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생명, 노동, 돌봄의 문학

공선옥 권여선 조해진 작품을 중심으로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 『사소한 이야기의 자유』 등이 있음.

cyndi89@naver.com

 

 

1. 코로나19 이후,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지구에서 다른 생명체와 공존하는 존재임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기후변화와 산업재해를 비롯해 그동안 축적되어온 각종 불평등과 모순은 여성과 소수자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취약한 존재들에게 증폭되어 다가왔으며, 극복을 위한 불가피한 노동도 이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생명 재생산과 돌봄의 위기 상황은 기존 자본주의 성장 모델로는 이 세계의 삶을 더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강력한 문제의식을 환기한다.

생명과 노동, 돌봄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문명전환의 토대로 삼으려는 제안과 노력은 오늘날 인문학 전반에서 사유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특히 페미니즘의 영역에서 그것은 돌봄노동의 사회화, 돌봄의 민주화 등의 문제와 연결되어 적극적인 대안체제의 모색을 동반하고 있다. 백영경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존재하며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식 자체의 변화”로서의 돌봄가치를 강조하면서, 페미니스트 탈성장론에 기반한 체제전환의 원리로서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이 절실함을 역설한다.1 이때 돌봄의 대상과 주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사유가 필요한데 특정한 성별과 계급에 집중되지 않는, 시민적 덕목으로서의 돌봄가치가 공유되어야 한다. 조기현은 “돌봄이 필요한 자와 돌봄을 수행하는 자, 돌봄 노동자가 모두 누군가의 공백을 누군가의 희생으로 메”우는 현실의 악순환을 끊고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돌봄을 논의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2

팬데믹 시대에 절실한 공동체적 가치로 요청되는 돌봄윤리는 그동안 문학의 영역에서 논의되었던 여성성, 모성, 생명의 의미를 다각도로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돌봄노동, 돌봄윤리와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모성만 하더라도 가부장제의 압력 속에서 구성되고 재생산되는 역할로만 제한적으로 해석되기 어렵다. 여성의 삶과 경험에서 얻어진 관계성과 보살핌, 배려의 경험을 존중하되 그 고유한 자원을 배타적인 성별 문제에 국한하거나 가부장체제를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동원하지 않아야 한다. 캐럴 길리건(Carol Gilligan)의 표현에 기대면 돌봄(보살핌)의 윤리는 가부장적 관점에서 보면 여성적 윤리이지만,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윤리이다.3 그의 말대로 돌봄과 보살핌은 여성뿐 아니라 인류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인바, 이를 위해서는 ‘나’ 역시 돌봄의 대상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타인에 대한 희생과 헌신으로 매몰되지 않으며 나와 세계의 관계 속에서 균형을 취할 수 있는 돌봄가치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돌봄의 민주주의, 돌봄의 사회적 힘에 대한 사유는 현실에서는 물론 문학작품에 재현되는 여성들의 연대와 협력을 읽어낼 때도 세심하고 복잡한 통로를 요구한다. 작품 안에서도, 실질적 삶에서도 가부장적 제도의 음모와 기획을 폭로하는 것만으로 여성들의 개별적 차이가 간단히 극복되거나 연대가 성립할 리 없으며, 그러한 가상적 연대는 진정한 사회적 실천력을 갖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과 소수자의 문제를 생각할 때 차이와 경계를 급진적으로 허무는 돌봄공동체의 구상 또한 흥미롭되 면밀히 짚어볼 지점이다. 최근 자주 논의되는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술루세’(Chthulucene) 개념과 탈가족화된 돌봄의 공동체를 뜻하는 ‘친족 만들기’(making kin) 개념은 종의 차이를 초월한 급진적 해체의 방식을 통해 자본주의체제 극복을 구상한다.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사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해러웨이의 해체 전략은 대담하고 초월적인 비유를 통해 시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그런데 이때의 ‘여성’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몸의 구체성에 대한 초월은 현실 속에서 감당하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 종들 사이의 차이와 갈등 관계를 무화하기 십상이다.4 종차를 초월하는 관계성을 앞세우는 것은 김미정의 지적대로 “모든 존재에 상존하는 불평등과 모순을 균질화하는 측면이 있는 포스트휴먼 논의”와 더불어 “종을 초월한 관계성의 또다른 진짜 문제, 그 압도적이고 가혹한 비대칭성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 추상적인 해법에 그치기 쉽다.5

관념적인 해체론이 쉽게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학작품이 다루는 성별의 모순, 생명, 노동의 문제는 섬세한 형상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여성의 서사 역시 가부장제의 압력 속에 구성되는 굴절의 지점과 동시에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저항성을 동시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공선옥, 권여선, 조해진의 최근 소설을 통해 개별적 삶의 차이를 보존하면서도 공동적인 관계를 열어갈 수 있는 문학적 상상력의 가능성을 짚어보려고 한다.6 이들의 작품은 지금 현실에서 주목되는 생명과 노동, 돌봄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면서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주조하고 있다. 특히 이들 소설은 여성적 삶의 곤경을 감당하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견지하면서도 도식적인 성별 형상화의 한계를 벗어나는 개성적 인물들을 보여줌으로써 눈길을 끈다.

 

 

2. 역사 속 생명과 모성: 공선옥 소설

 

공선옥의 「은주의 영화」는 인물들의 시점을 자유롭게 오가며 독특한 목소리의 발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역사 속 여성의 삶과 현실을 핍진하게 다루어온 공선옥 소설은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창비 2013)와 『꽃 같은 시절』(창비 2011)에서 현실과 환상, 산 자와 죽은 자,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허무는 서술 방식을 시도해왔다. 이 작품 역시 공선옥 소설 안에서 지속적으로 변주되는 5·18 이야기를 꺼낸다는 점에서 언뜻 익숙하게 보이지만, 인물의 내면에 저장된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내는 소설의 재현 방식에 대한 현재적인 고민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소설에서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을 가로지르는 장치로 쓰이는 것은 ‘카메라’다. 어린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