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윤성희 尹成姬

1973년 경기 수원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웃는 동안』 『베개를 베다』, 중편소설 『첫 문장』, 장편소설 『구경꾼들』 『상냥한 사람』 등이 있음.

hitchike@hanmail.net

 

 

 

블랙홀

 

 

1

 

모든 일은 그 망할 놈의 옆집 할아버지가 넘어졌기 때문이라며 오빠는 술에 취하면 전화를 걸어 말하곤 했다.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간 것은 십년 전쯤이었다. 시골로 내려가기 전에 아버지는 우리 삼남매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자 갚는 것도 지쳤다. 이제 그만 집을 팔련다.” 나는 부모님이 노후 자금을 모으지는 못했어도 빚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버지는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관리부에서 삼십년을 근무했는데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퇴직을 했다. 그후로 몇달 쉬었다가 아는 사람의 소개로 얻은 아파트 경비 일을 오년째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경비 일을 시작했을 때 어머니도 동네 세탁소에서 수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생활비가 부족하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심심해서 하는 거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깔끔세탁소는 우리가 그 동네로 이사를 갔을 때부터 있던 곳이었다. 한때 어머니는 세탁소 주인아주머니가 꾸린 계원 중 한명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수선을 잘해서 옆 동네에서도 옷을 맡기러 올 정도로 실력이 있었는데, 그만 치매에 걸리고 말았다. 마침 실직을 한 아들 부부네가 세탁소를 이어받겠다고 해서 주인아저씨는 가게를 넘겨주었다. 그래서 손재주가 좋은 어머니가 가끔 가서 일을 돕고 세탁소집 며느리에게 바느질을 가르치기로 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양장점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원피스도 직접 만들어주곤 했다. 아버지의 경비 월급과 어머니가 수선을 해서 받는 돈까지 합하면 두분이 사는 데 그다지 부족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공과금을 내고, 먹고 싶은 거 사 드시고, 설날이나 어린이날에 손주들에게 용돈 정도는 줄 수 있는 삶. “그동안 번 돈은 어디 갔어요?” 오빠가 물었을 때 아버지가 화를 냈다. 우리가 그 집을 산 뒤로 단 한번도 빚이 없었던 적이 없다고. 부모님이 처음으로 산 집이었다. 은행 대출이 절반을 넘었고 그 절반을 갚기도 전에 우리 삼남매가 줄줄이 대학에 입학했다. 그래서 또 대출을 받았고 그걸 다 갚기도 전에 언니가 임신을 해서 결혼을 했다. 그때 다시 대출.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봐 언니가 결혼을 하고 이년 후에 오빠도 애가 생겨서 결혼. 그때 다시 대출. 뭐 일이 그렇게 된 것이었다. 재개발만 되면 아파트값이 오를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텼지만 이제 그것도 지쳤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면서 당숙이 사는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외사촌 형인 당숙은 오십대 초반에 대장암에 걸렸다가 그 일을 계기로 귀향을 했다. 딸기 농사를 크게 지었는데 자식들 중 아무도 농사를 이어받지 않아 일손이 부족하다고 했다. “딸기 농사도 돕고 이런저런 농사도 좀 직접 짓고 그러면 둘이 먹고살지 않겠냐.” 어머니는 말했다. 부모님은 집을 팔아 빚을 갚았고 우리들은 삼천만원을 만들어 부모님의 귀촌 자금에 보탰다. 이사를 하고 며칠 후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옆집에 사는 할머니랑 같이 나물을 캐고 왔다고 말했다. 저녁에 쑥국을 끓이고 씀바귀와 냉이를 무쳐 먹었다고 했다. “그 형님이 내일은 산마늘 캐러 가자 하네. 산마늘 넣고 삼계탕 끓이면 몸에 그리 좋다고.” 어머니보다 나이는 많지만 그래도 의지할 이웃이 생긴 것 같아 나는 안심했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둘은 맛있는 음식을 하면 나눠 먹고 볕이 좋은 날엔 평상에 앉아 남편 흉을 볼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옆집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너무 울어 목이 잠겼고 일주일 동안이나 말을 못했다. 그랬는데 혼자가 된 옆집 할아버지가 부모님 집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을 밟고 넘어져서 허리를 다쳤다며 소송을 걸었다. 평소에는 담 넘어온 가지에 달린 건 다 자기네 거라며 모조리 따 먹었으면서 이제 와서 우리 탓을 한다고 어머니는 담벼락에 서서 옆집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치료비의 일부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은 날 아버지는 감나무를 잘라버렸다. 감나무가 쓰러지면서 담을 건드렸고 담이 무너지면서 아버지 발등을 덮쳤다. 그 일로 아버지는 두달 동안 깁스를 했다. 걷지 못하는 동안 아버지는 평상에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며 옆집을 향해 계속 욕을 했다. 그때부터 부모님이 조금씩 변한 거라고 오빠는 말했다. 나는 아버지는 원래 술을 마시면 화를 잘 냈다고 대꾸하려다가 말았다.

