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새로운 한국학과 개벽이라는 화두

 

 

김성문 金聖文

홍콩성시대 공공정책학과 교수, 동아시아비교철학센터장. 저서 Confucian Democracy in East Asia: Theory and Practice, Public Reason Confucianism: Democratic Perfectionism and Constitutionalism in East Asia 등이 있음.

 

백민정 白敏禎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저서 『맹자: 유학을 위한 철학적 변론』 『정약용의 철학: 주희와 마테오 리치를 넘어 새로운 체계로』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공저서 『혜강 최한기 연구』 『다산학 공부』 등이 있음.

 

백영서 白永瑞

연세대 명예교수, 세교연구소 이사장. 저서 『중국현대대학문화연구』 『동아시아의 귀환』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 『사회인문학의 길』 『중국현대사를 만든 세가지 사건』 등이 있음.

 

유영주 柳英珠

미시간대 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남한국학센터장. 저서 Writers of the Winter Republic, 공저서 Cultures of Yusin: South Korea in the 1970s, 논문 “Truth or Reconciliation: The Guest and the Massacre that Never Ends” 등이 있음.

 

 

백영서(진행) 안녕하세요. 이번 좌담은 한국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팬데믹, 기후위기, 전쟁 등 자본주의 문명의 위기적 징후로 문명대전환의 격랑을 겪고 있음이 실감되는 지금, 이를 헤쳐나갈 인류의 지혜를 모으는 일, 그중에서도 한국의 역할을 찾는 일은 막중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의 문화 역량을 넓은 시공간 차원에서 평가하고, 그 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우는 방법으로서 국내외 한국학의 성과와 과제를 점검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한국학의 길을 함께 모색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회를 맡은 저는 중국 현대사를 전공했고, 연세대 명예교수 및 세교연구소 이사장으로 있습니다. 원래대로면 방학을 맞아 서울에 방문하시는 선생님들과 한국에 계신 연구자 모두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는데, 유영주 선생님은 방역사정상 귀국이 어려워져 화상으로 참여하고 계십니다. 각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왼쪽부터 백영서 유영주 김성문 백민정

왼쪽부터 백영서 유영주 김성문 백민정 © 이영균

 

유영주 미국 중서부에 있는 미시간대에서 한국학센터장을 맡고 있는 유영주입니다. 1970년대 한국소설을 전공했지만, 미시간대에서는 문학 외에도 한국학 관련 여러 주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뜻깊은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성문 홍콩성시대학(香港城市大學)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김성문입니다. 인문사회과학대 부학장 및 동양비교철학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유교 정치이론과 헌정이론,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올여름에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학·한국사상을 새롭게 조명하는 시도들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는데,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더 자세히 토론할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백민정 가톨릭대 철학과에서 동양사상·한국사상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백민정입니다. 18세기 전후 조선시대 유교 지식인들의 사상에 대해 공부해왔는데요. 최근에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문명대전환 시기에 한국의 지식인들과 민중이 어떤 고민과 사유를 전개하고, 어떻게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대처해왔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해외에 계신 선생님들과 분과를 넘나들며 미래적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한류의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백영서 이번 대화를 준비하며 그간 『창작과비평』에서 진행한 한국학 관련 좌담을 돌아보았습니다. 「지구화시대의 한국학」(1997년 여름호) 좌담에서 사회자(최원식)가 온 나라가 소란스러운 때일수록 “좀더 근본적인 물음”을 가질 필요도 절실하다면서 “인류문명사에서 한국인이 해온 역할,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독특한 기여”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더군요. 취지에 공감하며, 지금은 그로부터 20년도 넘게 흘렀으니 우리 역사의 진전에 힘입어 그러한 역할을 감당할 조건과 능력이 갖추어졌는지도 확인해보았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최근 한류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와 관련해 학계에서는 주로 수용자 측면의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류가 문화산업이다보니 ‘문화’와 ‘산업’의 측면이 다 있어 해석의 길도 다양한데요. 한류가 구미 중심의 근대성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지 아니면 자본주의체제와 국가중심주의를 활용하고 확장하는 데 그치고 마는지, 또는 한류가 아시아인에 대한 서구의 오랜 편견을 제어하는 데 기여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여러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어요. 과연 한류가 어떤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유영주 최근 많이 회자되었던 봉준호 감독의 발언으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영화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 전, 봉준호 감독이 미국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은 매우 지역적인(local) 축제’라고 말해 파란을 일으켰어요. 내용뿐 아니라 그 말을 하는 태도도 무척 덤덤했기 때문에 미국 언론에 크게 소개되고, SNS에서도 ‘사이다 발언’으로 퍼졌습니다. 미국 대중문화의 중심성과 배타성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어준 거죠. 이런 발언이 미국에서 크게 회자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한류가 구미 중심적 근대성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훌륭한 답을 제공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백영서 해외에서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끼시는 점도 궁금한데 어떤가요? 대화를 준비하며 중국·대만·독일의 한국학 연구 상황을 좀 들어보았는데, 대개 한류 덕에 한국 내지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분명히 높아졌다고 하더군요.

 

김성문 제가 미국에 있었던 때가 벌써 15년 전인데, 그때만 해도 동아시아계 선생이 미국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지금도 그런 편견은 작동하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홍콩이나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경우는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이 굉장히 높아져 학생들을 가르칠 때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어요. 한국인을 좋아하고 심지어 선망의 대상으로도 보고, 학생들만 아니라 교직원 중에도 한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거나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영주 미국도 그간에 분위기가 바뀐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미시간대에서 일한 지 14년이 되었는데 한국 관련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의 구성이나 수부터 달라졌어요. 저는 한류 중에서도 특히 케이팝의 역할이 크다고 봅니다. 다양한 학생들이 자기정체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발산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는 느낌이에요. 미시간대에도 케이팝과 커버댄스를 즐기는 동아리가 세개나 있는데 그 안에서 다양한 인종, 성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어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자연스레 학문적인 관심으로도 연결되어 한국을 공부하려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고요.

 

백영서

백영서

백영서 수용자만 아니라 발신의 측면에서도 한류를 볼 필요가 있을 텐데요, 한류를 만들어내는 동력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죠. 그런데 이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한류를 경제주의적·산업적으로만 설명하는 편향을 보입니다. 다른 각도로 좀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도가 필요해요. 가령 한영인 문학평론가는 한류의 바탕에 촛불의 경험이 있다고 얘기했고 (「‘한류’와 협동적 창조의 가능성」, 『창작과비평』 2022년 봄호)에서 최근 한겨레도 ‘이것이 K정신이다’ 연재를 통해 한국의 사상적 자원, 이를테면 신명·화엄·삼교융합의 풍류도 등이 가진 역동성이 한류 현상에 녹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김성문 학문적으로는 사상과 현상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찾기까지 고려하거나 경계해야 할 지점이 많습니다만, 현상을 목격하고 있자면 한국사회의 정치적·사회적 역동성과 문화적 창조성 사이에 연관이 분명히 있다고 느낍니다. 가령 영화 「변호인」이나 「1987」은 최근 극심한 변화 과정에 있는 홍콩사회에 준거자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홍콩에서는 예전 영화들도 다 검열되고 있어서 학생들이 급격한 변화에 사회가 어떻게 대응했고 이겨냈는지, 자기들 안에서는 참고자료를 찾을 수가 없거든요. 이때 같은 동아시아이고 경제 수준도 비슷한 한국에서 나온 실화 기반 드라마, 영화가 도움이 되어주는 거죠.

