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문재인정부와 시대전환

 

새 정부가 시대전환에 이바지하려면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이중과제론』(편저) 등이 있음. lee87@skhu.ac.kr

 

 

1. 촛불민심의 승리, 새로운 출발

 

문재인(文在寅) 후보가 19대 대선에서 압승하고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것으로 작년 하반기 촛불항쟁이 촉발한 숨가쁜 정치일정이 일단락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극적인 전환이 아닐 수 없다. 4년 동안 바닷속에 침몰한 채로 있었던 세월호가 다시 떠오르고 희생자 수습을 위한 작업과 본격적인 진상조사가 시작된 것만으로도 이제는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물론 이러한 기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번 대선이 촛불민심의 승리라는 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촛불민심은 작년 4월 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기세등등하던 박근혜정부의 기를 꺾고, 촛불항쟁 초기 갈피를 잘 잡지 못하던 정치권을 대통령 탄핵에 나서게 만들었다. 어떤 정치인이나 정치세력보다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이다.

탄핵 이후에도 촛불민심이 전혀 이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대선을 통해 다시 확인되었다. 대선결과는 탄핵에 대한 여론과 거의 일치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이 선고되기 직전에 진행된 여론조사들에서 탄핵에 찬성한다고 답한 후보(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를 지지한다는 비중이 77~79%에 달했는데, 이번 대선에서 이들의 득표를 모두 합치면 75.4%였다. 대선결과를 두고 홍준표(洪準杓) 후보가 24%를 득표한 사실에 실망감을 표시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30% 후반에 달한다고 평가되어온 보수세력의 지지율이 30% 전후에 머무르고 보수 내부가 수구세력과 합리적 보수를 추구하는 세력으로 균열된 것은 한국정치사에서 큰 변화다. 외환위기가 절정에 달한 시점에 치러진 1997년 대선에서조차 위기를 초래한 책임이 있는 신한국당의 이회창(李會昌) 후보 득표율은 38.7%였다. 이번 대선은 수구의 영향을 최소화한 상황에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유례없는 정치환경과, 보수 내에서 합리적 보수의 영향력이 제고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와 함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촛불항쟁과 이번 대선이 대북강경론을 내세워 국내정치에서 주도권을 다시 확보하려던 수구세력과 박근혜정부의 무책임하고 위험스러운 행태에 일단 제동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촛불항쟁이 시작되기 직전인 작년 10월 1일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박근혜(朴槿惠) 당시 대통령은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정권의 도발과 반인륜적 통치가 종식될 수 있도록 북한 주민 여러분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여러분 모두 인간의 존엄을 존중받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놓을 것입니다.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랍니다”라며 사실상 북한정권의 붕괴를 목표로 제시했다. 만약 촛불항쟁이 없었다면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거셌을 것이며, 올해 12월로 예정되었던 대선이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올해 3~4월 미국 내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 등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만약 박근혜정부가 계속 유지되었을 경우 한반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물론 이 위기는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큰 고비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적어도 남북의 대립과 갈등이 수구적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는 것을 막고 국민의 생명안전과 삶의 질 향상을 최우선으로 하는 원칙에 따라 해결되어갈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제부터는 많은 사람이 갈망하는 것처럼 정권교체를 시대전환, 새로운 사회체제 건설로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촛불항쟁이 “혁명”으로 명명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현재 우리 사회의 새로운 체제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1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기존 체제에 일시적인 균열을 만든 사례는 적지 않지만, 기존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대체하는 작업에 성공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열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촛불항쟁 때보다 더 정교한 전략과 더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선이 마무리되고 촛불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주장한 새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일단 이들이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촛불항쟁 때 확인된 것처럼 이들에게만 맡겨서는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되기 힘들다. 시대전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촛불항쟁 때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그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민이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새 정부가 이에 성공하기 위해서 어떤 태도와 접근방식을 택해야 할 것인가를 논하는 동시에 새 정부가 자신의 할 일을 제대로 하게 만들고 종국적으로 시대전환에 필요한 시민의 역할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 수 있는 지혜가 필요

 

