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사회, 대안은 있다
사회적경제를 강화해야 할 세가지 이유
‘생활세계의 위기’를 넘어
노대명 魯大明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저서로 『자활정책론』 『민주화·세계화‘이후’한국 민주주의의 대안체제 모형을 찾아서』 『한국사회의 신빈곤』 등이 있음. dmno@kihasa.re.kr
1. 문제제기
한국사회는 지금 세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첫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내실화하지 못하고, 둘째, 건강한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며, 셋째, 생활세계 전반에서 박탈과 격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문제라는 점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 원인과 해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대립할 뿐 좀처럼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개별사안마다 반복적으로 정치·사회적 갈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우리사회가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의 약화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생활세계를 중심으로 소통공간을 확대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고 확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소통공간을 확대하는 방안의 하나로‘사회적경제’(Social Economy)1의 강화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제안의 배경에는 최근 우리사회가 경험하는‘생활세계의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생활세계의 위기라 함은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선 빈곤층, 외환위기 이전보다 크게 심화된 소득불평등, 점차 증가하는 고용불안,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부담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사회에‘교육→노동→소득→소비’의 악순환 고리가 굳어져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학벌이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를 결정하고, 노동시장에서의 지위가 임금과 고용안정성에 영향을 미치고,‘실업·저임금(저소득)·고용불안’이 소득격차를 확대시키고, 가구소득이 교육·주거 등 필수적 소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사회구조가 현세대의 고통에 그치지 않고 다음세대의 계층이동을 가로막고 있다.2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새로운 세상과 가치를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론 사교육비와 주거비 마련을 위해 과도한 노동을 감수해야 하고, 그래도 감당할 수 없다면 다른 지출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눔과 연대의 가치란 요원한 일이다. 대안교육을 생각하고, 새로운 주거개념을 정립하고, 나눔과 연대를 꿈꿀 수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자유주의와 국가주의라는 기존 대책에서 벗어나, 생활세계를 중심으로 나눔과 연대의 삶에 대한 체험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새로운 가치를 토대로 성장해왔던 사회적경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가진 일자리를 창출하고 써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생활세계 구축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시민사회의 소통공간을 확장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내실화하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사회적경제란 무엇인가
사회적경제의 개념 정의
우리에게 사회적경제는 다소 낯선 개념이다. 그리고 유사한 의미의 다른 말과 혼동하기도 쉽다. 예를 들면, 연대경제(Économie Solidaire), 제3쎅터(The Third Sector), 제3체계(The Third System)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의미를 알고 나면, 그다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사회적경제는 이미 우리사회의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정무역(Fair Trade), 지역화폐(LETS), 생활협동조합 등의 활동영역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란 인간을 모든 관심의 중심에 놓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지 자본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자본의 수익보다 일자리를 중시하고, 일자리를 통해 창출하는 사회적 연계를 중시한다.”3 물론 영리기업도 노동자를 존중하고 이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수익을 희생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경제는‘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갖추고, 자본에 따른 수익배분을 제한하는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조직들의 활동영역’을 지칭하며, 활동주체와 관련해서는‘협동조합(Co-operative), 공제조합(Mutuals), 시민단체(Association)의 활동영역’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4 그리고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 또한 이러한 조직에 포함된다.
사회적경제 조직에는 시민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시민단체나 자원봉사단체 등 직접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비영리민간단체(NPO) 등도 포함된다.5 하지만 사회적경제의 특징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등 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조직에 있다 할 것이다. 이 조직들은 사회적경제의 개념이 자리잡지 못한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영리기업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비영리민간단체는 세제상의 혜택을 받는 대신 수익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며, 수익활동에 참여하면 영리기업과 동일한 세제의 적용을 받는 것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유럽국가는 대안적 경제활동방식을 통해 연대의 가치를 실천하는 조직들을 영리기업과 다른 범주로 분류하고 독립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6
새로운 사회적경제의 출현
사회적경제가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전통적인 사회적경제 조직들, 특히 협동조합은 침체일로에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크게 세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회원제에 기초한 협동조합 등 전통적인 사회적경제 조직은 투자규모 경쟁에서 영리기업과 대적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둘째, 산업화에 따른 노동수요 증가로 사회적경제 조직의 고용규모 및 회원규모가 빠르게 감소했다. 셋째, 사회적경제 조직의 자구적 기능 또한 복지국가의 빠른 성장으로 크게 약화되었다. 복지제도가 발전함에 따라 각 개인들은 사회적경제 조직에 가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복지국가의 후퇴는 각국의
- 국내 연구자들간의 합의에 따라 일반적인 의미의‘사회적 경제’와 구별하기 위해‘사회적경제’로 붙여 쓰기로 한다. ↩
- 노동시장에서 보다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교육경쟁은 모든 부모에게 가장 큰 관심사가 된다. 그리고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교육비 지출경쟁은 부모의 소득지위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즉 교육비 지출금액은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크며, 그것이 가구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크다. 그리고 교육에서의 성취도는 부모의 소득지위 및 사교육비 투자규모에 비례한다. 이는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계층이동의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 Patrick Loquet, “Économie Sociale: De l’Insertion à la Solidarité,” Espace social européen, n.516, 2000.6.23~29. ↩
- Jean Delespesse, “L’Économie Sociale: un Troisième Secteur,” décembre 1997; Mike Campbell, The Third System, Employment and Local Development, 3 vols., European Commission 1999. ↩
- 사회적경제는 유럽적 기원, 특히 라틴계 유럽에서 그 기원을 발견할 수 있으며, 비영리민간부문은 미국에서, 자원봉사부문은 영국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사회적경제가 수익을 창출하는 특정한 경제활동조직에 기초한 개념이라면, 후자들은 자원봉사에 의존하는 비경제적 활동에 기초한 개념이다. 그리고 사회적경제가 민주적 결정방식과 수익배분의 제한을 중시한다면, 비영리민간단체는 명시적으로 이러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
- Jacques Defourny et. al., Social Economy: North and South, Centre d’Économie Sociale 2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