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통신

 

삶의 자리로 본 도시빈민

 

 

김중미 金重美

소년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저자. 현재 인천 만석동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음. mansuk99@hanmail.net

 

 

1. 공부방 아이들이랑 자유공원으로 봄나들이를 갔다. 응봉산 서쪽 자락을 타고 기상대로 올라가는 길이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자유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활짝 핀 개나리꽃을 보고 아이들이 반갑다고 소리를 지른다. 같은 또래보다 체력이 약한 공부방 아이들은 중턱쯤에 오르면 숨이 턱에 차 헐떡거린다. 한숨을 돌릴 겸 언덕 위의 난간에 서서 산 아래에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봤다. 자유공원으로 나들이할 때면 아이들은 언제나 이 난간에 기대어 멀리 공장 굴뚝과 지붕 너머로 보이는, 작은 언덕 위의 잿빛 판잣집들 가운데서 제집을 찾아내곤 했다.

“이모, 저기 봐요. 저 아파트가 만석 비취타운이죠? 저 아파트 땜에 우리 동네가 안 보여요.”

한 아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니 아직 외벽을 칠하지 않은 고층아파트가 북성포구를 가린 채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여기서 보니까 더 커 보여요. 이모, 저 아파트 땜에 우리 동네에서 노을지는 게 안 보여요.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저 아파트가 바람길을 막아서 여름에 되게 더울 거래요.”

“기분 되게 나쁘다. 그죠? 저 아파트 땜에 우리집은 이제 낮에도 형광등 켜야 돼요.”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몇년 전만 해도 이 난간에 서서 보이는 산 아래는 송월동의 오래된 저층아파트를 빼면 모두 고만고만한 낡은 주택들만 모여 있는 빈민지역이었다. 공업지대인데다가 똥바다에서 올라오는 갯벌 썩은 냄새와 공장에서 뿜어내는 악취로 숨이 턱턱 막히는 이 만석동에 아파트가 들어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이제 몇달 뒤면 ‘비취타운’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고층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한다. 최근 1〜2년 사이 만석동에만 영풍아파트와 솔빛마을 주공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리고 만석동과 가까운 빈민지역인 수도국산에도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이제 인천의 빈민지역도 서울의 빈민지역과 마찬가지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마포나 수유리, 행당동, 신림동, 봉천동 가파른 산자락에는 판잣집들이 오순도순 낮은 지붕을 맞대고 있었지만 지금은 철옹성 같은 고층아파트들이 산등성이를 따라 위태롭게 서 있다. 그런데 판잣집에 살던 가난한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파트단지마다 영구임대아파트가 들어서긴 했지만 세입자를 비롯한 영세 가옥주들을 다 수용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일자리 때문에 영구임대나 공공임대아파트를 포기하고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니 서울 변두리의 비닐하우스촌이 그들을 다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울을 벗어난 위성도시 변두리의 지하방이나 쪽방으로 밀려났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얼마 전 딸이 입학한 만석초등학교에 갔던 ‘공부방 후배’는 그곳에서 만난 학부모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여기가 글쎄 그 『괭이부리말 아이들』에 나오는 학교라면서요. 내 아들이 이런 학교에 다녀야 하다니 너무 슬퍼요.”

그 학부모는 만석초등학교 뒤 영풍아파트에 입주한 사람이었다. 한달이 지난 뒤, 그 학부모의 아이가 이웃마을 송현초등학교로 전학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부방 아이들은 같이 입학한 아이가 전학가는 까닭을 어렴풋이나마 알고는 있다.

만석동에서 하루가 다르게 쇠하여 없어져가는 집들을 볼 때마다,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들썩거리는 골목에 설 때마다, 더이상 몸뚱이 하나 제대로 누일 땅이 없어지고 점점 밀려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운명을 그냥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건지 고민을 하게 된다. 이제 도시빈민들은 더이상 집단으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흩어져 사회적으로 더욱더 소외되고 차별받는 존재로,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1를 당하는 존재로 남게 되었다. 도시의 가난한 이들은 그렇게 밀려나고 배제되어 잊혀져가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2. 서울시를 비롯한 대도시마다 대규모 빈민지역이 발생한 것은 저곡가·저임금정책을 바탕으로 한 수출지향적 공업화정책이 시작된 1960년대 후반부터였다. 근대화 과정에서 도시빈민은 값싼 노동력의 원천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빈민지역 주변에는 제조업 위주의 영세사업장(하청업체)들이 산재해 있었고, 지역주민들은 하청업체의 노동자로, 또는 하청의

  1. “사회적 배제는 다양한 형태의 배제가 결합된 다차원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배제란, 의사결정이나 정치과정에의 참여로부터의 배제, 고용과 물적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로부터의 배제, 공동의 문화적 과정에 통합될 수 있는 기회로부터의 배제 등을 말한다. 이 요소들이 결합되었을 때, 어떤 특정 지역이 공간적으로 차별받는, 심각한 형태의 배제현상을 낳게 된다.”(신명호 「세계화와 사회적 배제」, 『도시와 빈곤』 200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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