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선거와 민주주의를 타격한 저널리즘

 

 

이봉수 李奉洙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원장, MBC저널리즘스쿨 디렉터. 저서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 『경제저널리즘의 종속성』(공저) 등이 있음.

hibongsoo@hotmail.com

 

 

‘기울어진 운동장’은 대선 패배 요인이 아니라고?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여권 일각에선 대선 패배 원인을 ‘기울어진 언론 운동장’에서 찾고 있”으나 “그런 생각이 문재인정권이 망가진 최대 이유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정권의 실정에 대해 비교적 더 옳은 말을 한 건 보수언론이지 진보언론이 아니었다”고 보면서 ‘팬덤정치’의 틀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을 ‘악마화’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는 또 “보수언론의 주장과 반대로 가는 걸 ‘진보의 길’이라고 믿은 이가 많았으니, 이건 좀 심하게 말하자면 제 무덤을 파는 꼴”이라고 주장했다.1

유튜브 열린공감TV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는 “레거시 미디어가 묵시적 공동행동으로 특정 후보를 띄워도 뉴미디어가 중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미디어 생태계가 만들어졌다”고 진단하고 삼프로TV를 “레거시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한 큐’에 반전”시킨 사례로 꼽았다.2 다른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자신도 언론개혁이 필요하다고 해왔고 「100분 토론」을 진행할 때 언론개혁 시리즈도 했지만 “결론은 소용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언론이 “90 대 10의 비율로 ‘친윤’”이라고 보면서도 이러한 언론 문제가 기술 변화, 즉 뉴미디어로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이제는 올드미디어에 매달려 공정 선거보도 촉구하며 애걸복걸하고 호소하는 헛짓거리를 그만하자”고 촉구했다.3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 결과의 주된 요인을 언론지형 등 외부에서 찾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민주당의 정치가 진화하지 못할 것이고 그 결과는 ‘다시 또 패배’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진보 종합편성채널 설립 논의에 관해서도 “진보 종편이 일부 인플루언서처럼 민주당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좀더 큰 스피커를 의미한다면 만들어봐야 별 영향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4

 

 

일관성도, 보수의 가치도 찾기 힘든 ‘보수언론’

 

영향력 있는 이들 세 지식인의 견해는 상당 부분 경청할 가치가 있다. 강준만의 주장은 문재인정권이 팬덤문화에 매몰돼 반대편의 옳은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옳은 말을 한 건 보수언론”이라는 대목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문재인정권이 촛불혁명의 성과로 탄생했으면서도 개혁진영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기보다는 보수언론의 비판에 휘둘리는 바람에 정권을 내줬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수언론’이라 불리는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에 ‘보수’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타당한가 하는 문제부터 검토해보자. 영국 보수당의 이론가였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보수의 정체성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보수는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조중동’은 문재인정권 내내 기득권 수호, 곧 수구의 논리를 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진보 논객 리영희의 책 제목이 말해주듯,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경쟁해야 사회발전의 동력이 확보될 수 있다. 이때 필수요건은 진정성이다. 진정한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양립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진정한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또한 양립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그 언저리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당과 언론이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그런대로 빠짐없이 대변해왔다.

서구 정당과 언론의 또 한가지 특징은 일관성이다. 유럽에는 ‘백년 정당’이 숱한데, 한국의 정당들은 선거에서 지면 정당 이름부터 바꾼다. ‘정론지’를 자처하는 우리 수구보수언론의 논조는 더욱 변화무쌍하다. 촛불정부의 최대 개혁과제였던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이르기까지 일관성과 객관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종일관하는 것은 정파성이다.

조선일보는 최근 수많은 기사와 칼럼 등을 통해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에 반대했다. 4월 12일 사설 「文 대통령 보호 위해서라는 ‘검수완박’, 文이 입장 밝혀야」를 예로 들면, “이 법의 수혜자인 문 대통령이 자신의 불법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 수사권 박탈 법을 만드는 데 동의하는지 여부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 개정의 수혜자가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단정에도 근거가 부족하지만, 과거 조선일보가 수사·기소권 분리에 찬성해왔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지키기는커녕 ‘논조 유턴’을 해버린 셈이다.