 

백민정

백민정

백민정 저도 한국인이 폭넓게 공유하는 가치관, 세계관이 오늘의 문화적 저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의(正義)나 공적 가치에 대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 공감 능력에 기반한 사회적 유대감, 가족적이고 사적인 삶과 공적인 시민의 삶을 어떻게 연계할지 고민하는 것 등은 모두 한국사람들이 견지한 어떤 삶의 태도, 가치관으로부터 촉발된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이 바로 사회문화적 현상과 한국인의 심성, 가치관 사이의 연관성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시점이라 생각하고요.

 

백영서 동시에 궁금한 점은 한류 현상에 과연 한국학이 얼마나 기여했는가입니다. 한국학이 한류에 선제적으로 기여한 부분이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학계가 뒤처져서 사후분석에 그치고 있진 않은지 짚어낼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국학이 한류를 분석하는 중에도 구미 이론, 특히 문화연구 이론에 기대면서 한국 특유의 정치적·사회적·정신적 맥락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 우려가 들기도 하고요.

 

유영주

유영주

유영주 사실 지금까지는 사후분석에 그치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한류가 새로운 한국학을 요청하고 있다고 봐요. 대체 한국이란 어떤 공간이고 그 역사, 특히 한국의 민주화가 어떻게 진행되어왔기에 이렇듯 지속적으로 완성도 높은 문화적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해명이 강하게 요청되는 국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그 요청을 만족시킬 만한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어요. 모든 것에 ‘케이’라는 매우 모호한 접두사가 붙는 최근의 현상 안에 새로운 한국학에 대한 요구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국내외 한국학 연구의 현주소

백영서 새로운 한국학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를 받아, 한국학이 대체 무엇이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 논의해보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국학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유동하면서 진화 중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조선학에서 시작해 국학, 민족학이 있고 해외 한국학을 포함한 ‘코리안 스터디즈’(korean studies)도 있죠. 모두(冒頭)에서 1997년 『창작과비평』 여름호 좌담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창비는 그뒤로도 동아시아의 한국학이나 실사구시의 한국학, 비판적 한반도학 등을 제기하면서 계속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1990년대 초부터 확산된 동아시아 담론은 민족·민중 중심, 일국 단위의 분석 수단만으로는 탈냉전·세계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 국경횡단적 관점으로서 동아시아에 주목한 것이었어요. 애초에는 인문학적 접근으로 시작했지만, 시대의 기운에 부응했기 때문에 사회과학자들까지 참여하면서 담론의 풍작을 이뤘습니다. 오늘날 선생님들이 각자 경험하고 관찰하시는 한국학의 현황은 어떠한지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해외 한국학 연구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곳은 미국 대학인데, 어떤가요?

 

유영주 미국에서도 한국학 연구 환경은 사실 매우 열악했습니다. 미국 학계 내 지역학으로서의 아시아학 중에서도 한국학은 ‘게토 안의 게토’라 불리며 가장 변방의 분과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독자적 학문으로서 전문성을 갖기가 어려운 여건이다보니 생존방법으로 지역학이라는 학제 간 연구의 형태를 취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의 한국학 연구는 저한테는 늘 생경하게 느껴졌습니다. 창비의 동아시아 담론과 같은 흐름이 독특하고 유의미하지만, 대체로는 한국학 연구가 보편적 서구의 안티테제로서 ‘국학’의 형태를 취한다고 보였거든요. 국문과, 국사학과, 국학연구원 등이 각자 분과적 전문성을 갖추며 발전해왔기 때문에 미국의 상황과는 꽤 다릅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한국의 한국학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을지 고민이 되기도 하고요.

 

김성문

김성문

김성문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영미권 학계에서 한국학은 굉장히 좁은 분야입니다. 더군다나 전통적인 의미의 한국학을 연구했던 영미권 학자들이 은퇴한 뒤, 아쉽게도 높은 수준의 연구를 펼치는 후속세대 연구자가 많지 않습니다. 미국 내 한국학센터들의 연구는 주로 한국에서 지원하는 기금으로 운영되고, 이때 한문이나 한국어 텍스트에 대한 접근성을 갖춘 한국 학자들은 그 자체로 지위를 보장받기 때문에 경쟁적인 환경에서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합니다. 경쟁의 부족은 해외 한국학이 인문사회과학 전반을 선도할 만한 높은 수준의 연구성과를 꾸준히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는 듯해요.

 

유영주 큰 문제 중 하나는 가뜩이나 한정된 자원이 최근 한류의 확산으로 당장의 현상 연구에 쏠리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러다보니 훈련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 전근대 한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전근대시기 한국문학에 대한 연구자원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죠. 이런 불균형이 존재하지만, 대중문화 연구가 한국학 확산과 관련해 핵심적인 관심사이며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해가야 할 분야인 것도 분명합니다. 케이팝·케이드라마부터 케이웹툰과 케이버라이어티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케이현상’에 대한 연구가 이러한 콘텐츠를 수용해 소비하고 재창조하는 사람들로 그 초점을 옮겨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류 팬덤은 이미 그 독특함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 팬덤이 정치적 의제와 결합해서 콘텐츠와 팬덤과 정치적 실천이 하나로 융합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어요. 가령 2020년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당시 한 지역 경찰국에서 시위대의 폭력에 대한 제보를 받는 사이트를 운영했는데, 한류 팬덤이 몰려가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나 사진 등을 ‘도배’함으로써 사이트 운영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한 사례가 있습니다. 콜롬비아·칠레·페루 등 중남미 국가에서도 대통령선거 국면에 한류 팬덤이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클리닝’(hashtag cleaning, 특정 해시태그를 무력화할 목적으로 해당 해시태그를 붙인 글을 대량으로 올려 스팸으로 제한되도록 하는 온라인 운동)을 통해 보수 성향 후보들의 메시지를 밀려나게 만드는 등 ‘정치적 실천’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실제 정치적 변화를 얼마나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콜롬비아 역사상 최초로 흑인 여성 부통령 프랜시아 마르께스(Francia Marquez)가 당선되는 데 한류 팬덤의 기여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백민정 저는 국내 한국학 연구가 20세기 한국의 사상사·지성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며 기여해왔다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가령 4·19혁명 이후 실학 담론이 다시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민족운동의 흐름에서 기존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내재적 발전론이 부상하면서, 우리 역사의 자생적 발전 근거로 실학 담론이 재차 호명된 것이죠. 하지만 당시 논의는 서구 근대의 발전 경로를 쫓아간 근대주의라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를 드러냈어요. 최남선(崔南善)·정인보(鄭寅普) 등이 조선문화부흥 운동을 펼칠 때든 60년대 이후 연구에서든 실학 담론은 서구 기준의 근대적 민족국가론, 사회발전론을 지향하는 데 그쳤다는 학계의 반성이 그간 많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처럼 90년대 이후 한국사상 연구로서 한국학은 기존의 연구경향과 문제점, 한계를 넘어서며 새롭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이 추구한 것은 서구 근대식의 부국강병이 아니라 도덕성과 유대감에 근거한 유교적 사회공동체의 모색에 있었던 점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고요. 이런 지성사적 흐름들을 오늘날 한국학 연구에서 충분히 살려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김성문 저도 최근 20년 동안 한국에서 굉장히 높은 수준의 역사·철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실학 담론에서도, 60~70년대 학자들이 서양의 이론과 시각에 의존하느라 보지 못했던 면들을 근래 젊은 학자들이 많이 발견해내고 있습니다. 예컨대 정조를 비롯한 18세기 지식인들이 기존의 도덕성과 같은 기준점을 아예 새롭게 갱신하는 차원으로 근대국가를 재창조하려고 했다는 겁니다. 국내의 한국학 수준이 해외보다 결코 낮지 않은데, 해외에 있는 학자들이 한국 내 연구를 등한시하는 경향은 아쉬운 일입니다. 해외에서는 학제 간 연계를 중시하는 방법론을 더 높이 평가하다보니 한국 내 한국학은 지엽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큽니다. 하지만 학문의 근본적인 목표는 결국 대상을 잘 이해하는 것이고 방법론은 그를 위한 도구잖아요. 각자 너무 다른 세계에 속해 있고, 서로에 대한 편견이 오래 이어져온 탓에 유의미한 학문적 상호작용이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유영주 미국의 경우 한국학과가 독립되지 않고 동아시아학과의 일부로 존재하다보니 교수 정원이 한두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공과 무관하게 한국학 전반의 강의를 전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 연구를 심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도 합니다. 한국의 최신 연구성과에 대해서도 지엽적이라서 무시한다기보다는 여러 제약으로 인해 그 발전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한국에서 석사까지 학문적 훈련을 탄탄하게 받은 학생들이 미국의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경우가 늘었고, 미국 태생의 젊은 연구자 가운데서도 한국의 최근 성과를 영어로 번역해 소개할 필요를 느끼고 작업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져, 점차 한국과 해외 학계 간에 좀더 긴밀한 학문적 피드백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백영서 ‘게토 안의 게토’라는 위치는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학문적 담론의 장에서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된다고 우려하더군요. 중국에서도 한국학은 아직 학문적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주류 지식계와의 대화가 이뤄지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한국학은 외부적 시각의 지역학 연구와 내부적 시각의 민족학 또는 변강학 연구라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중국 중심적인 시각을 벗어나면서 자국학으로서의 한국 중심적 시각 또한 상대화할 새로운 인식틀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학의 질적 제고를 위한 과제

