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이현 鄭梨賢

1972년 서울 출생.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상냥한 폭력의 시대』,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 연인들』 『안녕, 내 모든 것』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등이 있음.

deepoem@hanmail.net

 

 

 

선의 감정

 

 

1

 

재작년 가을, 재단 이사장이 바뀌었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전임 이사장은 비 오는 도로에서 트럭에 치여 즉사했다. 새 이사장은 전임 이사장의 둘째 사위였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전문 컨설팅 업체에 재단 산하 전국 다섯개 병원의 경영진단평가를 의뢰했다. 교수진의 급여 체계부터 손볼 거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와 관련하여 조찬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부디 참석해달라는 내용의 메일이 나에게도 왔다. 병원 사무처 경영지원팀에서 발송한 것이었다. 왜 ‘꼭’이 아니라 ‘부디’라고 했을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설명회에는 가지 못했다. 아이 학교의 녹색학부모회 봉사가 같은 시간에 있었다. 남편은 다른 지역의 학회에 참석 중이었고, 하교 후에 아이를 맡아주는 친정엄마에게 그것까지 부탁하기는 어려웠다. 내 출근 시간을 조정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평소보다 좀 늦게 출근해 회진을 돌고 나니 설명회 후기들이 들려왔다. 병원은 어떤 종류의 소문이든 신속하게 유통되고 재생산되는 곳이다.

“진검 과장님 엄청나게 화나셨다는데요. 수술도 없고 외래도 없는 과는 그냥 바닥 깔아주라는 거냐고.”

펠로우 하나가 진단검사의학과나 마취과 등은 당장 집단행동에 돌입할 태세라는 말을 다소 과장되게 전했다. 공개된 개편안의 핵심은 급여 인센티브제의 전격적 도입이었다. 교수 개개인별로 월 매출액과 수익액을 산출하여 전체 순위를 매기고, 그에 따라 인센티브 액수를 차등지급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니까 지난달 병원에 얼마를 벌어줬느냐에 따라 다음달 월급이 결정되는 건가보다고 나는 이해했다. 결론적으로 급여가 늘어난다는 건지 줄어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돈과 관련된 이슈에 민감하고 재빠르게 반응하는 것은 경박한 일이라고 교육받아왔다.

그날 밤 잠들기 전, 학회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다.

“의사들은 정말 세상물정을 몰라.”

개업의인 그는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도 그 정도의 자기인식력은 가지고 있다. 남편과 나는 도시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유무형의 수혜 속에 자라 의대에 입학했다. 남편은 의료계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진즉부터 인센티브제가 보편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과 일반 기업은 다르잖아.”

나는 항변해보았다.

“다를 게 뭐야.”

“병원이 수익 생각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남편이 풋, 소리를 내며 돌아누웠다.

“과잉진료니 뭐니 뒷말도 나올 거야. 조직문화에도 안 좋고.”

논쟁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닌데 음성이 높아졌다. 남편은 대답 대신 물어왔다.

“근데,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되는 거야, 당신 월급은?”

인센티브제는 그로부터 몇개월 후에 시행되었다. 뚜껑을 열고 보니, 전체 교수들을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는 방식은 아니었다. 등급제였다. 지난달 수익에 의해 교수들은 1등급부터 7등급까지로 나뉘었다. 최상위와 최하위 그룹의 숫자가 적고 가운데가 불룩한 다이아몬드형 구조였다. 수술과 외래가 없는 과에는 그들만의 리그가 적용되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내용은 나도 알지 못했다. 진단검사의학과나 마취과 스태프들이 단체행동에 돌입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으니 어떻게든 해결되었나보다고 짐작했을 뿐이다.

첫 달, 나는 3등급을 받았다. 3등급은 중간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실제 급여통장에 입금된 액수는 인센티브제가 도입되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번째 달에는 4등급이었다. 중간의 약간 아랫부분에 해당했다. 수익액을 보면 지난달과 거의 같은데도 등급이 하락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교수들의 수익이 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외래가 있던 날 연차를 썼던 것이 떠올랐다. 응급시술 콜을 두번, 펠로우에게 돌린 적도 있었다. 그만큼이 그의 수익으로 카운트되었을 것이다. 급여통장에는 전달보다 10퍼센트 정도 적은 액수가 입금되었다. 반사적으로 다음달의 수익을 가늠해보게 되었다.

