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회사 넘어서기와 신문화사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푸른역사 2000

조한욱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책세상 2000

곽차섭 엮음 『미시사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2000

 

 

김영범 金榮範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한국 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이 있음. kint@taegu.ac.kr

 

 

1. 요즘 국내 사학계에는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서양사학계만 아니라 국사학계도 마찬가지여서, ‘과학적·실천적’ 역사학과 민중사학의 성채로부터 뛰쳐나와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주제와 분야로 슬며시 눈을 돌리거나 과감히들 뛰어들고 있다. 이를 두고 ‘전향’했다고 수군대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새로운 대상, 새로운 주제, 새로운 시각, 새로운 방법, 한마디로 ‘새로운 역사학’의 바람이 묵은 역사학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출판시장에서는 ‘거꾸로 본’ 역사, ‘이렇게 살았다’ 식의 생활사, 성·사랑·죽음의 역사를 다룬 서책들이 호응을 얻기 시작한 지 벌써 여러 해째다. 역사(서)에 대한 대중적 기대와 선호도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세기 중반에는 사회사가 ‘새로운 역사학’의 이름표를 달고 등장했다. 처음에는 사회구조사, ‘사회적’ 영역의 역사를 뜻하거나 사회경제사 및 사회문화사와 혼용되던 사회사의 개념은 이윽고 경제·사회·문명을 두루 포괄하는 전체사로 그 외연이 확장되었다. 그러고는 곧 역사학의 주도적 패러다임의 자리에 올라섰다. 그후 사회사는 역사와 동의어처럼 쓰여서, 망딸리떼사(histoire des mentalités)만 하더라도 사회사와 별개의 분야가 아닌, 그것의 확장이요 첨단적 영지로 간주되었다.

그럼에도 그 ‘전체’로서 아우르지 못한 어떤 결핍의 요소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브로델(F. Braudel)식 전체사의 전망에 짓눌려 숨죽였던 부분들이 마침내 아우성치며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한 모양이다. 의식적으로 ‘사회사 넘어서기’를 주창하는 움직임이 90년대초를 전후해서 주로 미국 역사학계 쪽에서 대두했으니 말이다. 이른바 ‘새로운 문화사’가 그것이다. 그런 한편으로는 각종 ‘포스트◯◯주의’ 사조가 세계사적 격변을 배경으로 승기를 잡게 된 점, 그와 더불어 다문화주의와 탈식민주의 조류가 지성계의 풍향을 바꿔놓기 시작한 점도 기존의 인문학 문제틀의 근본적인 수정 또는 조정의 기운을 부추기는데, 역사학이라고 그런 추세를 비켜갈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런 사태 추이를 주시하면서 제 갈 길을 잡거나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권장할 바에 속하지 탓할 일이 아니다. 말로만 ‘인문학의 위기’니 ‘역사학의 위기’를 떠들고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실천적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근래에는 서양사학계가 그런 방향으로 눈에 띄게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왔는데, 여기 서평 대상으로 올려진 세 권의 사론집도 그런 대응의 시도요 중간결산이라 이해된다. 세 책의 논술구조를 가로지르는 질문은 ‘어떤 눈으로 역사를 읽고, 어떻게 역사를 쓸 것인가’이다. 그것은 40년 전에 카(E.H. Carr)가 던졌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곧바로 상기시킨다.

 

2. 김기봉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는 위의 물음에 새로운 대답을 내놓으면서 역사학의 진로를 새롭게 설정해본 대표적 사례로 들 만하다. 저자가 목표하고 주장하는 바는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하나는 카가 대변한 모더니즘적 역사인식론을 넘어서는 것, 다른 하나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넘어서 ‘새로운 역사학’의 지향점을 확실히 다잡고 그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매우 신중하고도 용의주도한 논법을 쓰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명백히 포스트모더니스트이다. 제3부의 제목에서도 ‘포스트모던 역사를 옹호’한다고 공언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소 색다른 데가 있다. 해체주의는 가급적 멀리하고 재구성 쪽에 주력하는 것이다. 재건적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나 할까.

 

111-383

 

그는 카의 역사인식론의 3대 요소—‘진보로서의 역사’ 개념, 역사연구의 과학성, 현재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먼저 헤겔식 거대담론에 지배되는 ‘근대’ 개념과 진보사관을 가차없이 공격한다. 그리고 과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