백영서 그간 국내 한국학이 특히 양적으로 성장을 거듭했는데, 이 과정에서 탈민족주의·탈근대주의 시각에서 문화연구를 진행하는 흐름이 주류가 되었어요. 가령 문학에서는 정전을 해체하려는 조류가 강해 문화콘텐츠학이나 문화론적 연구가 대세를 이루었고, 사학에서도 민족·민중을 해체하고 다양한 주체들을 복원하면서 생활사·문화사 연구를 많이 진행했습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인식틀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도 다시 대두되는데, 한국사의 경우 통시적 입장을 견지하며 비교사 연구를 추진하고 사회과학 이론을 참조해 실증적 연구성과를 체계화하면 된다는 선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한국학을 위해서는 국내외 공히 연구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모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 각자 관심사나 분과학문 안에서 느끼시는 과제가 있는지요?

 

유영주 문학에서는 지적하신 대로 정전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문화콘텐츠 연구로 빠르게 변모했습니다. 문학 연구 안에서도 고전문학 연구와 현대문학 연구 간의 유기성과 연속성에 대한 통합적 시각이 부족한 것이 문제입니다. 가령 고전문학 연구가 한국적인 정체성의 확인에 관심을 둔다면 현대문학 연구는 서구 근대문학의 이식과 수용이나 변용의 양상에 대한 파악에 치중하는 측면이 있어왔다고 봅니다. 그러나 고전문학에도 동아시아 한자문명권에서 공유되는 문화적 공통성이 존재해왔고, 현대문학도 서구적 근대의 요소가 수용되는 동시에 한국적 문맥으로 재구성되어왔기 때문에 이를 잘 연구해 그 결과물이 서구 이외의 지역, 한국과 유사한 지역에 폭넓게 공감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콘텐츠 연구 또한 그 현상적 화제성에만 매몰되기보다 한국문학의 전통 속에 잠류하는 가치들이 콘텐츠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지 관심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고요. 이처럼 향후 한국문학 연구의 과제는 고전문학, 현대문학, 문화콘텐츠로 삼분되어 있는 연구대상에 대한 단절적인 인식을 넘어 긴 호흡의 영향관계와 연속성을 재인식하도록 시야를 개방해나가는 것 아닐까 합니다.

 

백민정 철학 영역을 보자면, 19세기 말 이전에도 성리학(性理學)·이학(理學)·격치학(格致學) 등 진리나 앎을 탐구하는 전통적인 학문의 명칭이 있었지만 ‘철학’이라는 개념은 일본 학술장의 번역을 거쳐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것 자체야 문제가 아니지만, 그 수용과 접촉 과정이 주체적·창발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방적·수동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이 문제죠. 그래서 근래에는 철학 개념에 대한 근본적 반성에 기반해서 철학의 수용사(史)에 대한 메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령 동양철학 대신 ‘동아시아사상’, ‘한국사상’이라고 하자는 논의도 있죠. 우리가 가진 전통적인 사상적 자원들과 서구 근대철학 중심의 지식체계 사이의 충돌과 접합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하고 있고요. 요즘 19~20세기 한반도 지식인들이 처했던 위기상황과 그들의 긴박한 문제의식을 새로이 반영해 ‘한국현대사상사’를 주체적으로 구성하려는 노력이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백영서 철학 개념에 대한 논쟁은 중국에서도 1920년대부터 있었습니다. 이때 중국사람들은 ‘사상’을 ‘철학’의 상위 개념으로 보고 그 연원을 청나라 말기 경세론까지 포함해 이야기합니다. 서양 근대철학과는 별개로 자기들 안에 이미 이론과 실천을 겸하는 학문적 움직임이 있어왔다는 거죠. 한국에서도 철학이 서양의 ‘필로소피’(philosophy)의 번역어로서 한정된 의미를 가진다면, 그 상위 개념으로 ‘사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유효한 지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김성문 최근 세계가 인류 보편적인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는데, 새로운 한국학의 지향도 결국 이에 대한 해결의 모색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철학 이야기를 잇자면 한국의 철학 연구는 해석학적·경학적 전통이 여전히 주류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를 왜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정작 빠져 있는 듯합니다. 국내에서는 우리 것, ‘국학’이니까 한다고 쳐도 영미학계에서는 한국사상을 왜 공부해야 할까요? 결국 인류가 직면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사상과 바깥의 사상을 비교하고 소통하면서 동서 융합의 시도를 이어나가는 것이 새로운 한국학에 요구되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음악이나 드라마가 세계인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듯이 한국이 어떻게 생각해왔고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해외 학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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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정 제가 요즘 20세기 한국 현대사상사를 공부하면서 역설적이고 독특하다고 생각한 면도 그런 것입니다. 식민지시대 지식인들의 발언을 얼핏 보면 민족주의적이고 종교적입니다. 단군을 문명의 시조로 삼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주장하는 대종교만 해도 폐쇄적·국수주의적으로 보이기도 해요. 그런데 당시 지식인들 발언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하인민의 공적 가치, 가령 ‘천하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공천하(公天下)다’라는, 세상의 공공성을 중시하는 관점이 굉장히 강했던 것 같아요. 표면적으로는 한국 고유의 전통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지향하는 가치는 상당히 보편적인 거죠. 또 포괄적이라는 특징도 있는데, 대종교 초기 인물인 전병훈(全秉薰)은 『천부경』을 주해하면서 동서 철학의 회통을 모색했고, 동학을 천도교로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이돈화(李敦化)도 동서 철학의 융합을 모색했다고 봅니다. 원불교의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그러했음은 물론, 정산(鼎山) 송규(宋奎)도 ‘삼동윤리(三同倫理)’를 통해 종교와 진리의 대통합을 말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나라를 잃고 국권도 상실했지만 단순히 일국으로서의 조선 독립이 아닌 동양평화·세계평화를 항상 강조했어요. 20세기 초 한국인들의 지적 분투가 그런 보편적·공적 가치를 지향했다는 것을 국내외 한국학 연구자들이 더 주목해야 합니다.