시계를 돌려보면, 조선일보는 2017년 1월 6일 사설(「文 “靑·검찰·국정원 권력 축소” 공약, 큰 방향은 맞다」)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선후보의 ‘검찰 수사권 조정’ 공약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사설은 “박근혜 대통령만 해도 검찰 중립성 보장,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약속했지만 “집권만 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꿨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금 나온 약속들은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가 같은 해 2월 20일 내보낸 이성기 성신여대 교수의 칼럼(「수사와 기소 분리, 인권 보호 위한 원칙이다」)에는 “검찰의 수사·기소독점권은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헌법상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까지 더해져 오늘날 검찰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낳았다”라는 지적이 담겼다.5 중앙일보의 경우에도 2016년 ‘대한민국 검사 대해부’ 시리즈를 내보내면서 9월 26일 사설(「견제받지 않는 검찰권, 권한 분산이 답이다」)에서 “수사권·수사지휘권·기소권을 한 손에 쥔 검찰의 비대한 권한이 한국 사회는 물론 검사 자신들에게도 크고 작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강조했다.

2021년 하반기에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추진할 때도 기득권 언론은 갖가지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를 남발하며 반대 논조를 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민주당 통합안이 밝혀지자 조선일보는 “언론규제 점입가경”, 중앙일보는 “언론 재갈 물리기”, 동아일보는 “과잉규제” “법리 어긋나”6 같은 표현을 쓰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2017년 2월 6일 발간한 주간조선 표지기사 「아님 말고? 가짜 기사, 피해자만 남긴다」에서 정반대 논조를 편 바 있다. 미국 등에서는 “‘악의적 오보’로 판명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용, 엄청난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며 그 비용이 “평균 15억~20억원에 달한다”고 썼다. 해당 기사는 또 “배상액 때문에 언론사가 문 닫는 경우도 있다”며 한국에 90만명이 넘는 언론인이 있다고 전제한 뒤 “가짜 기사를 양산해내는 펜은 펜이 아니라 칼이다. 피해자의 인격을 죽이는 살인도구”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집무실 이전 추진과 관련해서도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과거와 전혀 다른 논조를 보였다. 집무실의 용산 이전 방안은 국가안보와 비용에 대한 부담은 물론 독단적인 결정으로 반대 여론이 높은 상황임에도 지난 3월 중앙일보는 “대통령이 소통을 위해 청와대를 나와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조선일보는 “근거도 불명확한 안보 공백을 이유로 제동을 건 것”7이라며 윤 당선자를 옹호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2017년 초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에 반대했다. 풍수학자 김두규의 칼럼을 예로 들면,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면 “보안상의 문제도 있지만 입주한 기존 부처들의 재배치도 쉽지 않다”며 비판한 것이다.8 이러한 문제는 두 경우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임에도 당시에는 명확했던 불가 이유들이 지금은 ‘근거도 불명확한’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중앙일보도 마찬가지다. 2019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집무실 이전 계획을 취소하자 사설(「‘광화문 대통령’ 무산 사과하고 소통은 강화해야」, 2019.1.7.)을 통해 “선거공약 발표의 가벼움과 현실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가 칼럼(「‘광화문 대통령’이란 환상」, 2019.1.9.)을 통해 “일국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이 어떻게 그냥 이념으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를 정당화하고, 눈감는 순간 우리는 다음 대선에서 또다시 수많은 ‘이념 공약’에 휘말리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의 ‘광화문 집무실’은 ‘이념 공약’으로 폄하하고 윤석열의 ‘용산 집무실’에는 ‘공감’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보수언론이라면 안보를 중시하고 공동체적 가치와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도외시한 채, 당선인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집무실 이전을 서둘렀는데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9 전반적으로는 진정한 보수와 거리가 먼 한국의 ‘보수’언론은 정권에 따라 수시로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재벌과 기득권층을 옹호하거나 노조를 억압할 때는 ‘강한 정부’이기를 갈망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돕고 복지정책을 펴는 데는 ‘약한 정부’이기를 원한다. 개혁을 약속하고 집권한 정부가 ‘보수’언론의 주장을 추종하는 것이 ‘진보의 길’이 될 수는 없다.

