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서정의 힘, 삶의 진실을 이끄는

 

전윤호 시집 『순수의 시대』, 하문사 2001

박성우 시집 『거미』, 창작과비평사 2002

채호기 시집 『수련』, 문학과지성사 2002

 

구모룡 具謨龍

문학평론가.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평론집 『문학과 근대성의 경험』 『제유의 시학』 등이 있음. kmr@hhu.ac.kr

 

 

1. 서로 다른 글쓰기 경향을 보이고 있는 세 권의 시집을 읽었다. 전윤호의 『순수의 시대』, 박성우의 『거미』, 채호기의 『수련』. 모두 진지하고 성실하게 씌어진 시집들이어서 발상과 의도를 따라가면서 각자의 시쓰기가 드러내는 개성들을 만날 수 있었고, 특히 발화와 담론의 차이에 주목할 수 있었다. 전윤호의 시가 환상의 배후에 환멸의 묵시록을 깔아두는 이중적 전략으로 서정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면, 박성우의 시는 낱낱의 사물들에 내재한 이야기들을 서로 겹쳐 서술함으로써 서정의 영역을 확장하고 그에 구체성의 살을 더했다. 시적인 것의 본질 탐구를 위해 ‘수련’이라는 하나의 시적 대상을 매개로 메타시(시에 관한 시)를 쓴 채호기는 시적 궁극에 이르려는 다양한 시도와 성실한 과정을 보였다. 이들은 모두 서정이, 여전하게 삶의 진실을 이끄는, 우리시대의 중요한 문학적 담론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2. 전윤호(全潤浩)의 『순수의 시대』는 먼저 ‘도원’으로 명명되는 장소를 서정으로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데서 관심을 끈다. 1부 ‘도원 가는 길’을 구성하고 있는 풍경화들은 경험적 고향과 그로부터 상상된 이상적 삶에 대한 동경을 주로 담고 있다. 낭만적 동경이 그렇듯이 그의 동경 또한 이미 없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강한 집착과 구별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근대적 삶을 묵시록적으로 그리고 있는 2·3·4부가 또한 주목된다. 양적으로 보면 그의 시적 주제는 단연 근대의 역사와 도시문명적 삶에 대한 환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근대의 폭력으로 죽어가는 고향의 재생을 꿈꾼다. 여기에 두 개의 풍경, 이상적인 환상의 풍경과 묵시록적 환멸의 풍경이 공존하는 까닭이 있다.

전윤호의 시쓰기는 환상과 환멸이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생성한다. 따라서 그의 시는 환상과 환멸이 펼치는 진자운동으로 읽힌다. 그 한끝에 ‘도원-고향’이 있다면 다른 한끝에 ‘도시-폐허’가 있다. 이를 다시 진자운동의 흐름으로 그려보면 도원-고향-도시-폐허의 순서가 된다. 시인은 고향과 도시 사이의 현실적 위치에서 도원과 폐허를 상상한다. 도원은 과거로부터 상상된 미래이고 폐허는 과거가 될 미래이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시인의 현실 위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시의 시점이 되기 때문이다. 현실 위치에서 시인은 근대와 도시문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견지한다. 이는 시인의 근대인식을 집약하고 있는 2부 ‘프랑스 혁명사를 읽다가’에 실려 있는 시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시인은 2부에서 근대 이후 근본적인 삶의 개선은 없었으며 오히려 악화일로의 도시문명만 번성하고 있음을 말한다. 가령 「프랑스 혁명사를 읽다가–감옥」에서 시인은 프랑스 혁명이 바스띠유 감옥만 열었을 뿐 진짜 감옥인 도시를 해방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봉건시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는 ‘특권층의 학정’을 제기한다. 이러한 인식에 비춰 시인의 근대에 대한 ‘선전포고’는 당연한 것이 된다.

 

우리의 목표는

이 지긋지긋한 도시를 떠나는 것

설혹 패한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어리석음이 만든 이 거대한 도시는

밀림에 버려져

천년 후에나 발견될 것이다

–「선전포고」 부분

 

118-353

 

근대와 고향, 도시와 농촌, 문명과 자연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인식하는 것은 단순하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의 단순성이 진실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고향이 훼손되고 파괴되는 과정을 아프게 경험하고 있는 이라면 근대의 도시문명에 대한 적의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시인은 점령당한 고향을 탈환하기 위한 “테러리스트”(「내 마음의 쿠르드족 1」)를 꿈꾼다. 이 지점에서 두 가지 방향의 급진적 상상이 나타난다. 그 하나는 사막의 폐허로 바뀌는 도시에 대한 상상이고, 다른 하나는 시원의 유토피아인 ‘도원’에 대한 상상이다. 전자는 3부 ‘순수의 시대’의 시편들이 묵시록적인 미래의 싯점에서 “거대한 무덤”(「고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