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소용돌이 속의 동아시아

 

북한의 탈냉전 발전전략

 

 

김연철 金鍊鐵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저서로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 『남북경협 GUIDE LINE』(공저) 등이 있음. dootakim@hanmail.net

 

 

1. 또하나의 근대극복, 북한의 개혁

 

북한은 변화하고 있는가?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정책변화 수준을 ‘그럭저럭 버티기’(muddling through)라고 표현하지만, 이 개념을 단순한 현상유지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다. 변화하고 있는 국내외적 환경에 적응해야만 그나마 더이상 추락하지 않고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속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고 실제로 변화하고 있다. 문제는 변화의 수준과 속도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북한이 겪은 ‘최악의 경제위기 국면’은 변화의 계기였다. 세계체제로부터의 고립은 에너지와 원자재 투입을 제한함으로써 공장가동률을 하락시켰고, 관료적 조정에 의해 유지되던 계획 메커니즘의 작동을 둔화시켰다. 나아가 식량위기로 북한체제의 근간을 이루던 배급제가 불안해지고 소비재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사회적 유동성은 증가했고, 암시장은 늘어났으며, 충성의 이데올로기는 약화되었다.

변화의 국면에서 북한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 북한은 시장지향적 개혁이라는 새로운 체제변화보다 전통적인 계획개선정책을 선택했다. 시장개혁이 가져올 ‘의도하지 않은 사회적 결과’보다는 통제가능한 변화를 모색한 것이다. 경제정책에서 북한의 제한적 변화는 공업부문에서 연합기업소 재편시도와 농업부문에서 토지정리사업으로 나타났다. 연합기업소 조직은 1971년 채취공업 부문에 시범적으로 도입된 이후 1985년 주요 공업부문에까지 확대 실시해온 북한 공업생산의 근간이었다. 북한은 2000년 1월까지 44개의 연합기업소·종합기업소의 조직개편을 단행했지만, 2000년 9월부터 다시 원상 복귀시켰다. 애초의 조직개편이 기대한 재정수입 증대효과보다는 기관본위주의·집단이기주의 등 부작용을 초래해 생산에 차질을 빚은 것으로 보인다. 계획가격, 생산재 시장의 부재, 그리고 연성예산 제약현상이라는 관료적 조정체계는 변화되지 않은 가운데 시도된 부분적 효율화 조치가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농업부문에서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토지정리사업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1998년 강원도를 시작으로 평안북도(1999.10〜2000.5)와 황해남도(2000.10〜2002.3)의 토지정리사업을 완료했다.1 토지정리사업은 식량난 이후 급속하게 확산된 개인농토(뙈기밭)를 없애고, 경지면적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이다.

현재의 싯점에서 토지정리사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토지정리사업은 집단적 계획영농체계를 유지하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반영한다. 중국과 베트남의 농업개혁과는 다른 선택이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농가 생산책임제’라는 개인농 중심의 농업개혁은 소유제 개혁의 시작을 의미했으며, 농가저축 증가로 향진(鄕鎭)기업과 같은 농촌자본을 형성하고 농민소비를 증가시켜 시장을 활성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농업개혁을 통해 개혁과정의 완충공간을 만들고, 더욱 어려운 공업개혁으로 이행해간 것이 중국이나 베트남 모델의 특징이다.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농업정책의 차이는 동아시아 사회주의의 경제개혁 모델을 북한에 적용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면 향후 북한의 개혁모델은 어떤 형태로 진행될 것인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의 개혁가능성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98년 사회주의 헌법의 경제관련 조항 해석이나 북한 특수론의 기본 가정, 2000년과 2001년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방문 이후 북한 개혁개방론은 북한의 실제 정책변화와 차이가 있는 기대감의 산물이다. 북한의 정책변화는 가시화되고 있지만 그 변화의 수준과 속도는 분명 외부의 ‘기대수준’과는 괴리가 있다.

북한 사회주의에서 개혁이란 무엇인가? ‘개혁’이란 ‘고전적 사회주의 체제’(Classical socialist system)의 ‘점진적 변화’를 의미한다.2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에서 고전적 사회주의의 변화는 소련이나 동유럽에서 1960년대에 이미 시작되었고3 점진적 변화유형인 동아시아 사회주의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남아 있는 사회주의 중 꾸바는 1990년대 중반부터 관광분야를 시작으로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4 북한은 이제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전적 사회주의’가 되었다. 북한은

  1. 2002년 4월 현재 북한은 황해남도 토지정리사업의 완료로 강원·평북·황남도 등 3개 도에서 총 18만여 정보의 토지를 정리하여 5700〜6700정보의 ‘새 땅’을 확보했다. 각 도별 토지정리사업 추진실적은 통일부 『주간 북한동향』(제585호: 2002. 3. 31~4. 3) 13~15면 참조.
  2. 코르나이는 사회주의 체제의 개혁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첫째로 ① 공식적 지배이데올로기 또는 공산당 지배에 의한 권력구조, ② 국가소유체계, ③ 관료적 조정 메커니즘 중에서 한 가지 이상에 변화가 발생하고, 둘째로 그 변화는 사회주의 체제를 변혁시킬 만큼 급격하지는 않으면서 약간 급격한 혹은 완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János Kornai, The Socialist System: The Political Economy of Commun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361, 388면.
  3. 1960년대 헝가리·폴란드 등의 시장개혁 경험은 1990년대 체제전환 과정의 정치사회적 고통을 완화시킨 배경으로 작용했다. 시장개혁 경험이 부족한 동유럽의 저개발국인 루마니아나 알바니아 등이 체제전환의 계곡을 쉽게 통과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분명하다.
  4. 꾸바는 관광개방, 외환 및 금융정책 개혁과 국영농장 개혁의 효과로 1980년대 후반부터 가속화된 경제침체로부터 벗어나 1994년부터 플러스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라는 국제환경과 전통적 리더십의 경제개혁 실험, 그리고 관광산업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꾸바의 경제개혁 경험이 북한에 상당한 시사를 줄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졸고 「북한의 경제개혁 전략: 쿠바 사례의 적용가능성」, 『아세아 연구』 2002년 상반기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