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분단체제를 다시 생각할 때

 

북핵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김동엽 金東葉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북한연구학회 이사. 주요 논문으로 「사드 한반도 배치의 군사적 효용성과 한반도 미래」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북한의 인식」 등이 있음. donavyk@gmail.com

 

 

1. 북한의 핵개발: 미친, 나쁜, 합리적인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에만 4차례, 총 6번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특히 2016년부터 2017년까지 3차례의 핵실험과 함께 진행된 미사일 발사 실험은 수십차례에 이른다. 결국 201711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 15형을 발사하고 난 직후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북한의 핵 관련 발걸음에 거침이 없어 보인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발사하고 나면 사람들이 모인 대형 모니터가 있는 공공장소에서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단어가 ‘미친’(mad)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미친 행동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시민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에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행동을 예측 불가능하고 비정상적이라고 보는 것은 많은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미친 사람은 살인을 해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 법적인 제재 대신 의학적인 조치를 받는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미친 행동으로 본다면 결국 제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미친 사람의 행동에는 이유가 없고 예측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결국 대응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북한의 핵개발이 미친 짓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 입장에서 잘못된 행동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정상일 수 있다. 그러나 전과가 있는 범죄자라고 해서 모든 행동이 나쁜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악의에 기반해 있다고 당연시하는 것은 미친 행동으로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행동이든 이미 나쁘다고 단정한 상황에서 진짜 의도를 알고자 하는 의지가 생길 리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북한을 실성했거나 악당으로 치부함으로 인해 북한의 핵개발을 예측하지 못했고 적절하게 대응하지도 못했는지도 모른다.1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온 것은 실성했거나 악당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합리적 행위자이기에 가능했다. 북한을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에는 이견이 많다. 어떻게 북한을, 특히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는 합리적인 것은 선하고 비합리적인 것은 악하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다. 합리적 선택이란 득실을 따져 논리적이고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하지 선악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다.

선악의 구분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북한은 늘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한 대북제재로 북한경제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고, 실험 비용으로 식량을 구입하면 북한 주민의 굶주림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으니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으로 인한 추가 제재쯤은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또 핵·미사일 실험에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희망만큼 대북제재의 효과가 엄청나거나 큰 비용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북제재의 효과나 시험 비용의 과장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북한이 잃는 것만 강조한다. 오히려 북한이 얻는 것이 북한의 의도이자 목적에 가까울 수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리적인 것이란 선택을 통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의 함수이다. 이득이라고 판단되면 선택하고 손해라고 생각되면 포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이 반드시 예측한 결과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려해야 하는 모든 변수와 변화 가능성을 고려해 완벽하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상대가 있는 경우 가져다줄 결과는 더욱 예측하기가 어렵다. 상대의 대응 전략에 따라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역시 철저히 계산된 합리적 선택임에는 분명하다. 핵개발 의도에 대한 우리의 과소평가와 무시 때문이건 아니면 치밀한 시간 끌기 전략 때문이건 간에 북한의 핵능력은 잠재적 영역에서 실재의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북한이 비합리적이라는 일부의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지금까지의 상황만 봐선 북한의 선택이 틀리지 않은 듯하다.2 북핵문제에 대한 접근은 북한의 핵개발 의도와 목표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2. 북핵에 대한 인식: 필사의 핵, 절망의 핵

 

북한이 언제 어떠한 이유로 핵개발을 시작했는지는 아직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전쟁 시기부터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에 시달려왔다.3 북한은 소련과 1956년 ‘핵에너지 평화 이용 협력협정’을 체결하고 핵기술 연구 인력을 파견했다. 이후 핵물리연구를 위한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1960년대에는 소련으로부터 실험용 원자로를 지원받아 운용한 것이 북한 핵개발의 시작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처음부터 핵무기 개발을 염두에 두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북한의 핵개발 의도와 목적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되고 평가되어왔다. 일반적으로 군사적 억지 차원, 외교적 협상전략 차원, 내부체제적 차원 등이 있다. 군사적 억지 차원은 미국이나 남한 등 외부의 안보위협을 차단하고 억지하기 위한 것이다. 핵무기를 가짐으로써 상대가 느끼게 될 견디기 힘든 피해에 대한 우려와 심리적 공포를 이용한 핵억지전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외교적 협상전략 차원은 미국과의 포괄적 타결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이다. 내부체제적 차원은 북한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부여하여 체제결속을 강화하고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북한의 핵개발 과정을 보면 그 의도를 하나로 특정 짓기는 어렵다. 초기에는 대외안보 요인이 핵개발 동기로 작용했는데, 차츰 남북한 경제력 격차와 전력불균형이 심화되면서 대남 군사요인이 추가되었다. 1990년대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는 체제유지를 위한 필요성과 함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협상력 제고 등 복합적 의도하에 핵개발이 추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근본적인 의도와 최종 목표가 ‘정권 생존’과 더불어 국제사회에 ‘정상국가’로 나서기 위해서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북한이 변화하는 국제관계의 역학 속에서 핵을 이용해 누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정권의 생존을 보장받을 것인지에 따라 북핵 게임의 룰은 변해왔다. 미국이나 중국이 아니라 북한의 주도로 이미 두번의 ‘북핵 게임 체인지’가 이루어졌고 현재는 세번째 게임이 진행 중이다.