 

 

뉴미디어로 기성언론에 대항할 수 있나

 

유시민의 견해는 기성언론의 개혁 자체에 반대한 것이기보다는, 개혁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포기하고 뉴미디어를 활용해 올드미디어에 대항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언론이 보여준 극심한 편파·왜곡보도와 선거 결과가 말해주듯, 그의 ‘현실론’은 올드미디어와 포털의 의제설정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포털을 장악한 수구보수 성향 올드미디어와 종편의 여론지배력은 여론집중도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신문사를 모기업으로 하는 종편 4사(TV조선, JTBC, 채널A, MBN)의 지난해 매체 합산 여론영향력 점유율은 28.1%나 됐다. 이는 24.1%에 그친 지상파 3사의 영향력마저 능가한다.10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가 한국방송학회·미디어인권연구소를 통해 종편 4사의 공정성을 평가한 결과 JTBC가 좀 덜할 뿐, 심각한 문제점들이 지적됐다.11 대부분 종편은 ‘종합편성채널’이 아니라 편향적인 ‘정치전문채널’이 되어 선거 때면 거의 일방적으로 국민의힘 후보 편을 들고 민주당 후보를 적대시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따르면 종편 4사는 2월 10일~15일 시사대담 프로그램에서 김건희씨를 17분 다룬 반면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씨는 172분 다뤘다. TV조선의 경우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 보도가 89건으로 KBS나 MBC 보도의 2배에 이를 만큼 많았으나, ‘고발사주’ 관련 보도는 방송사 중 가장 적게 내보냈다. 진실보다는 어느 당에 해롭거나 이로운지가 보도의 기준이 된 것이다.

유시민은 진보·중도 성향 뉴미디어의 영향력도 과대평가했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비리를 꾸준히 보도해 구독자수가 급증한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와 서울의소리, 뉴스타파의 3월 28일 기준 구독자수는 각각 86만, 77만, 82만여명이다. 이에 견주어 이재명·김혜경 부부를 집중 비판한 보수·수구 성향 진성호방송, 신의한수, 가로세로연구소의 구독자수는 166만, 145만, 90만여명이나 됐다. 최근에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가 상당히 늘었음에도 여전히 ‘중과부적(衆寡不敵)’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유시민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한 큐’에 반전시켰다”고 말한 중도 성향 유튜브 채널 삼프로TV는 각 대선후보의 경제정책에 관한 심층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호평을 받았다. 이재명 후보편이 업로드된 지 사흘 뒤인 2021년 12월 28일 오전 11시 기준 각 영상의 조회수는 이재명 편 247만, 윤석열 편 162만, ‘좋아요’ 수는 이재명 편 20만, 윤석열 편 3만을 기록해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그 방송은 일회성이었기에 날마다 편파·과장·선정보도를 일삼는 종편의 영향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뉴미디어에 거는 기대와 달리, 엠네스티언론상까지 받은 닷페이스(.face)가 설립 6년 만에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한 것은 뉴미디어를 둘러싼 환경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닷페이스는 소수자 인권, 청년 주거와 노동, 기후위기와 동물권 이슈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참신한 시각의 영상과 기사를 제작해왔으나 끝내 재정적 어려움이란 장애물을 넘지 못했다.12

 

 

방송의 공영성은 쉽게 확보되지 않는다

 

최승호 글의 주장은 핑계를 외부화하면 자체 개혁동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는 시각이다. 그러나 그런 시선이 지나치게 연장돼 진보진영의 언론개혁 노력마저 폄하하는 데 이른다면 문제다. 민주당의 문제는 내부에 있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대선 패배의 요인을 내부에서만 살펴보면 진정한 교훈과 추진해야 할 과제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언론지형이 민주당의 대선 패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국회 180석을 가진 정치세력이 언론개혁과 검찰개혁이라는 양대 개혁과제 중 특히 언론개혁에는 손도 못 댄 상황에서 또 표를 달라고 그 손을 유권자에게 내밀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부동산 문제 해결과 빈부격차 완화, 교육불평등 해소와 공정성 강화 등에 실패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게 한 것도 패배의 요인이 됐지만 이 글에서 논할 주제는 아니다.

최승호는 ‘진보 종편’ 설립에도 회의적인데, 근저에는 사실 확인에 소홀한 일부 ‘인플루언서’들을 향한 불신이 깔려 있다. 그는 앞선 글에서 인플루언서들이 “민주당을 감싸야 한다는 의도에서 다른 언론들이 취재해놓은 사실을 취사선택해 가공하기 때문에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 측면도 있지만, 그들이 과거 한겨레 등 진보 성향 언론이 해오다가 지금은 그 기능이 약해진 대항언론의 임무를 하고 있는 점 또한 간과할 수는 없다고 본다.

