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새만금, 호남평야, 황해도시공동체

 

 

김석철 金錫澈

건축가, 도시설계가. 아키반(ARCHIBAN)건축도시연구원 대표. 명지대학교 건축대학장. 컬럼비아대학 건축대학원 및 베네찌아대학 건축대학 겸임교수. 주요 작품으로 예술의 전당, 베네찌아 비엔날레 한국관, 한국예술종합학교, SBS 탄현스튜디오, 제주영화박물관, 해인사 신불교단지, 뻬이징 경제개발특구 주거단지, 쿠웨이트 자하라 주거단지, 여의도 마스터플랜 등이 있음. RTV 특집씨리즈 ‘새만금, 대안은 있다’에 주도적으로 참여. 저서로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 등이 있음. archiban@kornet.net

* 다이어그램과 도면의 상당부분은 2003년 3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새만금 바다도시 국제회의’와 뉴욕에서 진행된 컬럼비아대학 ‘건축대학원 설계스튜디오’와 이딸리아에서 열린 ‘OLBIA EXPO 2003’에서 발표된 자료여서 영문으로 표기되었음을 밝힌다.–필자

 

 

1. 머리말: 중용의 길, 창조적 대안을 찾아서

 

새만금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 법원에 의한 방조제공사 정지처분 이후로 더욱 가열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농토와 갯벌의 비교우위라든가 담수호의 오염여부 등이 모두 중요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부각시키고 정리하기 위해 그동안 이 논의에 참여해온 수많은 당사자들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새만금이 전라북도와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제대로 인식한 다음에야, 바다와 갯벌을 육지와 담수호로 만들겠다는 현재의 새만금사업이 어떤 문제점을 지녔는지를 정확히 논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신경제중심: 중국 동해안, 한반도, 일본 서남해안이 이루는 황해도시공동체

동아시아의 신경제중심: 중국 동해안, 한반도, 일본 서남해안이 이루는 황해도시공동체

 

필자가 『창작과비평』 작년 겨울호(통권 118호)에 「새만금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시각」을 발표한 것은 새만금문제를 둘러싼 ‘환경보호 대 지역개발’의 해묵은 논란을 넘어설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었다. 즉 새만금사업 자체는 계속하되 아직 막지 않은 4.5km구간을 그대로 두고 해수를 유통시킨 채 마무리공사를 하고 이미 건설된 방조제를 중심으로 ‘바다도시’를 건설함으로써, 바다와 갯벌도 살리면서 당초 목표인 전북의 획기적 발전도 더욱 확실하게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간척을 하려는 정부측과 간척사업을 중단하자는 환경단체 등 반대측 모두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중용의 안을 제안한 것인데, 대선과정에서 제대로 이슈화되지 못했음은 물론, 대선 이후 ‘새만금 신구상’ 논의에서도 공론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대다수의 환경운동가들은 바다도시 구상도 또하나의 개발논리에 불과하다고 외면하였고, 전북 당국자나 농림부 및 농업기반공사측은 그나마 확보해놓은 사업과 예산에 집착하여 간척사업 이외의 어떠한 대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대통령 자신의 구상 속에는 농지 이외의 용도는 물론, 해수를 계속 유통시키는 방안까지도 포함되었다는 기미가 충분히 엿보였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의식해서든 아니면 부처이기주의를 제어하지 못해서든, 모호한 발언과 무결단의 시간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태는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4호방조제 물막이공사가 강행되어 군산반도측의 갯벌 파괴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선 상태에서, 담수호의 수질을 확보할 수 없음을 주된 이유로 법원에서 방조제공사의 중단 결정을 내렸다. 담수호의 오염 여부가 결코 새만금문제의 본질은 아니지만 어쨌든 새로운 모색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결정이었는데, 다시 대통령의 조속한 공사재개 촉구 발표가 이어지고 법원에서는 ‘보강공사’를 허용함으로써 물막이공사를 계속 강행할 빌미를 주는 등, 혼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바다도시 구상이 충분한 주목을 못 받은 데는 구상 자체가 아직 미완성 단계인 탓도 있다. 특히 『창작과비평』에 발표한 지난번 글은 우선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선언적 제안’의 성격이었다. 이 글이 나오기까지의 배경과 경위에 대해서는 그후 디지털창비 웹매거진(www.changbi.com/webzine) ‘특집’에 실은 「새만금 바다도시: 반론에 대한 답변과 배경설명」(2003. 4)에서, 5년 전 중국 칭화(淸華)대학 및 미국 하바드대학의 동료들과 ‘동북아 도시화’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일부터, 시민방송 RTV 개국(2002. 9)을 계기로 백낙청 교수의 권유로 ‘새만금, 대안은 있다’라는 특별기획에 적극 참여하게 된 일 등을 소개한 바 있다. “첫째 아직 무르익지 않은 구상을 서둘러 발표하게 된 동기를 해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둘째로 비록 초기단계의 구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장기간의 준비 없이 나온 제안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 과정에서 연구와 설계에 협력한 동료들 외에 지난 2, 3년간 백낙청 교수와 많은 것을 상의했다. 물론 그가 나의 모든 제안에 동의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새만금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서 상생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뜻을 같이해왔다. 그간의 경위를 백교수 나름의 관점에서 정리한 ‘중간평가보고’가 중간쎄미나(2003. 3)에서 발표되었고 그후 보완된 내용이 『녹색평론』(2003년 5-6월호)에 「새만금 갯벌보존과 바다도시 논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으니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새만금 바다도시 국제회의(2002.12)에서 발표된 새만금 바다도시 안