첫번째 북핵 게임은 1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1993년과 1994년 제네바합의부터 20036자회담 이전까지 이르는 기간이다. 동구권 붕괴와 함께 소련과 중국으로부터도 안전보장을 받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북한은 핵을 통해 미국과 양자 간 게임을 진행했다. 두번째 북핵 게임은 6자회담 기간으로 중국을 포함한 다자의 틀 속에서도 미국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북··중 간 불균형 게임이었다. 이 시기 북한은 중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가능성을 조심스레 모색했다.

2008년 김정일 와병 이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세번째 북핵 게임은 한마디로 미중관계에서 핵을 움켜쥐고 독자적인 길을 걷겠다는 것이다. 2009년 미중전략경제대화로 시작을 알린, G2로 대변되는 미중관계 등 주변 안보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핵을 체제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인식하고 핵의 개발 및 보유에 대한 전략 변화를 기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용과 보유용의 이중성을 지닌 핵개발에 대해 과거에는 미국으로부터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협상용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제 보유용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일면 더이상 미국이 아닌 중국에 기대어가는 듯하나 중국에 완전히 편승하지도 않고 핵과 미중관계를 이용해 스스로 체제보장을 확보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이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한반도 전쟁 발발시 미군의 개입을 차단하고 적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공격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북한의 대남전략 기조는 불변이며, 대남 적화통일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도발을 자행하고 핵미사일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부터 사용한 뒤 남침할 수 있다는 주장이나, 북한이 지금은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약하지만 다시 힘을 키우면 대남 적화의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는 주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주장들은 논리적 추론보다는 ‘악당론’에 근거하고 있다. 핵무기가 실제 사용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북한이 정말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고 남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사용된다면 남북 모두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떠한 경우이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북한은 지도상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 궁극적인 목표가 생존이라면 죽기 위해 핵을 사용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절대 사용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죽음에 직면한 상황이라면 살기 위해 핵무기도 사용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사업 실패로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이 있다. 신용불량자에 돈도 없고 가진 것이라곤 주머니에 칼 한자루뿐이다. 며칠간 먹지도 못해 굶어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주변을 둘러보니 보안시설이 제법 잘된 집이 한채 있을 뿐, 다른 집까지는 하루를 걸어가야 할 상황이다. 망설이다 집의 초인종을 누르자 곧 건장한 주인이 대문을 열고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에 있던 칼을 주인에게 들이대고 “먹을 것 좀 내놔”라고 위협적으로 소리친다.

만약 집주인이 들이댄 칼만 보고 놀라 자기 집을 빼앗기라도 하는 양 겁을 먹고 문을 닫아버렸다면 칼을 든 사람은 이제 굶어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죽음에 내몰린 사람은 그 집 앞에서 자해소동을 벌일 수도 있고 칼을 들고 담장을 넘을 수도 있다. 자해소동이 벌어지면 집주인도 편안하게 지낼 수 없다. 법적인 책임은 없더라도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그자가 작심하고 담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온다면 들고 있던 칼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일이다. 같은 칼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집주인에게 들이댄 칼은 필사의 칼이자 절체절명의 칼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절망의 칼이자 자포자기의 칼로 바뀌는 것이다.4

따라서 북한이 핵을 절대 사용할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사용하게 만드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 북한에게 핵이 필사의 핵이 될지 절망의 핵이 될지는 우리가 북한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집주인과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라 하더라도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닐진대 만약 형제간이라면 어떨지 생각해보자. 어쩌면 북한의 핵은 아직은 필사적으로 살려는 자가 든 칼과 같다. 북한을 궁하필위(窮下必危), 궁지에 몰려 고양이를 물게 만들 수 있는 상황으로 몰아 절망의 핵으로 이끌어서는 안 된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기회의 창은 아직 열려 있다.