시민방송 RTV는 후원회원이 100여명에 불과해 폐업을 앞두고 있다가 지난 대선 직후부터 후원회원이 몰려 5월 9일 현재 56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번 대선에서도 ‘심판이 아니라 선수로 뛴’ 종편과 수구보수적 신문에 대항해 진보 매체로 불린 신문과 공영방송이 제구실을 못한 것이 RTV를 향한 성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대중은 장차 진보 종편의 씨앗이 될 수도 있는 RTV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다. 수구정권 아래 ‘현실적 불가론’이 ‘당위적 무용론’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RTV는 IPTV로만 진출하더라도 종편보다는 못하지만 꽤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최승호는 MBC 사장 출신답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가장 중요한 언론개혁 과제로 여긴다. 이는 시급한 과제이지만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은 이미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의제설정 기능은 아직도 상당 부분 신문이 수행한다는 점에서 방송 지배구조 개선만으로는 언론지형을 크게 바꿀 수 없다고 본다. 지배구조 개선은 방송 독립의 계기는 되겠지만, 방송사 구성원의 충원과 교육, 조직 개편 등 내부 개혁을 동반하지 않으면 반쪽짜리 개혁에 그치기 쉽다. 지금 공영방송 KBS와 MBC에는 노조만도 3개씩이나 있지만 일부 노조에서 발표하는 성명서를 보면 이들이 과연 방송의 공영성을 주장할 자격이 있는가 되묻게 된다. 영국 BBC의 오늘도 지배구조 확립과 함께 노조를 중심으로 한 내부 구성원들의 감시와 각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론’ 독과점 못 막으면 민주주의는 없다

 

많은 폐단을 남긴 신자유주의와 수구 회귀를 공공연하게 부르짖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비결은 무엇일까? 유권자들이 그의 능력이나 도덕성을 높이 산 것 같지는 않다. 한국리서치가 선거 후인 3월 4주차(25~28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당선인이 국정운영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치는 39%밖에 안 됐다. 정책은 실종되고 정치와 언론이 부추긴 증오와 혐오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닐까?

촛불혁명을 성공시킨 한국에서 불과 5년 만에 어떻게 이런 대반전이 일어났을까? 세계가 촛불혁명에 경의를 표한 것은 광장민주주의가 그만큼 실현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광장민주주의가 거의 불가능해진 시대에 그 권력을 대행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리스의 고대 민주주의와 달리 현대 민주주의는 언론이 공론장 임무를 적절히 수행해야 작동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목적이라면 언론은 수단이다. 그런데 한국 언론 상당수는 민주주의 핵심 요건인 표현의 자유를 수단화해 사적 목적을 취한다. 가짜뉴스를 검증 없이 전파해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수익과 영향력을 확대한다.

미국 MIT 명예교수 촘스키(N. Chomsky)는 허먼(E. Herman)과 함께 쓴 책 『여론조작』에서 미디어가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대중의 ‘동의’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13 미국 사회학자 갠스(H. Gans)도 일상적인 상의하달형 저널리즘 관행이 대부분의 뉴스를 파워엘리트들의 활동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에 머물게 해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14 이에 관해서는 셔드슨(M. Schudson)을 비롯한 서구의 많은 학자들이 부정적 측면만 강조해서는 안 되며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주장한다.15

그러나 한국 언론의 보도 행태, 특히 이번 대선국면의 보도 태도를 보면 부정적 측면이 너무나 많이 드러난다. 선거판을 좌우한 것은 후보의 역량이나 정책 차이가 아니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수로 뛰는 언론의 편파보도가 선거판을 흔들고 여론조사가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를 냈다. 일부 언론은 특정 정당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한 몸처럼 움직이고, 선거전략을 제시하며 정당의 머리 구실까지 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제20대 대통령선거 관련 여론조사 건수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올해 2월 20일까지만도 827건이나 됐다. 폭증한 여론조사는 수십만건의 기사로 전파됐다. 옥석이 섞여 있었지만, 싸구려 여론조사는 여론을 오도했다.

