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동아시아의 변화, 한국사회의 대응

 

새로운 한반도 경제체제의 구상

분단경제에서 개방형 민족경제로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국제학부 교수, 경제학. 저서로 『중국의 농촌개혁과 경제발전』 『동북아시대의 한국경제 발전전략』(공저), 주요 논문으로 「한국농업과 동북아농업」(본지 125호) 등이 있음. ilee@hs.ac.kr

 

 

1. 시작하면서: 두 개의 정경(情景)

 

국내 경제가 어렵고 양극화가 큰 문제라는 걱정이 많다. 위기다 아니다를 놓고 옥신각신하던 정부도, 쟁점법안 문제로 소란스럽던 정치권도, 긴장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하나의 사례이지만 연말에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2월 대구의 어느 영세민 집 안방 장롱에서 다섯살짜리 아이가 숨져 있는 것을 주변에 있는 성당 관계자가 발견했다고 한다. 직접적인 사인은 영양실조에 의한 기아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해왔으나, 계속된 경기침체 때문에 하루 한끼는 거의 매일 굶었고 한달에 일주일 정도는 식사를 아예 못하는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1

그런데 영상을 통해 또다른 어린이들의 모습이 전해졌다. 북한 청진 시내 모습을 담은 사진에는 동상으로 발가락이 모두 잘리거나 한쪽 다리를 잃은 채 광장을 기어다니는 아이들, 길바닥에서 술병을 들고 담배를 능숙하게 피우는 열살 가량의 아이들, 누더기 차림으로 굶주림에 지쳐 철로에 쓰러져 잠든 소녀의 모습이 확연하다. 북한 어린이들의 참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이미 북한―중국 국경 가까이의 옌지(延吉), 투먼(圖們), 허룽(和龍)은 물론 랴오닝(遼寧)성의 션양(瀋陽)과 따롄(大連), 심지어는 샨뚱(山東)성 칭따오(靑島)에까지 퍼져 있다.2

이 두 개의 가슴 아픈 정경에 어떤 연관이 없을까? 장롱 속의 남쪽 어린이와 철로에 쓰러져 있는 북쪽 소녀의 소리없는 고함소리를 선으로 연결하면 그 지평선엔 어떤 소실점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나른한 일요일 오후의 늙은 사냥개만큼 느긋한, 그래서 결코 건너뛰는 법이 없이 차근차근 주어진 상황을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경제학자들의 속성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도 또한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얼굴들을 뜨거운 마음으로 살펴보아야 하겠다. 물론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출범 이래 상당수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투자 부진을 가져오는 좌파정책을 공격해왔다. 또 진보파 경제학자들은 문제의 근원을 둘러싸고 투기자본 책임론과 재벌총수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필자는 이러한 문제들의 뿌리에 글로벌화와 경쟁격화라는 환경변화, 그리고 흔들리는 분단체제, 그 안에서 개혁의 지연으로 내부의 분단을 다시 확산하는 경제 메커니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대안은 분단경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체제의 설계이다.

 

 

2. 흔들리는 분단경제

 

그러면 먼저 남북한 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돈해보기로 하자. 이를 위해 남북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자는 의도에서 제기된 ‘분단체제’ 개념을 경제적 차원에서 구체화해보기로 한다.

 

(1) 새로운 환경과 분단경제의 동요

지금까지 전개된 분단체제론에 의하면, 남북한 각각의 체제로 이루어진 한반도는 일정한 자기재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내재적으로 불안정한 ‘하나의 체제’이다. 분단체제는 그 하위체제인 남북 각기의 체제에서 지배자와 민중의 대립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분단체제가 ‘하나의 체제’인 이상 그 ‘주요모순’은 분단체제(의 기득권세력) 대 남북한 민중의 대립이라는 ‘하나의 모순’이다. 남북한 각각의 지배층은 적대적이지만 다분히 상호의존적이다. 남북한 사회는 냉전체제의 지원과 체제경쟁 그리고 내적 역동성을 통해서 상당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3

