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지금, 어떤 불평등인가

 

불평등 감각의 젠더 차이

성차별 현실에 대한 부정과 인정

 

 

권김현영 權金炫伶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공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미투의 정치학』 『대한민국 넷페미사』, 편저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등이 있음.

gokkhy@naver.com

 

 

1. 페미니즘이 대중화된 시대

 

훗날 역사가들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기억할까. 누군가는 촛불시위와 탄핵, 정권교체로 기억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평화체제가 안정되기 전 격변의 시간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목소리에 관심을 가진 역사가라면 분명 ‘새로운 여성들’이 등장한 시기라고 이름 붙일 것이다. 이때 일어난 몇가지 중요한 사건만 언급해도 다음과 같다. 2015년 1월 20일 ‘페미니스트’와 ‘증오’가 동시에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테러리스트로 IS에 자원한 김군이 페미니스트에 대한 증오를 동기로 밝혔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탄생한 메르스갤러리는 인터넷에 창궐해 있던 여성혐오의 실태를 고발하는 역할을 했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근처 공용화장실에서 무연고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살해 대상으로 여성을 일부러 골랐고 살해 동기로 여자들이 자기를 무시해서라고 말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젊은 여성들은 강남역 인근에 “여자라서 죽었다” “우연히 살아남았다” “나일 수도 있었다”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이고 추모를 이어갔다. 문화예술계 성폭력과 여성혐오문화가 해시태그 운동으로 가시화되며 2017년까지 이어졌다. 2017년은 촛불시위를 통해 바뀐 정부에 여성계가 ‘성평등 인사 및 검증기준 마련’을 촉구했고, 그로 인해 내각의 30%가 여성으로 채워지는 상징적 결실을 얻은 해이기도 했다. 물론 이후 성평등개헌은 개헌 논의 자체가 좌초되면서 유야무야되었지만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에 대한 여성 대중의 열망은 2018년 지방선거로 이어진다. 당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녹색당의 신지예 후보는 득표율 1.7%, 총 8만 2874표를 얻어 정의당 김종민 후보를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확실히 놀라운 ‘이변’이었다. 2018년은 그야말로 페미니즘이 대중적으로 폭발한 해였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미투운동이 번져갔고, 디지털성폭력 문제를 중심으로 총 6차례, 연인원 20만여명이 모이는 시위가 열렸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낙태죄를 둘러싼 여론이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는 점이 사실상 폐지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1

이 유례없는 페미니즘 대중운동의 시기 동안 여성들은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출몰’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사람들이 작가로 방송인으로 연구자로 활동가로 예술가로 정치인으로 등장하여 목소리를 높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존과는 다른 형식의 목소리도 새롭게 등장했다. 지지하는 영화표를 구매하여 영혼을 보내는 소비자로, 마스크를 쓰고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시민으로, 불공정한 언론보도에 항의하는 댓글을 다는 네티즌으로, 해시태그 운동을 주도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인플루언서로,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고 확산시키는 크리에이터로 참여했다. 모두가 남성인 자리에 단 한명의 여성으로 존재하며 여성 전체를 대표해야 했던 상황은 곳곳에서 여전했지만 전체적으로 목소리 자체가 커지니 비로소 여성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의 존재라는 점 역시 가시화되었다. 여성들 간의 입장 차이 역시 첨예하게 드러났다. 사안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의 인식론적 차이부터 운동의 방식과 방향에 대한 다른 의견은 유의미한 차이로서 드러나기도 했고,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선명성을 경쟁하는 과정에서 방향성을 상실하는 곤경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일어난 수많은 움직임들이 이전 시기와는 질적·양적으로 구분될 정도로 ‘다르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 글에서 나는 여성 대중이 페미니즘을 대중운동으로 만들어낸 지금 성차별 문제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점차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긴급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불평등 감각의 젠더 차이가 외환위기 이후 이십여년 동안 어떻게 심화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더이상 성차별은 없다? 포스트페미니즘 세대가 만들어간 다른 길

 

