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북핵실험 이후, 6·15시대 담론과 분단체제 변혁론
박순성 朴淳成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저서로 『북한 경제와 한반도 통일』 『아담 스미스와 자유주의』 『북한경제개혁연구』(공저) 등이 있음. sunsong@dongguk.edu
1. ‘흔들리는’ 6·15시대
사태의 진전이 이미 예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실험은 사건 자체의 심각성으로 남한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에 대응하여 북한이 생존전략 차원에서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북한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에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던 대북포용론자들은 좌절 속에서도 새로운 대화의 필요성을 찾아냈고, 안보전문가들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북핵실험에서 대북압박과 군비증강의 명분을 만들어냈다. 말 그대로 봇물 터진 듯이 기사를 쏟아낸 언론, 발언도 감정도 절제하지 못한 정치권은 우리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외부로 눈을 돌려보면, 냉정하게 군사전략적 사고를 따르고 있는 북한의 선군(先軍)지도부와 미국의 네오콘, ‘보통국가’로 한걸음 더 나아갈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일본의 보수집권세력, 끝까지 중재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 동북아에서 잃어버린 강대국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집권층이 존재한다. 한편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사태가 발생한 직후에는 당황과 짜증이 뒤섞인 반응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관련국들의 대응으로부터 교훈을 얻은 듯 침착해지기 시작했다.
핵실험 직전과 직후 세차례에 걸쳐 진행된 한·중·일 3개국 사이의 양국 정상외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중국의 특사외교, 미국 국무장관의 동북아 3개국 순방, 북·중·미의 비공식 3자협의 등을 거치면서, 북핵위기는 6자회담 재개 합의로 일단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관련국의 전략참모부는 지금까지의 손익계산서를 뽑아내고, 앞으로 전개될 사태에 대비한 행동계획을 짜고 있다. 관련국의 수가 많은 탓에 예측의 정확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전문가들의 결론은 의외로 단순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진지한 협상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 군사주의적 대결을 벌일 것인가에 따라, 한반도의 정세는 결정될 것이다. 평화냐 전쟁이냐. 분명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긴박한 한반도 정세는 그동안 우리 사회 내부에서 비교적 폭넓게 주목받아온 ‘6·15시대’ 담론을 흔들리게 하고 있다. 다소 애매하지만 6·15시대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당국과 주민이 협력하여 분단체제를 해체해나가는 과정, 다시 말해 ‘한반도 남북이 본격적으로 교류·협력을 통해 평화적 통일로 나아가는 시대’로 규정될 수 있다.1 이처럼 현재를 남북한이 주도하는 탈분단과정으로 규정하는 6·15시대 담론은 2002년 10월 시작된 2차 북핵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규정은 북의 핵실험으로 정면 도전을 받게 되었다. 6·15시대 담론의 핵심요소인 ‘한반도 남북의 주도적 역할’과 ‘평화와 통일의 동시 진행’2은 북·미 양국의 군사주의적 대결에 따른 한반도 전쟁위기로 설득력을 잃어버릴 상황에 처한 것이다.
2. 6·15시대 담론의 분열
북핵실험 직후 한국정부는 대북포용정책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발표했다. 대북정책의 기조를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 발표는 성급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정부가 처한 어려운 입지를 잘 보여준 사례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대화의 가능성을 막아버리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한 상태에서 대북포용정책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적으로도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정부 차원에서 인정한 것이다.
대북포용정책의 지지자들은 이러한 한국정부의 태도를 두가지 방식으로 비판했다. 첫째, 노무현정권 등장 이후 대북포용정책은 실질적으로 충분하게 추진되지 않았다. 둘째, 대북포용정책과 북한 핵개발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찾아낼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핵실험을 대북포용정책의 실패와 연결짓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전자가 한국정부가 최근 수년간 추진해온 대북포용정책의 불충분성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면, 후자는 대북포용정책의 본질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고 있다.
대북포용정책이라는 용어 자체, 특히 포용이라는 말의 적절성에 대한 북한당국의 이의제기와 남한사회 내부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 남북관계에서 대북포용정책의 ‘현실적 힘’은 대북경제지원 및 남북경협의 확대가 북한 지도부의 인식 변화와 그에 따른 체제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에 기초한다. 북한 지도부는 1990년대 초반 이후 경제위기로 체제유지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정부가 흡수통일을 부정하고 경제지원과 협력을 확대해나감으로써 북한체제에 정치·경제적 안정을 제공한다면, 북한 지도부는 남한정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경제위기 극복과 경제성장을 위해 개혁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