지금의 정치상황이 새 정부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선거결과는 정치상황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고 선거결과 자체도 다양한 정치적 의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선으로 새로 조성된 정치상황에서 새로운 정부가 지닌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현 시점에서 새 정부의 강점으로는 다음 세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이 전국적으로, 그리고 세대적으로 비교적 고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되었다. 먼저 지역별 득표를 보면 경북, 대구, 경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했고, 이 중 경남에서는 1위 홍준표 후보와의 격차가 1만표에 불과했다. 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중 20대부터 50대까지 홍준표 후보를 압도했고, 60대와 70대 이상에서만 밀렸다. 집권 초기에,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과 허니문 관계를 만들어내기 쉽다는 점을 잘 활용한다면 이는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특히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둘째, 사회적으로 변화에 대한 강한 열망이 존재한다. 이는 당연히 촛불항쟁의 결과이다. 사회전환을 위한 의제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져 있기 때문에 개혁과제 추진에 매우 긍정적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셋째, 유력한 정치적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다른 후보를 압도했다. 득표수에서 2위 후보와의 격차는 557만 951표로 역대 가장 컸다. 지금껏 가장 격차가 컸던 2007년 대선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鄭東泳) 후보를 531만 7708표차로 이겼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보수세력이 역대 최저 수준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따라서 당분간은 새 정부에 강력한 반대세력이 형성되기 힘들다.

반면 약점도 뚜렷하다. 무엇보다 여소야대의 의회를 상대해야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석수는 2017년 5월 11일 기준으로 120석에 불과해 과반수 150석에 크게 미달한다. 단독으로는 총리 선출이 어렵고, “여야 간 대립이 첨예한 법률 통과시 정족수의 60% 이상(180명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는 국회법(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충족시키기는 더 어려운 상황이다. 선거일정을 고려하면 이 구도가 적어도 앞으로 3년 가까이 계속될 수 있는데 이는 정부가 새로운 의제를 추진할 수 있는 황금시간과 겹친다. 의회와 협력관계를 맺지 못하면 정책추진이 어려워진다. 둘째,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았지만 득표율은 41%에 불과하다. 다자구도였던 탓이 크지만, 투표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약 60% 유권자들의 민심, 그리고 아예 투표를 하지 않은 기권자들의 민심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정치적 곤경에 빠질 수 있다. 문재인 후보의 승리는 반대세력들 내에서 쏠림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지지가 분산된 결과다. 셋째, 변화의 열망을 모아갈 수 있는 핵심의제가 없다. 이는 집권 초기에 매우 큰 약점이다. 선거라는 정치적 이벤트는 단순히 후보들 사이의 승패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변화에 대한 열망은 강하게 표출되었지만 초기 핵심과제가 무엇인지는 부각되지 않았다. 줄곧 1위를 달렸던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선거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쟁점이 부각되는 것을 피하려는, 즉 대세론을 유지하려는 선거전략을 택했다는 점에서 자초한 면이 크다. 게다가 인수위라는 준비과정이 없기 때문에 일단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의제를 정리해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새 정부가 제시하는 의제에 대한 지지로 이어가는 작업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강점과 약점이 새 정부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이는 새 정부가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강점과 약점에 대해 큰 이견은 없을 터라 새 정부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접근할 때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강점을 강화하고 약점을 약화하는 것이다. 혹은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가 강조한 것처럼 약점에 얽매이지 말고 강점을 발견해 이를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는 방식도 있다.2 모두 강점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약점을 소멸시키려 하거나 그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약점 자체가 강점이 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정치적으로는 후자의 방법이 필수적이다. 변화를 추구하는 작업에는 유리한 요소보다는 불리한 요소가 많기 마련이고, 이러한 조건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불리한 요소를 유리한 요소로 전환해야 한다. 강점과 약점의 관계는 변증법적이라는 것이 이러한 가능성을 연다. 가장 고도의 정치는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대전환을 추구해야 하는 새 정부에도 이러한 자세가 필요하다. 만약 고른 지지, 다른 후보와의 큰 격차라는 강점에만 초점을 맞추면 독단적 정치를 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참여정부 이후로도 계속 다수파 정부가 만들어진 바 있다. 2004년 4월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확보했으며(이는 2015년 3월까지 약 1년간만 지속되었다), 한나라당이 2008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2016년까지 여당은 계속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그런데 이 정치구도는 협력적 거버넌스, 혹은 협치보다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를 일차적 목표로 극단적 정쟁을 반복하는 현상을 출현시켰다. 정치적으로 반대자를 압도하려는 태도가 지배하면 각 정치세력 내부의 정치적 탄력성은 약화된다. 이는 다시 정치와 민심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든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의 조사결과(2010~14)에 따르면 한국의 의회에 대한 불신도는 조사 평균치인 57%를 훨씬 상회하는 74%에 달했다.3 이러한 상황에서는 여도 야도 성공하기 어렵다.