집합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감정에너지가 상승되고 정의로운 일을 함께해냈다는 도덕적 고양감을 고취하여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전통적인 사회운동의 방식은 그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다.2 신자유주의로 이행된 이후의 자본주의를 두고 ‘대안이 없는 시대’3라고 하는 이유는 이 체제가 너무도 훌륭해서가 아니라 모순이 발견되고 난 후에도, 그리고 그것을 모두가 인지하고 난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변화를 요구한 이후에도 실제로 변하는 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새롭게 다시 부각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시성과 새로운 감정이 필요하다. 이 시기 대중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성공한 것은 이 두가지 부분에서 적절한 자원을 수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팝 페미니즘, 뉴룩 페미니즘, 셀럽 페미니즘, 디즈니 페미니즘 등은 새로운 가시성을 어디에서 찾았는지를 보여주는 목록이다. 질(R. Gill)은 새로운 페미니스트 가시성은 소셜미디어와 인플루언서 등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는 인력 자원을 통해 가능해지며, 이를 통해 포스트페미니즘의 심리적 삶이라는 조건에서 ‘성차별주의는 없다’고 믿는 대중들의 근거 없는 감정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고 분석한다.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유포할 수 있는 사람들과 직접적인 상호작용과 즉각적인 반응 속에서 특유의 자신감 문화가 만들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페미니즘이 정당화되면서 페미니스트로서의 소속감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4 즉 새로운 시대 대중화된 페미니즘은 내적인 동력을 만들고 주체가 형성되어 집합적인 행동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반응적·시차적·감정적 특징으로 움직인다.

반응적이라는 것은 해당되는 액션 이전에 선행되는 사건이 있었다는 뜻이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신지예 후보의 경우 처음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안경을 쓰고 정면에서 측면을 바라보는 포즈로 찍은 포스터가 ‘건방져 보인다’는 이유로 공개적인 비난을 받고 심지어 벽보가 훼손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지지자들이 결집했다. 디지털성폭력규탄집회가 연인원 20만명에 가까운 인원을 모으게 된 동력에는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의 피해자가 남성이라는 점이 밝혀지자마자 용의자를 검거하고 포토라인에 서게 한 편파수사 의혹이 결정적이었다.5 각종 사건사고들이 일어날 때마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가시화된 증오심이 분출되었는데 이는 이전에는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고 망설여온 여성들을 더욱더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다.6

반응적이라는 점은 한편 시차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만들어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는 스스로의 취향과 입장 그리고 네트워크에 따라 분할된 세계를 만들어냈다. 현실에 대한 인식과 판단 모두 완전히 상이한 세계에서 공통 언어를 통한 소통이 가능할까. 지젝(S. Žižek)은 오직 시차적 관점(parallax view)으로만 “상호번역이 불가능하며, 어떠한 종합이나 매개가 불가능한 두 지점 사이에서 늘 동요하는 현상들에 대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시차적이라는 건 지금이 페미니즘이 목적한 바를 다 이룬 세계에 살고 있다는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 주장을 하는 안티페미니스트와,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이제야 입밖으로 꺼내 선언해보는 뉴웨이브 페미니스트의 엇갈린 시공간을 묘사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젝의 문장을 변형해서 인용하자면 어떠한 종합이나 매개도 불가능한 두 지점 사이에서 상이한 시간성을 가진 이들이 설혹 잠시 만난다고 해도 이것은 동일한 현상의 두 측면이며, 결코 명백한 양쪽으로서 서로를 대면하지 못한다.7 오히려 나는 여성의 봉기 이후 남성의 위기 혹은 당혹을 배치하며 여성과 남성을 서로의 ‘양쪽’으로서 세우는 것이 울퉁불퉁한 단면을 다시 매끄럽게 봉합하려는 반동적인 의지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천정환은 이 시기 페미니즘 봉기에 대처하는 남자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한국 남성의 ‘위기’를 진단하고 있다.8 천정환의 이 글은 이 시기 페미니즘의 반응적이고 시차적인 성격이 좀더 분명하게 짚어져야 할 필요를 환기한다. 여성들의 봉기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을 진단하기 이전에, 여성들의 봉기 또한 인터넷에 기거하는 거대한 남초화된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 발화가 어떠한 검열도 없이 대규모로 발흥해온 것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이 다시 짚어져야겠다. 이는 반응의 반응의 반응의 반응으로 이어지는 연쇄에서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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