 

 

3. 주고받기: 북핵 위협과 북한의 안보우려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상황에서 동결을 입구로 한 비핵화라는 2단계론만으로 북핵문제 해결은 불가능하고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맞교환은 비현실적이다. 이미 1994년 제네바합의에서 동결을 경험했고, 20059·19공동성명과 20072·1310·3 합의를 통해 폐쇄/봉인, 불능화라는 좀더 세부적이고 단계적인 접근법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당시 ‘비핵화를 위한 평화체제 구상’에서 말하는 비핵화는 북한이 핵을 가지기 이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제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등가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등가’나 ‘순차적’보다 상호 수준에 맞는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에만 요구해서도 안 되지만 등가의 맞교환 방식을 고집해서도 안 된다. 북핵을 통해 우리가 받는 위협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반대로 북한이 받는 위협도 함께 제거되어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은 경제적으로 약하고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오는 합리적 안보우려(reasonable security concerns)의 결과이기 때문이다.5

현재 북한이 가진 핵 능력과 위협의 정도가 얼만큼인지 정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이를 가늠해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받는 북핵 위협을 과거(이미 만들어놓은 핵탄두), 현재(핵시설), 미래(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핵탄두를 몇개나 보유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 국가의 핵무력 수준을 평가한다.6 핵탄두의 보유 수는 핵물질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핵폭발을 일으키는 물질은 플루토늄(Pu239 93%)과 고농축우라늄(HEU, U235 90%) 두가지뿐이다. 그러나 플루토늄은 천연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우라늄을 연료로 원자로를 돌려야만 얻을 수 있다. 천연에서 채취된 우라늄 역시 U235의 비율이 단지 0.7%(U23899.3%)밖에 되지 않아 그대로는 핵분열이 불가능해 핵탄두 재료로 사용할 수 없다. 이른바 농축이라는 과정을 거쳐 U235의 비율을 90% 이상으로 올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 통상 이용하는 것이 바로 원심분리기이다.

국방부는 북한이 약 50kg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고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도 상당한 수준으로 개발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7 핵탄두 하나를 만드는 데 플루토늄 4~6kg이 필요하기 때문에 약 10여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점에서 북한이 보유 가능한 핵탄두의 숫자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모든 핵물질을 핵탄두로 만들어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핵실험에 성공했고,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일정량의 핵물질이 있다는 점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과거핵의 위협이 존재한다.

핵무력의 정도를 평가하는 핵탄두의 수는 핵물질인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의 양에 따라 늘어난다.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가 수적으로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는 원자로를 비롯한 재처리시설과 핵연료봉 공장 등 많은 핵 관련 시설물이 있다. 이러한 핵시설물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돌아간다는 것은 현재 핵물질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핵 위협의 양적 증가를 가져올 현재핵의 위협이 상존하는 것이다.

북한 영변에 있는 5MWe 원자로의 경우 연료봉 8000개를 3~4년 가동 후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약 20~25kg까지 추출할 수 있다. 연간 1개 이상의 핵탄두가 늘어나는 셈이다. 아직 소재 및 규모는 불분명하지만 우라늄 농축시설인 원심분리기도 2000대를 운영한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핵탄두 2개를 추가로 만들 수 있는 30~40kg의 고농축우라늄 생산이 가능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북한 핵문제 전문 분석 웹사이트인 ‘38노스’(38 North)는 “2020년까지 최대 100개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다.8 100여기의 핵탄두를 갖는다는 것은 실질적인 핵억지력인 ‘2격 능력’(the second strike capability)까지 확보함을 의미한다.

북한이 6차례나 핵실험을 실시했고, 그 과정에서 핵폭발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으로 핵무기를 가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핵무기란 핵폭발 장치와 투발수단이 결합하여 원하는 목표지역에 정확히 전달될 수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개발에 매진하는 것도 이것이 바로 핵폭발 장치를 필요한 장소까지 운반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미 만들어놓은 핵탄두와 함께 매년 핵물질이 늘어남으로써 핵무력이 양적으로 증가한다 하더라도 원하는 목표에 떨어뜨릴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북한은 20171129일 화성 15형을 시험발사한 뒤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201811일 신년사를 통해서도 핵무력 완성을 재차 강조했다. ‘핵무력 완성’이란 핵무기를 가지려는 국가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다. 북한이 저리도 핵을 가지려고 몸부림치는 목적이 자신이 안고 자폭하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분명 어딘가로 쏘고 싶어하는데 그곳은 바로 미국이다.9 따라서 북한 핵무력 완성의 참뜻은 핵폭탄을 미사일에 실어 미국에 투사할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본토에 이를 정도의 사거리를 지닌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지금 당장 사용 가능한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 이미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만큼 기술적으로 상당한 수준까지 이르렀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주장하는 화성 14형과 15형을 고각발사가 아닌 정상각도로 발사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기술적 완성 평가는 유보적이다. 더구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아직까지 완전하게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된다. 2018년 신년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실제 운용 가능한 핵무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기술 고도화가 필요해 보인다. 핵무력의 질적 향상을 위해 좀더 경량화·소형화하여 다탄두화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핵실험이 실시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 핵무력의 실전배치 및 운영을 위해 향후 추가 시험을 통해 현재의 기술적 미비점을 보완하고 정교한 질적 향상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은 미래에 나타날 핵 위협이다.

