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선 이후 촛불의 갈 길

 

‘서로 돌봄’의 그물망이 희망이 된다

 

 

김중미 金重美

작가, 활동가. 소설집 『조커와 나』, 장편소설 『나의 동두천』 『모두 깜언』 『곁에 있다는 것』 『너를 위한 증언』,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 『꽃섬 고양이』, 에세이 『꽃은 많을수록 좋다』 등이 있음.

mansuk99@hanmail.net

 

 

1. 글을 열며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치른 뒤로 한동안 정치 기사를 보지 않았다. 애써 기사를 외면하면서 계속 주문을 걸었다. ‘섣불리 절망하고 좌절하지 말자. 군사독재정권 아래서도, 권위적인 정권 아래서도, 신자유주의정권 아래서도 우리의 삶은 지속되어왔으니까.’

대선이 치러지고 지선으로 정국이 어지러운 와중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이 이어지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하철 시위를 재개했다. 제주와 군산에 있던 평화운동단체 평화바람은 ‘봄바람 순례단’을 꾸려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투쟁현장을 찾았다.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노동자, 농민, 장애인, 여성들이 그리고 산과 들과 강과 바다가 고통에 신음하며 저항하고 있었다. 우리 공동체1도 팬데믹으로 멈췄던 일상을 다시 시작했다. 대면회의를 재개했고 초·중등부 아이들의 농촌체험을 다시 시작했다. 강화에 온 아이들과 볍씨를 뿌리고 모를 심었고, 3년 만에 인형극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거제 대우조선에서는 하청노동자가 배 안의 철제 케이지로 들어가 목숨 건 농성을 시작했다.

2022년 두번의 선거 결과는 절망스러웠다. 누구도 정권이 바뀌니 사는 게 좀 나아졌다거나 공정성이 강화됐다고 느끼지 못한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당연하다. 그러나 내 이웃들의 삶을 위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므로 썩은 내 나는 정치에 냉소만 할 수 없다. ‘사회학자도 정치평론가도 아닌 내가 지난 두번의 선거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도 이 글을 쓰는 까닭이다. 어쩌면 전문가가 아닌 50대 후반 여성이 겪은 선거와 전망에 대한 이야기도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거대한 담론과는 거리가 멀다. 나와 내 이웃의 관점에서, 그리고 곁에 있는 청년의 관점에서 쓴 글이 될 것이다.

 

 

2. 두번의 선거에 대한 소회

 

늘 정의당에 투표를 해왔던 공동체 청년들 중 절반이 이번 대선에서 눈물을 머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후보를 택했다고 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여성을 향한 혐오가 점점 거세지고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공약들이 쏟아지자 청년여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정치적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들이 느낀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 절실함도 이해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2030 여성들이 민주당에 표를 준 것은 민주당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지난 대선에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여성 의제들을 부각시키지 않았다면 0.73%포인트의 접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뒤 민주당과 정의당 일각에서는 실패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았다. 나는 민주당과 정의당 구성원과 지지자들이 선거 실패의 책임을 민주당의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 정의당의 장혜영, 류호정 의원 등에 묻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 여성 정치인을 향한 폭력과 백래시를 ‘진보’라고 믿는 사람들을 보며 청년들이 정치에 희망을 품을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 두번의 선거 실패를 어떻게 성찰하느냐에 따라 지금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정치를 막 시작했거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 정치인들을 위한 길을 내주고 더 많은 청년들이 정치를 시작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절망은 선거 패배 때문이 아니라 어디서도 그런 움직임을 볼 수 없다는 데서 온다.

