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정요

1956년 전남 해남 출생. 198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당선. 장편소설 『어른도 길을 잃는다』가 있음.

 

 

 

사루비아 사루비아

 

 

1

 

쉬지 않고 물총새가 운다. 바다에서는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하늘에서는 바람이 오고 가지만 문수는 그 사이에서 찌이쯧거리는 물총새 소리를 생생하게 찾아내곤 한다. 염전 건너편 간척지의 농수로가 온통 갈대밭인 것이다. 짝짓기철이면 물총새는 갈대밭 사이로 부산하게 돌아다니며 더욱 찢어지게 울어대곤 했다.

사람들은 코발트색 물총새를 파랑새라고 불렀다. 어릴 적엔 늘 파랑새를 잡으러 다녔다. 소녀 때문이다. 소녀한테는 고추잠자리건 각시붕어건 예쁜 건 무엇이나 잡아주고 싶었다. 연희야!

문수는 속으로 발음하며 가래질을 멈추고 천천히 허리를 편다. 그 이름만 부르면 알코올이 그러는 것처럼 가슴 복판에서 훈훈한 것이 싸하고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약물이나 알코올처럼 중독되어 더이상 의미조차 잃어버린 이름이었는데 이곳 산천으로 돌아오자 약발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하늘이 맑다. 열광하듯 쏟아지는 햇빛으로 아주 먼곳까지 천지는 투명해 보인다. 새삼스레 사방을 휘둘러보던 문수는 문득 몸을 떨며 전율한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이다. 그동안 개발이니 뭐니 하며 세상이 온통 바뀌었지만 이곳만은 그 바람이 비켜간 모양이다.

정말로 모든 것이 그대로다. 푸른 곡식이 넘실거리는 낮은 구릉들이 끝간데없이 펼쳐지고, 여름 곡식을 심으려고 갈아엎은 맨땅도 발가벗은 알몸처럼 드문드문 섞여 있다. 둔덕 하나를 다 벗겨놓은 것 같은 황토밭은 비 그친 날 저녁답의 노을처럼 현란한 홍조를 띤다. 물기가 덜 빠진 비탈밭 아래쪽은 그야말로 새빨간 선홍색인데, 등성이 쪽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옅어지는 파스텔조의 분홍을 띤다.

그림 같은 집을 짓는다더니, 먼 산그늘에 묻힌 빨갛고 파란 농가 지붕들도 아이들 그림처럼 예쁘다.

태양빛에 열광하며 끝없이 반짝이는 바다 역시 옛 모습 그대로다. 때론 너무나 신비하고 때론 너무나 애잔해서 가슴 시린 저 바다가 보고 싶어 미칠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소를 묶어놓기 좋은 조그만 동산 아래의 조용한 마을이었다. 감나뭇집 담을 돌아 고샅을 내려가면 아이들이 세수도 하고 빨래도 하는 맑은 시내가 나오고, 시냇물을 따라가면 버드나무숲이 나오고, 숲을 지나 언덕을 내려가면 들판이 펼쳐졌다.

하지만 간척지 너머 담수호 너머, 먼 신방들은 가물가물한 아지랑이뿐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언덕 뒤 버드나무숲에 숨은 마을은 더욱 보일 리 만무하다. 그러나 문수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환히 보이는 것들을 멍청히 바라본다.

“김씨!”

철로로 일륜차를 밀고 가던 이씨가 갑자기 삿대질하듯 번쩍 팔을 쳐든다. 문수는 감전된 사람처럼 이유없이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쳐다본다. 꼬막살처럼 뻘겋게 충혈된 이씨의 눈이 먼데서도 구저분해 보인다.

“그건 당기면 당그래 밀면 밀래, 멋대로지만 지팡이는 아니란 말여!”

문수가 가래를 지팡이처럼 짚고 서 있다고 하는 소리인가보다. 일은 않고 먼산바라기나 한다고 나무라는 것이다. 이씨는 알코올중독자로 술의 볼모가 되어 염전에 붙잡혀 있는 자다. 고참티를 내고 싶어서 마주칠 때마다 시비조다. 문수는 슬그머니 가래 밀어내는 시늉을 한다.

“젊은 사람이 밤낮 먼산이나 쳐다보고, 쯧. 들 건너 삼거리에 뒤꽁무니 쫓아온 여자라도 맡겨뒀는가?”

“예. 나 아님 죽는다고 해서 데려다놨습니다.”

문수는 되는 대로 대답한다. 그러나 진담으로 알아들었는지 이씨가 어깨를 움츠리며 눈을 빛낸다.

“그럼 아예 일루 데려와서 밥짓고 빨래해달라지 하필이믄 그 먼데다 두나. 빤히 바라보여서 그렇지 꼬불꼬불 논둑길이 근 삼십린데.”

맨발인 이씨는 종아리가 부지깽이처럼 가늘어서 밤낮 끌고 다니는 조그만 일륜차도 부담스러워 보인다. 그래도 강단 하나는 알아줄 만하다. 문수가 이곳에 온 지 오늘로 사흘째, 이씨는 밥은 한끼도 먹지 않고 막소주만 사발로 따라 마시면서 저 중노동을 하고 있다.

“김씨는 그래 어쩌다 이런 데까지 팔려왔소? 얼마에 왔는데?”

이씨가 아예 리어카 손잡이를 내려놓고 철로에 쪼그려 앉으며 묻는다. 문수는 남의 일처럼 말한다.

“백오십만원이랍디다.”

물 잡아놓은 소금밭엔 하늘이 다 들어와 있고, 거꾸로 빠진 이씨가 그 하늘을 이고 있다.

