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대한민국의 오늘, 내일의 코리아
북핵협상 전망과 가스운송관
쎌리그 해리슨 Selig S. Harrison
현재 워싱턴 소재 국제정책연구소(The Center for International Policy)의 아시아프로그램 소장.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동북아 지국장 역임. 북한을 7차례 방문했고 고(故) 김일성 주석과의 2차례의 만남 가운데 두번째인 1994년 6월 7일자 만남에서 핵동결 구상을 제안함. 김일성 주석이 이 제안을 수락함으로써 일주일 후 김일성과 지미 카터의 회담이 성사되었으며 김일성 주석은 이 회담에서 미국과의 협상기간 동안에 핵동결을 실시하기로 합의하였고 이로써 북·미간의 대화가 성사되어 1994년 10월 ‘기본합의서’(The Agreed Framework)라는 결실을 맺음. 저서로 『한국의 최종담판: 통일과 미국 탈피를 위한 전략』(Korean Endgame: A Strategy for Reunification and U.S. Disengagement) 등이 있음. sharrison@ciponline.org
ⓒ Selig S. Harrison 2002 / 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2
2003년 남북관계의 개선 전망은 북한이 핵무기용 농축우라늄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고 처음 밝혔을 때 여겨진 것만큼 어둡지는 않다. 2002년 10월 4일의 이런 폭로 이후, 핵농축 계획이 핵분열 원료를 생산하는 단계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며, 또한 미국이 북한측의 안보 우려를 제거해주고 경제적·정치적 관계 정상화 조치를 취하면 김정일은 핵개발 계획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도 점점 더 분명해졌다.
남한은 북한이 현재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과,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재협상하는 것이 미국과 남한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는 점을 미국에 납득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남한정부가 미국정부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견지한다면 남북관계가 좀더 개선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망은 불확실해지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2003년에 심각한 군사적 충돌을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과 미국의 설명에 따르면,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2002년 10월 4일, 방북한 제임스 켈리(James Kelly) 미국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다음 사항을 제의했다.
•무기용 농축우라늄의 생산노력 중단.
•1994년 합의하에 폐쇄된 플루토늄 기반 핵시설에 관한 기존 안전조항의 지속적 준수.
•미국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사찰과 검증조치 수용.
강석주는 켈리에게 이에 대한 댓가로 미국이 다음 사항을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선제공격을 감행하지 않겠다는 공개적인 약속.
•한국전쟁을 종식시키며 1953년의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의 체결. (휴전협정 이후 성명들은 ‘불가침’ 합의만을 언급했을 뿐이다.)
•외교관계 정상화 및 이로써 미국의 통제하에 있는 다자간 금융기구의 경제원조 통로의 개방.
켈리는 강석주에게 이런 제의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북한이 먼저 자신의 핵개발 계획을 폐기해야 하며, 그럴 때만이 미국은 북한의 관심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바를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핵농축 계획이 1994년 북·미 기본합의서의 위반이며 따라서 이는 북한정부를 신뢰할 수 없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국의 협상 거절을 정당화하고 있다. 사실 북한은 기본합의서의 정신은 위반했지만, 그 조문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1994년 합의서에는 ‘핵 없는 한반도’라는 공동의 목표를 언급하고 있지만, 이는 당시에 존재하던 특정한 플루토늄 기반 핵시설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 자신이 기본합의서의 두 가지 핵심조항을 이행하지 못했다. 관계정상화 조치(조항 2)와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무기 위협이나 사용”을 배제하는 “공식적 확인”(조항 3)이 그것들이다.
지난 9월 20일 발표된 부시행정부의 국가안보 독트린에서는 미국이 평화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되는 어떤 나라에도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핵무기를 사용해서) 선제공격할 권리를 보유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조항 3을 거부한 것이다.
북한은 강력한 협상의 입지에 있다. 북한은 1994년 합의하에 봉인·저장된 폐(廢)연료봉에서 4개의 플루토늄 폭탄을 만들 수 있다. 강석주는 북한이 더이상 1994년 합의에 구속받지 않는다고 켈리에게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폐연료의 재처리금지 조항을 아직 위반한 것은 아니다.
핵문제를 단호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1994년 합의의 핵심조항을 유효하게 유지하는 한편, 여타 조항을 재협상할 수 있도록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대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과 강석주 같은 그의 실용주의적인 참모들은 핵무기 개발을 원하는 군부 내의 유력한 강경파들과 맞서고 있다. 미국이 실용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북한의 심각한 에너지 부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1994년 합의서를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