 

누가 우리를 세대로, 젠더로 대립하게 하는가

나는 모든 청년들을 ‘청년세대’라는 단일한 집단으로 묶는 것, 우리 기성세대를 ‘586’이라는 숫자로 한데 묶는 것에도 반대한다. 2021년 출간된 『허락되지 않은 내일』(이한솔 지음, 돌베개)은 청년 35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성의 목소리가 아닌 청년 스스로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저자가 전하는 청년세대의 절망과 희망, 그 노력에 깊이 공감하며 책을 읽었지만 한 문장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

 

대학 졸업증 없이도 안정적인 정규직에 들어갔던 사람이, 일해서 모은 돈으로 부동산을 마련할 수 있었던 사람이, 전혀 다른 조건에 놓인 사람을 이해하기란 아무래도 어려울 것이다.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정당한 대가와 안전을 담보받지 못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사회가 청년들에게 주어졌을 뿐이다.(125면)

 

저자가 옆에 있다면 그 앞선 세대에서 사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고작 10% 안팎이었다는 것을, “대학 졸업증 없이도 안정적인 정규직”이 되었던 대기업 노동자들 역시 소수였다는 것을, 더욱이 그 안정적인 정규직에 여성들의 자리는 없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자란 동두천은 기지촌을 끼고 있는 특수한 지역이었다. 미군부대가 아니면 별다른 산업 기반이 없는 지역이라 사는 게 다 넉넉하지 않았고 골목마다 아이들은 넘쳐났다. 동두천초등학교는 6학년이 11개 학급이나 되고 학급마다 70여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6학년 때 우리 반도 70명이 넘었는데, 그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년제 대학에 진학한 친구는 여학생 한명, 남학생 여섯명이었다. 장학금을 받은 한명을 제외하면 모두 여유있던 가정의 자녀들이었다.

그 당시 남학생보다 공부를 잘하던 여학생들은 대부분 상고를 나와 취업을 했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병원 원무과, 보험회사나 은행, 중소기업의 사무·회계직으로 취업한 우리는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연히 나는 근무하던 병원 건너편에 있던 원풍모방 여성노동자들의 민주노조 투쟁을 보면서 내 계급에 눈을 떴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동기들 대부분은 결혼을 하면서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했고 자녀 양육과 집안일에 전념했다. 그러다 IMF 시기에 남편들이 희망퇴직,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맞벌이를 시작했다. 그들은 대형마트 계산원, 보험설계사, 백화점 판매노동자로 일했고 더러는 식당에서 파트타임 노동을 했다. 60대가 목전인 내 친구들 중 절반은 자기 앞으로 된 국민연금이 없다.2 지난 연말, 몇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이제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노동은 요양보호사나 미화노동뿐이라고 자조했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기득권세력 586세대에 여성은 없다. 50~60대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년여성들의 존재는 그렇게 지워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2021년 11월, 청년 유권자 공략을 위한 당내 ‘내일을 생각하는 청년위원회’ 출범식에서 “기사는 없더라도 좋은 자기 차를 타고 자기가 필요한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일하는 중장년층이 어떻게 버스 타고 자전거를 타고 걸어 다니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청년들의 애로를 알 수 있겠느냐”3 윤석열 “모든 부처에 청년 보좌역을 배치 할 것”」, YTN 2021.11.28.]라고 했다. 그러나 내 주위에는 ‘좋은 자기 차를 타고 필요한 시간만큼 원하는 장소에서 일하는’ 중장년층은 남녀불문 거의 없다

  1. ‘기찻길옆작은학교’. 필자가 1987년 인천 만석동에서 빈민운동을 시작한 뒤, 1988년 ‘기찻길옆공부방’을 열고 지금까지 공동체로 운영해오고 있다. 2001년부터는 강화군 양도면으로 귀농해 농촌공동체를 꾸렸다. 현재 만석동에 여덟 가족, 강화에 세 가족이 청년들과 함께 공부방을 하며 다양한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2. 국민연금 사각지대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경제활동 미참여자’ 가운데 대표적인 유형이 531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무소속 배우자’다. 이는 전체 사각지대의 42%에 해당하는데,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식으로 연금 최소 납입기간인 10년을 채우지 못한 여성들이 대다수다. 이들은 육아와 집안일 등 가사노동을 담당했지만, 국민연금공단에선 무소득 배우자를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적용제외자’로 분류해왔다. 「50대는 국민연금 지금 내도 못받아…“무소득 배우자, 제도 안으로”」, 한겨레 2022.7.8 참조.
  3. 「[현장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