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전성태 全成太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199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매향』 『국경을 넘는 일』 『늑대』 『두번의 자화상』,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등이 있음.

jstroot@hanmail.net

 

 

 

상봉

 

 

1

 

눈발은 더 거세졌다. 호텔 로비에 집결한 가족상봉단, 자원봉사자들, 취재진은 걱정스럽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불과 삼십분 전부터 기습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눈에 앞마당에 대기한 버스들마저 자우룩하게 지워져갔다. 주차장 일대에서 눈을 치우던 인부들도 철수하고 보이지 않았다. 출발이 지연될 수 있다는 얘기는 도는데 아직 적십자사의 공식 발표는 없었다. 노란색 조끼를 입은 한적 자원봉사자들이 의자를 내와 연로한 상봉자들 앞에 놓았고, 거기에 장시곤도 앉았다.

허어, 하고 앞자리에서 누군가 장탄식을 했다. 휠체어에 앉은 노인 같기도 하고, 창가에 다녀온 작달막한 털모자 노인 같기도 했다. 장시곤에게는 사백여명이 운집한 소음 속에서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마치 자기가 뱉은 소리 같았다. 늦더라도 출발한다면 모를까 아예 무산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었다. 지난 추석 계기 상봉이 연기되었다가 설을 앞두고 가까스로 재개되어 속초까지 온 이들이 많았다. 장시곤도 그런 마음고생을 겪은 상봉자였다.

그저께 뉴스에는 두 딸을 만나기로 한 구순 할머니가 세상을 등진 사연이 보도되었다. 겨우 넉달 새라지만 세월과 싸우는 고령자들이었다. 북측도 마찬가지여서 추석 때 명단에 있던 이름이 이번에는 빠진 경우도 있다고 했다. 건강을 이유로 방북을 포기한 이산가족들도 꽤 되고, 당장 어젯밤에도 집으로 돌아간 노인이 있었다. 장시곤은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만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어깨에 가만히 손을 놓았다. 뒤에 서 있던 딸아이였다.

“걱정 마요. 눈이 그치기만 하면 출발할 거예요. 요즘 세상에 눈 온다고 가지 못하는 길이 어딨겠어요.”

장시곤은 딸의 손을 토닥여주었다. 역시나 뒤에서 아들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다섯시간 길이야, 누나.”

“우리야 그렇다 쳐도 북측 사정은 또 다를지 몰라요.”

며느리도 거들었다.

“우리 사정이라면 벌써 설명이 있었겠죠.”

“그렇겠지? 북한 쪽 문제일 거야. 거기도 백오십명이나 금강산으로 넘어온다는데 쉬울라고. 교통 사정이야 빤할 테고, 눈이 여기보다 더 오면 오지 덜하진 않을 거고.”

며느리와 아들 내외가 말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그쪽은 사람들 동원해서 후딱 치울걸.”

딸이 말했다. 장시곤은 딸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거슬렸다. 착하고 영특했던 애가 그렇고 그런 사위를 만나 살면서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눈이 그쳐야 말이죠. 근데 당신?”

며느리가 아들을 쪼듯이 불렀다. 그 소리에 장시곤도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셋이나 되는 장년의 자식들이 자신을 호위하듯 서 있었다.

“당신 자꾸 북한, 북한 한다? 어제 교육 받아놓고선.”

“내가 그랬어?”

“연습 좀 해둬. 실수하지 말고.”

그건 시아버지나 시누이도 새겨들으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자식들의 대화를 들을수록 장시곤은 절망스러웠다. 날씨를 두고 정치놀음 운운하며 누구를 탓할 수 없다. 오래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이 일은 변수가 많아 사람이 하는 일 같지 않다. 그가 상봉자 명단에 들었을 때 친구 하나가 로또에 당첨됐다고 표현했는데, 정말 복권을 손에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숨 한번 시원히 내쉬지 못하고 있었다.