대선미디어감시연대가 2월 3일부터 3월 2일까지 한달간 지상파 3사와 종편 4사의 저녁종합뉴스를 모니터링한 결과, 선거보도는 1248건이었으며 그중 정책을 언급한 보도는 341건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순 전달을 넘어 정책검증까지 한 보도는 51건으로 선거보도의 4%에 불과했다. 선거 후에 수많은 공약이 폐기되거나 시행 시기가 몇년씩 늦춰지는 등 실천 의지에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일차적으로 윤석열 대통령 본인과 국민의힘에 큰 책임이 있지만, 공약 검증을 거의 하지 않은 언론도 나누어져야 할 책임이다.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은 용산으로 변경되면서 심각한 재정·안보·교통 문제를 유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화문 이전 공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상세히 보도했더라면 윤석열 후보도 미리 광화문 공약을 포기하거나 용산 공약을 발표했을 테니 이런 국정 혼란은 적었을 것이다. 병사 월급 200만원 즉시 지급 공약 등도 재정 문제로 실천하기 어렵게 됐다. 병사 월급이 부사관 초봉보다 많아지는 등 당장 실시하기 힘든 공약이었지만 그것을 제대로 검증한 보도는 눈에 띄지 않았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도 흔들리다가 국민의힘이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지방선거용’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공약 폐기나 변경은 집무실과 공관 이전으로 교통체증에 시달리게 된 서울시민뿐 아니라 20대 남성을 뜻하는 ‘이대남’ 등에게 특히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윤석열 후보는 서울시에서 승리하고 ‘이대남’에게 몰표를 받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한국일보는 여론조사기관 4사가 5월 2~4일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를 인용해 5월 6일 ‘윤석열 대선 승리 ‘일등공신’ 2030 민심이 흔들린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허위공약은 민주주의의 기둥인 선거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차원에서 이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반성과 처벌, 재발방지책이 절실했지만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언론의 자유’와 ‘발행부수’라는 신화

 

저널리즘 위기가 민주주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는데도 언론개혁은 지지부진한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 언론의 신뢰도가 선진국 중 꼴찌 수준으로 추락했는데도 언론개혁은 왜 이리 지지부진한가? 이는 바로 한국사회가 두가지 신화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언론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라는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신문 발행부수의 신화’다.

모든 자유는 자유권의 내재적 한계 때문에 제한될 수밖에 없고, 특히 언론에는 책임성이 강조돼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주의 자유나 기자의 특권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로 발전해온 것이다. 그럼에도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쪽으로 언론의 자유가 악용되고 있다. 우리는 독재정권 시절 언론의 자유를 너무도 갈망했기에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신화에 빠져버렸다. ‘남의 인권을 침해할 자유’ ‘가짜뉴스로 명예를 훼손할 자유’는 없는데도, 기득권 언론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언론개혁에 한사코 반대했다.

필요한 또다른 하나는 신문이 ‘발행부수의 신화’에서 빠져나오는 일이다. 세계 일류 신문은 정체성과 타깃독자가 확실해 대개 10~20만부를 발행하고, 많아야 50만부 수준이다. 그 대신 그들은 인터넷에서 수익을 올리는데, 우리 언론은 네이버와 다음 등 인터넷 포털에 종속돼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부수공사(ABC) 제도는 1989년 ABC협회 창립 이래 공정한 광고 집행의 기준임을 자임해왔으나, 최근에는 부수 조작을 인증받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포털 개혁은 신문의 독립을 도와주는 것이다.

언론개혁 관련 법안은 우리 언론이 스스로는 벗어나지 못하는 두 신화의 미몽에서 깨어나는 ‘알람’ 구실을 해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은 그동안 언론개혁에 관한 한 입법은 물론이고 주어진 권한조차 행사하지 못했다. 인권변호사로 살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개혁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언론에 관해서는 ‘자유주의 언론관’에 경도된 탓인지 최소한의 ‘시장질서’조차 바로잡지 못했다.

 

 

80% 여론 배신한 언론과 현업단체

 

