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역사에서 사상으로

강만길 비평집 『21세기사의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가』, 삼인 1999

 

정근식 鄭根埴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쯤 흐른 시점에서 오늘을 되돌아본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혁명적 이성의 실험이 실패하고,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초국적 자본의 시대가 전면적으로 도래하면서 방향을 몰라 방황하는 착잡한 시기? 세계적 냉전체제와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식민지체제와 전쟁이 남긴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채,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강요당하는 어정쩡한 시기? 희망의 메씨지를 담은 새로운 천년의 담론들이 무성하지만, 이들은 사회적으로 완성된 현실에 근거한다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간절한 기원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사 최대의 소용돌이를 겪었으면서도 사상이 부재한 사회에서, 역사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20세기를 치열하게 살았던 학자에게는 당연하지만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21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