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세계사 다시 읽기와 유럽중심주의

A.G.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를 중심으로

 

 

유재건 柳在建

부산대 사학과 교수. 주요 논문으로 「맑스와 월러스틴」 「식민지·근대와 세계사적 시야의 모색」 「통일시대의 개혁과 진보」 등이 있음. jkyoo@pusan.ac.kr

 

 

1. 머리말

 

‘유럽중심주의’의 극복문제는 이제 우리 역사학계에서도 아주 낯익은 화두가 되어 있다. 『창작과비평』 2003년 여름호 논단을 구성하는 세 편의 글, 김경현(金炅賢)의 「검은 아테나 여신: 오늘의 미국과 고대 그리스」,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의 「근대를 다시 본다: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 그리고 에릭 밀런츠(Eric Mielants)의 「유럽과 중국의 비교사」는 각기 주제와 시각은 다르지만 유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사에서 아시아의 위상을 복권시켜 새로운 근대 역사상을 모색하는 미야지마와 밀런츠의 글이 유럽중심적인 역사서술에 대한 전형적인 문제제기라면, 서양 고전문명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적 뿌리를 갖고 있었다는 마틴 버널(Martin Bernal)의 저서 『검은 아테나 여신』(Black Athena)을 다룬 김경현의 글은 이제 세계사 서술에서 유럽중심적인 편향으로부터 탈피하려는 경향이 주제와 시대에 관계없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그 가운데서도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미야지마의 「근대를 다시 본다」였다. 기존 역사교과서의 부당한 유럽중심주의 서술방식을 적절하게 비판한 부분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그같은 유럽중심적 세계사에 대한 거시적 대안을 모색하고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근대를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한 시도는 의미있게 여겨졌다. 그러면서도 그가 A.G. 프랑크의 『리오리엔트』에 제시된 전지구적 세계체제론 등을 적극 원용해 동아시아 근대의 기점이나 근대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데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필자로선 그러지 않아도 프랑크의 최근 작업에 대해 비판적인 검토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미야지마의 글을 접하면서 스스로 한번 시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오리엔트』1는 올해 국내에 번역, 소개된 뒤 상당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이제껏 나온 그 어떤 저작보다도 전면적이고 근원적인 유럽중심주의 비판을 시도하고 있는데다, 그간 유럽중심주의 역사학의 극복을 자임한 브로델(F. Braudel)이나 월러스틴(I. Wallerstein) 등의 견해에 대해서 어딘가 유럽중심주의의 낌새를 느껴온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만한 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조효제(趙孝濟)는 『리오리엔트』가 ‘일방적’ 세계체제론에서 ‘보편적’ 세계체제론으로 나아간 점에 주목하기도 했고, 최근 출간된 이성형(李成炯)의 저서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역시 프랑크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아시아가 19세기에 유럽중심의 세계체제에 편입되었다는 기존의 통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2

프랑크는 이 책에서 전지구적 시각에서 세계사를 서술한다는 야심찬 기획을 표방하는데, 지금까지의 세계사가 유럽중심주의 역사라면 자신의 작업은 그에 도전하는 ‘인류중심적’ 역사라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그간의 세계사 인식에 스며 있는 ‘서구 대 나머지 타자’의 구도를 벗어나 전지구적 세계체제 안에 유럽을 설정하는 한편 유럽중심적인 역사학에서 과소평가되어온 아시아의 역사적 위상을 복권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프랑크가 제시하듯, 유라시아 세계 안에서 유럽의 위치를 상대화시켜보자는 인식은 분명 과도한 유럽중심 서술에 대한 바로잡기의 첫걸음일 것이다. 그간 역사인식에서 망각되거나 시야에서 제쳐진 비유럽 지역사들을 복원해 균형잡힌 세계사를 재구성하는 것 또한 소중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리오리엔트』에 제시된 대안적 역사상이 과연 전지구를 범위로 하는 인류중심적 전체사를 지향한다는 목표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더 나아가 유럽중심주의적 역사학을 해체한다는 기치 아래 새로운 유행처럼 등장한 여러 시도에서도 경계해야 할 점들이 있어 보인다. 프랑크가 제시하는 세계사 재해석은 기존 발상의 근본적 전환에 대한 요청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근래의 경제사 연구성과를 활용한 많은 재해석을 담고 있기 때문에 방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둘러싼 논란이 있으며 그 쟁점을 두루 검토하려면 전문적인 연구성과들을 섭렵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구체적 논점에 대한 쟁론은 각 방면의 전문가들의 몫으로 미루고 이 글에서는 『리오리엔트』의 전체적 역사인식틀에 촛점을 맞추어 몇가지 비판적 문제제기를 하려 한다.

 

 

2. 『리오리엔트』와 유럽중심주의

 

『리오리엔트』는 전지구적 관점에서 근대 초기의 세계경제사를 재구성해보려는 시도이다. 프랑크가 무엇보다 비판하는 역사학적 통념은 자본주의적인 세계경제가 근대 초기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아시아는 19세기에야 이 체제에 통합되었다는 인식이다. 그는 이런 통념이야말로 대표적인 유럽중심주의 신화의 일부라고 공박한다. 유럽중심의 근대 세계시장이 형성되기 오래 전부터 유라시아의 교역망을 통해 방대한 세계시장이 이미 가동되고 있었고, 근대 초에 해당되는 16세기에도 유럽을 주변부로 삼는 유라시아 세계시장에서 중심부는 아시아였다는 것이다. 거의 5천년에 걸쳐 유라시아(혹은 아프로-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하는 전지구적 차원의 세계경제가 성립해왔으며 광범위한 원거리 무역망을 통해 작동해온 이 체제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단일한 ‘세계체제’(월러스틴의 ‘world-system’과는 다른 전지구적 ‘world system’)의 작동과 기능을 보는 전지구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랑크에 의하면 1400(때로는 1500)~1800년 동안 근대 세계체제의 헤게모니 같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 특히 중국에 있었고 유럽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 아시아에 빌붙어 있는 존재였다.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시장경제를 주도하고 세계경제를 움직였던 중국은 생산력·인구성장·생산성·기술 등 모

  1. Andre Gunder Frank, ReOrient: G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이희재 옮김 『리오리엔트』, 이산 2003.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때는 괄호 안에 면수를 표시할 것임.
  2. 조효제 「동양중심 재구성한 세계체제론」, 『한겨레』 2003년 3월 1일자; 이성형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까치 2003, 158~59면, 310면 참조. 이민호의 「세계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역사비평』 2002년 여름호) 역시 프랑크의 이 책에 대해 아주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