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윤영수 尹英秀

1952년 서울 출생. 1990년 제1회 현대소설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사랑하라, 희망 없이』 『착한 사람 문성현』 『자린고비의 죽음을 애도함』 등이 있음. yeongsuyoon@hanmail.net

 

 

 

새떼

 

 

박윤명이 까페에 나타난 때는 작년 12월 초였다. 내리는 눈이 땅에 닿기도 전에 행인들의 옷자락에 휘말려 자취를 감추던, 겨울치고는 꽤 푸근한 날의 오후였다.

물론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사람당 오천원. 젊은 여대생들, 남녀 커플들, 간간이 끼어들지만 일단 보기 시작하면 남편에 자식에 시어머니 남은 명줄까지 한번에 네댓 명분을 거뜬히 해치우는 아줌마들을 상대로 신명나게 사주풀이를 하고 있었다. 결혼운에 취직운, 재물운, 건강운……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강남 일대의 까페에서 그리 빠지지 않는 사주쟁이였다. 생년생월생일생시 여덟 글자의 조합으로 나는 내 입의 풀칠과 까페 사장 김승우에게 건네는 월세 30만원과 전처 송현숙 계좌로 부치는 아들양육비 40만원과 열세평형 헌 오피스텔을 구입하기 위해 융자를 받는 대신 든 은행 적금 50만원을 해결하고 있었다.

사주까페에 둥지를 튼 지 3년째였다. 그동안 까페에서 친구들과 마주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따지고 보면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커피나 주스 한잔 값이 웬만한 식사 두 끼에 해당되는 강남의 호화로운 골목 까페에 하릴없이 드나들 인간은 우리 또래 중에 별로 없었다. 내 나이 올해로 서른여덟, 내 연배라면 한창 생업의 현장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돌아치거나 아니면 아예 백수가 되어 자판기 커피를 뺄 동전푼에도 가슴을 조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딱 한번, 여자친구와 들어서는 대학 후배녀석을 맞닥뜨릴 뻔한 적은 있었다. 녀석을 알아본 순간 내가 먼저 자리를 피했다.

박윤명. 나와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동창. 20년이 지났음에도 그는 별로 달라진 구석이 없었다. 바짝 치켜 깎은 스포츠형 머리에 넓은 이마, 고등학생들이 입음직한 진회색 더플 반코트에 삼십대 후반의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구한 표정. 내가 쳐다보자 어린애처럼 반가워하며 손을 쳐들었다가 이내 어색하여 제 가슴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물론 나는 반갑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대로 일을 계속했다. 여자분 사주에 불이 많으시군요. 그런데 남자분은…… 다행이네, 나무가 많네. 서로 돕는 궁합이에요.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이들이 각기 내게 궁합을 보았더라면 결과는 다를 수 있었다. 여자 성질이 불이네요. 뭣하러 사귀어요? 이 남자 사주에는 돈이 없네. 각오해야지 뭐. 그들의 사주풀이가 끝나고 나는 또다른 테이블의 여대생 둘을 대했다. 손님은 개띠하고는 맞지 않아요. 개도 키우지 말고 보신탕도 먹지 말고. 어머머 어떡해, 우리집에 개 있잖아. 쌍꺼풀에 턱뼈까지 교정한 것이 분명한 여자가 옆 친구의 어깨를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돼. 취직도 안되고 시집도 못 가.

한 시간이 넘도록 윤명의 시선은 내게 박혀 있었다. 하는 수 없었다. 2층 홀 전체에 사주풀이를 원하는 사람이 더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나는 그가 자리잡은 테이블로 다가갔다. 바쁘구나, 그가 손을 내밀었고 나는 소파에 앉았다.

“생년월일이나 불러라. 오천원 선금이다.”

메모 준비를 하는 나를 보고 윤명은 겸연쩍어 몇번이고 안경코를 추어올렸다.

우연히 내 전처 송현숙을 만났다고 했다. 그녀와 내가 갈라선 지도 벌써 4년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라면 내 소식을 알고 있을 터였다. 몇달 전, 까페에서 처제와 마주친 적이 있다. 언니와 열한살 터울이 지는 막내처제는 아직 대학생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까페에 들렀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끝이었다. 친구들이 자기들의 테이블에 나를 불러 사주풀이를 하게 할 때에도 그녀는 모르는 사람인 척 행동했다.

