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문학과 새로운 주체

 

비평이 왜 중요한가

비평이 혁명을 의미화하는 방식

 

 

양경언 梁景彦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싸움과 희망」 「최근 시에 나타난 젠더 ‘하기(doing)’와 ‘허물기(undoing)’에 대하여」 등이 있음. purplesea32@hanmail.net

 

 

1. ‘혁명의 낭만화’를 문제화하기

 

김현의 「지혜의 혀」(『현대시』 2017년 3월호)는 밤을 독창적으로 보내고 살아남은 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시다. ‘독창적으로’ 밤을 보냈다고는 했지만, 시에 등장하는 이가 특별히 누군가를 지시하는 건 아니다. 발표 시기가 2017년 3월이니만큼 ‘밤’이라는 표현이 특정 정권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과정은 김현의 시를 흥미롭게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자면서 눈을 맞았다”는 구절로 시작하는 이 시는, 눈을 감고 있었던 이의 감각을 깨운 ‘눈〔雪〕’ 이미지가 장면으로 삽입되면서부터 깜깜한 밤을 제대로 살필 수 없도록 ‘눈〔目〕’을 “가지고” 사라져버린 “부엉이”의 날갯짓을 좇는 과정을 담는다. “부엉이는 내 눈을 가지고/어디로 날아가서/무엇을 보여주려고 한 것일까”라는 호기심은 이전에는 마냥 잠들어 있던 화자를 더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 없도록 한다. 급기야는 “책장”을 넘길 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의 언어와 “우물”가에서 들려오는 전설의 말들 사이로, 습관적으로 구원을 바라며(화자는 “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반복해서 확인한다) 당연하다는 듯 생애주기를 따르던 사람들의 삶에서(시는 언약식, 돌잔치, 죽음과 관련한 의례 등 한국인의 전반적인 생활상을 연상케 하는 장면에서부터 ‘유가족’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된 이들과 화장실에서 끼니를 챙겨야 하는 이의 하루 등 한국사회에서 포착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아울러 언급한다) 촛불이 켜지고 꺼지는 순간들을 파노라마 형상으로 복기한다. 장장 27연으로 이루어진 긴 시인지라 전문을 옮겨 적기는 어려우나 후반부만큼은 잠깐 읽고 가기로 한다.

 

아이는

판사봉과 연필과 실과 청진기와 지폐를 앞에 두고

부모와 조부모와 부모의 친구들과 조부모의 친구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것을 집어 들어

자신이 가진 가장 깊은 둥지 속으로 넣었다

여자의 미래였다

지혜롭구나 우리들의 아이란

신은

너희의 가장 나중에 것에 있다

 

하야하십시오.

 

울거나

웃거나

 

눈을 맞으며

지혜의 우물 앞에

촛불을 켜고

해골을 들고 서 있었다

해골의 혀를 쓰다듬으며

손을 녹였다

 

물이 떨어졌다

책장을 넘기는 부엉이 소리

썩은 물이 하나둘 퇴진하는 소리

사나흘 꿈 밖으로 나가지 않은 사람이 걸어 나오며 말했다

 

꿈이 아니에요

부엉아,

인제 그만 내 눈을 물고 돌아오렴

 

—「지혜의 혀」 부분

 

아이의 돌잔치를 그리던 시가 느닷없이 “하야하십시오”라는 외침을 받아들이면서도 계속되듯이, 시는 광장에서 ‘하야가’를 부르며 밤을 보냈던 이를 특별한 누군가로 수렴하지 않고 촛불을 켜고 꺼봤던 숱한 사람들로 확장해서 말하는 일에 무게를 싣는다. 촛불은 비단 집회에서 ‘하야’를 외칠 때만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 충실하기 위한 의식을 치를 때에도 밝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시는 광장에서 모두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선취하는 체험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돌잔치가 되었든, 생일잔치가 되었든 간에 범속한 삶의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미래”를 선취하는 순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것을 두고 일상은 일상대로 귀하고 광장은 광장 그대로 귀한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위의 시는 관성을 그저 따르는 채로 일상을 구성할 때 딸려나오는 부정(不正)한 모습 역시도 부각하고, 한편에선 사람들이 편히 쓰는 입말을 시의 구절로 등장시킴으로써 날것의 말들과 섞일 때에야 모두가 “밤”을 통과하는 현장이 개시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요컨대 시는 일상을 대변하는 도구가 평상시의 맥락을 비틀고 무기로 역할을 전환할 때 “꿈”이 더이상 꿈으로 남지 않는 광장이 형성될 수 있으며, 내정된 결론이 있다고 믿었던 생애주기에서 비틀어낼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일상을 만들어가는 ‘혁명의 일상화’가 이뤄지리라는 태도로 “밤”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는 촛불혁명을 순수한 추상성의 세계로 밀어둔 채 의미화하는 대신에, ‘불순’한 구체성이 있는 세계로 기억함으로써 광장을 끝내 낭만화하지 않는 방식이다.

앞서 이 시를 일러 어둠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보낸 이들의 목소리가 담겼다고 한 것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는 생활 한가운데서 발생시키는 삶의 방식이자 그를 통해 계속해서 살아가는 몸들이 직접 만나 지혜를 갈구하고, 협상하고, 도모하는 현장을 열어젖히는 상황을 일컫는다.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지혜의 혀”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존재한다.

김현의 시는 촛불의 광장을 통과해온 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항을 일러준다. 촛불이 “기존의 혁명 개념과 동떨어진 면이 많”지만 “바로 그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성격의 혁명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백낙청의 의견을 참조할 때,1 촛불을 ‘혁명’으로 의미화하기 위해서는 “‘헬조선’을 만들어온 한국사회의 온갖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개막”2하기 위한 매일의 몸짓을 게을리할 순 없다는 메시지를 위의 시는 전한다. 문학작품을 읽는 일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보면서 ‘별 볼 일 없으리라’ 여겼던 일상에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혁명의 연장선상에서 매일을 돌보게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면, 비평은 그러한 문학 읽기 작업에 ‘지금 그것만으로 충분한지’ 거듭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글은 현재 한국문학 현장에서 주목할 만한 주제를 논의하는 비평들에 말을 걸면서 함께 더 고민했으면 하는 부분을 짚고, 그를 통해 문학비평이 재미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기 위해 쓰였다. 이 과정에서 촛불 이후 혁명을 어떻게 의미화할지를 적극

  1. 백낙청 「‘촛불’의 새세상 만들기와 남북관계」,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 19면.
  2. 같은 글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