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문명전환의 세계감각과 문학

 

(비)인간의 자리로부터

 

 

전기화 田己和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황정은 다시」 「부풀어 오르는 모녀서사」 등이 있음.

octobervoice@naver.com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모든 것이 낯설어진다(혹은 아마 더 친숙해진다).

—제이슨 히켈 『적을수록 풍요롭다』(김현우·민정희 옮김, 창비 2021) 363면

 

2022년 현재 우리는 기후위기에 관한 경보가 어느 때보다도 크게 들려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삶을 2년여간 지속해오고 있다. 너무나 거대하고 압도적인 층위에서 진행되기에 오히려 잘 수신되지 못하던 위기의 경보는 전염병의 대유행과 함께 보다 명료하게 와닿을 수 있었던 듯하다. 인간이 다른 인간들로부터, 동물과 바이러스와 같은 비인간들로부터, 그리고 지구 생태계를 포함한 물질적 환경으로부터 단 한번도 분리된 적 없는 다분히 취약한 존재이자 다른 존재들과 뒤얽혀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며 ‘인간’에 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흐름 가운데, 비인간에 대한 문학적 재현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한국문학의 가장 뜨거운 담론적 흐름 역시 ‘인간’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1 동식물과 사물을 포함한 다양한 비인간 존재들을 낯설게 감각하며 인간을 물질세계 안에 재배치하고 포스트휴먼 담론을 적극적으로 껴안는 흐름이 있는 한편으로, ‘보편적 인간’의 범주에서 누락되어온 ‘몫 없는 자들’을 견인하여 사회적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직시하고 인간의 범주를 끊임없이 재조정하려는 시도 또한 꾸준하게 이루어지는 중이다. 일견 관점의 차이를 지니는 듯 보이는 두 흐름이 실상은 별개의 것이 아니며, ‘문학적 재현이라는 몫’ 혹은 ‘문학적 발언권’을 거의 누리지 못했던 존재들에게로 확장하는 방향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은 이러한 흐름들이 근원적으로는 동일한 원리에 입각하여 추진력을 얻고 있음을 드러내준다.2 이러한 시각은 2010년대 후반 현실의 정치를 향해 다시금 빠르게 근접해갔던 문학의 정치와 그 운동성을 효과적으로 포착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다만 그 운동성을 반성적으로 되짚고 점검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숙고해볼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의 장에서 배제되어 있던 존재들을 가시화하며 정당한 문학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시도가 단지 그 자체로 ‘정치적’이라고 간주되어서는 곤란하며, 그것이 과연 어떠한 재현이며 어떠한 정치인가에 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는 물론 타당하다.3 다만 이때 ‘비판적’ 성격을 확보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테면 그 점검이 문학적 재현을 현실과 맞대응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염려도 있기 때문이다. 문학이 현실의 무엇을 변경하고 삭제하고 왜곡했는가를 따져보며 문학의 ‘정치적인 것’을 점검하는 방식은, 자칫 문학과 현실 각각에 대한 이해를 협소화하고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데로 고착될 수 있다.

문학적 재현의 몫을 다양한 존재들에게로 확대해나가는 노력이 문학이 언제고 해오던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반복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날 때 발생하는 차이가 없는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듯하다. 이를테면 비인간 존재들을 소설의 전면에 앞세우는 재현은 인간 중심의 문학적 재현에서 누락되어온 존재들을 끌어올리는 시도로 다소 단일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지금 한국문학의 다채로운 시도를 동일한 원리로 환원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 및 형식상의 다양성이 간과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문학적 재현을 통해 발생하는 효과에 대해 더 세심하게 살피는 방식으로 논의를 심화시킬 수도 있을 듯하다. ‘비가시화된 것의 가시화’는 문학적 재현의 작동원리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그 재현을 통해 수행되는 효과까지 내포한 개념이다. 가시화는 그 자체로도 효과로서 인준될 수 있으나, 그 가시화를 통해 다시금 어떠한 효과가 수반되는지까지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지금 한국문학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동시대 한국소설들에서 허구의 식물과 외계인, 유령 등 가상의 비인간을 재현하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지는) 가상적 존재들에 대한 문학적 재현은 ‘가시화’나 ‘성원권’을 중심으로 한 이해로는 쉽게 포착되지 않는 종류의 수행성을 발휘하는 듯 보인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드러난 것과 잠재된 것을 오가며 그 경계를 흐리는 이러한 시도는 문학과 현실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독법을 흔들고 문학과 현실 간의 새로운 관계성을 구성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식물과 사이보그, 외계인, 유령 등 가상의 비인간을 다루는 소설들을 통해 인간의 자리를 거듭 재고하도록 이끄는 문학의 수행성으로 눈길을 돌려보려 한다. 이러한 소설은 한국소설의 다양한 흐름 가운데 일부일 뿐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 한국문학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덧붙여볼 수도 있을 것이다. 땅에서 자라나 지구인과 섞여 살아가는 ‘외계 생명체’와 한때 인간이었으되 이제는 인간이 아닌 유령의 이야기는 인간 독자들을 어디로 데려가는가?

 

 

식물, 사이보그, 외계인

 

근래 한국문학에서는 인간을 언제나 에워싸고 있었음에도 인간을 위한 배경이나 소재 정도로만 활용되던 동물, 식물, 지구, 사물 등의 비인간을 주목하고 그것이 지닌 생기와 역동성을 재인식하려는 흐름이 활발하다.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비물질, 자연과 사회, 현실과 가상 사이의 명쾌한 구분을 흐리는 다양한 시도 중에서도 식물이 소설의 전면에 등장하는 양상은 특히 흥미롭다. 실상 우리는 한국문학에서 식물이 되고자 했던 인간의 이야기(한강 『채식주의자』, 창비 2007)나, 인간과 하나가 되었던 식물의 이야기를 이미 목격한 바 있다. 후자의 예라 할 정도경 단편 「씨앗」(『씨앗』, 온우주 2013)에서는 인간만을 위해 행해지는 숲의 벌목과 유전자 조작에 맞서 ‘진화’한 식물들이 인간 신체의 열린 구멍들에 씨앗을 심고 뿌리를 내려 인간과 한 몸이 되어 ‘돌연변이’로 재탄생하는 서사가 펼쳐진다. ‘우리’를 화자로 삼은 이 소설에서 ‘우리’란 회화나무, 떡갈나무, 버드나무, 오리나무, 참나무 등 다양한 수종(樹種)을 포함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인간-식물-우리이다. 이때 소설에서 인간-식물-우리로서의 화자가 씨앗의 ‘침범’으로 발생한 변이를 “양쪽 모두에게 이로운 결합이었다”(188면)고 담담하게 진술하는 대목은 인간의 관점에서 다소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

  1. 대표적으로 김미정 「인간의 조건, 존재의 재구성」, 『뉴래디컬리뷰』 2021년 가을호 및 최근 『문학동네』 2022년 봄호의 ‘비인간’ 특집에 실린 인아영, 최진석, 강지희, 황정아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2. 황정아 「‘문학의 정치’를 다시 생각한다」, 『창작과비평』 2021년 겨울호; 강경석 「진실의 습격」. 같은 책 참조.
  3. 황정아, 강경석의 같은 글; 이소 「제주에서 보낸 한철: 한강·조해진·김금희의 장편소설과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 『쓺』 14호(2022년 상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