반대로 현재 여소야대, 41%의 득표율 등은 정치적인 취약점으로 보이지만 새로운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선 다당제적 의석분포가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촛불항쟁의 결과로 일단 수구세력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고 정책협력의 공간은 넓어졌다. 동시에 지지세력에게 정치적 대화와 타협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도 쉽다. 만약 지지율이 더 높았다면 지지세력의 높아진 기대와 정치현실 사이에서 외려 주도권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 이렇게 보면 현재는 한국정치에서 드물게 협치를 할 수 있는 정치환경이 만들어진 것이고, 새 정부의 성패는 상당 부분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가에 좌우될 것이다.

 

 

3. 두개의 난제

 

약점을 강점으로 전화할 수 있다면 이는 강점이 더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작용도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이 작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두개의 큰 난점이 있다.

첫째, 빠른 변화에 대한 갈망과 협치의 필요가 상충하기 쉽다. 빠른 변화에 대한 갈망은 적폐청산과 체제전환이 핵심이다. 실제로 적폐청산이 대선 과정에서 중요한 구호가 되기도 했다. 이는 원칙적으로 필요한 작업이지만 자칫하면 정쟁을 촉발하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특히 인적 청산에 초점이 맞추어질 경우 그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 문제에 접근할 때 새로운 체제의 구축이 최고의 적폐청산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파괴와 청산만 있고 새로운 체제 구축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구악이 다시, 아니 더 큰 힘을 갖고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적폐청산은 제도와 정책을 주요 대상으로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4대강사업, 과도한 검찰권력, 재벌체제 등이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개혁대상들이다.

체제전환을 협치를 통해 추진하는 것도 어렵다. 협상과 타협이 불가피한 협치를 추진하다보면 개혁작업이 용두사미가 되기 쉽다. 비록 현 국면을 촛불혁명으로 규정하지만 이때의 혁명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혁명과는 다르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의 근본적인 전환을 추구해야 하지만 국가권력을 장악한 이후 위로부터 급진적 사회개조를 추진하는 방식은 이제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점진적이고 장기적으로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체제전환의 전망을 열지 못하고 기득권 구조 내에서의 타협에 머물러서는 개혁작업을 위한 동력을 유지할 수 없고 새 정부가 성공하기도 어렵다.

이때 중요한 것이 여러 의제 중 핵심의제와 타협 가능한 의제를 구별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얻는 일이다. 협치에서는 협상과 주고받기가 불가피하다. 이를 시대적 변화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고 능력이다. 과거에 비해 경제민주화와 같은 경제 의제에 대한 정당들의 입장이 원칙적인 수준에서는 꽤 수렴되어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여러 의제 중 어떤 것을 우선 추진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정하고 개혁을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정부 시기 ‘4대 개혁입법’ 추진처럼 목표는 거창하고 좋았지만 추진 과정에서 혼란을 거듭하다 결국 실패했던 결과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당시 모든 의제마다 여야가 대립하며 극단적 갈등을 반복했고 이러한 정치적 갈등이 최근까지 계속되어왔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선거 과정에서 새 정부가 우선 추진할 의제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못한 점도 어려움을 더한다. 이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는 사실 두번째 난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제도가 협치에 매우 불리하다는 사실이다. 연정이 가장 높은 수준에서 연합정치 혹은 협치를 실현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번 대선 이전부터 연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연정이 구성될 수 있다면 위에서 제기된 많은 문제가 의회 내 협상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연정을 위한 제도적 기초는 매우 취약하다. 비례선거나 결선투표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선거 후에 연정을 포함한 다양한 연합정치가 필요하고 또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반면 단순다수제로 승자가 결정되는 우리 경우는 선거 후 연합이나 연정의 필요성도 낮아지고 실현 가능성도 떨어진다. 과반수에 훨씬 못 미치는 득표율로 권력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 당이 집권세력의 정치적 정당성에 도전하기 쉽게 하며, 거버넌스의 어려움을 증가시키고 정치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문제를 고려해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과정에서 ‘통합정부추진위원회’를 발족했지만, 이때의 통합정부는 “정당 간 연합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당 간 정책협약 및 정부운영 방식에 대한 합의를 기초로 구성되는 연정과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재를 광범위하게 쓴다는 의미로서의 통합정부인데, 의회 내 혹은 의회와의 협치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크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인사 입각으로 통합정부의 명분을 더하려는 방식은 사람 빼가기라는 야당의 반발을 부르는 등 부정적 효과가 클 가능성이 높다. 협치와 국민통합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더 큰 비전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을 요구하고, 그에 따라 양보할 것은 대담하게 양보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내각 구성에서 몫을 나누거나 몇몇 야당인사를 내각에 참여시킬 것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 제도적 기초가 취약한 우리 상황에서 협치는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 여부에 성패가 달려 있기도 하다. 그리고 정책협약의 성과에 기초해 연정 구성 가능성까지 검토해야 한다.