 

백영서 한국학이 새로운 방향을 찾는 데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또 한가지가 ‘한반도’라는 장소성, 현장성입니다. 한반도에 밀착해서 새로운 학문적 방향을 모색하고 심화할 때 이러한 관점에서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분단된 남북한의 지위 문제입니다. 남북을 별개의 국민국가가 아니라 합쳐서 살펴보자는 시도들이 ‘비판적 한국학’ ‘비판적 코리아학’ 등의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학의 관심이 남북을 아우르는 공간으로서의 한반도로 넓어진 것은 분명한데, 이것이 새로운 한국학과는 어떻게 연계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성문 저는 이때의 ‘비판적’ 시각을 학문적 의미에서는 맑시즘 및 탈식민주의의 영향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에 기반한 기존 학문적 프레임을 넘어서서 한반도와 한국학을 바라보자는 것인데, 창비에서 오래 이야기해온 동아시아론과도 연결되리라 생각됩니다. 쉽지 않은 문제의식이고, 이 역시 이러한 시각의 연구를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겠습니다. 근대에 적응하는 것과 동시에 근대를 극복하는 이중과제가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라고 할 때, 극복해야 하는 근대는 서구 자본주의의 팽창 및 모순에서 배태된 식민주의와 냉전, 그로부터 야기된 남북한의 분단과 대결일 것입니다. 비판적 한국학·비판적 동아시아학은 냉전 이후 고착된 남북한의 분단 및 대결 과정에서 형성된 인식의 지평과 지식체계를 넘어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새로운 시각에서 한국학은 ‘대한민국’만의 ‘K-문화’가 아닌 한반도 전체 혹은 전체 한국인에 대한 연구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 길이 한국학의 유일한 길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요.

 

유영주 미국 내에서 이루어진 아시아학 연구의 경로는 크게 전통적인 문헌학적 접근과 냉전 구도하에서 패권국 미국의 부상과 더불어 대두된 지역학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도로 잘 설명되는 중국학·일본학의 발전과는 달리 한국학은 문헌학적 접근과 지역학적 접근 모두에서 후발주자인 동시에 아시아학 내에서도 주변부에 속하는 형편이었어요. 이런 이중적 속성은 역설적으로 한국학이 전형적인 지역학의 형태에서 얼마간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능성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의 연구는 한국전쟁이 미국의 냉전적 패권구도에 복무하게 된 양상을 비판적 관점에서 제시했죠. 또 미국에서 한국학의 본격적 출발을 알린 세대가 60~70년대 평화봉사단(Peace Corps) 활동이나 군 복무 등을 계기로 한국과 감정적 연결을 경험했던 이들이라는 점도 중요했다고 봅니다. 지역학에 내재된 식민주의의 함정을 어느정도 자각하고, 그와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니까요. 다만 남북한의 대결 상황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유지에 중요한 정당화 기제 중 하나인 현실을 고려하면, 미국 내에서 한반도 전체를 시야에 두는 한반도학의 가능성은 아직 미미하다고 보입니다.

 

백영서 한반도 상황을 두고 두개의 국민국가가 별개로 있다고 보자는 양국체제론 등도 있습니다만, 저는 동의하지 않는데요. 두 국가가 사실은 기형의 국민국가로서 적대적 상호의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은 말씀처럼 근대의 이중과제와 관련되죠. 단순히 분석대상의 공간적 확장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남북을 한층 정상적인 근대사회로 만드는 동시에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국민국가를 넘어서려는 극복의 과제를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 그간 우리 연구자들이 분단체제를 매개로 자본주의 일반이 더 저열한 형태로 나타나는 현실, 거슬러 올라가 백년의 변혁을 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도 되짚어봐야겠고요. 새로운 정치사회체제, 좀더 인간적이고 생태친화적인 발전모델의 창안에 기여하는 분석틀을 만들려면 전달력 높은 학문적 이론까지 갖추어야 하고 그것이 한국학의 또다른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감당하기 쉽지 않은 과제이나, 구미이론에 기대다보니 우리 현실과 역사에 직핍하지 못한 학문 전체의 혁신을 촉진할 추진력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인식틀로서의 ‘개벽’

백영서 한국학의 질적 제고를 위한 새로운 인식틀로서 오래된 미래라 할 ‘개벽(開闢)’의 가능성을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개벽은 사상이자 운동인데, 일상적으로는 ‘천지가 개벽한다’라는 표현으로 익숙하죠. 천지개벽, 즉 세상이 확 바뀐다고 할 때는 그 안에 우주론적 차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천지개벽이라 하면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의미입니다. 반면 19세기 중엽,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를 필두로 동학에서 ‘다시개벽’을 이야기할 때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노력으로 일어나는 큰 변혁’을 뜻했습니다. 또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는 ‘우리가 바뀌어야 세상도 바뀐다’며 종교적 각성과 사회적 실천을 겸비하는 것을 개벽으로 일컬으며 문화운동의 중심 사상으로 삼았고요. 1920년대에 한국사회 담론을 주도했던 잡지의 제호도 ‘개벽’이었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가 ‘개조’ 개념을 공유할 때 이를 창발적으로 우리말 ‘개벽’으로 받아내기도 하는 등 개벽이라는 말은 널리 퍼져서 쓰였어요. 이후 그것이 점차 ‘혁명’이라는 어휘로 대체되고, 개벽은 민족종교의 가르침을 담은 어휘로 축소된 채 이어져왔습니다. 그러다 80년대 후반 생명·평화의 「한살림선언」 등을 통해 재발견되고, 최근 다시 다양한 도서 출간과 연구 작업이 진행되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창비도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백낙청 지음, 2020)와 『개벽의 사상사』(강경석 외 지음, 2022)를 출간하고 2021년 가을호 특별좌담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를 진행하는 등 개벽 논의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는 1990년대 시작된 탈냉전 이래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고 ‘새로운 전지구적 문명’을 대안으로 모색하는 흐름의 연장에서 문명대전환이라는 시대적 열망에 부응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개념이 낯선 독자들도 없지 않을 텐데요, 개벽에 대해 각자 어떤 인상을 가지고 계신지부터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김성문 처음 인상은 과거 개화파도 척사파도 아닌 제3의 지대가 있었고 이를 역사적으로 재발굴하려는 것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부분적인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팽창과 분단이라는, 우리가 지금 당면한 근대의 가장 큰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려면 기존의 자본주의적 시각과 그것이 배태한 한국학으로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거죠. 즉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인간활동의 근본 목표를 자기 이익의 확장 및 자본·자원의 무한하고 경쟁적인 축적으로 이해한다고 할 때 한국학이 이 프레임 혹은 세계관에 대한 근본 질문을 회피해서는 안 되는데, 그 새로운 시각의 가능성이 ‘개벽’에 있다고 봅니다. 남한사회가 경험하는 미국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도, 자본주의를 완전히 거부하는 북한의 현실사회주의적 방식도 아닌 이중과제의 해법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겁니다. 개벽이 방법론적으로 굉장히 의미있고 돌파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의미부여를 하고 싶습니다.

