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통일과정과 개혁과제

 

북한 개혁의 ‘이륙’은 가능한가

중국 개혁·개방을 통해서 본 북한 변화의 가능성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주요 논문으로 「중국 문제와 아시아 위기, 출로는 어디에 있는가?」 등이 있음. lee87@mail.skhu.ac.kr

 

 

1. 중국의 경험이 의미하는 것

 

작년 6월 남북정상회담과 올해 초 중국 방문에서 보여준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파격적인 행동과 발언은 북한에서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이 과연 어떤 개혁모델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남한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의 개혁모델로는 소련과 동구사회주의 모델, 베트남모델, 중국모델 등이 예로 들어지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중국모델이다.

우선 중국은 공산당이 집권당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경제개혁과 발전을 성공적으로 추진해왔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고자 하는 북한 지도부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북한과 중국 사이의 우호관계로 인해 북한이 중국모델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저항감이 적을 수 있으며, 동시에 중국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북한의 중국모델 선택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의 초기 조건이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북한의 중국모델 수용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견해도 많다. 국토와 인구의 규모, 공업화 수준, 정치제도 등의 차이로, ‘점-선-면’ 방식의 점진적 개혁을 추진하고 농업개혁을 경제개혁의 돌파구로 삼았던 중국모델을 북한이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북한이 처해 있는 이같은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면 북한이 중국모델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형식적인 모델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중국의 경험은 북한 개혁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들의 개혁은 어떤 선험적인 모델에 의해 진행된 경우가 거의 없다. 소련은 정치개혁을 앞세운 개혁노선을 추구하였는데, 이 과정은 동구사회주의뿐만 아니라 자국의 급작스러운 붕괴로 연결되었다. 이는 새로운 개혁을 시작했던 지도부의 예상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를 바랐던 미국 등 서방세계의 예상도 뛰어넘는 사태였다. 사회주의국가들의 경우 다원주의 정치구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혁도 처음에는 위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개혁은 전통적 체제의 제약을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이 과정의 개혁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데, 80년대 이후 사회주의국가들의 경우는 초기의 제한적인 실험이 전체 씨스템을 변화시키는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체제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즉 개혁의 ‘이륙 단계’가 나타난 것이다.

소련의 경우에는 정치개혁을 앞세웠던 이륙 이전 단계의 개혁이 정치씨스템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유발하면서 개혁의 ‘이륙’ 단계로 돌입했다.1 그리고 경제 영역에서의 빠른 사유화와 가격자유화를 통해 시장경제로 전환하였다.

반면 중국은 처음부터 정치개혁은 물론이고 ‘시장경제’라는 목표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돌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강을 건넌다는” 식의 점진적 과정을 통해 현재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했다. 중국에서는 초기의 제한적인 실험이 전체 씨스템을 급격히 붕괴시키지 않으면서 기존 체제와의 공존 단계를 지나 새로운 체제의 형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체제의 틀 내에서 변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이는 북한에 중국이 체제 내에서 체제를 뛰어넘는 개혁의 동력을 어떻게 형성했는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제이다.

 

 

2. 북한의 새로운 모색과 실패: 좌절된 ‘이륙’

 

북한은 1984년 9월 합영법을 제정하여 외국인과 동포 들이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면서 전통적 경제체제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고자 했다. 북한이 처음부터 모든 형태의 대외경제협력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김정일은 1982년 발표한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자력갱생의 원칙에서 민족경제를 건설한다는 것은 결코 문을 닫아매고 경제를 건설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외부와의 경제협력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당시 대외경제협력은 주로 사회주의 진영 내의 경제협력 혹은 발전도상국간의 남남협력을 지칭했다. 그러나 합영법은 서방세계 기업가들의 대(對)북한투자에 대해 좀더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일보 전진된 정책이었다. 북한은 90년대 들어서 더욱 적극적인 개방의지를 보였다. 1991년 12월에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였고, 1992년 헌법개정시 외국인의 합법적인 권리와 이익을 보장한다는 조항을 신설하여 외국인 투자를 위한 헌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그리고 1992년에는 ‘외국인투자법’ ‘합작법’과 ‘외국인기업법’을, 1993년에는 ‘외환관리법’ ‘자유경제무역지대법’ ‘외국투자기업 및 외국인 세금법’을 제정하여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법적 환경을 정비하였다. 이와 동시에 북한은 1993년 12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6기 21차 전원회의에서 3차 7개년계획의 실패를 공식인정하고 완충기의 과제로 이른바 ‘3대 제일주의(농업제일주의·경공업제일주의·무역제일주의) 노선’을 제기하였다. ‘3대 제일주의 노선’은 1997년까지 계속 제기되었는데, 북한의 자립적 민족경제노선이 항상 중공업 우선 발전을 내세웠던 것과 비교하면 커다란 변화였다.

북한이 이처럼 새로운 모색을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보면 동풍이 서풍을 압도한다고 호언장담을 하였던 50년대와는 달리 80년대 들어서서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사이의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졌다.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가장 강조하던 북한도 이 점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김정일은 1987년 7월 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에게 발표한 「반제투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자」라는 담화에서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새 사회제도를 관리운영하는 데서 ‘좌우경적인 편향’이 발생했으며, 사회주의제도가 선 다음 혁명과 건설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심중한 결함’이 나타났다고 강조함으로써, 사회주의국가들이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평가에서도 자본주의국가들간의 협력이 강화되고, 신식민지적 착취가 강화됨에 따라 생산성과 기술 면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루었으며, 자본주의국가 내부에서도 정신노동자 수가 증가하는 등의 사회계급 구성에 변화가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자본주의가 상당한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음을 인정하였다.2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80년대 들어서면서 사회주의국가들은 여러 형태의 개혁적 노력을 시작했다. 중국은 1978년에 이미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신노선을 추진하였고,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 정책을 시작했고, 소련은 1985년 고르바초프(M. Gorbachev)의 등장 이후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적극적인 개혁을 추구했다. 북한도 1984년 이후 이러한 변화에 대해 소극적이나마 나름의 대응을 하였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 것은 소련의 개혁이 새로운 사회주의의

  1. 80년대까지 사회주의 개혁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정치적 민주화, 사유화와 가격자유화 프로그램을 성공적인 개혁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였다. 특히 꼬르나이는 60년대 사회주의 개혁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전통적 사회주의체제 내에서 진행된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Janos Kornai, The Socialist System (Oxford: Clarendon Press 1992).
  2. 80년대 북한의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전환은 스즈끼 마사유끼(鐸木昌之), 유영구 옮김 『김정일과 수령제 사회주의』(서울: 중앙일보사 1994) 240〜50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