허위조작정보 또는 가짜뉴스가 워낙 많이 유통돼 국민들도 그 폐해를 심각하게 느끼기 때문에 언론피해구제법의 핵심인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관한 찬성 여론은 매우 높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찬반 비율은 2020년 5월 리서치뷰 조사에서 81% 대 11%로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021년 2월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61.8% 대 29.4%로 찬성이 반대의 2배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런 여론을 업고 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의 초선의원들을 중심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적극 추진돼 지난해 하반기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언론노조와 기자협회 등이 발행인 모임인 신문협회에 동조해 애초부터 이 제도를 ‘악법’으로 규정하고 보수야당과 손잡아 규탄하는가 하면, 기자 출신의 박병석 국회의장 등이 중재에 나서면서 본회의 통과가 무산됐다. 가짜뉴스까지 동원해 절대다수 언론이 반년간 줄기차게 반대 논조를 폈지만 언론의 보도 행태를 잘 알고 있는 국민은 여전히 언론중재법 개정에 압도적으로 찬성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의 2021년 10월 15~19일 조사에 따르면 찬성이 76.4%였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패한 뒤 검찰 수사·기소 분리 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언론개혁도 완수하겠다며 4월 27일 3개 법안을 발의했다. 5월 10일이면 윤석열이 대통령으로서 거부권을 갖게 되는 상황에서 너무 늦은 행보였다. 그중 김의겸 의원이 대표발의한 ‘포털 뉴스 편집권 제한’과 정필모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은 국민의힘도 법안을 갖고 있어서 절충 여하에 따라서는 거부권을 피해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다만 공영방송은 지금까지 집권당이 전리품처럼 여겨온 악습이 있어서 어느 쪽이 집권할지 불투명한 때가 개혁의 적기인데, 지금은 국민의힘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은 현행 이사회를 없애고 25명 정원의 운영위원회를 의석수 비율에 따라 국회 교섭단체가 추천하는 7명과 비교섭단체가 추천하는 1명 등으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추천 주체를 다양화하긴 했으나 추천권 상당수는 여전히 정치권이 갖게 돼 후견주의를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할 것 같다. 현업 언론인의 개입이 커진 반면 일반 시청자의 참여 폭이 좁은 점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김종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허위조작정보 삭제요구권’은, 동아일보가 사설을 통해 또다시 “언론재갈법”16이라 매도하고 나온 데서 알 수 있듯 맹렬한 반대에 부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임기가 끝나가는 판에 ‘언론개혁 완수’를 외친 것은 문재인정권의 언론개혁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했다.

지난해 5월 한 원로학자로부터 청와대 고위 당국자가 “개혁 대통령이 당선되면 취임 전 5월 9일까지 두달이 국회에서 언론중재법을 개정할 골든타임”이라 말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청와대와 언론현업단체의 무책임함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적이 있다.17 그들이 책임을 회피한 결과가 오늘의 사태다.

 

 

왜 경제적 배상을 강제해야 하나?

 

언론 피해 구제책으로 지난해 깊이 논의된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법 여부를 지난 4월 민주당이 당 지도부에 위임한 것은 골치 아픈 건 피해가겠다는 태도로 보여 안타깝다. 반대론이 제일 강한 게 징벌적 손해배상제였는데, 언론계 반발이 심하다는 점에서 시행되면 상당한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역설도 성립한다.

가짜뉴스에 형사소송 말고도 경제적 배상을 강제해야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확증편향을 거쳐 더 많은 독자와 시청자를 모으는 구조로 돼 있어 이를 제지하려면 민사소송을 겸해서 경제적 이익을 박탈해야 한다. 매월 수억대 수익을 올리는 극단적인 유튜버나 기성언론에 수백만원 수준의 배상금은 ‘필요경비’로 여겨질 뿐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돈 되는 가짜뉴스의 생산과 전파를 자제할 리 없다.

언론현업단체들이 주장하는 ‘자율규제’는 어찌 보면 형용모순이다. 대형 언론사들은 편파·왜곡·선정보도를 일삼는 조직인데다, 조선NS와 같은 온라인 뉴스 자회사까지 만들어 포털을 통해 거액을 벌어들이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자율규제로 극성스러운 상업주의를 제재하겠다는 것은 언론 현실을 외면하고 ‘환상’을 좇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핵심은 양형 기준을 높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법원의 보수적 판결로 일부 손해만 배상될 뿐 징벌의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징역 등의 상하한선을 규정해둔 형법처럼 상하한선을 설정해둬야 징벌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2021년 6월 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필자는 전문가 진술인으로 참석해 하한선을 3배, 상한선을 10배로 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계속 상한선이 축소되고 하한선은 삭제됐다가 이번에는 입법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정정보도의 기사 크기를 원래 내보낸 기사의 2분의 1로 규정하는 안이 빠진 것도 아쉽다. 우리 언론의 병폐는 오보를 내고도 정정기사는 구석에 조그맣게 내는 등 정정에 대단히 인색해, 현재는 피해자들이 그 효과를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의 두 주적’에게 이대로 밀리는가

 

여론집중도 조사가 중요한 이유는 여론 독과점 상태에서는 민주주의도 무늬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거에서 후보자를 선택할 때 어떤 경로로 정보를 얻느냐는 질문에 43%가 포털이고 3.9%만이 신문이라고 답했다. 포털은 정파적인 신문기사를, 그것도 편향적으로 퍼 나르고 있다는 의심을 늘 받아왔다. 요즘 ‘단독’임을 내세워 눈길을 끄는 기사는 대개 정치인이나 아주 정파적인 논객들의 SNS를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베껴 쓰는 것들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과잉 대변되면서 이념 대립은 증오의 내전 단계로 들어선 듯하다.