분단체제의 경제적 ‘토대’4는 ‘국가 주도의 추격·추월 전략’과 그를 뒷받침하는 씨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980년대까지 남북한 경제체제에는 모두 선진국 또는 남북한 상대국을 따라잡겠다는 강력한 국가의지가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격·추월 전략’의 전제는 국가를 기본단위로 하고 경제발전의 중심을 공업화에 둔다는 것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씨스템은 가격을 왜곡하는 거시정책과 통제적인 관리체제였다. 즉 정부는 일정하게 이자율, 환율, 원자재가격, 농산물가격을 통제하고, 희소자원 분배에 개입한다. 종종 유치산업 보호를 위한 산업보호정책이 시행되고 무역장벽이 설치되었다.5

냉전체제 하에서 남북한의 ‘추격·추월 전략’은 일정하게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시작된 냉전체제의 부분적 완화, 1970년대말 이후 중국경제의 세계경제로의 편입, 1980년대말 이후의 사회주의권 붕괴는 남북한 내부의 분단경제를 규정했던 기본환경의 일각이 무너진 것을 의미했다. 거기에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무역·투자·금융 자유화, 정보통신산업·생명공학산업·메카트로닉스6 산업에서의 기술혁명은 국경을 초월한 경쟁력과 ‘개방경제형 정부’의 새로운 역할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환경변화로 공고한 분단경제는 흔들리게 되었다. 즉 냉전체제의 이완과 글로벌화가 진행됨에 따라 경제적 조정이 국민경제적 범위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조건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세계경제 또는 세계체제는 정치·군사적 수준과 경제적 수준에서 국민국가의 능력을 점점 더 침해하고 있다. 남한의 경우 세계자본의 흐름에 한층 직접적으로 연관되게 되었는데 이는 초국적자본의 국내유입뿐만 아니라 국내자본의 초국적자본화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국내 자본축적의 한계와 국제분업체계의 붕괴 때문에 새로운 씨스템을 마련하고 세계경제·세계체제와의 연관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이제 남북한은 모두 내부에서 격렬한 구조 변화의 와중에 있고 이전 체제를 해체·분해하는 힘은 강해지고 있다. 분단체제를 규정하고 있던 외부환경이 변화하고 남북한의 적대성이 부분적으로 이완되었다. 남한에서는 민주화가 일정하게 진행되었고 북한에서는 계획체제를 뒷받침하는 국제분업관계가 와해되었다. 남북한 경제 내부에 작동하던 강제적·명령적 동원체제의 힘은 전보다 약화되었고, 양극화 또는 이중구조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강제력 약화와 내부 분화는 ‘흔들리는 분단체제’의 정치경제상의 현상물이다.[7. 양극화는 역사적으로 보면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동행하는 현상이고, 이는 세계경제의 확장과 관련이 있다.(예를 들면 16세기의 상업혁명, 18세기말의 산업혁명, 19세기말~20세기초의 빅 비즈니스 등장 등이 있다

  1. 『연합뉴스』 2004년 12월 18일자 및 2005년 1월 11일자.
  2. 『중앙일보』 2001년 1월 7일자 및 『연합뉴스』 1999년 2월 17일자.
  3. 백낙청(白樂晴) 교수는 분단된 한반도라는 독특한 사회구성에 대한 분석을 사회과학에 요청했으나 그 제안은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이에 그는 분단된 한반도 상황을 직접 이론화하는 작업에 나서 분단체제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백낙청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 『창작과비평』 78호(1992년 겨울) 및 김종엽 「분단체제론의 궤적: 회고와 전망」, 『동향과전망』 61호(2004년 여름) 참조.
  4. 통상 ‘토대’는 하나의 사회구성에서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분단경제의 전개양상만을 제시할 뿐, 하위체제인 남북한 각각의 생산력, 생산관계 등 여러 하위요소,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도 밝히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토대’라는 표현은 아직 서술적이다.
  5. 단, 남한이 수출시장을 목표로 대기업을 육성하면서 경공업에서 중공업 단계로 이행했다면, 북한은 처음부터 강력한 중공업우선발전을 추진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유화·집단화를 행했다. 물론 세계시장의 중요성과 미시 조직의 효율성 문제를 경시한 북한경제가 나중에 치러야 할 댓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6. 최근 대부분의 기계와 공정은 전기와 기계적 본질이 어우러진 복합체이다.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는 이러한 복합적 구성체를 효과적으로 해석·제어·처리하기 위해 기계·전자·씨스템 등 공학의 여러 분야를 복합한 학문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