다고 했다. 새벽 두시쯤 바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택시에 올라탔을 때는 이미 녹다운이 된 후였다. 그날, 너는 어렴풋이 떠올리지 않았을까. 사라지기 전 칼이 자주 보내곤 했던 무언의 메씨지를, 끝까지 네가 외면하고 싶어했던 그의 본심을, 고향에 돌아갈 거라고 버릇처럼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게 너에게서 떠나기 위해 그가 미리 짜놓은 각본일 수도 있다는 어떤 가능성을. 그토록 취했음에도 호텔 침대에 엎드려 귀를 틀어막은 채 너는 조금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아 제발, 칼. 낯선 호텔방에서 잠들기 직전 그렇게 나직이 속삭였을 너의 목소리가 상상되면 나는 문득 모든 걸 멈추고 몇초 정도 숨을 골라야 했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석달 후, 우리는 만나게 된다. 나와 만나면서 너는 칼과의 재회를 운명 혹은 우연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수긍하게 되었고 나의 오피스텔로 짐을 옮겨놓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산 이후 처음 한달 동안, 나는 되도록 여섯시 이전에 쌘드위치 가게의 문을 닫았고 그후엔 언제나 마트에
- 아시아인을 비하하여 부르는 속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