로비 한쪽이 술렁거렸다. 적십자사가 설치한 안내데스크 쪽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거기는 어제 출경 등록을 받던 곳이었다. 장시곤 가족이 있던 자리가 갑자기 후미가 되면서 그들은 고개를 빼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장시곤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적십자사에서 나온 책임자가, 이틀을 겪으며 낯을 익힌 여자가 장내가 조용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결정났나봐.”

아들이 말하고는 성큼 나서서 사람들 틈으로 들어갔다. 옆자리 노인은 현장에서 지원하는 보청기를 귀에 꽂았다.

책임자가 목소리를 높이더니 역시나 출발 시간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상황이 좋아지면 열시 반에 출발하겠다고 덧붙였다. 두시간이 떠버리는 셈이었다.

“연로하신 분들이 많으니까 가급적 객실에서 대기해주세요. 지원팀이 호별 방문을 해서 다음 일정을 안내드릴 거예요. 버스에 이미 실은 화물들은 그대로 두기로 했어요. 개인이 소지한 짐들은 여기 맡겨놓으셔도 되고요. 걱정 많으신 줄 알아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번 상봉 행사는 난관이 많았고, 그걸 다 헤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죠. 꼭 모시고 가겠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끝말은 현장 분위기에 휩쓸려 즉흥적으로 나온 발언이겠지만 여자가 꼭 데려다줄 것만 같아서 장시곤도 박수를 쳤다. 저까짓 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강산 일원에도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는데 혹시 북측도 상봉자 이송이 지연되고 있나요?”

취재진 쪽에서 질문이 나왔다. 책임자가 대답했다.

“출발 지연은 우리 쪽 사정만으로 결정된 겁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고 있지만 대설주의보로 동해선 육로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다행히 북측 가족들은 어제 이동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해요. 이제 우리만 가면 됩니다.”

브리핑이 끝났다. 상봉단이 객실로 돌아가느라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가족마다 자원봉사자가 한명씩 붙어서 북새통 속에서도 질서가 잡혔다. 휠체어를 탄 노인을 둔 가족들이 먼저 승강기 쪽으로 이동했다. 장시곤 가족을 맡은 자원봉사자 김은숙은 조장까지 맡고 있어서 로비에 내놓은 의자 정리를 통솔하고 있었다. 김은숙은 장시곤이 거동에 불편이 없고 자녀들이 알아서 잘해서 걱정을 놓는 눈치였다.

아들이 돌아와 말했다.

“우리도 방으로 올라가죠, 뭐.”

장시곤은 짐을 싸 나온 방으로 다시 드는 게 내키지 않았다. 객실에서 방북이 취소됐다는 궂은 소식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율배반적으로 그는 눈 내리는 바깥 풍경으로 자꾸 눈이 갔다. 북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면 저런 눈은 장관이었다. 설악은 부러 관광도 오는 곳 아닌가. 그러나 그는 자식들을 생각해서, 시종 저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입장이기에 순순히 호텔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2

 

객실에 들어서자 며느리가 외투를 받을 양으로 손을 내밀었다.

“금방 나설 텐데 성가시게 벗고 그러냐.”

장시곤은 목도리만 풀어내며 말했다.

“두시간이나 남았는걸요.”

“두시간이 뭐야. 그건 또 가봐야 알겠구만. 아부지, 기왕 이렇게 된 거 좀 쉬세요. 이제 정신없이 사흘을 보내실 텐데요.”

딸까지 거들어서 그는 별 수 없이 목걸이 명찰을 벗겨내고 외투 단추를 풀었다. 그는 며느리에게 외투와 목도리를 건네고 명찰은 다시 목에 걸었다. 조끼 차림으로 그는 소파로 물러나 앉았다.

“너희들도 쉬어라, 피곤들 할 텐데.”

인천에서 새벽길을 나섰고, 속초로 와서 등록을 하고 방북교육을 받고, 밤으로 이어진 건강검진까지, 그는 어제 하루 동안 시달린 일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새벽같이 일어나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오후 세시에 첫 상봉이 잡혀 있다는데 그건 물 건너갔지 싶었다.

