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촛불의 눈으로 한국문학을 보다
새로운 페미니즘서사의 정치학을 위하여
심진경 沈眞卿
문학평론가. 평론집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 『한국문학과 섹슈얼리티』 『떠도는 목소리들』 『여성과 문학의 탄생』 등이 있음. stariz87@naver.com
1.#성폭력과 한국문학
세계는 지금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어놓은 성폭력 폭로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거물급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할리우드 여배우들을 비롯해 회사 직원, 영화 스태프 등을 수십년간 성추행 및 성폭행해왔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이런 폭로는 할리우드를 넘어 미국 전역에서 자신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폭로하는 ‘미투(MeToo)’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사건은 성폭행의 대상이 사회초년생 혹은 초심자에게 집중되었다는 점에서 2016년 한국문단을 떠들썩하게 했던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연상시킨다. 이를 통해 터져나온 폭로와 고백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나이 든-선생인-유명한-남성작가’가 ‘젊거나 어린-제자인-등단하지 않은-여성독자’를 성폭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1 각 분야에 입문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이러한 성폭력 경험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성폭력은 초심자인 젊은 여성의 입사 절차처럼 여겨질 정도다.2 그러나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나이 든 남자가 어린 입문자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스토리는 이미 다양한 서사적 재현물을 통해서,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소문을 통해서, 술자리의 은밀한 성적 농담으로, “이야기의 클리셰”3처럼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익숙하게 소비되어오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왜 지금 이토록 강력한 사회정치적 이슈로 뜨겁게 타오르는가?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서 주목되는 건 두가지다. 하나는 성폭력 피해자의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커밍아웃이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폭로가 개별적이거나 특수한 방식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를 주저한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은데, 그 이유는 여성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보통의 성경험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가까운 가족에게 털어놓아도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네 행실만 의심받고 아무도 네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4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다. 많은 경우 여성의 성폭력 피해 경험이 비밀에 부쳐지고 개별 여성이 감당해야 할 고통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순결 이데올로기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이 말 자체가 사어(死語)가 된 지금 이 시점에서도 “깨진 유리 그릇” “걸레” 등의 표현이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여성의 성경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비록 그 경험이 강제적 폭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성폭력 피해 여성의 커밍아웃은, 남성중심적으로 구획되고 위계화된 ‘좋은’/‘나쁜’ 여성의 구분을 해체하고, 나아가 자신들을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가부장제적 질서 그 자체를 심문하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최근의 성폭력 이슈는 성폭력 피해 여성의 폭로와 고발이 집단적·연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전의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여성의 성폭력 피해 사실에 대한 폭로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강간과 성추행, 성희롱은 몇몇 개인에게 발생하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닌, 오랫동안 한 성이 다른 성에게 일상적으로 가하는 부당한 폭력과 지배의 표현으로 의미화된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커밍아웃이 쌓일수록 아이러니컬하게도 개별 피해 여성들의 이름이 익명화되고 전체 발화의 효과는 더 강렬해지는 현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의 미숙함과 실수의 결과로 여겨지던 문제와 갈등이 사실은 사적인 게 아니라 비슷한 사회적 위치에 처한 많은 여성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갈등이자 모순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이러한 집단성의 경험이야말로, 여성에게 자신의 성폭행 피해 경험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된다.
때로 어떤 공통적 경험은 작가의 상상력과 언어를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화시킨다. 세월호참사 이후 작가들의 상상력 지도가 달라진 것처럼 성폭력 고발 사건 또한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한 재현의 방법에 모종의 변화를 가져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작년부터 SNS를 중심으로 전개된 성폭력 고발운동을 연상시키는 강화길의 장편소설 『다른 사람』, 남녀 간의 사랑의 불가능성을 다룬 그의 몇몇 단편들, 근친에 의한 친밀한 성폭력의 문제를 다룬 최은미의 「눈으로 만든 사람」(『자음과모음』 2016년 봄호), 최은영, 천희란의 레즈비언서사, 내면을 거세한 채 사회정치적 탐구 대상으로서 한국사회에서 차별받는 여성의 삶을 표준적으로 제시한 조남주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 등은 분명 이전의 1990년대 여성문학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성폭력 문제에 초점을 맞춘 강화길의 소설을 중심에 놓고 최근 여성문학의 성정치가 갖는 문제 지점을 두루 검토해보려고 한다.
2. ‘어쩌면 사랑’의 논리
여기서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게 있다. 그 남자가 광기에 휩싸여 있었거나 선천적으로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남보다 더 많은 열정과 신명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앞으로 그 남자가 그 여자에게 어떤 일을 하든, 그건 모두 그의 열정이고 신명이고, 어쩌면 사랑이었을 거라는 점이다. 그 일이 어떤 가혹한 것이든 간에.5
김형경(金炯璟)의 장편소설 『세월』(초판 1995)의 일부다. 여기서 ‘그 여자’는 ‘그 남자’가 “어떤 가혹한” 일을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그의 열정이고 신명이고, 어쩌면 사랑”이라고 말한다. 열정이고 신명이자,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르는 그 ‘가혹한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성폭행이다. 술에 취한 여자 후배를 여관으로 끌고 가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갖고 이후 자신을 피하는 여자 후배를 스토킹하면서 일방적으로 결혼을 약속하는 남자의 행동이 ‘성폭행’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러나 소설에서 이는 성폭행으로 적시(摘示)되지 않는다. 오히려 소설은 주인공 여성이 어떻게 외부의 폭력과 부딪히면서 왜곡된 성정체성을 갖게 되었는지, 나아가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치유와 극복의 방법이 필요한지에 집중한다. 소설에서 제시된 치유와 극복의 방법은 바로 자전적 글쓰기와 ‘세월’이다. 특히 주인공은 “시간이 퇴적층처럼 쌓여 정신을 기름지게 하고 사고를 풍요롭게 하는, 바로 그 세월”을 통해 과거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 남자’ 또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성문화와 성관념의 피해자일 수 있으며, ‘그 남자’의 행위는 왜곡된 방식이긴 하지만 “어쩌면 사랑”일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남자도 피해자’와 “어쩌면 사랑”의 논리는 성폭력에 대응하는 지난 시절의 방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운동, 민족운동, 민주화운동 같은 거대담론의 맥락 속에서 ‘성폭력’ 문제는 직접적·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 남성에게 집중하기보다 오히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더 큰 차원의 억압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일원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 대학 입시생에서부터 등단 준비생, 갓 등단한 젊은 시인, 출판계 젊은 여성 편집자에 이르기까지 문단 안에서 ‘문학의 이름으로’ 광범위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지속되어온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고발한 『참고문헌없음』(참고문헌없음 준비팀 엮음, 2017)은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성별, 경력, 사회적 지위, 나이 등에 따라 위계화된 관계 안에서 만들어져왔음을 잘 보여주었다. ↩
- 이에 대해 오혜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건 어떤 분야든 젊은 여성이 사회에 진입할 때 겪는 성폭력의 경험이 그야말로 ‘보편적’이고 ‘구조적’이라는 뜻이다.” 오혜진 「‘페미니스트 혁명’과 한국문학의 민주주의」, 『참고문헌없음』 240면. ↩
- 강화길 『다른 사람』, 한겨레출판 2017, 332면. ↩
- 김소연 「가해자의 리그에서」, 『참고문헌없음』 191면. ↩
- 김형경 『세월』 1권, 사람풍경 2012, 41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