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 한국문학의 오늘, 민족문학의 새로운 구도

 

서정주 시세계

 

 

황현산 黃鉉産

문학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교수. 저서로 『얼굴없는 희망』 『아폴리네르─“알코올”의 시세계』 등이 있음. septuor@hananet.net

 

 

고은(高銀)의 「미당 담론」(『창작과비평』 2001년 여름호)에 지식사회가 짐짓 놀라는 체하기 전부터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에 대한 평가는 한결같지 않았다. 서정주는 어떤 사람들에게 개항 이후 한국문학을 대표할 만한 민족시인이었던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일파이며 신군부에 부역했던 기회주의자였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이력에 대한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겨레의 가장 깊은 정서를 환기력이 높은 시어로 노래한 부족언어의 마술사라는 거의 공식화된 평가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의 편에 선 사람들이 오랫동안 문학사의 칭송을 받아야 할 이 훌륭한 시인의 이력에 ‘어쩔 수 없이’ 찍히게 된 오점을 아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도 역사적·정치적 소신을 갖지 못해 거듭하여 악덕을 저질러온 사람에게서 그토록 아름다운 시가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을 의아스럽게만 여겨왔다. 아쉬운 감정은 거기서 하나의 운명을 보는 반면 의아함은 거기서 하나의 품성을 본다는 점에서 서로 같지 않지만, 한 시세계가 그 운명 내지 품성과 관계해온 방식을 똑같이 우연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그 둘은 동일하다. 한쪽이 어쩌다 그렇게 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다른 쪽의 눈에 예외적 현상으로 비치는 것도, 표현을 바꾸면 모두 우연의 나쁜 장난이란 말로 요약된다. 게다가 이 우연론 속에서는 그의 정치적 이력이 추녀역(醜女役)을 맡아 그의 시를 실제 이상으로 돋보이게 한 점도 없지 않았다. 그의 작품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그의 추문 속에 숨는 형국이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미당에 대한 언설은 진지하고 엄정한 평가로부터 그의 작품을 숨겨주는 차단막의 구실을 해왔다. 이를테면 미당의 시가 불교적 세계관을 지향한다거나 노장적 특색을 지녔다는 말은 물론 타당한 것이겠으나 그것이 설명해주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런 세계관의 원론적·구도적 내용은 실상 거의 모든 시의 지향점이며 본질적 성격이기도 하다. 현실의 억압과 일상의 비천함으로부터 얻어진 힘을 등에 업고 항상 시공초월의 기회를 노리는 시와, 인류를 그 비천함에서 절대적으로 구원하려는 종교적 이념이 당연히 공유할 수밖에 없는 영역을, 한 시인이 그의 언어적 모험으로부터 얻어낸 구체적 성취와 혼동할 수는 없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시인의 몫으로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저 최초의 낙원을 그 자신의 조절되지 않는 욕망에 따라 분열시키고 자기 시대의 협착한 시야에 맞춰 세속화하였다는 혐의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미당에게서 불교는 그의 시가 지향하는 마지막 목표이기 이전에 그 미학적 원리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이 미학적 원리로서의 불교도 시인의 모든 시가 환원되어야 할 투명한 자리가 아니라, 그 시적 실천의 현장경험을 반영하고 그 시의 현재성과, 다시 말해서 그 언어적 설득력과 분리되지 않는 문제적 요소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미당의 시가 이 문제 밖에 놓이기를 바랐던 것은 먼저 미당 자신이었던 것 같다. 한 시인이 나이 마흔에 귀신을 보았다고 말하게 되면, 그가 정말로 귀신을 보았건 보지 않았건 간에, 그가 그리는 것은 귀신을 본 사람의 세계이다. 우리는 귀신에 관해 아는 것이 없기에 그 세계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귀신이라는 말로 해명이 끝난 이 세계는 자기완결의 상태로 투명하게 ‘보존된다’. ‘불교’를 비롯한 이 투명한 무갈등의 세계는 사실 미당의 영광이 아니라 그가 이미 짊어져왔고 또 이제는 벗어버리지 못하게 된 멍에의 하나이다. 이제 미당의 시가 미래에 전해줄 수 있는 유산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그의 시를 저 고대의 종교적 지혜로 환원하고 싶어하는 모든 비평적 음모에 붙잡히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시 자체에 얼마큼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질 것이다.