이상이 북한 핵의 과거, 현재, 미래라면 북한이 느끼는 안보우려 역시 과거와 현재, 미래로 구분할 수 있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과거 위협은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국가라는 점이다. 북한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하지만 과거 미소냉전의 산물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제재에 시달리면서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으로 또다른 제재를 당하는 악순환의 딜레마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북한은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무엇보다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필요로 하며, 그를 위해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대외여건이 제공되어야 한다. 특히 북한이 신년사에서도 밝힌 것처럼 2018년은 김정은정권에 중요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165월 초 36년 만에 개최한 제7차 당대회가 2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인민생활 향상 등 경제문제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만 한다. 북한이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기회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인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안보환경과 좀더 나은 대외활동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최상의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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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의 해결은 북한의 미래핵 위협의 제거와 과거 안보우려를 해소하는 노력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북한의 미래핵인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유예, 북한의 과거 안보우려인 한미군사훈련 일시중단 및 제재완화를 교환하는 것이다. 중국이 제안한 쌍잠정중단(suspension for suspension)과 비교해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의 완전 중단 대 제재완화로 한발 더 나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추가적인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것은 북한 핵무력의 질적 확대를 차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미 북한의 올림픽 참가에서 시작해 남북관계가 진전된 상황을 고려할 때 자연스럽게 우리는 올해 한미군사훈련의 잠정 중단을,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유예를 선언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북한에 대한 제재는 국제사회와의 협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완화해나가는 방안이 가능하다.

북한이 현재 직면한 위협은 선제타격과 같은 미국의 군사적 행동 가능성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가 필요하다. 대부분 이러한 상황을 평화체제의 완성으로 보고 이를 북핵의 완전 폐기 즉 비핵화와 등가로 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평화협정과 평화체제에 대한 명확한 구분·정리가 필요하다. 사실 비핵화-평화협정의 교환은 새로운 구상이 아니고 20059·19공동성명의 합의사항이었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2018년의 상황은 크게 변했다.

북핵문제의 해결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평화체제를 언급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보면, 마치 평화체제만 구축되면 북핵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보거나 반대로 북한이 핵을 폐기하기만 하면 평화체제가 구축될 거라고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심지어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하거나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 사람들조차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연결시킨다. 이제 와서 단순히 북핵위기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기회로 삼자는 말은 무책임한 수사일 뿐이다. 과연 평화체제가 북한 비핵화의 만병통치약인지 의심스럽다.

최근 ‘코피작전’(Bloody Nose Strike)과 같은 미국의 군사적 옵션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북한이 미국·일본과 관계정상화를 이루어 당면한 안보우려가 해소되더라도 여전히 체제와 정권의 붕괴위협을 느끼게 될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핵을 포기할 경우 다시 되돌리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비가역성의 불리함을 북한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이미 핵무력 완성까지 선포한 상황에서 비핵화를 위한 조치가 지나칠 경우 북한 측으로서는 수용할 수가 없다. 비가역성의 상대적 불리함을 감수할 이유가 적어진 것이다.

북한이 현재 처한 안보우려는 북한의 현재핵과 교환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북핵프로그램의 동결과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신뢰와 안정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가장 실현 가능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고 불능화하는 대신 북한과 평화협정 및 북미수교를 맺는 것이다. 핵시설을 되돌릴 수 없도록 불능화하고 검증한다면 북한의 핵탄두가 늘어나는 것을 차단해 핵무력의 양적 확대를 막을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이러한 정책 대안을 한··3국이 수용할 수 있느냐다.

 

 

4. 세가지 CVID: 한반도 운명공동체를 위하여

 

이미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선언하면서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하면서 핵보유는 더이상 어떤 것과도 교환 등가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선()핵폐기론은 물론이고 중국의 비핵화-평화체제 병행론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 역시 평화협정을 제안하고는 있지만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분리하겠다는 것이다.10 북한은 평화협정은 언제든지 파기하면 그만 아니냐며 과거 리비아와 우크라이나 사례를 언급한다. 북한이 요구하는 안보와 생존은 현재만이 아닌 미래까지 보장받는 것이다.