그런데 박윤명과 송현숙은 서로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송현숙, 송정희. 그가 이것저것 얘기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나는 내 전처와 윤명의 처가 8촌간인 사실을 기억해내었다. 희한했다. 전처와 관계된 일들은 수백년 수천년 전, 전생에 있었던 일처럼 아스라했다.

그러고 보니 윤명을 마지막 본 때도 고등학교 시절인 20년 전이 아니라 10년 전이었다. 내가 윤명보다 몇달 먼저 결혼했는데 그도 나도 서로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것이다. 윤명의 신부는 피부가 백인처럼 하沍다. 그녀가 자신의 드레스 앞자락을 밟아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하자,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 하며 윤명이 꽤 당황해했다. 별로 즐겁지 않은 날이었다. 결혼식장에서 녀석의 장모와 내 장모가 사위의 학벌과 집안 등을 일일이 들추며 비교하는 통에 집에 와서 아내와 한바탕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윤명은 그때 미국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는 중이었다.

“용진아, 너…… 나한테 유감 있냐?”

표정을 풀지 못하는 나를 보고 녀석이 물었다.

 

“승우씨, 사랑해.”

잠깐 동안이나마 내가 까페 사장 김승우가 되어보는 것은 사장의 계집인 현미 덕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까페 일을 끝낸 자정 가까운 시각에 그림자처럼 내 오피스텔에 스며들었다가 이른 아침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녀는 사장의 담배, 사장의 썬글라스처럼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사랑해 승우씨. 현미와 처음 몸을 섞던 날 그녀는 나를 사장의 이름으로 불러놓고 움찔했다. 나를 사장으로 상상하고 일을 치렀던 게 분명했다. 사랑해 현숙아. 그 순간 나 역시 현미에게 아무렇지 않게 내 전처 송현숙의 이름을 씌워주었다. 이후로 우리는 자유로워졌다. 까페 사주쟁이 장용진과 까페 여종업원 김현미가 아니었다. 사장 김승우와 바람난 유부녀 송현숙이었다. 현미는 나를 만나 사장 김승우를 향한 자신의 못다 푼 사랑을 쏟아놓았고 나는 사장의 강한 카리스마로 가학적인 쾌감을 즐기며 내 전처인 송현숙을 능멸했다.

딴놈하고 흘레붙으니 남편이고 자식이고 뵈는 게 없지? 더러운 암캐 같은 년.

잘못했어 승우씨. 내가 미쳤어. 나한테는 자기뿐이야. 사랑해 승우씨.

사장의 원래 이름이 김대풍이라는 사실도 나는 현미를 통해 처음 알았다. 명함에도 김승우 석자를 박아놓았으니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사장 김승우는 탤런트 김승우를 흉내내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똑같은 머리 스타일, 똑같은 썬글라스, 티셔츠, 담배. 관자놀이에 셋째 넷째 손가락을 대는 자질구레한 버릇까지 탤런트 김승우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음을 우연히 잡지책에서 확인했을 때, 나는 사장에게 정신병 징후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까페에 드나드는 손님들 중에도 썬글라스를 낀 사장을 탤런트 김승우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까페가 탤런트들의 단골집이라는 소문도 바로 사장의 그런 행동에 기인했을 터이다.

사장은 사주까페 외에도 같은 골목 안에 또다른 까페 하나와 호프집을 경영하고 있다. 개점휴업이니 불황의 여파가 구제금융시대보다 더 혹독하다느니 사람들마다 앓는 소리를 해대지만 그의 업소 셋은 모두 흑자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올해로 서른여섯, 나보다 나이가 두살이나 어린 사장이 자수성가하여 이 무서운 강남에 어엿하게 뿌리를 박은 데에는 그 나름의 독특한 경영방식이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자신은 명품시계에 최고급 양복을 걸치고 다니면서 단돈 천원에 벌벌 떤다거나 주방에서 내놓은 쓰레기까지 도로 들여와 잔소리를 해대는 버릇은 탐욕스런 부자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 쳐도, 업소마다 자기 계집을 공공연히 찍어놓아 자신의 주도권과 이익을 이중삼중으로 챙기는 배포는 여간하여 흉내낼 수 없는 비장의 무기라 할 만하다.