새만금 바다도시 국제회의(2002. 12)에서 발표된 새만금 바다도시 안

 

창비 기고문에서의 ‘선언적 제안’ 이후 좀더 구체화된 구상을 처음 발표한 것은 2002년 12월 2일 중앙일보·RTV·명지대 공동주최로 국내외의 학자와 전문가를 초빙해 마련한 ‘새만금 바다도시 국제학술회의’에서였다. 그 내용을 정리해서 창비 웹매거진에 「새만금 개발의 대안, 바다도시」(2002. 12)를 발표했는데, 올해 3월 14일 다시 전문가그룹과의 워크숍(‘중간쎄미나’)에서 수정 보완된 그림을 제시했다. 이 발제문은 당일 배포된 자료집 이외에는 아직 활자화된 바 없으나, 내용의 일부는 위에서 말한 「새만금 바다도시: 반론에 대한 답변과 배경설명」에 화면자료와 함께 소개되어 있으며 올해 10월 ‘새만금 마스터플랜’과 함께 한글과 영문으로 출간될 것이다.

 

새만금-호남평야-서해안-황해도시공동체

새만금-호남평야-서해안-황해도시공동체

 

다음 단계로는 지난 5월 22일 원광대 ‘열린 정신 포럼’에서 “새만금 바다도시와 호남평야 도시연합”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또 한번 수정된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의 대중강연이라 자세한 설명을 할 기회도 없었지만,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했던 ‘호남평야 도시연합’ 구상을 부각시키는 것이 그 강연의 주목적이었다. 애초부터 새만금 바다도시는 호남평야 도시연합의 형성 없이는 불가능하고, 역으로 호남평야 도시들의 상호연계된 발전 또한 새만금 바다도시를 통한 황해도시공동체로의 열림이 절대적이었다.

원래의 계획은 이번 글에서 그동안의 구상들을 총정리해서 개념도(槪念圖)로서는 거의 완성된 안을 제시하려는 것이었다. 실제로 본고 4장에 가서 최근의 구상을 설명할 예정이기도 하다. 작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발표한 원고나 12월 국제회의 당시의 마스터플랜을 기억하는 독자에게는 많은 면에서 변화가 있음이 눈에 띌 것이다. 2003년 3월의 중간쎄미나 당시의 수정된 마스터플랜과 비교한다면 항만과 박람도시에 대한 구상에는 변화가 없으나 봉화산 일대의 ‘중간도시’를 없애고 기존의 군장공단과 과거의 간척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 구상의 현실성을 높이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거의 완성된 그림’과는 거리가 멀고 그사이 준비했던 구체적 자료도 대부분 생략하기로 했다. 필자의 연구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이 너무도 유동적이며 혼란스러운 상황인 만큼 일정한 신축성을 남겨둘 필요를 느꼈다. 또 한가지는, 그간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어쨌든 전체적인 상관관계를 염두에 두고 필자가 그려낸 바다도시 계획에서 특정부분만을 임의로 떼어내어 전혀 다른 목적에 편의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구상 자체에 대한 합의가 좀더 무르익을 때까지 아껴둘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다. 아직도 시급한 것은 국민들과 전북도민들이 새만금사업에 따른 득과 실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어떻게 내릴까 하는 기본적인 문제이다.