정책협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다음 두가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먼저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연정은 불가능에 가깝고 협치도 구두선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을 정책협약의 가장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한다면 국민들의 지지도 받을 수 있고 또 야당도 이에 원칙적으로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라도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거나 지방의회 선거에서 정당명부비례투표의 비중을 높일 수 있다면 정쟁이나 정치공학이 지배하는 선거가 아니라 정책선거가 이루어지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사회경제 분야에서는 복지를 강화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뒷받침하는 증세 등의 핵심적 의제를 관철시키는 대신 다른 영역에서 일정하게 양보하는 방식으로 정책협약을 추진해야 한다.4

 

 

4. 시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

 

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새 정부 또는 정치권만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권 내의 입장차이로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무리 중요한 개혁과제라 하더라도 찬반이 나뉠 때는 이를 적극적으로 관철하기 어렵다. 남북관계가 대표적이다. 북한의 반복되는 핵과 미사일 실험, 그리고 수구세력의 북한 문제 정치화가 상호작용하면서 남북관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되어왔다. 더불어민주당 등 기존 야당들이 그동안 안보 문제에서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의 잘못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상황을 빚은 원인 중 하나다. 그런데 남북관계를 발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하면 다른 개혁과제들도 제대로 추진되기 어렵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주된 동력이 정치권에서 만들어지기도 어렵다. 그뿐 아니라 막상 정치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에서도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선거법이 대표적 사례이다. 정치권이 자신의 이익을 강화할 수 있는 개헌 논의에는 적극적이면서 선거법 논의는 회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시민들이 주체로 나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치권이 그 요구에 부응하도록 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주체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새 정부에 대한 지지인가 반대인가를 넘어서는 일이다. 시민들이 새 정부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와 반대라는 정치공학에 갇힌다면 새 정부의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대전환의 길은 더 멀어지게 된다. 이와 함께 시민주권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거 때마다 시민들이 방관자로 전락하기 쉬운 이유는 생활현장에서 조직되어 있지 않아 일상적인 정치참여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을 민주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시민이 주권자로 설 수 있다. 따라서 촛불혁명의 에너지가 지역 차원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모아지도록 하기 위한 활동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와 관련해 지방분권은 단순히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시민이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개혁사안이다. 앞으로 진행될 개헌 논의가 중앙권력구조의 개편에만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고 이 의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 정부도 촛불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약속이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시민의 목소리가 국정에 반영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시민사회와의 협치를 추진하는 데 있어 실권이 없는 각종 위원회를 신설하고 이에 시민사회를 참여시키는 방법이나 실질적인 효과가 의심스러운 이벤트성 행사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 그보다는 시민의 참여가 필요한 영역을 정하고, 이 영역에서는 시민사회가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통신비 결정, 청년 관련 정책 결정 등에 당장 이런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협치가 정치권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그친다면 개혁의 동력을 강화하는 데 큰 한계가 있다. 즉 시민사회가 협치의 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정치권 내의 협치도 정쟁으로 귀결되지 않고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시민들이 선거가 끝나면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하는 일이 더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촛불혁명의 완성을 위한 대전제이다.

 

 

  1. 촛불항쟁의 혁명적 의의에 대해서는 백낙청 「‘촛불’의 새세상 만들기와 남북관계」,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 18~21면 참고.
  2. 피터 드러커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 이재규 옮김, 한국경제신문 2003, 제4장 참조.
  3. World Values Survey Association, “World Values Survey Wave 6 2010-2014 OFFICIAL AGGREGATE v.20150418”(http://www.worldvaluessurvey.org/WVSDocumentationWV6.jsp). 여기서 조사평균은 국가별 결과의 평균치가 아니라 전체 피설문자의 응답분포를 가리킨다.
  4. 2013년 독일 대연정의 경우, 사민당은 지속적으로 주장해오던 소득세율 인상을 포기하고 다른 정책(최저임금, 이중국적 허용, 연금제도 개혁 등)들을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기민련(기독교민주연합)은 증세를 제외한 독일 사민당의 정책들을 수용하는 타협의 형태로 출발했다. 우리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정책협약의 내용이 달라야 하지만, 큰 변화에 대한 요구와 협치의 요구를 결합시키기 위한 대담한 정책구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