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비정규직, 현대판 신분제인가
박태주 朴泰鉒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전 대통령비서실 노동개혁태스크포스 팀장. 저서로『한국 노동시장의 현황과 과제』등이 있다.
오건호 吳建昊
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 전 민주노총 정책부장. 저서로 『국민연금, 공공의 적인가 사회연대 임금인가』 등이 있다

ⓒ이영균
오건호 해마다 5월 1일 노동절을 맞으면,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주창하는 구호가 많이 들립니다. 그전에는 그런 구호가 당위적인 가치로 여겨졌는데, 지금은 왠지 노동자 내부에 존재하는 커다란 장벽을 염두에 둔 무거운 주장으로 느껴집니다. 창비에서 마련한 오늘의 대화 주제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모두가 우리 사회 핵심 의제로 비정규직을 이야기합니다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원인 진단, 책임주체, 해결방법 등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박태주 노동전문지가 아닌 창비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주제로 삼은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얼마나 중요한 현안인지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웃음) 지금 양극화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 비정규직 문제가 놓여 있다고 봐요. 우리나라에서 상위 20%와 하위 20% 간의 소득격차는 벌써 5.4배를 넘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소득수준의 양극화는 근로소득의 양극화에서 비롯됩니다. 2007년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득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86.4%에 달하거든요. 남녀별, 기업규모별, 학력별 임금격차도 크지만 이러한 것들이 모이는 이른바 합수(合水)지점이 비정규직이라는 겁니다.
오건호 선생님 말씀을 좀더 일상적인 말로 풀어보면,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사회는 희망이 상실된 사회를 뜻하겠지요. 그전에는 비록 가난하게 태어나고 부모가 재산이 없다 해도, 내가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열심히 일해도 못산다, 나만 못살 뿐 아니라 내 자식도 못살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최소한의 자기존엄이라든지 사회적 가치 등에 대한 신뢰마저 약해져가는 듯합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양극화 문제의 접점
박태주 운좋게 돈많은 부모에게 태어나는 것을‘정자복권’(sperm lottery)에 당첨되었다고 빗대죠.(웃음) 비정규직에서 비롯되는 빈곤의 대물림을 말하는 거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지금 양극화와 더불어 또 하나의 화두가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세계화의 진전이라고 보면, 그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집단도 역시 비정규직입니다. 세계화의 진전이 규제완화나 유연화를 통해 비정규직 양산을 촉진하고 있다는 거죠.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양극화가 만나는 지점이 비정규직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냐면, 비정규직 연구를 하면서 외국 논문들을 참고할 필요가 별로 없을 정도예요. 이 문제가 우리나라만큼 심각한 데가 없기 때문이죠.
오건호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지나치게 노동시장의 문제로만 한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비정규직 문제를 삶의 희망 상실이라고 얘기한 건 그것이 단순히 임금과 고용의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노동자에게는 시장에서의 직접임금뿐만 아니라 사회복지를 통한 간접임금 혹은 사회임금도 중요합니다. 지금 한국의 사회복지, 사회안전망 제도상으로는 사회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는, 즉 사회복지제도 내에 포함될 수 있는 사람들만 혜택을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비정규직은 고용이나 임금에서 일차적 차별을 당하고, 사회적 제도에서 이차적 차별을 당하는 거죠. 예컨대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에게는 매우 우호적인 제도입니다. 워낙 수익비(총급여액/총보험료액)가 높기 때문이죠. 비록 보험료 저항이 있지만 결국엔 자기가 낸 것의 4~5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보험의 0.8배와 비교해선 놀라운 혜택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노후에 연금수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노동시장의 차별이 노후의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죠.
건강보험에서도 사업장 가입자 자격을 얻지 못하기에 지역가입자로 본인이 보험료를 전부 내야 합니다. 여러차례 실업의 위험에 노출되는데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기도 어렵구요. 나아가 비정규직 노동자는 거의 집 없는 서민들입니다. 투기적 부동산시장의 최종 피착취자로서 높은 전세값, 임대료에 시달리며 자산에서도 양극화에 처해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금융취약자여서 살인적 고금리 대출시장의 희생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같은 중층의 차별구조가 비정규직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죠.
박태주 문제는 지금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서 비정규직만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마저도 자신들의 미래가 비정규직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는 겁니다.