이 글은 서정주의 시가 지닌 힘의 크기와 방향을 알아보는 데에 목적을 둔다. 『화사집(花蛇集)』(1941)과 그 이후의 여러 시집에서 늘 중요하게 평가되었던 시편들을 고찰하여, 미당 시의 변용과정과 그 ‘언어 마술’의 진정한 내용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그의 언어관과 시법(詩法)이 그의 정치적 이력과 맺고 있는 관계를 규명하여 비판하려는 것이다.

 

 

출분과 귀향

 

서정주의 초기시에 미친 보들레르(Ch. Baudelaire)의 영향은 자주 지적되어왔지만 치밀한 분석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서정주가 보들레르로부터 읽은 것은 육체적 관능의 현기증과 그에 대한 죄의식 따위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식민지의 곤궁하고 마비된 삶을 어떤 새로운 전환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창조의식과, 세상의 몰이해를 어떤 예외적인 삶의 표지로 삼으려는 시인으로서의 운명의식과 소명감이다. 젊은 시절 서정주의 시인관이 피력된 「자화상(自畵像)」(1939)은 그 첫머리에서부터 가난에 관해 말한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外할아버지의 숱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 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얹힌 詩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숫개마냥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1861)에서 이와 상응하는 시를 찾는다면 말할 것도 없이 시인의 저주받은 탄생과 그 고뇌와 영광을 노래하는 「축성(祝聖)」이다. 보들레르는 여기서 전능한 하늘의 “명을 받아 시인이 이 지겨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의 어머니는 불경한 생각을 가득 품고, 신에게 주먹을 쥐어 흔들며 욕설을 퍼붓는다고 말한다. 하늘이 한 아이를 시인으로 점지하고 축복한다는 것은 곧 이 세상과의 불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아이는 세상에서 겪을 온갖 학대와 고뇌야말로 “우리의 부정(不淨)을 씻어주는 신약(神藥)”이라고 믿고 의무를 완수하여 “원시광(原始光)의 거룩한 원천에서 길러낸 순수한 빛으로” 짜인 왕관의 주인이 될 것을 하늘에 맹세한다. 보들레르의 이 생각은 세상의 편협한 이해를 넘어서서 우주의 섭리와 조화를 노래하는 자가 시인이라는 낭만주의적 시인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거기에 보들레르가 덧붙인 것은 세상이 시인을 오해할 뿐만 아니라 학대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시인과 산업사회의 갈등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그에게서 시인의 영광은 세상에 대한 복수와 동의어가 된다. 서정주는 시인의 탄생에 축복과 저주의 기능을 함께 담당하는 신 대신에 신분의 미천함과 가계의 유전을 대입함으로써, 하늘의 섭리와 시인의 절대적 소명을 사가화(私家化)한다. 더불어 시인과 사회의 관계도 역전된다. 그는 시인으로 태어났기에 세상의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받도록 태어났기 때문에 시인이다. 시인을 학대하는 “지겨운 세상”에 대한 보들레르의 단호한 탄핵에 비해, 한 식민지 젊은이의 시인으로서의 신원증명은, 자신의 불리한 여건들을 통해 순결성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그 감정의 밀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매우 소심한 것이 사실이다. 그가 이 순결성으로 얻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많지 않다.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인 채 서정주의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은, 보들레르가 만들어내기를 바라는 시인의 왕관이 아니라, 그 재료인 “원시광의 거룩한 원천에서 길러낸 순수한 빛”에 대한 탁월한 동양적 번안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순결한 재능과 저주받은 삶의 표지에 불과하다. 보들레르에게는 그가 원하는 관(冠)과 그 재료인 빛 사이에 저 플라톤적 이데아 세계와 물질세계를 가르는 단절이 있으며, 시인이 건너가야 할 것도 그 단절이다. 한국의 젊은 시인 서정주에게는 이 단절이 없으며, 따라서 건너가야 할 세계도 자기변모에 대한 전망도 없다. 가난하기에 그만큼 순결한 세계에 그는 갇혀 있다. 이 상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세계에 대응하여 감정의 밀도를 강화하는 것뿐이다. 서정주의 시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국화 옆에서」(1947)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