‘새만금사업의 득실’을 말할 때 ‘새만금의 싸이트’를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부터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간척사업 대상에 해당하는 방조제 안쪽의 바다와 갯벌 및 하구 일대가 ‘새만금 제1싸이트’라고 한다면, 정작 새만금사업으로 인해 직접적 영향을 받는 호남평야는 ‘새만금 제2싸이트’이며, 새만금 바깥바다와 백두대간 사이 전북 일원이 새만금사업의 영향권 안에 있는 ‘새만금 제3싸이트’가 된다. 이들 각 싸이트의 입장에서 새만금사업을 통해서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계획대로라면 바다를 막아서 새만금 제1싸이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2만8천ha의 농토와 1만2천ha의 담수호이며, 신구상기획단이 의도한 대로 설계변경을 한다 해도 공단·물류기지·관광단지 등을 위한 토지뿐이다. 전북의 인구와 산업경쟁력을 생각해본다면 기존의 농토와 공단을 활성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급한 일이지, 농토와 공단을 더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방조제로 바다를 막아 얻을 수 있는 것은 경쟁력없는 농토와 공단 그리고 오염될 수밖에 없는 담수호인 것이다.

 

전북 시·군의 구상들:1.산업단지 개발구상2.특산단지 개발구상3.첨단산업벨트4.일곱 신도시 계획

전북 시·군의 구상들: 1. 산업단지 개발구상 2. 특산단지 개발구상 3. 첨단산업벨트 4. 일곱 신도시 계획

 

그에 비해 현재의 새만금사업으로 인하여 잃게 될 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새만금이 가진 자연이고, 둘째는 새만금과 호남평야와 전북의 더 큰 미래이다.

환경단체들이 지난 수년간 보존을 주장해온 갯벌은 새만금사업으로 해서 잃게 될 자연 중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만경강·동진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면서 생긴 하구갯벌인 새만금은 세계적으로도 보존가치가 높은 인류의 자연유산이다. 그러나 갯벌말고 또 잃게 되는 것이 만경강과 동진강의 생명이다. 호남평야는 만경강·동진강에 의해서 생명을 갖게 되는데 갑문으로 최소한의 유통만 남긴 채 방조제로 이들의 흐름을 막아버리면 두 강과 호남평야는 생명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새만금을 막으면 백두대간이 호남평야를 지나 새만금으로 이어지던 것이 차단돼 한반도 생태계의 큰 흐름 하나가 끊어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방조제를 완전히 막으면 세계적인 하구갯벌이 사라지고, 호남평야와 두 강이 죽고, 백두대간과 서해바다 사이의 흐름이 차단되는 것이다.

 

고군산군도와 무주를 잇는 서해안-백두대간 어번 링크

고군산군도와 무주를 잇는 서해안-백두대간 어번 링크

 

새만금사업으로 영원히 잃게 되는 자연에 대해서는 그동안 환경운동가들이 끈질기게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호남평야와 전북의 더 큰 미래를 잃게 된다는 인식은 부족했던 것 같다. 하기는 새만금과 호남평야와 전북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개발론자들도 인식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새만금에서 호남평야와 전북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것은 그곳이 바다와 갯벌로 되어 있는 21세기 한반도의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논리로 잘못 시작된 사업이었건 어쨌건 그간의 대규모 방조제공사를 통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베네찌아의 라구나(Laguna, 內海) 못지않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거대한 안바다가 확보되어 있는 것이다. 아직은 바닷물이 유통하고 있는 새만금 안바다를 어떻게 해야 황해공동체의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