『르몽드』(Le Monde)의 전 발행인 콜롱바니(J. Colombani)는 “언론에 두 주적이 있는데 하나는 돈, 하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재정이 중요한 건 당연하고, 시간과 관련해서는 인터넷과 포털을 중심으로 속보성이 중요해짐에 따라 진지한 언론이 밀리고 있다는 시각이다. 한국에서는 포털이 진지한 언론의 적이 되고 있다. 진지한 언론은 건전한 공론장을 조성하고 숙의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조건이다.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교수 제임스 커런(James Curran)은 시장이 주도하는 미디어 시스템은 민주주의에 우호적이지 못하다며 미디어와 민주주의가 상응하면서 발전하는 민주적 미디어 시스템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공영방송과 같은 핵심 미디어를 중심에 놓고, 주변에 사적 기업 부문, 시민 미디어 부문, 전문직 미디어 부문, 사회적 시장 부문이 포진하는 모델을 구상했다.18 현재 한국의 미디어 시스템은 공영방송이 아니라 사적 기업인 포털이 중심에 들어서서 핵심 미디어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 참담해질 언론 환경

 

미디어가 선거를 주도하는 현상은 2009년 미디어법이 통과되고 4개 종합편성채널이 개설되면서 더 두드러졌다. 이명박정권은 보수신문인 ‘조중동’과 매일경제에 채널을 나눠줘 확고한 보수 우위 언론지형을 구축했다. 보수정권은 무리를 해서라도 자기편에 유리하게 제도를 뜯어고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라도 걸림돌을 제거해버린다.

이는 진보정권이 ‘결벽주의 덫’에 걸려 잘못을 바로잡는 일조차 주저하는 행태와 대비된다. MBN은 자본조달 방식부터 실정법을 위반했고 TV조선은 법정제재 건수가 그렇게 많은데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언론중재법안도 국민이 180석을 만들어줬으니 그냥 통과시키면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8인협의체에 이어 여야 동수 18인 특위를 만들어 민의를 왜곡하더니 결국 지지부진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언론개혁 등을 포기해 언론지형이 더 기울어지고 유권자에게는 정치적 효능감이 떨어지는 체험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기간 동안 조중동과 종편에 규제 완화 ‘선물 보따리’를 약속했다. 인수위는 “과감한 규제 혁파를 통해 미디어 시장의 자율성을 높이고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며 “허가·승인, 소유·겸영 제한, 광고·편성·심의 규제 등 미디어산업 규제 전반을 과감하게 걷어내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3월 31일 종편 4사가 인수위와 간담회를 하면서 요구한 사항들을 거의 다 반영한 것이다. 이에 앞서 3월 23일 방송학회 학술대회에서 채널A·MBN·TV조선 기획세션으로 진행된 ‘종합편성채널 규제 합리화’ 세미나에서는 규제 완화 방안이 논의됐다. 정·언·학의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관련해 미디어오늘은 “이 같은 정책변화에 종편과, 종편을 소유한 신문사들이 어떠한 화면과 지면으로 ‘화답’할지는 이명박정부 시절 편파보도로 예측 가능하다”고 지적했다.19

인수위는 또 “자본이 집중돼야 세계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며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사 지분 규제 완화 약속도 띄웠다. 방송법 8조에는 대기업집단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 지분의 10%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돼 있다. SBS 대주주인 TY홀딩스(태영건설)는 올해 5월부터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는데, 이렇게 되면 SBS가 특혜를 누리게 된다. 서울신문을 인수한 호반건설도 광주방송(KBC) 지분을 매각해야 했는데 앞으로는 방송사를 마음대로 살 수 있다. ‘사업 방패막이’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건설자본 등의 언론사 인수 경쟁에 불이 붙을 것으로 우려되는 국면이다.

