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새로운 노사관계와 총체적 학습사회

 

 

김장호 金章鎬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뉴패러다임포럼 공동대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저서로 『한국노동경제론 1: 새로운 생산방식과 고용』 『한국노동경제론 2: 새로운 노사관계와 보상제도』 『미국의 근로자복지제도』 『자동화와 고용』 등이 있음. jhkim@krivet.re.kr

 

 

1. 제2세대 질적 노동개혁의 필요성

 

우리는 지금까지 10년 이상을 개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오고 있다. 개발시대에 고착된 정부주도의 권위주의체제를 허물고 탈권위주의적이고 자율적인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개혁의 지향이었다.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의 청산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적으로는 경제사회 운용의 기본틀을 정부주도에서 시장주도로 바꾸는 데 있었다. 다시 말해 ‘보이는 손’에 의한 권위와 지시의 논리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율과 경쟁의 원리로 우리 사회 전반을 재구축하려는 노력이었다. 따라서 정치민주화를 포함하여 개방화, 규제완화, 경쟁촉진, 공기업 민영화, 작은 정부의 구축 등이 개혁의 주요과제였다. 구질서를 청산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개혁은 근대적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틀을 갖추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개혁성과는 부문에 따라 그 명암이 교차한다. 그러나 21세기의 시대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차원에서의 개혁이 요구된다. 세계경제환경이 크게 달라지고 지식기반경제가 대두하는 21세기에 우리 사회의 통합과 도약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더욱 근본적인 질적인 개혁, 차세대적인 개혁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제도와 의식 양면을 포괄하며 질적 변화를 수반하는 전면적 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사회의 종합적인 역량을 업그레이드 해나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90년대 말에 우리가 경험한 소위 IMF 경제위기는 경제사회의 총역량을 지속적으로 제고하기 위한 제2세대 질적 개혁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경제위기의 성격이 생산체제 자체의 비정합성에서 초래된 생산성 위기로 판명되면서 경제사회의 근본적 체질강화 없이는 지속적 발전과 성숙이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제2세대 개혁은 국가와 시장, 특히 노사관계 분야에서 필요하다.

새로운 노사관계의 필요성은 사회경제발전의 핵심요소가 달라졌다는 데서 출발한다. 정보화·세계화(digital globalization)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하면서 국가발전의 원천은 실물자본에서 기술력과 인적자원으로 전환되고 있다. 규모 경쟁 및 인건비 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기존의 발전패러다임은 중국을 비롯한 후발국들의 추격으로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제조업의 공동화(空洞化)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우리의 노동현실에서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고용형태가 비정형화되고 고용불안정이 크게 높아졌으며, 소위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가시화되면서 절대적 고용기회의 부족이란 문제가 크게 대두했다. 노동계층간의 격차확대와 양극화 현상이 초래되면서 사회통합이 훼손되었고, 이러한 노동문제를 해소하는 데서 현 노사관계는 무력하기만 하다. 이는 지난날 공업화단계 개발시대의 고도성장기, 대량생산체제에서는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노동문제의 성격 자체가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90년대 이후 노동개혁은 주요 개혁과제의 앞자리에 있어왔다. 국제기준에 맞추기 위한 노동법의 개정도 없지 않았고, 경제위기 국면에는 노·사·정의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낸 바 있다.그러나 지금까지 꾸준하게 시도된 노동개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노사관계는 분배주의 중심의 대결구도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노사간의 신뢰기반은 대단히 취약한 실정이다. 노사가 경제사회발전을 이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왜 그런가? 여러가지 요인이 지적될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노동개혁이 제도와 형식에 치우쳐 행위주체들의 의식 및 관행이 철저히 전환되지 못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필자는 21세기의 새로운 경제사회환경에 적극적으로 부합하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이념과 목표가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제 노사관계의 목표는 단순한 노사안정에 머물 수 없다. 새로운 노사관계의 정립을 통해 거시적으로는 기업과 사회경제발전의 주요한 원동력과 원천을 찾아내야 하고 미시적으로는 기업조직의 효율화와 사회적 공정성 제고라는 기업혁신의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부합하는 새로운 기업윤리와 노동윤리를 정립하는 계기를 찾아야 한다. 현재와 같은 갈등과 대립 및 불신이 팽배한 노사관계, 기업주는 주인이고 노동자는 객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확연한 노사관계를 그대로 두고서는 세계화·정보화시대의 기업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없으며 우리 경제의 선진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새로운 노사관계의 구축은 노사관계를 보는 새로운 사고의 도입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노동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바람직한 대안과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전과 패러다임이 정립되어야 한다.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효율과 형평이 조화되는 경제질서를 위해서는 노사관계에서 사람의 가치가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적 패러다임이 요구된다.이 글은 이러한 관점에서 인본주의 기업패러다임과 노동편성원리의 방향과 과제를 현실 사례와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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