 

백민정 이른바 ‘천지개벽’과도 같은 세상의 변화를 열망하는 감정이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봅니다.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 기후위기, 전쟁, 팬데믹 등 심각한 문제상황을 마주한 현대 한국인들의 시대적 요청, 사회적 열망을 ‘개벽’ 개념을 통해 집약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지금의 개벽 논의에 자칫 연구자 집단의 어떤 지적 욕망과 관심사가 투사되어 지난 150여년의 사상과 문화의 역사를 발견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쓰이지는 않을지 우려도 됩니다. 1930년대와 1960년대 이후 민족운동의 부흥 속에서 지식인의 이념과 관심이 투영되어 실학 담론이 크게 유행했던 것처럼요. 과거 사상사 연구와 평가의 경험을 신중하게 돌아보면서 논의를 이어간다면 개벽이라는 학술적·실천적 슬로건을 통해 우리가 이 시대에 무엇을 돌파해야 하고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지 다채롭게 이야기를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영주 창비를 통해 개벽 논의를 접하기 시작한 저로서는 솔직히 이러한 의문이 있었어요. 개벽사상을 새롭게 이야기하는 것, ‘개벽의 한국학’이 정말 새로운 인식의 틀을 마련하는 것인가? 이중과제론이나 변혁적 중도주의의 틀 안에서 이미 충분히 논의되어왔던 것들을 새롭게 포장하는 포장지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하기는 아직 어렵기도 합니다. 다만 백민정 선생님 말씀처럼 시대가 요청하는 열망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면 오히려 논의에 접근하기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백영서 문명대전환이라는 시대적 열망에 부응한다고 할 때, 개벽의 한국학은 한국의 토착적 사상을 오늘에 되살려 한국학의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는 동시에 서구에 대한 ‘문화적 되감기’를 수행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문화적 되감기’는 일본 문예평론가 타께우찌 요시미(竹内好)가 제시한 개념으로,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를 통해 서구의 보편적 가치를 되감아 그 가치를 높임으로써 오히려 서양을 변혁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백낙청 선생이 이야기한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방식, 구미의 고전을 주체적으로 해석해 구미의 병폐를 비판하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요. 더 나아가면 ‘촛불’이 그렇듯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변혁의 움직임을 새롭게 보게 해주지 않을까요? 개벽이 시대의 요청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면, ‘개벽의 한국학’이 앞으로 하나의 학술의제로 튼실하게 자리 잡기 위해 극복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내실을 거둘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유영주 서구 근대에 대한 피동적 수용 혹은 적응으로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설명해온 관점과 이에 대한 반발로서의 자생적 근대화 담론, 두 목소리가 이제까지 일종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루며 존재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벽’에는 양자를 동시에 비판하고 넘어서는 어떤 지적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개벽이라는 새로운 명명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지, 혹 잃는 것도 있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우선 역사성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개벽을 추상화된 사상적 개념으로만 다루다보면 그 역사적 맥락의 중층성이 다소 훼손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개벽이라는 개념이 한국사상사의 장 안에서 주목받기도 잊히기도 했다면, 그런 역사적 배경과 개념사적 맥락에 대한 문제의식이 논의에 포함되어야 하겠습니다. 개벽이 변혁적 중도주의론이나 이중과제론과 달리 고유하게 이룰 수 있는 성취는 무엇일지도 보아야 하고요. 또 하나는 번역의 문제입니다. 개벽이 기존의 근대화·탈식민 담론 등과 결을 달리하며 한국의 근대 경험이 가진 특수성과 보편성을 집약적으로 제시하는 키워드로 세계 학계 전반에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나 중도적 변혁주의 등과 어떤 유의미한 차이를 가지는지가 충분히 설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어떤 번역어를 전략적으로 채택할지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겠고요.

 

김성문 그런 의미에서 본질적인 건 아닐지 몰라도 개벽과 중요하게 연관되어 있는 한국의 민족종교에서 ‘개벽’ 용어에 대한 점유를 풀어주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세계가 공유하는 개념이자 운동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개념으로서의 전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개벽’이 특정 종교·학술집단이 전유하는 사적 개념이 아니라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라는 이중과제를 풀어나갈 거대한 개념의 우산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기존 한국학 연구자들에게도 중요한 학술의제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백민정 김성문 선생님이 방금 이야기하신 것처럼 ‘개벽’이 특정 집단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개화와 척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양극단을 지양하는 제3의 길, 그리고 그것을 포괄하는 상위의 실천적 슬로건이 되려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개벽의 개념 자체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개벽은 특정한 사유와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깨뜨리는 강력한 인식론적 전환일 수 있고, 미래 삶의 비전을 주조하게끔 하는 내적 추동력일 수도 있습니다. 타성에 물든 사유와 행동의 습성을 깨는 폭발력이 개벽에서 연원한다면, 개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벽의 폭발성이 열어놓을 그다음의 지평이라고 생각하고요. 개벽 개념의 발전적 해체까지 상상할 수 있을 때 저는 이 표현의 가장 강력한 개방성과 포괄성을 담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백영서 사상으로서의 개벽을 강조하다보면 역사성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은 더 논의해볼 문제입니다. 그러나 개벽이 동학이나 천도교, 원불교만의 담론이었다면 그에 대한 역사성을 잃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개벽이 등장했던 1920년대에도 이미 특정한 종교적 가르침의 영역을 넘어서서 소통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 오늘날 원불교가 소통을 제대로 할 능력과 의지를 얼마나 갖추었는지와는 별개로, 그 교리 자체에는 종교·비종교를 넘나드는 ‘대동화합(同拓事業)’이 있기도 하니까요. 번역 문제도 고민해야 하는 일인데요. 영어 번역어는 ‘그레이트 오프닝’(Great Opening)이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자권에서는 중국어와 일본어에 이미 각각 ‘개벽’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같은 한자여도 맥락이 좀 다릅니다. 그러니 ‘Gae-byeok’과 같이 음차를 하고 각각 적절한 어휘로 뜻풀이하는 방법도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더 중요한 건, 말씀하셨듯 창비에서 그간 제시해온 담론들과 개벽의 관계 설정입니다. 유선생님은 이중과제론, 분단체제론, 변혁적 중도주의로 충분한데 또다른 포장지로 개벽이 꼭 필요한가 의문을 제기하셨는데, 저는 여기서 오히려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의 담론들과 함께할 때 개벽이 한반도의 역사적·사상적 자원으로 더욱 뿌리내릴 수 있다는 것이죠.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중과제론은 전지구적 범위에서 적용되는 추상도가 높은 개념이고, 분단체제론은 한반도 차원에서 적용되는 이론, 변혁적 중도주의는 한국에서 이러한 논의들을 실천하는 주체가 취하는 현실적·실용적 노선을 말합니다. 개벽은 이 전체를 아우르는 큰 우산으로서 우주론이자 문명론 차원의 사유 및 실천이며, 개별 담론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각각을 재구성하며 ‘개혁’이나 ‘혁명’이 아닌 세상과 나라를 크게 바꾸는 ‘변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런 시도가 최근 출간된 『개벽의 사상사』에서도 일부 이뤄졌지만, 제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동아시아론에 한정해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만민평등에 기반한 개인수양과 사회변혁을 병진하는 개벽의 특징을 통해 동아시아론의 혁신을 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지식인의 범위를 넘어 더 넓은 ‘마음과 가치의 공동체’를 일상 속에서 구현하며 한반도의 변혁과 연동할 길이 열릴 것으로 보기 때문이지요.