한국의 언론권력은 통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으로 영원히 남으려 한다. 노벨상을 받은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은 독일에서 가장 선정적이었던 신문 『빌트』(Bild )를 겨냥해 1974년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김연수 옮김, 민음사 2008)라는 소설을 썼다. 소설에서 블룸은 언론에 의해 살인자의 정부(情婦)로 몰려 사회적으로 매장되자 기자를 살해하고 자수한다. 뵐은 ‘작가의 말’을 이렇게 남겼다. “아무리 막강한 절대권력도 그들만큼 항상 권력을 마구 휘두르지는 않는다. (…) 헤드라인의 폭력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 그것을 한번쯤 연구해보는 것은 범죄학의 과제일 것이다.”

우리 언론은 한때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었지만, 이젠 개인의 주체적 결정을 방해하는 블라인드 커튼 구실을 하는 데가 많다. 지금 상당수 언론은 민주주의의 작동을 방해하고 있다. 세계 꼴찌 수준인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선거국면에서 바닥 모를 심연으로 추락했다. 일대반전이 없으면 상당수 언론은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오명을 들어도 싸다.

 

 

  1. 강준만 『정치전쟁』, 인물과사상사 2022, 32~33면.
  2. 유튜브 열린공감TV ‘강진구의 인사이트’, 2022.1.6 방송.
  3. MBC 「100분 토론」 2022.3.3 방송.
  4. 2022.3.12 게재. 「최승호PD “대선 패배 요인 언론에서 찾으면 민주당 또 패배”」, 미디어오늘 2022.3.13 참조.
  5. 「조선·중앙, 검찰 수사권 분리 찬성하더니 이젠 “문 대통령 지키기법」, 미디어오늘 2022.4.19.
  6. 「與의 언론규제 점입가경… ‘징벌적 손해배상’ 최대 5배 추진」, 조선일보 2021.7.15.; 「‘언론 재갈 물리기’ 논란 징벌적 배상제…여당 16일 문체위 소위 단독처리할 듯」, 중앙일보 2021.7.15; 「與 “언론 징벌적 손배액 하한선 설정”… 학계 “과잉 규제” 법조계 “법리 어긋나”」, 동아일보 2021.7.15.
  7. 중앙일보 사설 「용산 대통령 시대…혼선 없게 철저 준비해야」, 2022.3.21; 조선일보 사설 「‘안보’ 핑계로 집무실 이전 제동 文, 안보 말할 자격 있나」, 2022.3.22.
  8. 「대통령 집무실 옮긴다면 경희궁이 제격인 까닭」, 조선일보 2017.3.25.
  9. 집무실 이전과 관련해 동아일보가 다른 견해를 일부 내보낸 점은 눈에 띈다. 논설위원 송평인은 3월 23일 칼럼 「누가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했나」에서 졸속으로 용산 이전을 결정한 것을 비판했다.
  10.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한국언론진흥재단 「2021 여론집중도조사보고서」.
  11. 「종편 4사 공정성, 외부평가 결과는」, 미디어스 2022.2.10 참조.
  12.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는 구독자에게 보낸 메일에서 “소진”과 “역량의 문제”와 더불어 “재정적인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뉴미디어 ‘닷페이스’의 마지막 인사 “무모했고 즐거웠다”」, 미디어오늘 2022.5.3.
  13. 노엄 촘스키·에드워드 허먼 『여론조작』, 정경옥 옮김, 에코리브르 2006 참조. 1994년 출간된 원서의 제목은 ‘Manufacturing Consent’, 즉 ‘동의 만들어내기’이다.
  14. 허버트 갠즈 『저널리즘, 민주주의에 약인가 독인가』, 남재일 옮김, 도서출판강 2008 참조.
  15. 마이클 셔드슨 『뉴스의 사회학』, 이강형 옮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4.
  16. 사설 「검수완박 이어 ‘언론재갈’법… 민주당의 좌충우돌 입법 폭주」, 2022.4.29.
  17. 「언론중재법 연기 후 37일… ‘거짓말’은 하지 맙시다」, 오마이뉴스 2021.11.5.
  18. 제임스 커런 『미디어 파워』, 김예란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참조. 커런이 이 책을 발간한 2002년 당시 그는 필자의 학위논문(“The Media and Economic Crisis”) 지도교수이기도 했는데, 지도 과정에서 한국과 같은 언론 상황이라면 이 모델을 적용해볼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19. 「윤석열 정부, 조중동 종편에 ‘규제완화’ 선물 보따리 푼다」, 미디어오늘 202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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