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문학, 세계와 소통하는 길

 

세계문학 수용에 관한 몇가지 단상

 

 

이현우 李玄雨

문학평론가,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 주요 논문으로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비교시학」 「지젝과 함께 한국문학을 읽다」등이 있음. mramor@hanmail.net

 

 

1. 무엇이 세계문학인가

 

‘한국 독자들의 세계문학 수용 양상’을 점검해보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이자 이 글의 목표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제를 액면 그대로 다루는 것은 나의 역량을 훌쩍 벗어난다. 그것은 세계문학 수용에 관한 일종의 문학사회학, 좀더 구체적으로는 한국문학의 (시)장에서 세계문학의 출판사회학/독서사회학에 관한 어떤‘보고서’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1 그러한 사회학적 분석을 위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 못하기에 현재의 나로선 주어진 과제에 대하여‘몇가지 단상’이라는 형식으로밖에 의견을 개진하지 못한다. 그것이 이 글의 한계이다. 그 과제와 한계 사이에서 몇걸음 옮겨보는 게 이 글의 궤적이 될 것이다.

첫걸음을 떼면서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이다.‘세계문학’이 생각보다 복잡한 개념이고 또 이념이기에 그렇다. 사전적 정의에 따를 때‘세계문학’은 적어도 세가지의 서로 구별되는 의미를 갖는다. 첫째, 세계 각국의 문학을 한국문학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즉 이때 세계문학은‘해외문학’‘외국문학’등의 동의어이며 가장 넓은 범주의 문학을 지칭하겠다. 한국문학 바깥의 모든 문학을 가리키는 것이니까. 둘째,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에게 읽히는 문학. 흔히 이에 대한 예시로 단떼나 셰익스피어를 드는데, 간단히 말하면 세계명작 혹은 고전(클래식)을 뜻하는 것이겠다. 대부분의‘세계문학전집’에서‘세계문학’이란 말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개별 국가의 국민문학(민족문학)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성을 추구한 문학. 곧 괴테가 정의한‘세계문학’이다.2 말하자면 국민문학이면서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을 갖춘 문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세계문학에 관한 가장 문제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들만으로는 불충분해 보이는 새로운 유형의‘세계문학’도 오늘날의 지구시대(지구화시대)에는 등장하고 있다. 가령 무라까미 하루끼나 빠울루 꾸엘류같이 현재‘세계시장’에서 통하는 문학, 세계적인 베스트쎌러 들을 가리키는‘세계문학’이 그것이다. 이것을 달리‘지구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렇게 우리는 최소한 네가지의‘세계문학’을 식별할 수 있다. 비록 개별 작가나 작품 들에는 이 정의들이 중복 적용될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따라서‘세계문학의 수용 양상’을 검토하고자 할 때 먼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어떤 세계문학’의 수용을 가리키는가이다.

수용 대상으로서의 세계문학이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맞물리는 것은 그 수용 주체로서의‘한국 독자’란 말이 지닌 지시성이다. 어떤 한국 독자인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시사점이 되어주는 것은 근대적 대중독자의 형성과 분화에 대한 천정환의 검토이다. 그는 식민지시대의 문학 독자층을‘전통적 독자층’‘근대적 대중독자층’‘엘리뜨적 독자층’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 세가지 독자층은 주된 독서대상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전통적 독자층이 주로 19세기 방각본(坊刻本) 소설과 구활자본(舊活字本) 소설 들의 독자였다면,‘근대적 대중독자’는 대중소설, 번안소설, 신문연재 통속소설, 일본 대중소설, 야담, 몇몇 역사소설의 독자였고‘엘리뜨 독자층’은 신문학 순문예작품, 외국 순수문학 소설, 일본 순문예작품의 향유자였다. 그리고 “‘근대적 대중독자’와‘엘리뜨적 독자층’은 명백히 근대적인 제(諸)제도의 힘에 의해 형성되었다.”3

여기서‘전통 독자층’은 구활자본 고전소설의 출판이 1927년을 기점으로 하락세에 들어서는 것과 맞물려 점차 쇠퇴할 운명에 놓이지만,‘근대적 대중독자층’과‘엘리뜨 독자층’의 분화는‘일반 독자층’과‘엘리뜨 독자층’의 분화로 변형되어 현재까지도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물론 이것은 근대문학의 독자층으로 볼 수 있는 범주에 속하고, 앞으로는 근대문학의 종언, 탈근대문학의 도래와 함께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탈근대 대중독자’도 새로운 독자층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젊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솔직하면서도 가볍게 다룬 칙릿chic-lit과 말 그대로‘가벼운 소설’라이트 노블light novel의 독자가 가장 대표적인‘탈근대 대중독자’가 아닐까). 식민지시대‘엘리뜨 독자층’이 “전문학교 이상의 과정을 이수했거나 그에 준하는 학력과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진 층”으로서‘고급’취향의 문사 지망생과 이른바 전문독자들을 포함했다면, 오늘날의‘엘리뜨 독자층’은 적어도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가진 고급 취향의 독자층으로서 작가들과 문학전문 기자, 전문 비평가, 연구자 그룹을 포함하는 것이겠다.4‘엘리뜨 독자층’이 주로 특정한 문학관이나 문학적 입장에 따라 내적으로 분화된다면,‘근대적 대중독자’에 상응하는 오늘날의‘일반 독자층’은 주로 나이와 성별, 직업군에 따라 독서 취향이 갈라지지 않을까 한다. 요컨대 일반화해서 말할 수 있는‘한국 독자’는 통계적인 평균 이상의 의미를 갖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5 때문에 우리가 개념상 복수형의‘세계문학’과 대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세계문학 수용 주체로서 고려할 수 있는‘한국 독자’또한 공시적·통시적으로 분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세계문학이고 누가 한국 독자인가?

 

 

2. 한국에서의 세계문학

  1. 이러한 요구에 부합할 만한 글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독자의 탄생과 한국 근대문학’을 다룬 천정환(千政煥)의 『근대의 책읽기』(푸른역사 2003) 같은 책이다. 식민지 근대를 주로 다룬 이 책의‘후속편’이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현대의 책읽기’를 마저 다루게 된다면 거기서 이 주제는 그에 걸맞은 규모로 검토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사업’이 될 것이다.
  2. 괴테의 세계문학론에 대해서는 이미 국내에서도 자세하게 논의된 바 있다. 임홍배 「괴테의 세계문학론과 서구적 근대의 모험」, 『창작과비평』 2000년 봄호 등 참조.
  3. 천정환, 앞의 책 272~79면.
  4. 천정환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서는 이러한‘엘리뜨 독자층’또한 점차 쇠퇴하고 있다. 천정환 「2000년대의 한국소설 독자 II」, 『세계의 문학』 2007년 봄호 참조. 비록‘한국소설’독자로서의‘엘리뜨 독자’를 대상으로 한 진단이지만,‘문학’일반에 대한 독서경향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5. 최근 2006년의 국민 독서실태조사를 근거로 한 표준적인 독자 분석은 백원근 「통계로 본 소설 독자」, 『세계의 문학』 2007년 봄호 참조. 2000년대 베스트쎌러 일반에 대한 분석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엮음 『21세기 한국인은 무슨 책을 읽었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7 참조. 문학 베스트쎌러의 경우‘한국문학’과‘외국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