 

백년의 변혁 과정과 촛불의 사상적 연원

백영서 한국학을 개벽 중심으로 재구성한다고 할 때 얼마나 학술적으로 설득력이 크고 파급력이 있을지가 중요합니다. 가령 실학 담론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건 시대의 요구가 있었고, 학계 안팎으로 이를 끌어갈 수 있는 비판적 지식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19 이후 민족운동을 통해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고 그것이 실학 담론의 부흥으로 이어졌던 건데요, 그럼 지금 개벽사상과 개벽운동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운동이 있는가를 따져봐야겠지요. 저는 이때 ‘촛불’이 주요하다고 생각해요. 2016~17년 촛불대항쟁의 정신적 근거가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개벽의 한국학도 그 가능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성문 선생님이 촛불의 정신적 연원을 ‘유교적인 민주적 시민사회’의 시각에서 이야기하신 논문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직접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성문 20여년간 해외에서 연구하다보니 한국의 중요한 사회적 변혁이 있을 때마다 대부분 국내에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민권을 가진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또 정치철학을 공부하는 학자로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고민하며 공부한 결과가 말씀하신 내용의 논문(“Candlelight for Our Country’s Right Name,” Religions 2018)입니다. ‘촛불’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의 규모와 강도, 항쟁 기간이 다른 사회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높고 길다는 점이죠. 이러한 운동을 추동한 힘을 단순히 진보/보수의 정치적 대립 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 있었고요. 그렇다고 해서 미국적인 자유민주주의 담론으로 생업을 뒤로하고 유모차도 끌고 나오는 한국 시민들의 이런 움직임을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고민도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박근혜 탄핵 당시 헌법재판소의 논의가 과연 ‘리버럴한’ 추론이었는지도 살펴봐야 했고요. 결론적으로 한국의 운동을 추동하는 담론의 저류에는 도덕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고 봤습니다. 좋은 리더십, 좋은 사회에 대한 기준이 교과서에서 배운 자유민주주의보다는 도덕성, 공감, 연민 등에 있는 것이죠. 저는 이것의 연원이 유교의 가르침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80년대 이한열·박종철 열사가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당했고 그 또한 나라와 민족에 대한 애정이 있는 순수한 대학생들의 희생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민주화운동은 엘리트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촛불항쟁 때는 일반 시민들의 주도적 참여가 훨씬 커요. 이는 세월호참사 당시 정치지도자의 공감능력 부재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에서 시작된 것이고요. 사실 공감능력은 법적으로는 매우 애매한 개념이고, 실제 탄핵 판결에서도 이 부분은 다 기각됐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이 지점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난 것이죠. 개벽 논의를 접하면서 이러한 저의 분석과 개벽에 접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민(民)’이 본격적인 의미의 주체로 등장해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 첫번째가 동학이었어요. 그로부터 시작된 움직임이 4·19와 이후 혁명의 역사로 이어지죠. 이러한 백년의 변혁 과정을 두고 혹자는 불안정한 상황이라 제도화된 정당주의로 안정되어야 한다고 하고, 미국의 관점에서는 취약한 민주주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점진적이고 누적되는 움직임이 한국사회,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추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저류를 살필 때 저는 유교로 접근했고, 창비에서는 동학에서 시작된 개벽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고요. 저도 개벽 관점의 설명력이 계속 높아져서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지속되는 역동성을 이해하는 통시적 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동학에서 창발된 민중 중심의 수평적 개혁운동이야말로 제가 관심 갖고 있는 비엘리트적-시민 중심의 민주주의를 더욱 직접적으로 추동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 경우 새로운 관점에서 동학과 유교의 관계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겠고요. 지성사적 난제이기는 하지만 유교의 수평적·민중적·민주적 재구축에 있어 동학의 경험이 갖는 함의는 절대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만약 개벽을 근대 적응과 극복을 시도하는 모든 개혁적·민주적 운동과 사상을 아우르는 개념의 우산으로 이해한다면, 유교와 동학, 여러 토착종교 및 사상들의 창조적 통섭과 대화를 진작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리라 봅니다. 이렇게 포용적 개념의 틀 그리고 사상운동으로 거듭날 때 개벽은 보편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민정 김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개벽의 사상운동이 그렇게 다양한 사유들의 창조적 통섭 작용을 발휘하려면 더욱 개방적이고 포용력 있는 의미를 견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개벽에는 이념의 양극단을 피하려는 중도주의적 입장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니까요. 우리에게 정말 어려운 것은 적대적이거나 이질적인 사유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함께 갈 수 있는지 공존의 논리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이해하기 어려운 가치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 나의 가족이고 이웃이고 동료시민인 경우도 많으니까요. 유교와 동학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을 생각하자니, 일제강점기 때 사회주의자였던 백남운(白南雲)이 유교에 대해 언급한 것이 떠오르네요. 그는 유교의 효제(孝悌)와 예치(禮治)가 양반의 지배질서를 고착화하는 덕목이자 수단이었지만 민주화·평등화된 사회에도 효제라는 인륜관계는 필요하며 예치 역시 자율적인 자기규율의 규범으로서 새롭게 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효제와 예(禮)를 민주적 사회에서 작동하는 기제로 변혁하는 성찰이 요구된다고 본 것이죠. 유교적 덕목의 현대적 활용을 이야기한 이 발언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촛불대항쟁의 주된 정신적 배경과 연원을 탐색할 때도 말씀하신 것처럼 유교적 자산과 가치 그리고 민중 친화적인 동학의 세계관 사이에서 최대치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민하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도적 민주주의나 권리 중심의 개인주의로는 드러날 수 없는 깊은 공감능력, 정의를 향한 염원, ‘함께 살자’는 열망 같은 것들이 곧 오늘날 우리가 주목할 만한 개벽적인 정신일 텐데요. 역사 속 다양한 사유의 원천과 지류들을 유의미한 탐색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폭넓게 활용할 때 개벽의 포용력 있는 사상운동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백영서 개벽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꼭 19세기 중반부터만 이야기할 것은 분명 아니죠. 그런데 유학이라는 자원을 특별히 강조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온도차를 느낍니다. 한국사상사의 기본적인 전통에는 말씀하신 대로 유불선 삼교융합의 맥락, 포용능력 등 중도성이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촛불혁명의 정치적 연원만 봐도 그런데, 김성문 선생님도 유교와 동학의 관계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6월항쟁 주도세력의 유교적 엘리트의식과 촛불대항쟁의 수평적 연대의식을 대비할 수 있다면, 전자가 유교 전통의 비민주적 잔재에 해당하고 후자는 동학으로 매개된 유교적 요소의 긍정적 위력으로 보는 시각도 가능하겠습니다. 창비 역시 동학의 흐름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동학의 매개를 거쳐 전승된 유교’와 그 긍정적 요소를 살피고 있습니다. 그럼 시선을 조금 돌려 유영주 선생님이 촛불과 관련해 미국사회와 연구 영역에서 느끼신 바를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영주 미국 학생들의 경우, 민주주의는 매우 신성한 가치지만 자신들의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진 개념으로 인식합니다. 민주주의는 이미 ‘건국의 아버지’에 의해 완성되어 본인들이 물려받은 유산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의 촛불대항쟁을 목격한 미국 학생들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참여자들이 든 ‘민주주의야, 내가 지켜줄게’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민주주의를 인격화하고 보호의 대상으로 삼는 화법 자체가 이곳 학생들에게는 매우 생경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민주주의란 꾸준히 투쟁해서 획득해야 하는 가치였다는 점, 그런 투쟁의 역사가 낳은 강렬한 주체성 등이 개벽의 사상사와 연결되는 지점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한편으로 촛불대항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꼭 언급해야하는 것이 뉴미디어입니다. 촛불혁명은 미디어 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문학 역시 미디어로 본다면 20세기는 누가 뭐래도 문학의 시대였고, 특히 한국에서 문학은 70~80년대 『창작과비평』의 역할만 봐도 알 수 있듯 핵심적인 위상을 오래 유지하며 기능했습니다. 물론 이는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의 정보 검열 등으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면서 문학이 다른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된 탓이기도 하죠. 그러나 지금은 문학을 전공한 사람 입장에서 다소 슬픈 일이지만, 전세계적으로 문학의 대중적 흡인력이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그간 문학에서 축적된 힘이 웹툰이나 드라마 같은 다른 미디어로 옮겨져 발현되면서 새로운 결실을 낳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또 촛불혁명에는 지배적 주류언론 외의 대안적 매체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매체의 차이가 곧 현시대에 대한 정보와 가치관의 차이로 이어지는 상황이니까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력, 집단지성에 대한 열망 등이 뉴미디어와 결합해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 이 순간에도 뉴미디어가 중요한 이유는, 이 플랫폼 위에서 한류의 팬덤부터 시작해 여러 게시판에서의 토론 등이 온라인 상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백영서 개벽의 한국학도 뉴미디어에 관심을 많이 기울여야 파급력이 커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개벽의 한국학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길

