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의 문화지도, 어떻게 달라지나

 

서구와 한국의 교차점: 문화, 대중, 변혁, 진실

 

 

송승철­ 宋承哲

한림대 영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평론으로 「박노해론: 외로움에 갇히면 철인도 녹이 슨다」 「용병의 교훈: 베트남 전쟁 소설론」 등이 있음. scsong@sun.hallym.ac.kr

 

 

1. 패러다임의 변화: 문학에서 사회과학, 다시 문화론으로

 

나는 지금 작년 초에 구입한 핸드폰을 보고 있다. 손안에 딱 쥘 수 있는데다 은은한 백옥색 광택이어서 지금 보아도 여전히 품위있다. 쉰세대라는 말이 듣기 싫어 텁텁한 클래식 벨소리 대신 인터넷 싸이트에 들어가 수백원 주고 장나라의 「명랑소녀 성공기」를 다운받았다. 이제는 아바타도 갈아야 할 터인가? 그런데, 며칠 전 한 학생의 벨소리를 듣는 순간 핸드폰을 팽개치고 싶었다. 처음에 무슨 교향악단 연주인 줄 알았는데, 그게 바로 16화음 벨소리이며 내 핸드폰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새것으로 갈고 싶었다.

지금 내가 언급한 일화는 경제적 현실인가, 문화적 문제인가? 이 구분은 이제 무의미해 보인다. 이 일화는 경제가 문화영역에 침투했다는 것, 문화가 상품이 되었다는 것 이상을 말해준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지적한 바대로 “이전보다 참신하게 보이는 상품을, 회전주기를 더욱 단축시키면서, 계속 생산해야 하는 경제적 급박성”으로 인해1 문화형식이 생산·소비 활동과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통화기능에는 별 차이 없는데 벨소리가 화려하다는 이유로 멀쩡한 것을 새것으로 바꾸려는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다. 문화론의 부상을 어찌 우연한 일로만 볼 것인가?

이 글은 1990년대 이후 확장을 거듭해온 우리 문화론의 갈래를 파악하고 현싯점까지의 공과를 검토하려는 것인데, 내 개인적 경험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문화론을 가르치면서 가끔 문학평론도 쓰는데, 학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확연히 느낀다. 한국 지성사를 돌아보면 70년대까지 문학은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내면적·사회적 문제들에 관해 가장 진지한 물음을 제기한 영역으로 인정받았다. 80년대에 오면 사회과학이 지적 논의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사회구성체 논쟁 자체는 정작 문학중심 매체에서 촉발했지만 이 논쟁이 제기되었을 때 나는 내면적 삶을 규정하는 사회적 외면에 대한 통찰을 감각과 경험으로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나버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페리 앤더슨은 60년대 말까지 영국 지성계에서 문학이 누려온 특권적 지위가 지극히 영국적 상황에 기인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세기 이후 문학은 야만의 위협에서 영국인의 삶을 보호하는 수호자이자, 산업화로 인해 삶의 토대가 전면적으로 개편될 때 전체 사회의 건강성을 판단하는 법관으로 인식되었다.2 앤더슨이 주장한 바는 영국 지성계에는 독일의 맑스(K. Marx), 프랑스의 뒤르껨(E. Durkeim), 이딸리아의 빠레또(V. Pareto)처럼 사회를 총체적으로 통괄하는 이론을 제시하는 지적 전통이 없었기에 코울리지(S.T. Coleridge), 칼라일(T. Carlyle), 아놀드(M. Arnold), 모리스(W. Morris), 러스킨(J. Ruskin), 엘리어트(T.S. Eliot), 리비스(F.R. Leavis)로 이어지는 “문화와 사회” 전통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초 우리 학계에서 문화담론이 전면적으로 개화하면서 문학은 사회적 관심에서 조금 더 밀려난다.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고 자본주의의 전지구화가 명백해지면서 사회구성체 논쟁은 갑자기 케케묵은 주제가 되고, 탈근대주의 담론과 문화연구가 논쟁의 중심 화두가 된다. 생산과 계급의 문제 대신 재생산, 소비, 이데올로기, 권력, 성, 욕망 따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특히, 분과학문의 전통적 경계선을 무시하고 자기영역을 확장한 문화연구의 부상은 눈부실 정도이다. 레이먼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s)를 비롯한 50년대 영국 좌파 지식인들의 연구를 문화연구의 단초로 설정하는 일반적 통념을 받아들인다면 불과 50여년 만에 문화연구는 학계의 중심부로 진입하였다. 우리 학계에서도 위기에 봉착한 인문학의 출구를 특정학문이나 이론(theory) 그 자체에서보다 문화연구에서 찾자는 주장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문화에 대한 관심의 부활은 문학전공자로서 의당 반겨야 할 사건이 아닌가? 학문적 분류이든 역사적 고찰이든 두 분야는 지근거리에 있었는데, 문화론이 부상하면서 문학이 오히려 중심에서 더욱 밀려나는 지금의 이 모순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2. 문화론의 부상과 『문화과학』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국내에 문화론이 개화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국내에 본격적인 문화론이 개화한 것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민주화의 일정한 진전에 따라 변혁이론의 현실접합성이 급격히 떨어진 90년대 초였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화론이 부상한 배경에는 당대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1992년 『문화과학』 창간을 주도했던 강내희(姜來熙)는 한국사회가 “현재 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수립으로 생겨난 소비문화, 상품문화의 성격을 가진 대중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이며, 이런 상황에서 고급문화의 문예론 입장은 대중문화판 속에서 커다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3 국면이라고 정리했다. 물론 90년대 이전에도 문화론이 있었다. 김창남(金昌南)이 꾸준하게 보여주었던 노래 담론, 『현실과발언』 동인이 제기했던 민족미술론 따위인데, 이때의 문화론은 ‘문예론’의 영역에 한정되었으며, 변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의미가 강했고, 논의 방식도 문학에서 선취한 리얼리즘 이론을 적용하는 수준이었다. 요컨대 강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90년대 초 문화론의 등장은 후기자본주의로 이행하는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한 탄력적 대응이며 “사회적 생산양식에 직접 영향을 주는 실천형식”4이라는 것이다.

