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재웅 李載雄
1974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장편소설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와 소설집 『럭키의 죽음』이 있음. woong-novelist@hanmail.net
불온한 응시
철호는 대로를 따라 실비집으로 가고 있었다. 실비집은 7번지 인근의 공사판 인부들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이었다. 계절은 겨울의 막바지였다. 바람은 찼고, 햇살은 날카로웠다.
대로 옆은 넓은 들판이었다. 그곳은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철호의 얼굴은 사색과 약간의 짜증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그는 가끔 길바닥의 돌멩이나 가로수 밑동에 시선을 던졌다가 고개를 들곤 했다. 그럴 때, 그의 얼굴은 햇볕에 일그러졌고, 거칠고 검은 얼굴거죽 위로 노란 허무나 무기력 같은 것이 피어오르곤 했다. 햇볕이 눈꺼풀을 누른다.
그는 십여분 만에 실비집 앞에 도착했다. 참새떼가 실비집의 낡은 기와지붕 위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것들은 햇볕을 받아 검은 철편들 같았다. 그것들의 작은 몸체 옆으로 햇볕이 번뜩였다.
철호는 실비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실비집 안에는 벌써 여남은의 사내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키 크고 홀쭉한 사내가 중앙의 연탄난로 앞에 서서 두 손을 내민 채 온기를 쬐고 있었다. 누군가는 식사를 기다리며 잡담 중이었다. 누군가는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음식냄새가 꽉 차 있었고, 주방의 창구 밖으로 놓여진 음식에서는 하얀 훈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철호는 후문쪽 구석진 테이블로 갔다. 그 옆에는 이미 다른 사내가 테이블을 점령하고 앉아 담배를 태우며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얼굴에 흙빛이 돌고, 수염과 머리는 지저분했다. 무언가에 지친 기색이었다. 다리를 꼬고 앉아 가끔 후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했다. 후문으로는 강렬한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너머의 길 위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루한 옷을 차려입은 중년의 사내가 자전거를 타고 그 길 위를 지나쳐 간다. 아지랑이가 잠시 흩어지고 다시 타오른다.
철호는 테이블에 앉았다. 먼지 낀 바지에서 담배를 꺼냈고, 테이블을 반쯤 적시고 있는 노란 햇볕의 열기에 두 손을 녹였다.
실비집 주인은 철호보다 앞서 들어선 사내들의 주문을 받고 있었다. 한 사내가 내장탕이 좋은가 김치찌개가 좋은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듯이 테이블 건너편의 사내에게 물었다. 건너편의 사내는 대답이 없다. 그런가 하면 그 옆의 사내는 누구든 들으라는 듯이 “아무거나 뱃속에 들어가면 그만이야” 하고 빈정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순서가 되자 그 역시 메뉴를 쉽게 정하지 못하고 벽에 붙은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주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 곁에 서 있었고, 사내들 중 하나가 주문한 메뉴를 성의 없이 받아 적었다.
철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댕겼다.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 연기는 햇볕 속에서 먼지와 함께 하얗게 번져나갔다.
철호 역시 공사판 인부였다. 그의 작업장은 7번지 상가단지 귀퉁이였다.
그는 지금 기분이 좋지 못했다. 그는 십장 앞에서 자신의 거친 내면을 까발려버렸고, 그것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십장은 무뚝뚝했다. 그것은 본래 그의 성격이기도 했고, 공사판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는 때로는 작은 사고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하지만 대개는 공사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중에는 인부들의 실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령, 누군가가 철근을 어설프게 엮었다. 그는 그것을 몇번 흔들어보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건 다시 처넣어야지” 하고 말할 뿐이었다. 또 인부 하나가 결근하면 그는 연락을 넣고, “그런 사정이면 편히 쉬슈. 사람 하나 없다고 일이 안 돌아가는 법은 없으니깐” 하고 말했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서는 불쑥 큰 소리를 내지르곤 했다. 또 불쾌한 침묵을 머금고, 그만큼의 무게가 담긴 시선으로 인부들 하나하나를 마치 씹어 삼킬 듯이 노려보았다.