백영서 마지막으로 개벽의 한국학이 새롭게 기여하는 바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고민해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백년의 변혁 또는 그보다 더 전부터 이 땅에서 누적된 역사와 문화의 점증적 성취에 대한 자신감과 동시에 그간 누적된 적폐를 변혁하려는 의지가 구현되어온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개벽이라고 봅니다. 개벽사상은 근현대사의 모순과 갈등이 응축된 핵심현장의 하나인 한반도에서 발효되어 이어져온 것이고, 이는 단지 정신적 차원만 아니라 시대적 적폐를 부단히 극복하려 했던 운동들을 모두 포괄합니다. 특히 개벽의 한국학이 가지는 실효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개벽의 한국학이 기존과는 다른 인식틀로서 어떤 새로운 쟁점을 분석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개벽의 한국학이 민주주의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 기여한다고 보는지 논의해보면 좋겠습니다.

 

백민정 개벽의 한국학을 통해 밝혀낼 한국적인 독특함이나 창조성이 있다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한국은 사상적 전통을 중국과 공유하고 있지만, 우주적 자아에 대한 열망은 중국보다 훨씬 크지 않은가 합니다. 나라 전체가 식민화되고 제국주의 침탈을 심각하게 겪었던 일제강점기 당시 사람들의 상실감은 엄청났을 겁니다. 중국 역시 국권에 대한 위협을 받기는 했지만 나라 전체가 넘어가지는 않았거든요. 한국인의 국권과 자아정체성이 파괴된 경험이 더 심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주적 자아, 대동(大同)의 ‘나’에 대한 갈망이 강해졌다고 봅니다. 이것이 한얼 한울 홍익인간 등으로 나타나고, 동학의 천지신령신명, 안창호의 대공주의(大公主義 , 통합된 독립운동을 통해 민족·계급 해방을 추구해 평등한 민주국가를 실현하며 이로써 세계 공영에 이바지한다는 개념), 신채호의 천하위공(天下爲公), 조소앙의 삼균주의(三均主義 ,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는 평등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1941년 임시정부의 ‘대한민국건국강령’으로 체계화됨) 등에 이르는 다양한 사유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살필 수 있습니다. 이 ‘우주적 나’가 추상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자신의 무너진 주체성을 세우고 세상의 부조리함과 부정의함을 더 예민하게 감각하며 사회를 변혁해야 한다는 강력한 소망과 염원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치를 추구하다보니 전통적 방법으로도, 서구 근대성과 제국주의의 지식으로도 안 되겠기에 개벽의 정신을 일깨우면서 인식론적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이죠. 사적 개체, 작은 자아와 함께 사는 ‘큰 나’, 곧 우주적 자아에 대한 선배들의 강조는 연대, 공감, 유대의 정신을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아의 마음공부도 당연히 강조되었고, 세상의 부조리를 변혁하려는 사회적 실천운동으로의 확산도 중요했던 것이죠. 사회적으로 합의된 산술적 수치 이상으로, 또 절차적 공정성으로서 민주적 제도 이상으로 한국인들이 도덕성과 윤리, 실질적 민주성과 공공성을 고민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 착목해 더 분석해본다면 한국학과 민주주의의 실질적 성장에 대한 유의미한 논의를 전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성문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했던 선배들의 일차적인 목표는 권위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게 무너졌을 때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해야 하는가 논의할 여력이 부족했어요. 제가 90년대 초에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모든 게 자유화되는 시기였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민주주의가 미국 사람 되는 거였나’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교민주주의 담론이 저한테는 연구자로서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교민주주의란 각 나라의 다양한 전통과 내적 토양에 맞는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고민하자는 것인데요, 개벽의 한국학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도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개벽 논의의 장점은 좁은 의미의 철학적 작업으로서 기술적인(descriptive) 면이 있으면서 동시에 실천규범적인(prescriptive) 성격이 강하다는 점입니다. 한국사회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변화의 역동성을 학문적으로 사후 해석하고 설명하는 과정도 필요하지만, 개벽 논의는 특히 그 역동성이 가진 미래 실천적인 측면을 제시할 수 있어 유의미합니다. 즉, 민주주의는 민주화라는 정치체제의 전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민주적 삶의 양식’을 향한 일반 시민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투쟁 속에서 발견되고 경험되는데, 이때 개벽이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시민적 화두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죠.

 

유영주 ‘개벽의 한국학’ 개념의 핵심을 주체적 근대 기획에서 찾는다면 한국문학 연구와 민주주의 연구는 분과학문의 파편성을 초월하여 자연스럽게 포개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낙청 선생께서는 시민문학론을 통해 한국 근대문학의 존재적 연원을, 동학농민운동에서 3·1운동과 4·19로 이어지는 사상적 전통 및 운동사적 계보로 설명하셨는데요. 그처럼 굳이 맑시즘적 문예관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의 계보 안에서 문학성과 정치성의 높은 수준의 통일과 지향에 주목할 때, 20세기 한국문학은 물론 해외 시청자들에 의해 높은 수준의 자본주의 비판으로 읽히는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등 21세기 한국 문화콘텐츠도 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백영서 그런데 우리가 새로운 민주주의를 구상하고 실천한다고 할 때, 최근에는 서구중심주의와 더불어 중국중심주의 역시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김성문 선생님이 영어권의 중국연구자와 논쟁한 걸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군정 등에 의해 외부에서 들어온 것처럼 얘기되는 경향이 아직도 있더군요. 반면 중국의 민주주의는 유교, 특히 정치적 현능주의(meritocracy)라는 오래된 내부 동력의 결과로 설명하고 있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연구자와 유학을 가지고 논쟁하기보다 개벽의 민주주의를 도입해 논의하는 쪽이 더 생산적이고 독창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을까요?

 

김성문 중국은 미국의 시각에 반대할 때 자신들의 대항적 이론을 제시해요. 국제정치를 얘기할 때도 미국 중심의 반대항으로 ‘천하주의’를 내놓는 식입니다. 그런데 미국이든 중국이든 자신들의 패권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패권의 영향을 받는 국가나 대상들이 가진 경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죠. 저는 한국인으로서 유교를 동아시아 전반의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학계에서 유교는 완전히 중국의 국학 담론에 포함된 개념으로 취급되고 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가진 역사적 경험과 자원들을 이론적으로 잘 조직해서 미국·중국이 주장하는 것과 다른 형태의 민주적인 삶과 제도, 실천을 얘기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영서 그 실질을 무엇으로 채울까가 중요할 텐데요. 개벽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깨달은 낱낱의 사람들 안에 ‘한울님’이 있으니 이들 모두가 우주의 차원에서 중요한 인물이고, 그렇기에 모두 평등한 상태에서 서로 존중하면서 자치를 해나가는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중국의 논의틀에도 맞서본다면,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는 「건국론」에서 세가지 치, 즉 덕치(德治)·정치(政治)·도치(道治)가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덕치와 정치는 유교에서도 이야기되지만, 도치는 민중 각자가 도인의 경지에 이름으로써 원만한 세상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아직 현실국가에서 실현된 적 없는 개념이지만, 유학이 제시하는 덕치와 정치의 결합만으로는 새 세상을 열 수 없기에 도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어요. 중국 지식인들과 토론해본 경험에 따르면, 결국 우주의 중심인 개개인이 개인적인 수양과 사회적 개혁을 동시에 수행하는 길이 민주주의 논의의 새로운 방향이 되고, 기존 패권의 사상계와도 대화할 수 있는 중요한 논조가 될 수 있다는 데서 개벽의 한국학의 쓰임이 분명해집니다.