북한이 이미 만들어놓은 핵탄두와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을 포함하는 과거핵의 위협까지 제거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미래 안보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이미 완성된 핵탄두와 핵물질에 대해서는 인정도 부정도 할 필요가 없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않도록 만들면 된다. 내 몸속에 암을 잘 관리해 더이상 커지지도 않고 전이되지도 않아 건강과 생명에 지장이 없다면 굳이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메스를 댈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는 암덩어리가 자연스레 사라지고 치유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운명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잘 모르는 외부인의 손에 맡겨 도려내려다 오히려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북핵도 마찬가지다. 잘 관리할 수 있다면 무리한 비핵화보다 사용되지 않게 하는 우선의 불용핵화가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북핵문제는 상호 주고받는 시간차를 인정하고 공존을 대비해야만 진전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완전하고(Complete), 검증 가능하고(Verifiable),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북핵 폐기(Dismantlement)를 강조해왔다. 이제 북한에게 CVID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CVID를 시행해야 한다. 북한이 지닌 안보우려에 대해서도 역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감소(decrease)가 있어야 한다. 또 무엇보다 변하지 않는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이 지속(duration)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정책이 뒤집히고 남북 간 합의가 지켜지지 않음으로써 남북관계와 북핵문제가 부침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존중과 계승을 바탕으로 한 일관된 대북정책과 남북합의의 제도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북핵문제의 해결에 진전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해소하고자 하는 미래 위협은 단순히 리비아나 우크라이나와 같은 상황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미중관계 속에서 미국과 중국 간의 거래 가능성이라는 유형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남쪽에 의한 흡수통일에 대한 걱정이다. 북한의 미래 안보우려는 미래에 닥칠 걱정이라기보다 현재진행형이다. 북한이 직면한 과거의 안보우려를 해결할 주체가 국제사회라면 현재를 해결할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미래 열쇠를 가진 것은 바로 우리 남한이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평화협정과 수교를 뒤집고 북한에 총구를 돌린다면 그 앞을 가로막고 나설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운명공동체이다. 운명공동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향후 15년간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대북정책이 지속되어야 가능한 그림이다.

 

 

  1. 북한을 보는 다양한 패러다임의 특성과 문제점을 분석한 글은 Hazel Smith, “Bad, Mad, Sad or Rational Actor?: Why the ‘Securitization’ Paradigm Makes for Poor Policy Analysis of North Korea,” International Affairs Vol. 76, No. 3 (2000.7) 참조.
  2.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미치기는커녕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한 『뉴욕타임즈』 기사 참고. “North Korea, Far from Crazy, Is All Too Rational,” The New York Times 2016.9.10.
  3. 1951년 매카서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핵폭탄 사용을 승인해줄 것을 요청했고, 1953년 초에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핵폭탄 사용을 고려했다. 돈 오버도퍼·로버트 칼린 『두 개의 한국』, 이종길·양은미 옮김, 길산 2014, 382면.
  4. 이 상황은 토머스 셸링(Thomas Schelling)의 게임이론을 변형했다. 토머스 셸링 『갈등의 전략』, 이경남·남영숙 옮김, 한국경제신문 2013, 44면.
  5. 2009년 7월 제1차 미·중 전략 및 경제 대화에서 당시 왕 광야(王光亞) 외교부 중국 상무부부장이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합리적인 안보우려’를 제기하고 ‘미·북 직접대화’를 미국에 촉구하였다. “China urges U.S. to accommodate DPRK’s ‘reasonable security concerns’,” Xinhua 2009.7.29.
  6. 2017년 7월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보고서에 따르면 핵탄두 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러시아로 약 7000개였다. 뒤이어 미국이 6800개, 프랑스 300개, 중국 270개, 영국 215개, 파키스탄 130~40개, 인도 120~30개, 이스라엘 80개이며, 북한은 10~20개 정도로 추정된다.
  7. 『2016 국방백서』, 국방부 2016, 27면.
  8. https://38north.org/wp-content/uploads/2015/02/NKNF-NK-Nuclear-Futures-Wit-0215.pdf?
  9. ‘화성 15형’은 고각발사를 통해 최대고도 4475km에 950km 거리를 53분간 비행했다. 정상각도로 발사했다면 예상되는 비행거리는 1만 2천km 이상으로 미국 본토 어디든 도달 가능한 거리이다.
  10. Benjamin A. Engel, Jaesung Ryu, and Young-Hwan Shin, “Bridging the Divide: South Korea’s Role in Addressing Nuclear North Korea,” EAI Issue Briefing 2016.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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