 

언니는 부모님이 판 아파트가 재개발이 된 게 원인이라고 했다. 그때 생긴 마음의 병이 다른 방식으로 폭발한 거라고. 어머니는 이사를 한 뒤에도 103동 아주머니랑 통화를 하며 동네 소식을 전해 듣곤 했다. 어머니랑 같이 동사무소 노래교실을 다니며 친해진 아주머니였다. 시골로 내려간 첫해에 들은 소식은 세탁소 아들 부부가 이혼을 했다는 거였다. “세탁소를 하기 전에는 주말부부였대. 그러다 하루 종일 얼굴을 보려니 못 참겠는 거지.” 103동 아주머니의 말에 어머니는 수선을 가르칠 때도 며느리는 웃는 법이 없었다고 대꾸했다. 그다음 해에는 노래교실 선생님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혼 안 한 자식이 둘이나 있는데 어째. 불쌍해서.”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그다음 해에는 아파트 후문에 있던 치킨집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 그다음 해에는 경비 아저씨들끼리 싸움이 나서 한명이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 그런 소식을 듣는 날이면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걸어 그 이야기들을 전했다. 그러고는 아버지 흉을 보다가 전화를 끊었다. 어떤 날은 통화가 한시간씩 이어지곤 했다. 그래도 나는 전화를 안 받거나 먼저 끊거나 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갈 때 오빠 언니와 달리 오백만원밖에 보태지 못한 게 늘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매달 용돈도 보내지 못해서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언니가 내게 전화를 걸어 아파트가 재개발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어디서 들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말해줬다는 거였다. “아파트값이 일억이나 올랐대. 얼마나 속상하셨는지 십분이나 우셨다니까.” 나는 그때 어머니에게 좀 섭섭했다. 사람들 흉을 볼 때면 내게 전화를 해놓고 정작 마음속 이야기는 언니에게 하는 눈치였다. 재개발 소식을 들은 이후 어머니는 불면증에 걸렸다.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입맛이 떨어졌어. 도통 먹고 싶은 게 없네.” 어머니는 말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없어지자 어머니는 음식을 대충 하기 시작했고 그 일로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아버지는 일주일 내내 쉰 김치에 된장찌개만 먹었다며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다. 아파트 하나 지키지 못한 가장이라 그런 대우를 받는 거라고. 오빠는 그 이야기를 언니에게 전했고 언니는 또 내게 전했다. 나는 홈쇼핑에서 고등어와 불고기와 곰탕을 사서 시골로 보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어 이제부터 요리에 재미를 붙여보시라고 권했다. “엄마도 밥 하는 게 얼마나 지겹겠어요. 그리고 아버지 비빔국수도 잘하시잖아요.” 내 말에 아버지가 알았다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어머니는 언니가 해준 한약을 먹고 입맛이 조금 돌아오긴 했지만 예전처럼 달게 드시지는 않았다. “억지로 먹는 거야.” 어머니는 늘 그 말을 달고 살았다. 그 시기에 옆집 할아버지가 감을 밟고 넘어지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언니는 재개발로 아파트값만 오르지 않았다면 부모님이 옆집 할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가서 인사도 하고 병원비도 냈을 거라고 말했다. “엄마가 얼마나 정이 많았니?” 언니의 말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새언니는 이사를 간 집에 귀신이 붙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시골집이라지만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집이 나왔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고. 그 집에서 누군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이사를 간 해에 맞이한 추석날이었다. 집은 디귿자 모양이었는데, 안채는 니은자로 되어 있고 사랑방이 독채처럼 있었다. 사랑방에는 장작을 때는 아궁이가 있었다. 시골로 내려간 후 처음으로 맞는 명절이어서 오빠네 식구만 아니라 언니네 식구까지 다 내려갔다. 안채에는 방이 두개였다. 안방에서는 남자들이, 작은방에서는 아이들이, 그리고 사랑방에서는 여자들이 잠을 자기로 했다. 아버지가 아궁이에 장작을 가득 넣고 불을 땠다. “종일 고생했으니 뜨끈한 방에서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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