없던 습관이 새로 생겼다. 매달 내과 전체 교수들의 실적 그래프를 훑어보는 것. 예년에 비해 어쩐지 다른 교수들의 입원환자 숫자가 늘어나고 내시경 시술 횟수가 증가한 것도 같았다. 모두 내 기분 탓인지도 몰랐다. 병원 로비나 식당에서 다른 과의 친분 있는 교수들과 마주칠 때면 저 사람은 몇 등급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가 몇 등급인지 그들이 알고 있을까봐 두려웠다. 최소한 3등급 밑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월급이 줄어들어서만은 아니었다. 절반 이하의 의사라는 자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였다.

새 이사장과 원장단은 이 제도의 목적은 개인을 서열화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며, 경영 효율성 제고를 위한 합리적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심사평가원의 진료비 삭감률, 입원병상의 회전율과 가동률 등을 각 진료과 평가의 주요 지표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는 우려가 들었지만, 나는 그 생각을 깊이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2

 

그날은 아침부터 유독 정신없던 날로 기억된다. 아침 여덟시가 지나도록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집 전화도, 휴대전화도 연결되지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출근을 해야 했다. 자고 있는 아이를 두고 현관을 나서는데 등 뒤에서 남편의 안절부절못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쩔 거야? 어떻게 해?”

내가 허공에 대고 외치고 싶은 말이었다. 코로나19로 아이는 몇달째 등교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학 때처럼 엄마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친정 옆 단지로 이사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엄마는 아침 일찍 건너와 아이를 챙겼다. 아이의 일과는 팬데믹 이전의 방학과 비슷한 듯 달랐다. 그때는 혼자 셔틀버스를 타고 영어학원도 수영장도 다닐 수 있었다. 엄마는 그 시간을 쪼개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시절이 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엄마의 불안은 유별난 데가 있었다. 아이를 집 앞 놀이터에도 내보내지 않았고, 시간제 가사도우미를 부르자는 나의 제안도 완강히 거부했다. 있던 사람도 내보낼 판에 겁도 없다고 했다.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이니?”

질문 형식의 문장이라고 해서 진짜 질문은 아니었다. 엄마의 질문은 어릴 때부터 늘 내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서우 아빠랑 나는 매일 병원에서 별별 사람들 다 만나고 오는데.”

나는 겨우 대답했다.

“그거랑 같니?”

엄마는 일갈했다. 엄마는 눈에 띄게 점점 우울해지고 말수도 줄어갔다. 전날 밤에도 그랬다. 내가 퇴근해 신발을 벗기도 전에 겉옷을 걸쳐 입고서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시술이 밀리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었다고 나는 공연히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넌 왜 그러고 사니?”

엄마의 음성은 나직하고 냉랭했다. 나는 이럴 때 엄마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대답을 알고 있었다. 더 낮고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거였다.

“그러니까. 나 진짜 다 그만둘까?”

사실 이것이 나의 진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이마가 일그러졌다. 엄마는 한숨을 깊게 한번 뱉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불과 열두시간 전의 일이었다.

출근하는 동안 남편이 오분 단위로 전화를 걸어 왔다.

“어떡할 거야? 나 아무리 늦어도 여덟시 반엔 나가야 되는 거 몰라?”

“서우를 깨워서……”

나는 횡단보도에 자동차 앞바퀴를 어중간하게 걸친 채 말했다.

“엄마 집에 데리고 가봐.”

“아이 씨.”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남편이 내뱉는 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지하주차장에서 병원 구내로 연결되는 통로에, 전에 없이 출근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한명씩 수기로 건강 상태 자가진단표를 쓰느라 일어난 일이었다. 어제까지는 없던 절차였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타원 환자의 전원을 받지 않고, 보호자 1인 외의 출입을 금지하는 등 여러 제한조처가 있었다. 그럼에도 병원 시스템은 멈추지 않고 돌아갔다. 인플루엔자 같은 계절성 질병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으나 코로나19 외의 모든 병이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