“백오십만원짜리라. 어디서 굴러먹었길래 정육값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여자가 따라왔다니 대단하구먼. 굼벵이도 뒹구는 재주가 있더라고 대단해.”

여자가 따라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 이씨는 노골적으로 감탄한다. 되는 대로 대답한 게 정말 여자를 데리고 온 것처럼 되어버린 문수는 그러나 머리가 핑 도는 바람에 할말을 잃는다. 어디를 가도 이씨 같은 종류의 인간은 하나쯤 꼭 끼여 있기 마련이다. 되는 대로 지껄이며 사람을 건드려서 곧 근본을 들춰내는 것이다. 상종을 않는 것만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수는 얼굴을 떨어뜨려버린다. 그러나 문수는 발밑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금방 외면해버린다. 파랑새를 잡으러 다니던 소년은 간데없고 말라비틀어진 중년 사내가 엉거주춤 구부정하게 서 있는 것이다. 퀭한 얼굴에 시커먼 숯검댕이 눈썹을 달고 늙은 노새처럼.

“비오실 때 득달같이 달려가믄 될 텐데 그걸 못 참고 쯧, 말하는 거 보이 정신은 멀쩡한 사람인데.”

이씨가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리어카를 굴려가자 문수는 헛, 하며 다시 하늘을 쳐다본다. 그러니까 이씨는 밤낮 먼산바라기나 하는 문수를 어딘가 좀 모자란 사람으로 본 모양이다. 하긴 이씨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금 따는 밭이나 다름없던 염전은 세월을 따라 사양산업이 된 지 오래다. 요즘엔 소금도 중국 어느 광산에서 캔 것을 수입해다가 제조해서 먹는다는 것이다. 재래식으로 채염하는 천일염은 우선 인건비 때문에 경쟁력이 없었다. 그래서 염전 주인들은 먹고 재워주기만 하면 무임금도 마다하지 않는 알코올중독자나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을 도시의 직업소개소에서 사다가 쓴단다.

이씨의 말대로 당기면 당그래 밀면 밀래, 하면서 바닥에 가라앉은 소금덩이를 열심히 긁어대던 문수는 얼마 못 가 다시 허리를 펴고 만다. 도대체 손에 익지 않은 일이라서 허리가 금방 비틀려버린다. 손바닥엔 벌써 물집이 잡히고 발바닥도 벌겋게 벗겨져버렸다. 사방팔방 천지가 환히 열린 소금밭에 선 채로 문수는 또 보이지 않는 곳을 바라본다. 이씨의 말대로 비오는 날 한번 건너가보리라 생각을 굳힌다.

옛날에도 장마철이면 염전의 염부들이 삼거리 차붓집으로 몰려와 진을 치곤 했다. 차붓집이 술집으로 바뀌고 꽃처럼 예쁜 각시들이 젓가락 장단을 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때만 해도 염전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었다.

신방들 한가운데를 가르는 삼거리는 원래 물방앗간터였다. 그러다 전쟁 이후에 발전기로 벼를 찧는 정미소가 들어서게 되었다. 신방들의 벼가 전부 삼거리 정미소로 모여들자 차표를 파는 가겟집이 생겨나고 기름집이 생겨나고 이발소가 생겨났다. 세월을 따라 기름집이 슈퍼로 변하고 차붓집은 술집으로 바뀌었다. 풍으로 고개를 흔들던 ‘흔들이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놈팽이 아들이 점포를 술청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눈깔사탕과 센베이과자와 차표를 팔면서 어린아이들과 먼곳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없는 선망을 심던 차붓집은 그래서 모두에게 원망을 심는 술집으로 바뀌고 말았다. 세상천지에 농사일밖에 모르던 건실한 남자들이 술집여자한테 반해서 아내를 때리고 급한 김에 풋나락을 베어 외상빚을 갚는 등 패가망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장마철이 돌아오자 멀리 염전의 염부들까지 꾀어들게 되었다. 인근 마을의 젊은이들과 염부들의 패싸움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대학 3학년을 다니다 군대에 갔던 문수도 첫 휴가 때 군화발로 술상을 차며 객기를 부렸었다. 어떤 것도 용납되고 온세상이 자기 편인 것 같은 두려움 모르는 영혼일 때였다. 그때만 해도 문수는 금방 손에 잡힐 것 같은 푸른 꿈으로 늘 기운생동했다.

그리고 이십년 세월이 흘렀다. 그래도 그때의 염부들과 패가망신한 남자들과 술을 따르던 여자들이 아직도 세월의 저편에 서 있는 것만 같다. 문수는 선 채로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물총새 소리를 다시 찾아보려는 것이다. 물총새 소리는 꿈속처럼 먼데서 희미하게 들려온다.

 

 

2

 

미루나무만큼이나 큰 붓으로 칠한 것처럼 노을이 크고 붉다. 저렇게 노을이 붉으면 들판은 더욱 납작하게 가라앉는다. 동현은 사실 들일을 마친 이런 시간이 정말 좋다. 더구나 연희와 함께 저 큰 노을을 등에 지고 돌아올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이렇게 한 생을 함께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모든 것이 괜찮게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이십여년 전 어느날의 생생한 장면이 눈앞으로 확확 지나가는 바람에 그야말로 심란한 하루였다. 동현은 그때 손을 뒤로 묶인 채 트럭에 실려가고 있었다. 자신들을 향해 총을 쏜 적들이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정렬해 있는 게 보였다. 동현은 그곳에서 벼락치듯 어떤 눈길과 부딪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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