며느리와 딸이 작은방으로 들고, 아들은 텔레비전 리모컨을 찾아 뉴스 채널을 켰다. 이산가족상봉 뉴스가 특보로 전해지고 있었다. 시동을 걸고 눈 속에 묻힌 십여대의 관광버스와 밖을 내다보는 노인들의 착잡한 얼굴이 차례로 잡히고, 출발이 지연되고 있다는 뉴스가 반복되었다. 기상캐스터도 연결되었는데 동해 일원에 내린 대설주의보가 정오를 전후로 해제될 거라고 했다.

“금강산 쪽 뉴스는 한마디도 없네.”

아들이 말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장시곤은 거실 베란다를 내다보았다. 7층에서는 뿌연 잿빛 하늘만 보였다. 뉴스 화면으로 보이는 눈발이 더 선명해서 그는 창밖이 더 비현실적으로 보였고 이내 창에서 눈을 거두었다.

화장실에서 아들이 며느리를 찾았다. 장시곤은 아범이 찾는다고, 방에 대고 전했다. 며느리가 나타나 화장실 문을 버긋이 열고 말했다.

“아침에 안 씻었어?”

“바빴잖아. 짐 내놓고 어쩌고 하느라고 머리 감을 짬이 없었어.”

“지금 어디서 샴푸를 찾으라는 거야. 그거 그냥 쓰면 안 돼?”

탈모가 심한 아들은 따로 쓰는 샴푸가 있었다. 이번 여행길에 알았다. 내일모레 환갑 맞을 사람이 머리 지키겠다고 하는 짓이 낯설었다. 며느리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텔레비전 소리만 남고 객실이 조용해졌다. 왠지 그는 긴장에서 놓여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여행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자식들과 제주도로 태국으로 갔던 그런 여행하고 다를 바 없는 여행.

장시곤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는 창가로 가서 밖을 내려다보고 옷걸이로 걸어갔다. 외투를 걸치고 목도리를 둘렀다.

가족상봉단이 빠졌는데도 1층 로비는 행사 지원인력과 취재진으로 여전히 붐볐다. 이번 상봉에는 백에서 셋이 빠진 아흔일곱 가족이 방북 길에 오른다. 가족당 다섯까지 동반가족으로 방북할 수 있는데 장시곤 가족은 넷만 왔다. 미국에 사는 여동생 현숙이 끝내 합류하지 못했다. 장시곤은 조카가 섭섭했다. 제 어머니에게 영주권이 없어서 이번에 들어가면 다시 미국으로 못 나온다는데 다 늙은 사람, 한국에서 여생을 보내게 하면 좀 어떤가. 기껏 손주들 돌보는 식모 신세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을 것이다. 현숙을 만나지 못한 세월도 십오년이 넘었으니 이도 이산가족이 된 셈이 아닌가 생각했다.

장시곤은 로비의 라운지까페로 갔다. 그는 아침식사 때 딸이 가져다주는 커피를 입만 대고 말았다. 자식들은 그가 커피를 즐기는 건 알지만 이른 아침은 피하고 오전 느지막이 마시는 습관을 몰랐다. 개인택시를 그만두고 나서도 십년째 그렇게 마셔왔다. 혈압 환자에게는 좋지 않다고 하나 그는 커피를 마셔야 점심에서 오후로 넘어갈 기력이 생겼다. 커피 마시기에 평소보다 시간이 일렀지만 그는 커피를 두고 눈 곁에 앉아 있고 싶었다.

매장 아가씨가 계산을 끝내고 “눈발이 약해졌어요. 곧 가시겠는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장시곤은 창 쪽을 바라보았고 긴가민가해서 창가로 걸어갔다. 확실히 하늘이 벗겨져 있었다. 입때껏 보이지 않던 리조트의 물놀이시설과 그 너머 산줄기가 일어나 있었다. 버스 기사들이 앞유리에서 눈을 털어내고 있었으며 제설차까지 동원되어 여기저기서 제설작업이 한창이었다. 바깥의 활기가 몸으로도 전해졌다.

그는 커피를 받으려고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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