어리석은 여자들의 허영과 기대심리에 그가 던져준 떡밥은 바로 사장의 아내자리다. 부인과 네살짜리 아들을 거느리고도 사장은 ‘마누라는 언제든 바꿀 수 있다’고 호언했다. 그때마다 들먹이는 것이 술집 호스티스 출신인 아내의 전력이었다. 현미가 사장의 계집이 된 지도 4년, 자신의 기대가 허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떡밥을 입에 물고 차마 뱉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희한한 일이다. 사내가 공개적으로 계집 여럿을 거느리고 큰소리를 치면 오히려 그 모양이 당당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거느리는 암탉이 많을수록 수탉이 그럴듯해 보이는 이치다. 송현숙에게도 그런 배짱으로 대했어야 옳았다.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는 열등감에 비루먹은 거지처럼 구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 담배.”

현미가 담배를 물려주었다. 몸을 섞은 후 천장을 보고 누운 채 담배연기를 피워올리는 것도 현미가 일러준 사장의 버릇이었다.

그랬다. 나는 사장을 닮기로 결심했다. 사장이 탤런트 김승우의 겉모습을 드러내고 베끼는 데 반해 나는 사장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베끼기로 마음먹었다. 영어단어가 조금만 길어져도 입으로 옮기지 못하는 무식함과 부모 혈육에게도 쌍욕을 서슴지 않는 그의 난폭한 성격과 돈이라면 엎드려 남의 발바닥이라도 핥을 수 있는 그의 철저한 황금숭배주의를 나는 온전히 내 것으로 하기로 했다.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돈벌이를 제대로 하는 것만큼 훌륭한 미덕도 없다. 중학교 중퇴면 어떤가. 방바닥에 칼을 꽂아 제 부모의 논밭 문서를 갈취했으면 어떤가. 성공하지 않았는가.

현미의 맨가슴이 어깨에 들러붙었다.

“큰일났어. 갈수록 승우씨하고 사장하고 헷갈려서. 사장한테 ‘자기야’ 했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죽고 싶냐? 끝장 보고 싶어?”

나는 현미를 밀어젖혔다. 사장에게 걸리면 끝이었다. 평소에 사장이 읊는 대로 그녀는 당장 포주에게 넘겨질 것이고, 나 역시 사장이 사주한 조직폭력배에 의해 목숨마저 위태로울지 몰랐다. 사나이로서의 뚝심 키우기도 둘의 관계가 들통나지 않는 한에서만 가능했다.

“걱정 마. 사장은 눈치 못 챘어. 진짜라니까.”

현미가 반죽 좋게 다시 달라붙었다.

내가 까페의 사장이 된다 해도 나 역시 현미를 정식 아내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현미는 미련하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몸을 섞을 때 내는 비음과 쓸 만한 각선미 정도다. 사장 부인이 잠자리에서는 더 나을지 모른다. 아이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사장 부인의 허리는 그야말로 한줌이다. 잠자리뿐 아니다. 계집에 둘러싸여 사는 사장이 그녀를 내치지 않는 데에는 비단 아이 어미라는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호스티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장 부인은 항상 싸늘하고 도도하다. 사장 부인에 걸맞은 권위가 그녀에게는 있다. 현미가 아니라 송현숙 정도라면…… 사장 부인자리를 걸고 붙어볼 만하리라. 오만함, 냉정함, 부도덕함.

송현숙이 키우는 내 아이가 과연 내 씨인지는 아이를 낳은 어미만이 알 일이다. 그녀가 웬 놈과 승용차 안에서 얼크러져 있는 것을 본 이후로 내 악몽은 시작되었다. 물구나무서서 아파트로 엘리베이터로 주차장으로 돌아다니는 꿈. 허공으로 쳐든 두 다리 사이에는 큼지막한 빈 종이박스를 끼우고. 꿈에서 깨어나면 온몸이 땀에 절고 팔과 어깻죽지가 끊어질 듯 아팠다.

