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위기의 시대, 문학의 지혜

 

서정시가 필요한 시대

기후-생태 위기에 맞서

 

 

양경언 梁景彦

문학평론가. 평론집 『안녕을 묻는 방식』 등이 있음.

purplesea32@hanmail.net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고, 어디에도 갈 계획이 없습니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2022년 10월 30일 연설에서

 

 

1. 누가 책임지는가

 

지난 2015년 빠리기후협정에 참여한 국가들은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목표를 잡고 기후위기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이 분석한 바에 의하면, 193개 각국의 목표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을 이행하더라도 이번 세기 말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2.5도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1 세계가 더욱 강화된 기후행동 계획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극한 기상이변, 예상치 못한 재난의 증가는 물론이고 지구상 여러 생명들의 삶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상황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기후문제는 “지구행성이 처한 총체적 난국(생물다양성 상실, 생태계 붕괴, 6차 대멸종, 담수 부족, 토지훼손, 산림파괴, 유해 화공물질 등)”과 함께 이해해야 하는 “기후-생태 복합위기”2이고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야기한 문제이자, 이대로는 사회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리라는 인식이 공유되는 요즘이다. 학계 및 사회운동 진영으로부터 제출되는 해결책이 ‘체제전환’에 대한 요구로 모이는 중에 앞서와 같은 소식이 들리면 우리는 또다시 답답해진다. 그간 기후문제의 심각성을 열심히 알려왔던 사람들은 절망감을 느낄 테고, 기후문제의 규모가 너무 크다 싶어 ‘현실적이지 않은’ 일로 여겨왔던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연해질 것이다. 이 글은 그 간극 사이에서 “‘나’라는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등 돌리지 않고 “뭐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을 품은 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자리에서3 시작한다. 기후-생태 복합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책임의 자리를 새기는 일은 ‘나’의 역할과 ‘우리’의 지향을 고정적으로 여기지 않을 때 이루어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우선 ‘나’의 실천과 개별적인 움직임의 의도를 곡해하는 입장과는 거리를 두고자 한다. 기후문제와 관련하여 사이또오 코오헤이(斎藤幸平)는 에코백이나 텀블러 사용같이 소비의 반경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노력이 자칫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고 여기게 만들어 정작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뒤엎는 대담한 활동에 나서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4 자본주의의 ‘폭주’로부터 벗어나야만 당면한 기후문제를 타개할 수 있다는 그의 절박함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배적인 체제의 방식과 ‘단절’하고 ‘다른’ 상상력을 가동하는 실천을 요청할 때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공백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근대극복의 “저항운동”이 “현실 속에서 실행력과 지구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그것은 또한 ‘적응’의 사례들이기도” 하다는 백낙청의 지적5을 상기할 때, 체제전환을 위해서는 지금의 상황을 단번에 뒤집어놓을 공세를 개시하기보다(이 경우 오히려 파괴적인 언설과 외부적인 계기가 요청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과정을 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요컨대 어떻게 체제전환을 이뤄나가는지와 관련해서는 지금 사회의 구성원인 주체들의 몫을 실질적으로 마련하고 그 필요성을 설득해나가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곳곳에서 이어지는 실천들의 의미를 축소해 ‘거대한 문제’를 상대하다가 위축된 이들의 소시민적인 행보로 여기는 입장 역시 경계해야 한다. 전영규는 기후위기를 “위기처럼 대할 수 있는 문학의 수행”을 강조하는 글에서 ‘나와 세상(타자)의 연결’에 대한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논지를 빌려 “‘전부’가 아닌 바로 이 ‘스토리’”에만, “지금 ‘이것’과 ‘여기’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6 조대한 역시 “커다랗게 다가오는 전지구적 위기와 재난 앞에서 그에 상응하는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는” 일보다 “본인의 자리에서 행하는 작은 행동과 그로 인해 조금씩 변화하는 주변의 모습을” “체감”하는 일이 긴요하다고 본다.7 자연의 본디 규모인 거대함을 깨닫고 그 앞에 한없이 왜소한 주체로서의 인간 형상을 떠올릴 때 우리는 그간 인류가 축적해온 지혜가 부질없이 느껴지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언급한 논의들 역시 사회 전반을 바꿔야 한다고 판단할 때 밀려드는 막막함, 무력감과 다투면서 제출된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변혁의 방향성을 품고 큰 변화의 과정을 겪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면서 스스로 삶의 감각을 바꾸어나가는 일이 과연 “전부”를 살피고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는” 일과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언급한 논의들은 ‘거대한 문제’는 ‘거대하게’ 푸는 다른 방법이 있고, ‘개개인’은 그와 분리된 채 ‘거대하지 않은’ 소규모의 자리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편견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는 게 아닐까?

 

 

2. 기후-생태 위기와 ‘시인정신론’

 

문학은 개별적으로 맞닥뜨리는 현실의 사안들을 세계체제의 국지적 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지구적인 과제와 삶의 과제를 통합하는 데 유효한 경로를 마련해준다. 시인 신동엽(申東曄)이 1961년 2월 『자유문학』에 발표한 글 「시인정신론」8을 경유해 기후-생태 복합위기에 놓인 지금 시기에 필요한 실천의 갈피를 구해보기로 하자.

  1. 「최후 방어선 1.5도인데… 유엔 “이대로면 지구온도 2.5도 상승”」, 한겨레 2022.10.28 참조.
  2. 조효제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창비 2022, 18면. 조효제는 “탄소를 도려내기만 하면 된다는 탄소감축 만능론”에 대한 염려를 전하면서 현재의 위기를 ‘기후위기’가 아니라 “기후-생태 복합위기로 간주한다면, 탄소감축은 기본이고 그것에 더하여 우리가 지구-자연을 대하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으리라 본다(같은 책 201~202면). 이러한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 이 글은 현재 인류가 봉착한 상황을 ‘기후-생태 복합위기’라 칭한다.
  3. ‘기후싸이렌’의 경보음을 들은 사람들이 “뭐라도 해야지”라고 마음먹는 일을 “‘낭비’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글로 이현정 「기후정의의 정치적 주체 되기」, 『창작과비평』 2022년 봄호 참조. 인용은 37면.
  4. 사이토 고헤이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5면 참조.
  5. 백낙청 「근대 한국의 이중과제와 녹색담론」,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창비 2021, 115~17면 참조.
  6. 전영규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을 위한 지구 생존 가이드」, 『문학동네』 2021년 겨울호 참조.
  7. 조대한 「기후위기와 미적 재현의 효용」, ‘2022 요즘비평 5차 포럼: 창백한 푸른 점의 우리가’ (2022.10.27) 발표문 참조.
  8. 신동엽 「시인정신론」, 『신동엽 산문전집』, 강형철·김윤태 엮음, 창비 2019 참조. 이하 이 글의 인용은 『신동엽 산문전집』을 기준으로 하며, 인용 시 괄호에 면수만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