그것은 작업이 그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겨울이 끝나기 전에 작업을 마치려 했다. 하지만 몇번의 예상치 못한 호우가 있었고, 또 무슨 사정인지 레미콘도 이삼일씩 늦곤 했다. 기존 인부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손발이 맞지 않는 인부들이 투입된다.
모두가 그 상황을 알고 있었고, 십장도 그랬다. 하지만 십장은 십장인 것이다. 그는 상부에 이렇다 저렇다 보고만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무엇인가 계책을 내야 한다. 하지만 계책이라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인부들 중 몇은 하급인생들답게, 공사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십장의 안색을 살필 줄 알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안다. 그들은 왜 십장이 더이상 그들에게 친근한 농담을 건네지 않는지를 이해하며, 그의 불쾌한 침묵이 담긴 시선 앞에서 묵묵히 움직인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한사람 한사람이 움직여서 일을 진척시키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합리적인 노동의 감각을 익혔다. 서둔다고 모든 것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정도로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 늦어진 일을 이틀 앞당길 수는 있지만 일주일 전체를 앞당길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무리가 따른다. 게다가 노련한 인부들은 몸이 예전 같지 않고, 패기도 그렇다.
모든 것이 십장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이 불편한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십장의 눈 밖에 나는 것은 철호 같은 미숙한 인부들뿐이었다. 불만이 하나둘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철호는 이번달 들어 내내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둘 그를 향한 말수가 적어진다. 갑자기 화를 내고, 그가 무엇인가 의견을 내면 동료들은 담배를 문 채로 무엇인가를 가늠하듯이 그의 두 눈을 쳐다본다. 가끔은 그를 위로하듯 어깨를 툭툭 쳐준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무섭도록 냉정해진다.
철호는 이것이 인생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도 알지 못할 어떤 살의에 사로잡힌 채 진저리를 치곤 했다. 그는 매일매일 몸이 무겁고, 그런데도 두 다리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아침, 고무호스가 찢어지고 또 물을 끌어오는 펌프도 고장나버린 것이다.
십장은 입을 다문다. 조금도 기다릴 수 없다는 자세로, 무엇인가를 노려보듯 철호를 지켜본다. 공사판 인부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갈 뿐이다. 기계에 노련한 박씨가 있었다면, 그가 손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박씨는 나흘째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뚱뚱하고 굼뜬 사십대 중년의 사내가 인부들과 손발을 맞추고 있다. 인부들은 가끔 들판의 황새처럼 몸을 꼿꼿이 세우고 고개를 돌려 철호를 바라본다.
철호는 어째서 자신이 고무호스며 펌프를 책임져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 누구도 그것을 지시한 적이 없고, 또 철호도 그것을 책임지겠다고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가 그 옆을 지나칠 때 그 두가지 문제가 동시에 발생했고, 그가 그것을 회피할 수는 없다. 만약 그가 그것을 모른 척한다면, 십장과 인부들의 시선은 더욱 따가워질 것이다.
그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 옆을 서성거린다. 십장의 시선은 그의 뒷덜미에 닿아 있다. 인부들은 침묵한다. 등에서는 땀이 오르고, 얼굴은 분노와 수치로 달아오른다.
일의 발단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십장은 꽥 소리를 질렀다. 펌프 앞에 서 있는 철호의 등 뒤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철호를 옆으로 밀어내더니, 작동이 멈춰버린 펌프 앞에서, 두 손을 허리에 얹은 채 떡 버티고 서서 인부들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자신이 조금만 신경을 늦춰도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애새끼 기저귀 갈아주고 밥 먹이듯 모든 것을 돌봐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인부들의 자존심을 긁는 것이었다. 모두가 불쾌한 침묵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십장과 함께 철호를 힐끔거린다.
철호는 십장의 고함소리가 온전히 자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