오건호 사회운동 주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에 대한 해법이 안 보여 갑갑해요. 사실 고용불안 문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의 규모나 차별의 폭, 비정규직으로 인한 고통과 불안을 비교해본다면, 한국사회는 도가 지나칩니다. 적어도 노동력을 사용한 만큼, 그 노동력이 재생산될 만큼은 품삯을 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기업의 인식이 규제받지 않은 채 통용되는 점이 참 안타깝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우리나라에 비정규직이 얼마나 있다고 추산되나요? 이에 대해선 정부와 노동계 사이에 논란도 있는데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은 시대
박태주 학자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비정규직에 대한 개념규정이 합의되지 않았지만, 2007년 통계로 비정규직이 860만명 정도, 정규직이 730만명 정도입니다. 그래서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54%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제 길을 막고 물어보면 비정규직이 더 많을 만큼 전형적인 노동자는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얘기죠. OECD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만큼 비정규직의 비중이 크고 차별이 심한 나라가 없어요. 정규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 정규직 임금의 50% 정도를 받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사회복지로부터 배제당하고 근본적으로는 고용불안에 떨고 있어요.
오건호 방금 수치를 언급하셨는데, 노동계는 약 55%로 고착화되고 있다고 하고, 정부는 35% 조금 넘는다고 하니까, 이 두가지 통계는 20% 정도 차이가 납니다. 규모로는 약 3백만명이 될 겁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명확한 개념규정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 개념을 짚어봐야겠네요.
박태주 일반적으로 누가 비정규직이냐고 묻는다면, 정규직이 아닌 사람이 비정규직입니다. 그러면 누가 정규직인가? 정규직은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고용의 상시성, 다시 말해 고용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이 첫번째 요건입니다. 두번째로 정규직들은 전일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정규직은 사용자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계약관계와 지휘명령 계통이 같다는 얘기입니다. 이 세가지 요건이 주어져야 정규직이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래서 첫번째에 대응하는 게 고용기간의 정함이 있는 사람, 즉 기간제(期間制) 노동자들이고, 두번째에 대응하는 게 시간제 근무, 단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번째는 간접고용, 즉 용역, 파견, 도급 또는 가내근로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밖에도 이른바 특수고용직이 있습니다. 이들은 법적으로는 사업주로 되어 있어 다른 사용자와 근로계약이 아니라 사업계약을 맺고 있죠. 형식적으로는 사장 즉 사용자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른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그들에게서 지휘명령을 받는 사람들을 말하죠. 가령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경기 보조원, 화물차나 레미콘 기사 등입니다. 이들이 이른바 비정규직입니다.
또 개념상으로 학계에서 또는 학계와 정부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게 장기 임시근로자입니다. 임시근로자란 한달 이상 1년 미만의 계약을 맺은 사람들인데, 근로기준법에서는 이러한 고용계약이 반복적으로 갱신되면 정규직으로 봅니다. 그러나 이들을 상시고용 즉 정규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정리하면, 정규직이 아닌 사람들이 비정규직이고, 앞서 말한 정규직의 세가지 속성 가운데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비정규직이라는 겁니다.
오건호 제가 보기에도 비정규직 규모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게 장기 임시근로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계약 관념이 약하다 보니까 조그마한 회사에서 계약서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일용노동자들도 많고요. 일자리는 장기인데 고용형태가 임시로 반복되기 때문에 이들을 정규직으로 볼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지요. 노동부에서는 이들을 취약계층이라는 범주로 따로 취급해버립니다. 저는 비정규직의 본질이 고용의 불안정 그리고 그로 인한 차별이라고 보기 때문에, 단지 고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비정규직에 포함하지 않는 것은 관료적 형식논리라고 봅니다.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장기 임시근로자들의 고용조건은 대단히 불안정해요. 월급도 120만원대로 정부가 주장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거의 비슷하고요. 사회보험 가입비율도 30% 이하로 매우 낮습니다. 그들을 비정규직에 포함해야 하는 이유죠. 최근에는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가 곧 중소기업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고용의 차별이 기업간 규모의 차이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태주 중소기업 문제는 왜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이렇게 빨리 증가했는지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혹은 시장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거의 자영업에 가까운 영세기업들 간의 위계와 착취구조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청기업이 외주나 하청을 통해 단가를 떨어뜨림으로써 중소기업의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그래서 거기 속한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이 악화되는 연결고리를 말하는 거죠.
기업환경의 변화도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치열한 국제경쟁과 더불어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거든요. 기술혁신 속도도 매우 빠르고 소비자의 기호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어요.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가 중요해졌습니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고용의 유연화, 국제경쟁에 대처하기 위한 저임금, 때로는 노조회피 전략의 일환으로 비정규직을 쓰고 있죠. 문제는 이러한 기업의 노동자 사용전략을 정부가 법제도적 규제라는 그물망을 쳐서 걸러내야 하는데 오히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그물망을 걷고 있는 실정이죠. 노조의 규제력도 솔직히 많이 줄어들었고요.
오건호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요인들에 대해선 의견이 비슷한 듯합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노동주체의 대응으로 논점을 옮겨가볼 필요가 있겠는데, 저는 자본에 맞서는 운동주체로서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나름의 노력은 했겠지만 사회적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비정규직 노동자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의미를 넘어 그로 인해 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