“그런데 자기 친구 박선생, 그렇게 내버려둘 거야? 안됐더라. 벌써 일주일짼데 오만원도 못 벌었을걸. 사람만 착해빠져서는.”

“입 닥쳐. 바보 같은 년.”

대꾸야 강퍅하게 쏘아붙였지만 윤명의 서투름은 나로서도 봐줄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수술하셨지요? 아뇨, 안했는데요. 몸에 칼자국 같은 거 없으세요? 그런 거 없어요. 이상한데, 칼자국이 있어야 되는데. 칼이 있다고 사주에 나오거든요. 혹시 직업에 칼이…… 아니라니까요. 윤명의 어설프고 답답한 집착에 여대생 둘은 한껏 미간을 찌푸렸다. 됐어요, 안 볼래요. 사주풀이 값도 챙기지 못하고 무안하게 일어서는 윤명을 나는 모른 척 외면했다.

나는 왜 순간순간 사장이 되기를 잊어버리는지. 사장 같으면 어림없었다. 친구가 아니라 부모, 그보다 더한 이의 간청이라 해도 자신에게 득 되지 않는 일에는 눈도 깜빡이지 않을 사람이 사장이다. 그런데…… 윤명에게 정말 다른 선택이 없었을까? 국립대학 출신에 미국 명문대 사회학 박사, 그 잘난 녀석이 아무리 잠시 동안이라 해도 사주쟁이를 해야 할 만큼 막막했을까?

윤명의 학벌이나 경력은 사장에게 밝히지 않았다. 본인이 원치 않기도 했거니와 밝힌다고 도움이 될 것도 없었다. 알고 보면 강남의 까페 사주쟁이들의 학력도 무시할 것은 아니었다. 석박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버젓한 대학 출신이 꽤 섞여 있었다.

만 6년이 넘게 시간강사를 했잖아, 전임자리 준다는 약속만 믿고. 이번에 다른 사람으로 확정됐어. 재단에 1억을 주었다는 소문도 있고. 그러니 뭘 해. 3년 계약직이라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걸. 이젠 포기해야지. 어차피 시간강의 맡아가지고는 먹고살기도 어렵고. ……부탁한다. 몰랐던 인생을 새로 배울 수도 있을 것 같아. 제자들한테 들키면 창피하기야 하겠지만. 내가 돈을 벌지 못하면 우리 네 식구 굶어죽는다. 특히 우리 마누라, 심장이 안 좋잖아. 약값만 해도 그렇고. 임용 안되었다는 사실, 마누라한테 알리지도 못했어.

유달리 하얗던 윤명의 신부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심장병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녀와 팔촌간인 송현숙도 몰랐던 것 같다. 남의 불행을 즐기는 그녀가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떠벌려도 여러번 침을 튀겼을 것이다.

과외교습도 해봤지, 영어선생 자리. 가정교사도 해보고 학원 취직도 하고. 요새 학원선생은 코미디언이더라. 가짜 코를 매달고 삐에로 옷을 입은 선생한테 몰려가더라.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사람들 속에 파묻혀 몸을 가릴 수 있으면 더욱 좋고. 당분간만이라도.

“자기가 거들어주면 훨씬 나을 텐데. 사장한테 삼십만원도 벌써 냈다며. 집이 양수리라나, 출근하는 데만 두시간……”

“그만 하랬지, 송현숙. 이년이 지금 누구한테!”

나는 벌컥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승우씨. 아니, 사장님.”

자기, 화난 것 아니지? 현미가 더욱 달라붙으며 어리광을 떨어댔다. 사장처럼 냉혹하게, 마치 내 눈앞에 윤명이 서 있는 것처럼 나는 눈을 부라렸다.

녀석이 사주풀이를 제대로 하지 못해 쩔쩔매는 꼴도 보기 싫었지만, 사주쟁이로서 제대로 자리잡는 꼴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내가 이 꼴로 사는 이유가 지난 세월 동안 내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면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녀석은 아니었다. 성실, 노력, 근면, 모범. 녀석은 학창시절 내내 학교와 부모들이 칭찬해 마지않던 좋은 낱말들의 표상이었다. 천하의 박윤명이 까페에 앉아 심심풀이땅콩 사주풀이를 하다니,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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