이 진술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이 진술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니, 우리 사회에서 문화론이 끼친 영향의 공과를 따지자면 그냥 지나갈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우리의 삶에서 소비의 비중이 예전에 비해 훨씬 커졌다는 것, 그리고 그 소비문화의 정치경제학적 의미를 신속하게 파악한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80년대 중반 중산층의 성격을 규정할 때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에 대한 관심을 잣대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흔히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격이나 직종이 아니라 소비행위를 통해 구현할 수 있음에 본격적으로 주목한 계층이었다는 점은 쉬 간과되고 있다. 당시 가장 유행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오너 드라이버’였으며, 자동차에 이어 개인용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론적 문제제기는 시의적절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초 부상한 문화론의 본모습이 한국사회의 새로운 국면에 대한 “탄력적 대응”이었던가. 당시 『문화과학』의 필진은 물론이고 그후 상당기간 동안 우리 문화론의 주류를 형성한 것은 알뛰쎄르(L. Althusser)의 영향을 받은 구조주의적 문화이론이었는데, 바로 이 점에서 문화론은 당대 문제에 대한 탄력적 대응이라기보다 서구 이론의 한발 빠른 소개에 치중한 측면이 짙다. 나는 여기서 서구 문화론의 추이를 잠깐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앞서 언급한 윌리엄즈는 이미 19세기에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자기반성적 성찰의 결과 문화론이 태동했음을 지적하는데, 이미 20세기 초 리비스 같은 문학비평가는 문화의 중요성을 선구적으로 역설한 적이 있다. 하지만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로 불리는 문화담론이 본격적으로 개화하게 되는 것은 50년대 문화주의자들의 작업 덕분인데, 앞서 언급한 윌리엄즈나 톰슨(E.P. Thompson) 등 사회주의자들은 제도권 담론에서 소외되었던 노

  1. 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ke U.P.) 4~5면.
  2. Perry Anderson, “Components of the National Culture,” New Left Review 1968년 7-8월호(I/50); Raymond Williams, Culture and Society: 1780~1950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3) 참조.
  3. 강내희 『문화론의 문제설정』(문화과학사 1996) 68면.
  4. 같은 책 6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