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북한 예외주의 대 현실주의

미국의 한반도 정책

 

 

이혜정 李惠正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저서 『냉전 이후 미국 패권』 등이 있음

heajeonglee@gmail.com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증명하듯, 협상 없는 압박은 실패의 처방전이다.”1

 

“북한을 평화적으로 비핵화하는 마지막 남은 희망은 무장해제하고 개혁하든지 아니면 망하는 길밖에 없다는 점을 북한이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2

 

“북한과의 외교적 관여를 통해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정책궤도를 바꿈으로써 그들의 정책궤도를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3

 

“현재와 다른 미래를 약속하면서 북한에 일방적인 핵능력 포기를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은 국제교섭의 현실보다는 액션영화에 더 어울리는, 힘에 대한 일종의 미국적 환상이다.”4

 

“우리에게 전쟁과 평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5

 

 

허리케인 트럼프

 

미국은 한반도 평화(와 전쟁)의 핵심축이다. 냉전 이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한미동맹과 북핵문제에 집중되었다. 전자의 역사적 추세는 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트럼프 정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일관되게, 한미동맹에서 한국의 역할과 책임을 늘리고 동맹의 범위는 지역적·세계적으로 그리고 그 영역은 군사안보에서 경제와 가치로 확장하는 동맹 재조정이었다. 이에 비해서 북핵 정책은 북한의 선비핵화에 따르는 경제적·외교적 보상이라는 협상의 기조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항상 혼란스러웠다. 핵 폐기와 북한체제 보장 사이의 길항관계, 군사적-비군사적 해법 및 압박과 협상의 조율, 비핵화와 보상의 선후 등과 관련된 딜레마 때문이다.

클린턴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제네바 합의와 페리 프로세스를 통해 대북협상을 이어갔지만, 의회와 조야에서는 실패국가 북한의 조기붕괴론이 만연했다. 부시 정부는 9·11 테러와 소위 ‘2차 북핵 위기’를 배경으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예방전쟁과 선제 핵공격 독트린을 천명하더니 말기에는 대북 경제지원을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는 물론 동북아 다자안보체제까지 논의하는 6자회담의 틀에서 북핵문제를 다루었다. 오바마 정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전략적 인내’ 정책을 시행했다. 이라크전쟁의 혼란을 수습하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고, 남한에서는 보수세력이 집권하고 북한에서는 김정일 사망 등으로 체제가 불안정해지며 남북관계 역시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주의와 패권의 문법을 모두 부정하는 트럼프 정부의 등장은, 2016~17년 한국과 미국의 정권교체기에 이루어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 및 남한 내 진보정부의 등장과 맞물려, 한미동맹 그리고 북핵 해법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했다. 트럼프는 반(反)난민 반이민의 인종주의적·배외주의적 ‘백인 우선주의’, 미국의 기성 정치질서 전반을 비판하는 권위주의적 민중주의의 ‘트럼프 우선주의’, 그리고 경제적 민족주의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집권했다. 백인 우선주의와 트럼프 우선주의는 ‘민주주의의 모델국가 미국’의 소멸을 의미했다. 그리고 미국 우선주의는 빠리기후협정과 TPP 탈퇴, NAFTA와 한미 FTA 개정, 동맹 분담금 인상 요구 등으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동맹의 틀을 파괴했다. 이에 따라 안보는 물론 경제와 가치의 차원에서도 한반도를 넘어 지역적·세계적으로 미국과 협력한다는 한미 전략동맹의 기반은 붕괴되고, 안보의 기반도 침식되었다.6

대북정책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출범 직후에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다는 ‘화염과 분노’의 군사적 위협을 포함하는 최대의 압박정책을 시행하더니, 2018년 들어서는 문재인정부의 중재를 받아들여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트럼프를 경멸하는 한편 불량국가 북한과의 협상은 무의미하며 군사적·경제적·외교적 압박을 통해서만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워싱턴 조야의 대다수 한반도 전문가들과 패권 엘리트들에게는 ‘충격과 공포’였다.7

트럼프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 및 미군 유해송환에 합의하는 톱다운 방식의 최대의 관여로 급선회했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비용이 많이 드는 ‘워게임’으로 규정하고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북한이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중단하며 ‘쌍중단’이 시작되기도 했다. 이후 북한은 싱가포르 공동선언에 나온 조항 순서대로 새로운 북미관계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을 통한 비핵화를 기대하며, 2018년 9월 평양선언에서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2019년 2월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정부의 대북특별대표 비건(S. Biegun)은 1월 말 스탠포드대학 연설에서 ‘동시병행’ 협상전략을 밝히고, 비핵화 의지가 없는 북한과의 협상이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북핵의 엄중한 위험성을 고려할 때 미국의 정책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은 대단히 급박한 외교적 과제라고 답했다. 북한의 ‘영변 플러스알파’에 대한 보상으로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 설치, 남북경협의 허용이나 제재의 부분적 해제 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개인 스캔들 관련 청문회가 열리는 와중에 개최된 하노이 정상회담은 트럼프의 빅딜 요구와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가 맞서면서 ‘노딜’로 끝났다. 한반도 평화체제만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의 길이라고 믿는 적극적 관여론자들이나, 단계적 협상만이 북핵의 위협을 관리할 수 있다고 평가하는 소극적 관여론자들은 하노이의 실패는 미국이 환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비건은 3월 11일 카네기재단 대담에서 ‘동시병행’ 전략의 근본적 토대는 비핵화 트랙이라고 해명했다.8 엄밀히 따지자면, 비건이 1월 스탠포드대학 연설에서 밝힌 협상의 기조는 사실 전통적인 북한에 대한 선비핵화 요구와 싱가포르 공동성명 합의사항의 (북한이 기대하는 순차적이 아닌) ‘동시병행’ 전략이 혼재된 것이었다.(“우리는 북한 협상상대에게, 북한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에 대한 공약을 이행하는 것을 전제로, 북한의 밝은 미래와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기회들을 작년 여름 싱가포르에서 양국 정상이 합의한 모든 공약들과 함께 동시에 그리고 병행적으로 추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전달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4월 12일의 시정연설을 통해서 미국이 협상의 셈법을 바꾸지 않으면 북한으로서는 불가피하게 새로운 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압박했다. 6월 말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직후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하는 트럼프가 SNS로 김정은을 판문점으로 초대하면서 6월 30일 남북미 3국 정상이 전격적으로 회동했다. 50여분간 이어진 양자 회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이삼주 이내로 북미 실무협상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비판하며 7월 하순 단거리 미사일 실험과 방사포 사격을 감행했고, 트럼프는 단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이 ‘쌍중단’ 위반이 아니라며 협상의 동력을 유지했다. 북미 실무협상은 8월 초 현재 재개되지 않고 있다.

‘허리케인 트럼프’는 트럼프에 의한 기존 질서의 파괴 혹은 교란에 대한 비유이다. 정상회담과 쌍중단으로 트럼프는 전통적인 대북 압박정책의 틀을 깼지만, 선비핵화 강요의 연장인 북한에 대한 FFVD 요구와 제재유지 방침을 통해서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새로운 틀을 제한적으로만 수용하고 있다. 북한과 트럼프에 대한 워싱턴 주류의 불신은 여전히 완고하다.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북한의 기존 비핵화 공약에 한참 못 미치는 지극히 추상적인 선언에 불과하고, 비핵화의 정의와 로드맵에 대한 합의에 실패한 것은 북한이 진정으로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며, ‘리얼리티 쇼’로 일관된 트럼프식 정상외교로는 앞으로도 비핵화의 실제적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