 

백민정 다만 ‘도’라는 개념이 워낙 연원이 길고 다양한 뜻을 가지고 쓰인 내력이 있기에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점은 우려됩니다. 물론 식민지시기 제국주의에 의한 정치적 검열, 현대사회의 자본주의에 의한 경제적 속박 등을 경험해온 한국에서 우주의 중심인 ‘나’의 주체성을 자각하고, 주인으로서 삶의 변화를 도모할 때 ‘도’ 개념의 함의를 고민할 필요는 여전합니다. 가령 조선시대 사람들도 세상과 인간 삶의 전범으로 도학(道學)을 강조했고, 자신들 사유의 정당성을 도통(道統)으로 계승했었죠. 이렇듯 삶과 세상의 질서원리로 한국인들이 고민해온 도의 계보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보지만, ‘도’라는 단어를 중국문화권과 오랜 시간 공유해온 점에서 좀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백영서 최근 중국이 대안적 근대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면서 구미의 상승적·수직적 보편 대신에 ‘수평적 보편’이나 ‘매개적 보편’을 대안으로 제시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익숙한 도 개념을 우리가 개벽의 시각에서 새롭게 제시함으로써 이에 대응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보편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구미에서 왔고 이에 중국도 서구적 틀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데, 이를 아예 해체하면서 새로운 발상을 제시하는 방책이 도인 셈이죠. 이는 인간이 멋대로 만드는 도로나 통로도 아니지만 동시에 ‘길을 닦는’ 인간의 실천과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사유와 실천이 융합된 ‘길〔道〕’입니다. 보편성이라는 주제도 개벽의 한국학이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여기서 딱 정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후 계속해서 여러 논의가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개벽의 한국학이 제도권 학계의 혁신 없이 과연 제대로 수행될까 염려도 되는데, 그래서 운동의 학문화, 학문의 운동화가 이루어진 형태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개벽의 시각에서 다시 말씀드리면, 수양인·연구자·실천가의 마음을 아우르는 마음공부의 학문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는 것이지요. 이에 대한 전망을 들으며 이 자리를 마무리하면 어떨까 합니다.

 

김성문 ‘개벽의 한국학’은 한국사회·정치·역사·문화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통해 현대 한국을 조망하고 나아가 이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통해 미래 한국의 길을 예비하는 새로운 인식틀입니다. 이는 동시에 사회개혁과 개인의 수양을 강조해온 동양사상의 근본정신을 현대 한국사회의 구체적인 사회·정치·경제적 현실에서 새롭게 재구축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 야심찬 기획에 국내외 많은 연구자들이 참여하기를 희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좌담을 통해 제가 그동안 진행해왔던 유교민주주의/헌정주의 이론을 ‘개벽’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중국을 배경으로 유교정치철학을 연구하는 많은 해외 연구자들은 사실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반민중적·반민주적인 형태의 ‘민주주의’, 단적으로 ‘엘리트 중심의 민주주의’를 ‘유교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찬양하곤 합니다. 저처럼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시민의 수평적·자발적 참여를 강조하는 유교민주주의 이론은 소수에 불과하죠. 저는 항상 이론가로서 제가 느끼는 고독감이 제 민주주의 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87년 민주항쟁과 촛불대항쟁 때문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중국 학자들이나 중국을 배경으로 연구하는 해외 학자들에게는 낯선 문제의식이지요. 이번 좌담은 제가 모색해온 평등주의적 유교민주주의의 저류에 동학에서 촉발된 개벽사상이 있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반문하게 만들었습니다. 중요한 연구과제를 들고 홍콩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백민정 한국학은 역사적으로 그 함의가 계속 변하고 있는 역동적 개념이 맞는다고 봅니다. 과거 한때 자괴감, 열등감으로 스스로 우리의 것을 비하하던 시절도 있었는데요, 돌아보면 이 또한 서구 지향적 가치에 동조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렇다고 한류가 대접받고 국격이 향상된 오늘날에 우리의 전통적인 자산들을 신중한 검토 없이 하나로 묶어 높인다면, 이것이야말로 좁은 시야의 국수주의적 편견에 그치는 것이겠죠. 한국학을 이런 과도한 열등감이나 자부심에서 벗어나 좀더 넓은 지평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오늘날 실천적 사유활동으로서 한국학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금보다 더 힘들고 고단했던 20세기 전후 문명의 급변기에도 한국인들이 한반도의 터전에서 비롯하되 세계인이 공명할 만한 보편적 가치를 지향했던 점, 영속적인 평화 그리고 함께 사는 공존의 의미를 잊지 않았던 점을 상기하고 싶어요. 오늘 한국학의 현장을 살피고 미래를 가늠하며 뜻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매우 즐거웠습니다.

 

유영주 저는 최근 한류 혹은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방법으로서의 한국’에 대한 필요성을 환기하는 것 같습니다. ‘방법으로서의 아시아’가 중국 혹은 일본의 관점에서 주체적 근대화 기획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담긴 표현이라고 할 때,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를 무수한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사례가 다름 아닌 한국이고, 한류 역시 단지 문화적 소비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좌절과 성취를 모두 겪어온 한국인의 집단적 근대 경험이 녹아 있는 문화적 결정체라는 생각입니다. 앞서 언급하셨던 ‘문화적 되감기’도 이제 또다른 국면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과거 식민지였던 한국의 문화가 서구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1단계의 되감기 현상이 확산됨과 동시에, 이미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이 발신하는 많은 것들이 발전의 도상에 있는 나라들에 제공되어 언젠가 우리에게도 되감아져 올 것을 예비하는 2단계의 되감기가 준비되는 상황이라고도 봅니다. 홍콩과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에 「임을 위한 행진곡」 외에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민중가요처럼 불렸다는 사실은 앞으로 되감아져 돌아올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좋은 사례겠지요. 이를 서구에 대한 변방의식에 뿌리를 둔 ‘국뽕’의 관점에서 해소하는 데 그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중심부 국가와 달리 한국이 식민지와 저발전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공감과 수평적 연대로 발전시켜나갈 것인가의 갈림길에 지금 우리가 서 있습니다. 이 긴장이야말로 한국학의 새로운 방향 설정 과정에서 진지한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백영서 대화를 마무리하며, 한국의 역사와 현실의 역동성을 창발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을 북돋우고, 만민평등에 입각한 개인수양(영성)과 사회변혁을 동시에 추구하는 주체를 키우는 과정에서 연구자 자신도 마음공부를 통해 변화하며, 지구적 규모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을 만들고 실천해가는 데 기여하는 한 차원 높은 한국학을 ‘개벽의 한국학’이라 부르면 어떨까 제안해봅니다. 한국 안팎에서 제각기 조건에 맞춰 한반도 분단체제와 한국의 국가 개조라는 중·단기적 과제에 이론적·실천적으로 참여하며 거둔 성취를 동력으로 삼아 새로운 학술운동이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이 좌담이 ‘개벽의 한국학’을 슬로건으로 선언하거나 체계를 갖춘 구상으로 제시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오늘은 그 길로 향하는 출발점에 선 것이고, 앞으로 개벽세상을 만들고자 싸우는 과정에 함께하는 사람들에 의해 진화해갈 의제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알게 모르게 수행해온 학술작업에 새 이름을 붙이고 큰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일상적 작업의 실행력을 높여주자는 바람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오늘 귀한 걸음 해주신 세분 선생님도 새로운 길로 향하는 여정에 동참하신 셈이지요. 이제 막 시작된 이 길에 독자들도 적극 참여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2022.7.25. 창비서교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